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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춘분 요리 연구가가 정월 대보름 절식으로 차린 온기 담은 한 끼
경주 ‘연허당’은 서울에서 인기 높은 이탤리언 레스토랑 ‘마이쏭’과 ‘그랑씨엘’의 셰프인 이송희의 친정이다. 친정어머니인 임춘분 여사는 성대한 음식과 거창한 대접보다는 집에서 한 끼를 함께 하며 얻는 소통의 시간을 더욱 소중히 여긴다. 초대상의 테마를 정하고 메뉴를 준비할 때 ‘절기’는 많은 이야깃거리와 의미를 담은 훌륭한 소재가 된다. 정월 대보름이 있는 2월이라면, 오곡밥과 각종 나물을 준비해 손님이 편안하고 따뜻한 시간을 보내도록 정성을 다한다.

다이닝룸의 식탁에는 대보름 손님맞이를 위해 놋그릇과 놋수저를 정갈하게 세팅하고, 마당에 핀 설유화 가지를 담은 유리 화병을 놓아 단아하고 품격 있는 느낌을 더했다. 식탁 위 술은 20년 전 손수 담가 숙성시킨 와인으로, 대보름 아침 마시는 귀밝이술로 청주 대신 대접할 예정이다. 
“20년 전 이 넓은 주택으로 이사 온 후 많은 양의 음식이나 그릇을 보관하는 일이 한결 수월해졌어요. 김치냉장고를 포함해 여덟 대의 냉장고를 구비하고 있죠. 손님이 언제 오시더라도 밥 한 끼 대접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자식들에게도 집에 누가 찾아오면 물 한 잔이라도 내야 한다고 늘 얘기하죠. 저는 찹쌀로 빚어 단기간 발효시키는 달큼한 감주를 담가 떨어지지 않도록 늘 준비해둬요. 또 다도茶道를 즐겨 유명 공예가가 만든 차제구와 찻잔 컬렉션, 귀한 차가 많은데, 손님이 오시면 하나씩 꺼내 대접하면서 차에 대한 이야기도 나눠요. 몸의 혈을 풀어 맑게 해주는 천량차나 몸속 독소를 빼주는 황금보이차를 주로 권합니다. 음식을 먹은 후엔 2천5백 년 전 나무에서 따 말린 원시림 야생차를 마시면 입안이 개운해지죠.”

손님이 집 안에 들어올 때 가장 먼저 첫발을 내딛는 현관 앞 복도. 임춘분 여사의 경주 집은 7백여 평에 이르는 주택으로, 마당이 넓고 햇볕이 잘 들어 추운 날도 집 안 곳곳에서 따스한 온기와 여유가 느껴진다.

전통 장 안에 자리한 다양한 찻주전자와 찻잔 등은 임춘분 여사가 아끼며 늘 매만지는 컬렉션. 손님이 올 때마다 귀한 차를 골라 대접하곤 한다.

세 가지 전
“새해 첫 번째로 맞이하는 큰 보름달은 풍요의 상징이죠. 경상도 지역에서는 설과 추석 다음으로 큰 명절로 여겨 새해 첫날부터 보름 동안 풍성하게 음식을 차려 먹었어요. 오곡밥과 묵나물이 대보름의 대표 음식이긴 하지만, 다양한 전 요리도 빠질 수 없지요.”


육전, 생선전, 홍합전(각각 4인분)
1 소금과 후춧가루로 밑간한 안심과 대구포(각각 300g), 참기름(1큰술)과 소금(1/2작은술)을 넣어 조물조물 무친 홍합살(25알)에 밀가루(각각 1/4컵)를 앞뒤로 고루 묻힌다.
2 ①의 각 재료에 소금과 후춧가루로 간한 달걀옷(각각 3개분)을 앞뒤로 입힌다.
3 팬에 식용유를 두르고 각각의 재료를 차례로 올려 노릇하게 굽는다.


오곡밥 + 대구찌개
“저희 집을 찾는 손님에게도 올 한 해 건강하고 평안하라는 마음을 담아 대추, 밤, 잣 등을 풍성하게 넣고 오곡밥을 지었어요. 경상도 지역에서는 오곡밥을 김에 싸서 먹으며 건강과 복록福祿을 기원하곤 해요. 집에서 구운 김은 바삭하고 짭조름해서 고소한 오곡밥과 함께 먹기 좋아요. 여기에 얼큰하게 끓인 대구찌개를 함께 내면 마음까지 배부른 한 끼를 대접할 수 있어요.”


오곡밥(4인분)
1 압력 밥솥에 쌀(11/2컵), 찹쌀(11/2컵), 대추(4개), 밤(8톨), 잣(16알), 은행(8알), 삶은 팥(4큰술), 소금(약간)과 물(2컵)을 넣는다.
2 ①을 센 불에서 끓이다가 압력솥에서 딸랑딸랑 소리가 나면 중간 불로 줄인다.
3 중간 불에서 3분간 더 끓이다가 약한 불로 낮춰 5분간 더 끓인다.
4 불을 끄고 10분 정도 뜸을 들이고, 압력이 다 빠져나갔는지 확인한 후 뚜껑을 연다.

대구찌개(4인분)
1 조선간장(1/4컵), 소금(1/2작은술), 고춧가루(1/4컵), 다진 마늘(1큰술), 된장(1작은술), 소주(1/2작은술)를 한꺼번에 섞어 양념장을 만든다.
2 냄비에 무(130g)를 깔고 육수(2컵)와 진간장(11/3큰술)을 넣고 센 불에서 한 번 조린다.
3 ②위에 살짝 말린 대구(1마리), ①의 양념장과 4등분한 두부(1/2모), 풋고추(2개), 청양고추(1개), 대파(1대)를 썰어 올린 후 중간 불에서 끓인다.


여섯 가지 나물
“대보름에는 나물이 주인공이에요. ‘진채식’이라 부르는 아홉 가지 묵나물을 먹으면 여름에 더위를 먹지 않는다고 하지요. 저는 지난가을부터 나물을 말려두었다가 대보름에 맛있게 볶아 오곡밥과 함께 내곤 합니다. 취나물과 시래기, 콩나물, 시금치, 고사리, 가지나물까지 여섯 가지를 준비했는데, 특히 가지나물은 우리 집 식탁의 별미예요.”


취나물ㆍ시래기나물ㆍ가지나물(4인분)
1 말린 취나물(300g)과 말린 시래기(250g)는 푹 불려 각각 들기름(1큰술)을 뿌려 가볍게 볶는다.
2 각각 진간장(1큰술)과 국간장(약간)을 넣어 한 번 더 볶다가 마지막에 통깨(1작은술)를 뿌린다.
3 말린 가지(2개)는 불려 길게 2등분한 후 찜기에 넣고 5분간 찐다.
4 ③의 찐 가지를 먹기 좋은 크기로 찢는다.
5 볼에 ④의 가지와 조선간장(1/2작은술), 국간장(약간), 다진 마늘(1/2작은술), 참기름(1/2작은술), 통깨(1/2작은술)를 넣어 조물조물 무친다.


약밥+절편+감주
“대보름 상에서 빠지지 않고 오르는 약밥은 후식으로 다과상에 내기 좋아요. 밤과 대추, 말린 무화과 등을 듬뿍 넣고 윤기가 나도록 찐 달큼한 약밥은 차와 함께 마시기에도 그만이죠. 큰 접시에 큼직하게 담아낸 후 조금씩 썰어 손님에게 덜어주면 함께 먹는 즐거움을 공유할 수 있어요. 참기름을 발라 구운 절편과 감주도 대보름 손님상에 빠지지 않는 후식 메뉴죠.”


약밥(4인분)
1 찹쌀(2컵), 삶아서 완전히 익힌 팥(1/3컵), 깐 밤(10톨), 대추(7개), 은행(7알), 2등분한 말린 무화과(5개), 황설탕(1/3컵), 계핏가루(1/2작은술), 꿀(1/4컵), 진간장(1작은술), 소금(약간), 참기름(2/3큰술), 물(11/3컵)을 잘 섞어 전기밥솥에 넣고 취사 버튼을 누른다.
2 사각 틀 바닥에 참기름(1작은술)을 바른 후 취사가 끝난 밥을 퍼 담고 모양을 잡아준다.
3 ②를 식힌 후 알맞은 크기로 썰어 접시에 담는다.


넓은 다이닝룸의 한쪽에 대보름 다과와 후식을 위해 세팅한 테이블. 식탁이 두 개 있어 식사를 한 후 자리를 옮기기에도, 손님이 많을 때 활용하기에도 좋다.

“손님이 가장 편안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올려 따뜻한 환대의 자리를 만든다”


크기가 작은 전통 소반에 장식해놓은 앤티크풍 찻주전자와 차제구. 집 안 곳곳을 채운 앤티크 소품들이 임춘분 여사의 취향과 살림살이에 대한 정성을 잘 보여준다. 
“예전부터 사업을 하는 남편이 손님을 집으로 초대해 식사하고 대화 나누는 것을 좋아했어요. 좋은 식당도 많지만 집에서 손수 차린 손님상은 비즈니스에 더 좋은 영향을 줄 뿐 아니라, 서로의 진심을 나눌 수 있는 자리라고 여겼죠. 특히 명절만 되면 적지 않은 손님이 찾아오곤 했어요. 송희가 어릴 적 왔던 회사 직원들이 지금은 결혼하고 자녀와 함께 오기도 하죠. 다 같이 명절 음식을 먹고 윷놀이도 즐긴답니다.” 물론 젊을 때엔 지금보다 음식 솜씨가 서툴렀던 탓에 가족 수 이상의 음식을 준비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임춘분 여사가 무리 없이 손님상을 차릴 수 있었던 건 남다른 감각 덕분이었다. 다채로운 색의 어울림을 좋아하는 그는 다른 주부들이 쉽게 생각하지 않는 색감과 무늬의 테이블클로스나 예쁜 컬러의 패브릭을 활용한 코스터 등 감각적인 디테일을 더해 손님들로 하여금 정성 어린 환대를 받는다는 기분이 들도록 신경 썼다.

대보름날 새벽에 밤, 호두, 은행, 땅콩 등을 깨무는 ‘부럼 깨기’ 풍습을 염두에 두고 준비했다. 얇게 저며 설탕에 조린 후 말린 생강정과인 편강을 응용해 잣, 땅콩 등과 함께 설탕을 입힌 호박연근, 오미자연근 등을 내면 훌륭한 대보름 간식이자 안줏거리가 된다. 
손님의 나이나 성별, 모임 성격 그리고 계절마다 그날의 콘셉트를 정하고, 그에 맞는 메뉴와 차림새, 꽃 장식과 테이블 세팅이 달라지지만, 항상 변함없이 등장하는 이 집만의 별미는 과일화채다. “늦은 저녁 술 한잔 걸친 아버지가 친구들을 우르르 데리고 오시면 어머니는 늘 과일화채를 만드셨어요. 전 그 옆에 껴서 화채 한 그릇을 맛있게 먹곤 했죠. 지금도 술을 마시면 엄마가 우유에 설탕 약간 넣고 과일을 예쁘게 잘라 만들어주시던 화채가 생각나요.” 한 달 사이에도 몇 차례씩 몰려드는 손님들을 맞이하고 상을 차리는 어머니 모습을 보고 자란 영향으로 인해 지금 이송희 셰프의 훌륭한 커리어가 쌓였는지도 모른다. 레스토랑과 케이터링 등을 통해 매일 손님을 맞이하고, 고객이 직접 손님상을 차릴 수 있도록 쿠킹 박스를 제공하는 온라인 비즈니스인 ‘프렙 박스’도 운영하고 있으니 말이다.


일 이외에도 집으로 친구들을 초대해 같이 밥 먹는 일이 다반사다. 자신만의 요새라 칭하는 ‘그랑씨엘’의 3층 테라스에 지인을 불러 종종 파티를 여는데, 메뉴는 거창하지 않다. 바비큐 구이부터 바로 부쳐낸 육전이나 라면까지 다양하다. 때로는 테라스에서 바라다보이는 석양을 배경으로 치킨에 맥주 한 캔 들이켤 때도 있다. 번거롭고 부담스러운 준비가 아닌,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평소 먹는 맛있는 음식을 대접한다는 점에서 두 모녀 모두에게 손님맞이가 즐거운 일상의 하나로 자리 잡은 듯하다. 촬영을 위해 멀리 경주까지 온 기자와 사진가를 위해 임춘분 여사가 아주 맛있는 경상도식 집밥을 차려주었다. “특별한 손님상이란 그날 초대받은 손님이 가장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차린 상이라고 생각해요. 그만큼 손님을 배려하고 생각하는 따뜻한 마음이 들어 있어야겠죠. 집에서 늘 먹는 기본 반찬과 국을 한 그릇 내더라도 정성이 담겨 있으면 손님들이 만족해하시더라고요. 그런 넉넉함이 있는 손님상이 서로의 마음을 소통하고 추억을 공유하는 데 훌륭한 매개체가 된다고 믿어요.”


글 이정주 사진 민희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7년 2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