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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포를 찾아 떠나는 음식 기행 부산 8味
세상의 모든 도시는 저마다 맛과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다. 오랜 세월을 거쳐 이어온 수많은 이야기는 우리네 식탁 위에 오른 한 접시 음식이 대변하기도 한다. 바다와 강이 흐르고 웅장한 산이 포근하게 감싸 안은 도시, 부산. 개항과 한국전쟁, 경제 개발, 도시와 확장이라는 변수가 모여 독특한 향토 음식 문화가 탄생한 곳이다. 투박하고 서민적이지만 고난과 극복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어 더욱 가치 있는 부산 노포의 음식이 부산 도예가들의 그릇에 담겼다.



부산은 용광로와 같은 도시다. 모든 것을 받아들이되 그것을 부산다운 것으로 녹여내는 묘한 잠재력을 지녔다. 이는 1876년 부산항의 개항에서 시작한 이 도시의 숙명이다. 그리고 부산 음식 역시 이 숙명 속에서 잉태되었다. 동해와 남해의 경계를 아우르는 바다, 천 리를 굽이 흘러온 낙동강의 대장정이 끝나는 하구, 그리고 금정산을 비롯한 크고 작은 산을 품은 부산은 전형적인 삼포지향三抱之鄕의 도시다. ‘천혜의 자연환경’이란 말이 그저 수식어가 아닌 의심할 바 없는 실제인 곳. 어떤 음식이건 이런 환경 속에 갇히면 동화되지 않고는 못 배긴다. 따라서 부산 음식의 특징은 일관적이지 않고 쉽게 정의할 수 없다. 여기에 부산항의 개항, 한국전쟁, 경제 개발, 도시 확장 등 시간이라는 변수가 더해졌다. 모든 음식은 이러한 역사의 변곡점에서 탄생하고 성장했다. 음식의 생성과 확산에 우리의 근현대사가 이처럼 깊이 관여한 사례도 드물 것이다. 환경이라는 씨줄과 시간이라는 날줄이 엮어 만든 부산 음식의 결은 촘촘하고 다채롭다. 그래서 오늘날 부산을 대표하는 모든 향토 음식은 그 어떤 지역보다 탄탄하고 흥미로운 스토리가 녹아 있다.

노포老鋪는 이러한 부산 음식의 화석과도 같은 존재다. 그래서 노포를 찾아 떠나는 음식 기행은 부산을 이해하는 가장 맛깔나는 여정임이 분명하다. 노포를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오래된 점포’, 사전상 의미로는 ‘대대로 물려 내려오는 점포’다. 하지만 하릴없이 세월만 먹었다고 노포의 반열에 오르는 건 아니다. 적어도 하나의 음식점이 노포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우선은 세월이다. 돈을 지불하고 음식을 사 먹는 행위를 매식이라고 한다. 중세 시대부터 매식의 역사가 발달한 유럽과 일본에서는 1백 년 혹은 그 이상의 역사를 간직한 음식점을 흔히 볼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매식이 대중화된 것은 근대 후기부터다. 특히 한국인이 직접 경영하는 음식점이 본격적으로 생겨나기 시작한 것은 1945년 해방 이후의 일이다.

결국 노포라는 거창한 이름이 붙긴 해도 현대의 산물인 셈이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나라에서 보통 50년 이상이면 노포라 부른다. 그런데 그 세월이 결코 가볍지 않은 것은 대를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가업은 노포의 정통성을 결정하는 가장 핵심 조건이다. 현재 노포를 운영하는 이들은 모두 창업자의 2세 혹은 3세들이다. 그들의 유년기는 온통 고기 굽는 연기, 전 부치는 기름내, 육수가 끓는 수증기로 점철되어 있다. 너 나 할 것 없이 그 지겨운 일상에서 탈출하고 싶었다. 하지만 결국 자신의 운명을 숙명처럼 받아들였다. 그렇게 평생을 살아오는 동안 그들이 내놓는 음식은 그들의 육신에 스며들었다. 노포 음식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비법이 없다는 점이다. 경험을 통해 축적되고 몸이 기억하는 대로 재현할 따름이다. 그래서 노포의 음
식은 모방할 순 있어도 구현해낼 수는 없다.

갈색 술병과 술잔은 전수걸 도예가의 작품으로 수걸도예(051-583- 1990)에서 판매. 
더불어 노포의 역사에는 부산의 근현대사가 오롯이 녹아 있다. 해방 이후 자갈치시장의 부흥을 이끈 할아버지로부터 시작해 손자에게로 이어지는 ‘삼송초밥’은 그 자체로 우리나라 일본 음식 역사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다. 중국 산둥 성에서 시작해 만주, 북한, 서울, 대만을 거쳐 부산에 정착한 ‘신흥관’ 2대의 가족사는 곧 이 땅의 화교의 역사이기도 하다. 1920년대 함경남도 내호마을에서 시작한 ‘내호냉면’의 역사는 참혹한 전쟁에서도 끊이지 않는 질긴 생명력의 상징이다. ‘급행장’과 ‘마라톤집’이라는 상호에서 느껴지는 속도감에는 성장에 대한 열망이 담겨 있다. 하루빨리 전쟁의 폐허를 극복하고 잘사는 나라를 만들어보자는 의지의 표현이다. 한편 ‘동래할매파전’ ‘대동할매국수’ ‘할매국밥’ 등 노포에는 유난히 상호에 할매(할머니)가 붙은 음식점이 많다.

푸근하게 느껴지는 이 명칭의 속내를 들여다보면 서글프기 그지없다. 한국전쟁과 근대화를 거치는 동안 가장을 잃고 홀로된 여인이 유난히 많았다. 어린 자식들을 위해서라면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했다. 더러는 행상을 하고 더러는 좌판을 깔아 음식 장사를 시작했다. 상호 따위를 생각할 여유도 애당초 없었다. 꽃다운 청춘 다 보내고 주름이 깊어질 즈음이 되어서야 남들이 붙여준 이름 하나 얻었으니, 그것이 바로 할매집이다. 세상에는 존재 자체로 고마운 것들이 있다. 오늘 우리가 부산의 노포를 통해 부산의 맛과 역사를 돌아보는 것은 그 모진 세월을 버텨준, 그래서 존재 자체로 고마운 그들의 역사에 대한 일종의 오마주다.



글을 쓴 박상현 맛 칼럼니스트는 부산 출신으로, 음식의 역사적 배경과 사회적 맥락을 탐구하고 추적하는 일에 관심이 많다. 맛 기행을 즐기는 만큼 <일본의 맛 규슈를 먹다>의 저자이기도 하다. 일주일에 두세 번씩 부산에 내려가 오랜 역사를 지닌 부산의 맛을 파헤치는 일을 즐긴다. 부산 음식을 주제로 한 12부 작 다큐멘터리 <시간이 빚어낸 부산의 맛>을 제작 중이다.




갈색 잔과 돼지국밥을 담은 사발, 순대를 담은 사각 접시는 모두 김경남 도예가(hajamyo@hanmail.net)의 작품. 옹기 장독은 박성철 작가의 작품으로 소담하다(051-781-7072)에서 판매. 
“한국전쟁으로 홀로 된 여인들은 어린 자식을 위해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했다.거리로 시장으로 나가 음식 장사를 하다 보니 상호 따위를 생각할 여유는 없었다. 꽃다운 청춘 다 보내고 남들이 붙여준 이름 하나가 바로 ‘할매집’이다.”

할매국밥의 돼지국밥
부산에서는 예로부터 경조사에 쓰기 위해 집집마다 돼지 한두 마리씩 키웠다. 하지만 몸집이 작은 재래 돼지에서는 손님을 먹일 만큼 충분한 양의 고기를 얻을 수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뼈와 내장을 섞어 국물을 우려냈으니 이것이 곧 돼지국밥의 시작이다. 한편 평안남·북도를 아우르는 관서 지방 사람들은 소·꿩·닭 등을 이용해 국물 내는 솜씨가 탁월했다. 한국전쟁으로 부산의 돼지국밥과 관서 지방의 솜씨가 만났다. 이때부터 부산의 돼지국밥은 일취월장했고 서민의 음식으로 거듭났다. 평양에서 피란을 내려온 고故 최순복 할머니가 1956년 영업을 시작한 ‘할매국밥’은 남북 합작의 상징과도 같은 곳이다. 지금은 부산 출신의 며느리가 그 솜씨를 잇고 있다. 주소 부산시 동구 중앙대로533번길 4 문의 051-646-6295


연둣빛을 띠며 멸치 국수를 담은 볼은 전수걸 작가의 작품으로 수걸도예에서 판매. 
대동할매국수의 구포국수
조선시대 낙동강의 3대 나루터 가운데 하나이던 구포의 기능은 근대까지 이어졌다. 황해도 사리원에서 재배한 밀은 경의선과 경부선을 타고 구포에 도착했다. 바닷바람과 강바람이 만나는 구포는 국수 말리기에 더할 나위 없는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쫄깃한 구포국수의 명성은 그렇게 시작했다. 한편 멸치의 내장과 머리를 제거하지 않고 우려낸 ‘대동할매국수’의 멸치 국물은 부산 사람들의 입맛을 대번에 사로잡았다. 부산이 아니고서는 엄두를 낼 수 없는 거칠고 아주 깊은 맛이다. 그렇게 56년을 이어온 쫄깃한 구포국수와 진한 멸치 국물의 궁합은 도도하게 흐르는 낙동강처럼 오늘도 질기게 이어지고 있다. 주소 경남 김해시 대동면 동남로49번길 15-16 문의 055-335-6439



어묵탕을 담은 볼과 해물파전을 담은 접시는 도예가 박상철 작가의 작품으로 소담하다에서 판매. 
“내호냉면과 어묵탕은 참혹한 전쟁 속에서도 끊이지 않은 질긴 생명력의 상징이다. 마라톤집이라는 상호에는 하루빨리 전쟁의 폐허를 극복하고 잘사는 나라를 만들어보자는 의지가 담겨 있다.”

마라톤집의 어묵탕과 해물파전
부부는 1·4 후퇴 때 황해도 해주에서 부산으로 피란을 왔다. 자갈치시장에서 해산물을 떼어와 달걀을 풀고 미군 부대에서 나온 쇼트닝에 지짐을 부쳤다. 배고프고 가난한 서민은 그 기름지고 구수한 향에 구미가 동했다. 밖에서 기다리던 사람들은 안에서 느긋하게 음식을 먹는 사람들을 향해 재촉하는 의미로 “마라톤합시다!”라고 외쳤다. 이에 자연스레 ‘마라톤집’이라는 상호가 정착되었다. 내친김에 유명한 요정 출신의 요리사에게 어묵탕 비법까지 배웠다. 닭 한 마리를 통째로 삶은 육수에 어묵·쇠심줄(스지)·토란·무·유부 주머니·두부 등을 넣었다. 연이어 대박이 터졌다. 그렇게 시작한 마라톤집의 대박 행진은 60년 가까운 세월 동안 계속되고 있다. 주소 부산시 부산진구 가야대로784번길 54 문의 051-806-5914


흰색 합과 밀면을 담은 볼은 박미애 도예가의 작품으로 더 세라믹(urania7@naver.com)에서 판매. 양념통과 찬을 담은 종지는 박성철 도예가의 작품으로 소담하다에서 판매. 
내호냉면의 밀면
명태나 가자미로 만든 식해와 감자 전분으로 만든 농마국수는 함경도 지방의 향토 음식이었다. 1950년 12월 바람 찬 흥남부두를 탈출한 피란민들을 따라 식해와 농마국수는 부산항에 닿았다. 부산에 정착한 농마국수는 감자 전분 대신 밀가루로 만들면서 밀면으로 거듭났다. 그 중심에 내호냉면이 있다. 1920년대부터 함경남도 내호마을에서 냉면집을 운영하던 고故 이영섭 할머니는 어린 딸과 함께 1952년 우암동에서 냉면집을 다시 열었다. 전쟁도 어쩌지 못한 생존에 대한 의지는 부산을 대표하는 향토 음식을 탄생시켰다. 손주 며느리에게까지 3대째 이어지고 있는 ‘내호냉면’의 비법은 오늘도 새벽녘이면 남몰래 끓고 있다. 주소 부산시 남구 우암번영로26번길 17 문의 051-635-2295



초밥과 장국을 담은 푸른빛 그릇은 모두 박성철 도예가의 작품으로, 소담하다(051-781-7072)에서 판매. 
“지리적 위치와 부산항의 개항으로 인해 부산의 음식은 일본의 영향도 많이 받았다.할아버지로부터 시작해 손자에게로 이어지는 삼송초밥은 그 자체로 우리나라 일본음식 역사의 축소판이다.”

삼송초밥의 후토마키
1876년 부산항의 개항과 함께 일본 음식은 부산에 정착했다. 오늘날 우리가 일식이라 부르는 대부분의 음식은 부산에서 시작했다. ‘삼송초밥’의 후토마키는 이를 상징하는 음식이다. 김과 밥 외에 네 가지 재료가 들어가는데 ‘오보로’는 광어살을 쪄서 빻아 체에 거른 뒤 설탕과 소금으로 간하고 건조시킨다. ‘간뾰’는 박고지를 말려 간장에 조린다. 달걀말이는 인위적으로 부풀리지 않고 100~120겹을 쌓아 부피를 늘린다. 푸른 채소는 계절에 따라 그 선택을 달리한다. 이 모든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한 줄의 김밥이 완성된다. 이처럼 원칙에 충실한 후토마키는 일본에서조차 만나기 쉽지 않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랜 단골을 거느린 김밥이다. 주소 부산시 중구 광복로55번길 13 문의 051-245-7870


파전을 담은 흰색 접시는 김경남 도예가의 작품. 
동래할매파전의 파전
파전은 향으로 먹는 음식이다. 겨우내 땅속에 뿌리내리고 있던 쪽파는 봄기운과 더불어 세상에 존재감을 드러낸다. 초봄에 만나는 쪽파는 여리고 달며, 무엇보다 향이 일품이다. 여기에 바다에서 건져 올린 해산물이 더해지니 그야말로 산해진미가 부럽지 않은 맛이다. 부산 토박이 가운데는 그 맛을 잊지 못해 봄에만 파전을 먹고 이듬해 봄까지 기다리는 이도 더러 있다. 하지만 세상 참 좋아졌다. 요즘 쪽파 향은 사시사철 변함없이 매력적이다. 여기에 70여 년이 넘는 세월 동안 4대에 걸쳐 쌓아온 내공과 솜씨가 더해졌다. 봄에만 먹고 모른 척하기엔 아깝고 또 아까운 음식이다. 주소 부산시 동래구 명륜로94번길 43-10 문의 051-552-0792



모둠 쇠고기를 담은 회갈색 접시와 양념갈비를 담은 갈색 접시는 김경남 도예가의 작품. 
“부산을 대표하는 향토 음식이 곧 노포 음식이다. 창업자의 2세 혹은 3세로 이어지면서 혀끝이 기억하는 대로 그 맛을 재현해나간다. 그래서 노포 음식은 모방할 순 있어도 구현해낼 수 는없다.”

급행장의 한우갈비
이 땅에 널리고 널린 게 고깃집이라지만 부산에서 가장 오래된 한우 전문점 ‘급행장’에는 다른 곳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두 가지 특징이 있다. 급행장을 2대째 운영하는 손재권 대표는 매년 1월 1일이면 음식점의 상징인 간판을 바꿔 단다. 올해 새로 단 간판에는 ‘66년 전통’이라는 글자가 아로새겨져 있다. 전통에 대한 자부심이자 전통을 지키겠다는 스스로의 다짐이다. 이곳의 전통은 다름 아닌 질 좋은 한우에 대한 고집으로, 생갈비와 양념갈비의 가격이 같다. 같은 고기를 쓰는데 어떻게 가격이 다를 수 있느냐고 오히려 반문한다. 어머니 배 속에서부터 고기 냄새를 맡고 자란 사람의 고집이니 믿어도 좋을 것이다. 주소 부산시 부산진구 서면문화로 4 문의 051-809-2100


탕수육과 짜장면, 소스를 담은 그릇은 모두 소형섭 도예가(digh7503@naver.com)의 작품. 
신흥관의 짜장면과 탕수육
‘신흥관’의 창업주 윤무림 씨는 중국 산둥 성 옌타이에서 태어났다. 만주와 평양을 거쳐 서울에 정착했다. 같은 고향 출신이 운영하던 중국집에서 일하며 평생의 반려자가 될 여인을 만났다. 하지만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두 사람은 낯선 땅 해운대에서 중국집을 시작했다. 윤 씨의 장남 영호 씨는 대만에서 유학 중 명문 대학에서 금융학을 전공하던 아내 유소정 씨를 만났다. 아내 소정 씨는 오로지 남편만 믿고 낯선 땅 해운대에 정착했고, 중국집 안주인이 됐다. 신흥관의 가족사는 한 편의 대하드라마를 방불케 한다. 따라서 이 집의 짜장면과 탕수육은 음식이라기보다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것도 아주 맛깔나는 역사! 주소 부산시 해운대구 중동1로 31-1 문의 051-746-0062


스타일링 이소영 어시스턴트 이서린, 손영주, 고수민

진행 김혜민 기자 글 박상현 사진 이우경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6년 10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