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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희떡사랑by미적감각味的感覺 한식 외골수 서명환
요리사는 잠이 없어야 한다. 제철 식재료를 구하기 위해 사계절 내내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 그렇게 구한 식재료는 최소한의 양념만 더해 본연의 맛을 해치지 않아야 한다. 이 모든 과정이 기다림의 연속이며, 그 결정체가 바로 한식이다. 그리고 그 기다림을 숙명으로 여기는 요리사가 있다.

우리 조상이 만든 한식 그대로를 고수하는 요리사 서명환과 1층 접견실을 꾸민 ‘바른디자인’의 우동구 대표.

개성 약과와 육포 다식 그리고 대추, 산딸기, 딸기, 참다래, 금귤, 밤정과가 뽀얀 그릇에 담겨 알록달록 수놓는다.

꼬박 보름이 걸려 말린 어란. 서명환의 시그너처 메뉴인 어란국수의 핵심 재료다.

생선 가게를 운영하던 어머니처럼 무쇠 칼을 사용하는 요리사 서명환. 하루라도 갈지 않으면 녹이 생겨 요리사를 부지런히 움직이게 하는 도구다.
엄마의 한식을 먹고 자란 통영 꼬마
한식 요리사 서명환을 제대로 알려면 40여 년 전 그의 유년 시절을 들여다봐야 한다. 경상남도 진주 출신으로 유년 시절은 통영에서 보냈다. 고추장·된장·간장을 직접 담가 쓰는 어머니를 보며 자연스레 한식을 익혔고, 생선가게를 운영하던 어머니는 요리를 좋아하는 아들을 독려하기 위해 매일 가게에 나가기 전 미리 장 봐둔 식재료를 건네곤 했다. 집에 혼자 남은 남자아이는 어깨너머로 배운 엄마의 요리를 따라 하기도 하고, 나중엔 실력이 늘어 직접 국물을 우려 국수를 말기도했다. “제 요리 인생에 어머니의 영향은 매우 컸어요. 각종 장과 젓갈도 직접 담그셨죠. 해풍을 맞아 바다 향이 밴 간장 맛을 알게 해주셨어요. 어머니의 요리는 매우 맛있었고 요리하시는 모습도 아름다웠지요. 작년에 돌아가셨는데, 이맘때 해주시던 노각나물이 생각납니다.” 요리를 좋아하는 아들이 기특했지만 안정적인 벌이가 보장되는 은행원이 되길 원한 어머니의 바람을 저버리고 진학한 대구미래대학교의 호텔조리학과에서 처음 양식을 접했다. 어머니가 그토록 공들이고 시간이 걸려 만든 한식과 달리 후다닥 하면 완성되는 양식에 금세 흥미를 잃은 그는 본격적으로 한식을 공부하고 싶었다.

서명환의 스승이 된 건 다름 아닌 예부터 내려오던 한식 고서. 오래된 책방을 돌며 발품을 팔아 조선의 마지막 상궁인 한희순이 조선시대 궁정 요리를 총망라한 <이조궁정요리통고>(1957), 요리 연구가 방신영이 지은 최초의 근대식 한국 요리책 <요리제법>(1913)과 이 책의 개정판 <우리나라 음식 만드는 법>(1954), 반가 음식의 일인자 강인희의 <한국의 맛>(1987), 1670년에 쓴 것으로 추정하는 한국 최고最古의 한글 요리책인 정부인 안동 장씨의 <음식디미방>을 궁정 음식 중요무형문화재 황혜성이 현대어로 풀이한 <다시 보고 배우는 음식디미방>(1999) 등을 찾았다. 현대에 낯선 용어가 부지기수였는데 예를 들면 잣은 실백, 찌개는 조치 등으로 기록되어 있었다. 꿀과 참기름이 들어가면 ‘약’ 자가 붙는데 약밥, 약편, 약보(육포)가 있으며, ‘선’ 자가 붙으면 녹두 녹말이 들어간 요리로 오이선, 가지선, 호박선, 두부선이라 했다. 하지만 한글과 한자를 오가며 풀이와 해석을 하는 모든 과정이 그를 신나게 만들었다. “고서의 용어나 조리법을 풀면 풀수록 우리 조상들이 얼마나 지혜로웠는지 알게 되더라고요. 모두 연결되어 있고 제각각 뜻이 다 있어요.” 이렇게 3백여 권의 전통 한식 책을 독파했고, 우리나라 최초의 전통 병과 전문점 ‘호원당’의 설립자 조선 한식의 대가 조자호의 <조선요리법>(1939), 남도의례음식기능보유자 이연채의 탁월한 손맛이 기록된 <전통음식 떡살>(2002) 등에서 배운 떡과 한과로 2008년 ‘연희떡사랑’을 열었다. 8년간 무탈하게 운영하는 동안 2013년 제7회 전국떡명장선발대회 금상을 수상했으며, 2014년 전주 전국요리경연대회 통일부장관상과 디저트 부문 대상을 연이어 수상하는 등 실력을 두루 인정받았다. 하지만 떡과 한과에 국한되지 않은 총체적인 한식에 대한 갈망을 저버릴 수 없었다. “강인희 선생님의 오랜 제자이자, 현존하는 우리나라 반가 음식의 최고봉이라 할 수 있는 한국전래음식연구회의 이말순 선생님을 찾아갔어요. 몇백 년에 걸쳐 내려온 뿌리 깊은 반가 음식을 배우려고요. 물림이라는 것은 그대로 이어져야 하는데, 시대 흐름에 따라 각색되는 요리가 있더라고요. 하지만 이말순 선생에게는 전통 그대로 내려온 요리법과 변형되기 전의 원물을 배울 수 있어요. 제겐 책이 아닌 사람으로서는 유일한 스승이지요.” 그렇게 공부한 20여 년의 내공으로 새롭게 문을 연 ‘연희떡사랑by미적감각味的感覺’. 한식을 연구하며 클래스와 메뉴 컨설팅을 위한 곳이다. ‘미’는 아름다울 미가 아닌 맛 미를 쓴다. 또 상호에 한글과 한자를 같이 쓰는 것은 조상이 이룬 과거의 맛을 현재의 아름다운 맛으로 만들자는 철학이며, 새것을 만들되 근본을 잃지 않아야 한다는 법고창신의 정신도 담았다.

장식적인 요소를 배제하고 직선의 순백 공간으로 꾸민 연희떡사랑by미적감각의 1층 접견실.

제철 민어밥을 올린 한 상. 말린 송이버섯을 넣고 끓인 양지 국물에 소량의 국간장으로만 간한 송이버섯국을 함께 냈다.

이세훈 작가의 그릇에 담긴 어란국수. 감칠맛이 뛰어나 한여름 무더위에 집 나간 입맛도 되돌아오게 한다.

조선시대의 요리법을 비롯해 서명환이 전통 한식을 배우기 위해 그간 모은 한식 관련 책.

박달나무, 호두나무 등 오랜 시간이 지나도 틀어짐이 없는 나무로 만들어 선조의 지혜를 엿볼 수 있는 옛 떡살.
기다림의 미학, 한식이야말로 세계 요리의 최고봉
연희동에 위치한 4층 건물. 기존 주차장이던 1층은 용도 변경을 해 접견실로 꾸몄다. 디자인과 시공은 바른디자인의 우동구 대표가 맡아 오로지 한식에 집중할 수 있도록 갤러리처럼 곧은 직선으로 디자인했고, 따뜻한 감도의 아이보리 색상으로 칠했다. 바닥에는 빛바랜 듯한 무광 폴리싱 타일을 깔았다. 그리고 곳곳에 서명환이 모은 고재가구, 소반, 그릇 등을 놓았다. 테이블과 의자의 높이는 겨우 10cm 차이가 나는데, 이는 소반을 놓을 때의 높이를 미리 계산한 것. “의자에 등받이를 만들지 않은 것은 그 옛날 바닥에 앉아 소반의 음식을 먹은 조상의 식사법을 보여주고자 한 것이며, 한편으로는 한식을 먹을 때는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긴장하며 먹자는 뜻이기도 합니다. 한식이 그저 편안하게 먹는 음식이 아닌, 위대하며 존중해야 하는 것임을 알리고 싶은 요리사 서명환의 바람을 담았지요.” 2층은 한식을 연구하고 클래스를 진행하는 주방이며, 3·4층은 같은 마음으로 한식을 연구할 요리사들이 입주할 예정이다.

오늘 선보이는 요리는 이 계절의 제철 재료로 만든 어란국수와 민어밥이다. 우선 어란국수로 말하자면 유년 시절부터 국수를 말던 서명환의 국수 예찬이 절정에 달한 음식이다. “우리가 모르는 국수가 정말 많아요. 전통 한식을 근간으로 해 요리한 민어, 대게, 능이버섯, 송이버섯, 문어 등으로 맛을 낸 국수죠. 오늘 선보일 국수는 어란국수입니다.” 요리사 서명환은 매년 5월 초에서 중순까지 알을 배는 숭어로 어란을 만든다. 올해는 총 60마리의 숭어로 어란을 만들었다. 우선 숭어알의 핏물과 수분을 빼기 위해 염장을 한다. 물에 담가 짠맛을 빼는 탈염을 한 후 다시 장물에 부어 하루 동안 재운다. 자연 바람에 건조하는 게 제일 좋지만 미세먼지가 많은 요즘엔 건조기에서 매일매일 참기름을 발라가며 보름간 말린다. 냉장고에 진공상태로 보관하면 1년은 족히 두고 먹을 수 있는 우리 선조의 고급 저장 음식이다. 삶은 소면에 곱게 간 어란 가루와 바다 특유의 비릿한 맛을 잡아주는 송송 썬 미나리 그리고 특제 간장을 넣고 비빈다. 먹기 전에 송로버섯 오일을 두르는데 농축된 바다 맛과 고소한 풍미가 입안에서 폭발한다. 민어밥은 표고버섯을 넣고 지은 돌솥밥 위에 제철 민어구이와 민어 보푸라기를 올린 밥. 이 요리의 화룡점정은 수란을 함께 비비는 것인데, 그러잖아도 제각각 맛있는 고명을 두루 어우러지게 하고 밥 한 톨 한 톨에 윤기와 부드러움을 더한다. 은은하게 도는 감칠맛은 직접 담근 집간장에 북어 대가리, 멸치, 밴댕이, 건다시마, 건표고버섯, 건새우, 전복 등을 넣고 2시간 정도 뭉근하게 끓인 해물 간장이 한몫했다. “매년 통영에 내려가 간장을 담급니다. 어머니의 40년이 넘은 간장독은 요즘의 유약 바른 독과는 달라요. 바닷바람을 맞으며 숨을 쉬기 때문에 어간장과 같은 맛이 나죠. 이 간장으로 달임장, 비빔장 등을 만들어 써요. 모두 자연에서 얻은 양념입니다. 인공 조미료는 자연이 주는 천연의 맛을 해치고 감춰버리거든요.”

그는 요즘 일간지의 협업 제안으로 고려시대의 만둣집 ‘쌍화점’을 재현하기 위한 공부를 하고 있다. 고려가 건국한 지 올해로 1천1백년이 되었는데 7월이 바로 그달이다. 사신들이 고려에 왔을 때 대접한 음식이 바로 쌍화, 즉 고려식 만두. “옛것 그대로를 이어가려 해요. 캐주얼이나 퓨전이 아닌 조상들이 만든 한식을요. 투박하다, 익숙하다, 만만하다라고 할 수 없는 한식의 위대함을 탐구하고 알릴 거예요. 수백 년 전 조상의 맛을 알려면 아직도 공부할 게 태산입니다.” 요리사 서명환은 이런 한식을 함께 나누고자 한 달에 한 번 한식 코스, 한과, 폐백과 이바지 음식 수업을 하고 있다. 일주일에 한 번 열리는 떡 수업도 있다. 모두 연희떡사랑by미적감각의 블로그에서 신청이 가능하다. 다양한 분야의 요리 중에서 가장 번거롭고 어렵다는 한식. 그래서인지 요즘 젊은 요리사 중 전통 한식을 연구하며 공부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요리사 서명환의 행보에 힘찬 응원을 보낸다. 조상이 이룬 시간의 미학味學을 현시대에 널리 전파해주길.


<행복> 독자를 초대합니다


진솔한 한식 요리가 서명환의 가을 떡 수업에 초대합니다. 곶감단자, 대추단자 등 가을 정취가 물씬 풍기는 우리의 떡을 만들어 소중한 분들께 전해보세요.

일시 9월 6일(목) 오후 2~4시
장소 서울시 서대문구 성산로 329-32
인원 8명
수강료 10만 원
신청 방법 <행복이가득한집> 홈페이지(www.designhouse.co.kr/classtour) 또는 전화(02-2262-7222)로 선착순 접수합니다.

글 이경현 기자 | 사진 이우경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8년 8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