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해주세요.
본문 바로가기
지역의 맛과 문화가 깃든 손막걸리 울산 복순도가
친숙하다 못해 값싼 술이라 취급받던 막걸리를 누구보다 발 빠르게 고급화하는 데 성공한 울산광역시 울주군에 있는 복순도가. 울산에서 생산한 쌀과 전통 누룩을 항아리에서 발효시켜 완성한 생막걸리는 프리미엄 막걸리의 새로운 기준으로 자리 잡았다.

복순도가의 시작은 가양주다. 일반 막걸리보다 탄산감이 풍부하며 단맛이 강하다. 
늘씬하고 기다란 막걸리병의 뚜껑을 돌리자 “치익” 하고 탄산빠지는 소리가 경쾌하게 들린다. 침전물이 가라앉아 미묘하게 두 층으로 나뉘어 있던 막걸리가 출렁거리기 시작한다. 이내 바닥에서 흰 물결이 솟아오르더니 자연스럽게 뒤섞이면서 우유처럼 뽀얀 빛깔을 띤다. 흔들지 않아도 탄산감이 풍부해 저절로 고르게 섞이는 막걸리, 복순도가가 빚은 손막걸리다 (살균 막걸리와 달리 누룩에서 생성된 효모가 살아 있는 생막걸리를 말하며 유통기한이 짧다). 2010년 처음 등장한 복순도가의 손막걸리는 서서히 입소문 나기 시작하더니 2012년 서울에서 열린 핵안보정상회의 공식 건배주로 선정되기까지 했다. “막걸리의 현대적 혁신”이라는 평가를 받으면서 프리미엄 막걸리 시장의 새로운 장을 연 복순도가. 부모님을 도와 이곳을 이끌어가는 김민규 대표가 손막걸리를 통해 말하고 싶은 가치는 무엇일까.

건축을 전공한 김민규 대표가 설계하고 지은 복순도가의 새 양조장. 볏짚을 꼬아 만든 새끼를 벽에 바르고 불에 그을려 검은 외관을, 술 만들고 남은 누룩 찌꺼기로 내부 벽을 마감했다.

어머니의 이름을 내건 가양주
복순도가의 시작은 김민규 대표의 어머니 박복순 씨가 빚던 가양주 형식의 농주다(예부터 막걸리를 농주라 불렀으며, 농사 지을 때 마시는 술, 농부가 즐겨 마시는 술을 의미한다). “옛날부터 농촌에서는 집집마다 술을 담갔습니다. 친할머니도 술을 빚었는데 방 안이 커다란 술 항아리로 가득 차 있을 때가 많았어요. 어머니는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가양주를 할머니께 배웠지요. 좋은 쌀과 직접 빚은 누룩으로 술을 만들어 마을 어르신들에게 대접하고, 주변 지인과 함께 나눠 마시는 것이 일상이었습니다.” 김민규 대표는 어머니가 빚은 술이 주변 지인에게 인기가 많았다고 이야기한다. 김가네 며느리가 빚은 술맛이 기가 막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술을 구매할 순 없나” “상품으로 만들어달라”는 요청이 쏟아졌다. 그는 가족과 함께 고민한 끝에 가양주에 상품성을 부여해보기로 결심했다. 어머니 박복순 씨는 누구나 편안하고 맛있게 막걸리를 즐길 수 있도록 4~5년에 걸쳐 레시피를 개발했고, 수학을 전공한 둘째 아들 김민국 씨는 최적의 맛을 찾기 위해 여러 가지 실험을 했다. 온 가족이 의기투합한 결과 2010년 복순도가만의 손막걸리를 상품화하는 데 성공했다. “어머니 이름을 따서 복순도가라 지었습니다. 손수 빚은 막걸리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어요. 흔히 도가는 그릇 도陶 자와 집 가家 자를 써요. 반면 복순도가의 ‘도’는 도시 도都 자를 사용합니다. 평범한 전통주가 아닌 좋은 술을 통해 도시와 농촌의 교류가 활발해 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요.”

발효에서 모티프를 얻어 지은 복순도가. 창문이 열려 있는 공간에서 막걸리를 시음하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체험할 수 있다. 


복순도가의 김민규 대표. 어머니를 도와 술을 직접 빚으며 막걸리를 통해 지역의 문화를 알리고자 노력한다. 

샴페인처럼 차오르는 탄산이 핵심

흔히 막걸리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시큼털털한 맛이다. 물론 먹기 전에 병을 위아래로 흔들어 고루 섞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한데 복순도가의 막걸리는 다르다. 뚜껑을 열자마자 탄산이 힘차게 차올라 병을 흔들지 않아도 침전물이 고루 섞인다. 이러한 차별성을 지닌 배경에는 전통 방식을 철저하게 고수하며 술을 빚는 어머니와 이를 존중하고 지켜나가려는 김민규 대표의 의지에 있다. “저희 할머니께서 늘 ‘경상도에서 만든 누룩을 가지고 전라도에 가서 술을 빚거나 전라도에서 만든 누룩을 가지고 경상도에서 술을 빚으면 술맛이 들지 않는다.’ 라고 강조하셨어요. 술맛을 결정하는 변수는 여러 가지지만 그중에서도 기본은 그 지역에서 생산한 좋은 쌀과 누룩이에요. 복순도가는 울산에서 생산하는 햅쌀과 통밀로 만든 전통 누룩으로만 술을 빚습니다.” 김민규 대표는 기계식 공장처럼 방부제나 인공 균을 넣어 막걸리를 대량생산하지 않는다. 어머니를 도와 전통 방식으로 술을 빚는다. 가장 먼저 항아리에 볏짚을 넣고 햇볕에 말리는 작업을 반복하면서 깨끗하게 소독한다. 통밀로 만든 누룩과 햅쌀로 지어 식힌 고두밥을 고루 섞은 뒤 항아리에 넣어 여름에는 25일, 겨울에는 30일가량 발효시킨다. 막걸리 자체에 들어가는 쌀 함량이 높고 누룩이 발효되는 과정에서 천연 탄산이 자연적으로 생겨나는 것이다.

복순도가 손막걸리의 특징을 설명하는 김민규 대표를 따라 발효실로 들어서니 향기로운 냄새가 코끝을 자극한다. 항아리에 씌운 천을 벗기자 고두밥과 누룩이 한데 섞여 기포가 보글보글 올라온다. 항아리에 귀를 대보니 “쏴아” 하고 소낙비가 내리는 듯한 소리가 울려 퍼진다. “누룩이 발효되면서 탄산을 배출하는 소리예요. 지금 항아리 속에 든 원주原酒는 3일밖에 되지 않았어요. 대략 열흘 정도 지나면 천둥치는 것처럼 요란한 소리가 납니다. 술도 하나의 생명체나 다름없어요. 어머니는 정말 아기 다루듯 술에 애정을 쏟아요. ‘얘들아 오늘도 잘 있었어?’ ‘건강하게 일하고 있지?’라고 말을 건네시죠. 그럼 술이 알아듣기라도 한 것처럼 소리를 더욱 크게 냅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저온에서 장기 숙성시키니 자연스레 술맛이 들 수밖에. 손막걸리를 마시면 시큼하거나 텁텁하지 않다. 샴페인처럼 청량감이 느껴지면서 입안 가득 단맛이 퍼진다. 그 맛에 반해 손막걸리를 찾는 사람도 점차 늘어났다. 서울 핵안보정상회의에 이어서 2013년 5월에는 청와대에서 열린 재외 공관장 만찬에서도 공식 건배주로 선정됐다. 2015년에는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샌프란시스코 국제와인주류품평회에서 금상을, 영국 주류품평회에서 은상을 수상하며 한국을 대표하는 프리미엄 막걸리로 자리매김했다.

복순도가 손막걸리의 기본은 지역에서 생산한 쌀로 지은 고두밥과 전통 방식으로 만든 누룩이다.


발효실 내부. 커다란 항아리에 귀를 기울이면 소낙비가 내리는 듯한 소리가 들리는데, 잘 발효되고 있다는 증거다.

도시와 농촌을 잇는 발효의 가치
흔히 술 한 잔에는 인생이 담겨 있다고 한다. 복순도가의 손막걸리에는 막걸리를 사랑하는 가족의 인생뿐 아니라 김민규 대표의 꿈이 담겨 있다. 미국 뉴욕 쿠퍼유니언 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한 그는 가업을 이으면서 논이 있던 자리에 양조장을 지었다. “2년 전 한국에 돌아와 농촌 풍경을 관찰했습니다. 농부들의 행위, 논과 땅의 변화를 관찰하면서 건축적으로 발전시킨 것이 발효 건축입니다.” 그는 양조장 본연의 기능에 충실하면서도 계절의 변화와 시간의 흐름을 담아낼 수 있는 공간을 설계했다. 도가의 외벽은 페인트칠을 하지 않고 볏짚을 꼬아 만든 새끼로 마감하고 불에 그을려 검은색 흔적을 강렬하게 새겼다. 볏짚을 태워 한 해 농사를 마무리하고 다음 해를 기원하던 농부의 행위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이다. 병충해를 예방하는 기능적 부분보다 그 행위가 주는 정서적 의미를 강조하고 싶었다. 내부 벽은 막걸리를 만들고 남은 누룩 찌꺼 기로 마감했다. 발효실 또한 전통 한옥의 소재인 황토 벽돌을 쌓아 만들었고, 건물 중앙인 복도에 두어 사람들이 창문을 통해 발효 과정을 보고 스피커로 울려 퍼지는 발효 소리를 듣도록 했다.

“유학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서 도시와 농촌 사이에 활발한 커뮤니케이션이 없다는 사실이 안타까웠습니다. 그런데 전통주 하나를 잘 만드니 서울에서 이곳을 찾아오는 사람이 늘고, 자연스레 교류하게 되는 게 신기했어요. 지역에서 생산하는 쌀로 함께 술을 빚고 어울리는 모습이 정겹게 느껴졌지요. 발효라는 가치가 농촌과 도시를 잇는 매개체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곳을 통해 우리 막걸리와 다양한 전통주를 함께 알려나가고 싶어요. 정말 좋은 술인데 유통이나 마케팅이 부족해서 널리 알리지 못하는 술이 많아요. 지역 고유의 맛과 멋을 술을 통해 알려나가는 것이 목표입니다.” 김민규 대표의 말처럼 지역의 농산물과 역사, 문화, 사람으로 연결되는 전통주만이 지닌 가치는 여행으로 연결되기도 하고 전통주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해준다. 발효라는 이름으로 술이 익어가는 것처럼 커다란 항아리 속에 지역과 역사, 사람이 한데 뒤섞여 새로운 문화로 발효되길 꿈꾼다.

글 김혜민 기자 사진 이기태 기자 취재 협조 복순도가(1577-6746, www.boksoon.com)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7년 4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