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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구멍 낸 문풍지 사이로 가을 햇살이 들어온다 [한옥을 찾아서] 건축가 조정구의 뿌리 내리는 집 이야기
잠시 소풍 삼아 풍광과 운치를 즐기며 눈 호사하고 지나치는 한옥이 아니라, 혹은 하루 이틀 손님으로 머물다 가는 것도 아닌 1년 365일 생활하는 한옥은 어떤 맛일까? 도시형 한옥을 여럿 설계하고 그 자신 역시도 서대문 근처 한옥에서 5년째 살고 있는 건축가 조정구 씨에게 한옥에 사는 참 맛에 대해 들어보았다. 계절에 따라 집과 사람 사는 모습이 함께 변하고, 서로 반응하고 소통하는 그의 집은 물리적 거주 공간 이상으로 든든한 삶의 뿌리가 되었다.


1 한옥에 살다 보면 계절마다 드는 해의 변화를 실감하게 된다. 여름에는 어느 방향으로 어느 기둥까지 해가 들었는지, 겨울에는 또 어느 마루까지 해가 들었는지 매일의 일상이 보여주기 때문이다. 
2 문풍지는 개구쟁이 사내 녀석들 활약 덕에 온전히 남아 있지 못한다.
3 기단 아래 떨어져 놀던 햇빛이 어느새 마루, 안방으로 올라와서는 가을이 왔음을 알린다. 

나의 조용한 스승
건축은 참으로 귀한 직업이다. 세상에 없던 공간과 조형을 작품처럼 창조하여 그런 것이 아니다. 의학이 소중한 생명을 다루어 존엄성을 얻듯이, 건축은 사람들의 삶, 거주라는 소중함을 다루어 그 귀함을 얻는다. 조용한 스승은 나에게 이렇게 가르쳤다. ‘건축에 너를 드러낼 필요는 없다. 공간은 스스로 사람들과 무덤덤하게 마주하는 것이다’라는 귀중한 진리를 그는 말없이 보여주었다.

한옥과의 첫 만남
2003년 3월, 낮술로 발갛게 얼굴이 달아 걸으면서도 숨이 차던 부동산 사장님은 말했다. “참, 이 집이 위치도 좋고 값도 다 괜찮은데, 문제는 한옥이라서….” 나와 아내는 그 말을 듣고 서로 눈길을 주고받았다. 마음이 기대로 벅차올랐다. 작은 골목들을 굽이돌아 조금 넓은 골목에 이르자 한 채의 한옥이 나타났다. 붉은 벽돌로 처마 밑까지 내달은 문간채에, 앞집에 펼쳐진 팔작지붕에 비하자면 너무도 조용한 모습을 하고 선 한옥이었다. 삐거덕거리는 대문을 열고 들어서자, 회색의 메마른 마당이 나타났다. 얼마간 사람이 살지 않은 모습에, 같이 온 사장님은 호스를 틀어 마당 시멘트 바닥에 괜한 물을 주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집은 살짝 윤기를 띠며 마른 잠에서 깨났다.

“집주인이 딸한테 살아보라고 싱크대도 놔주고 한참 공사를 하던 판이었는데 그 집 따님은 죽어도 한옥에선 못 산다고 한 모양이야.” 겨울에는 꽤 추웠던지 유리문 뒤로 합판과 단열재가 덧대어져 있었다. 대청엔 화려한 식물 장식을 한 등이 대들보 아래에서 서까래를 비추었다. 건넌방에 들어섰다. 어둑어둑할 것이라 짐작하고 들어선 순간, 하얀 빛을 비추는 창호지 살문 여덟 짝이 벽면 하나에 가득했다. 안에서 보이지 않는 문살들은 빛을 받아 그림자로 제 몸을 드러냈다. 건실하게 서 있는 집 안으로, ‘세상의 것 같지 않은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집과 알아가기
아파트 생활을 정리하고 한옥으로 이사 오면서 작은 공사를 하였다. 욕실 하나를 안채에 두고, 안방에서 부엌, 문간방을 통하게 했다. 창문들을 조금 바꾸고, 마당엔 오석烏石을 깔고, 나무로 된 기둥, 보, 창 등의 나무는 새살이 나오도록 표면을 1~2mm 정도 ‘깍기’를 한 후 칠을 새로 했다. 하지만 예전의 함석 차양도, 장독대도, 그닥 튀지 않는 바깥의 붉은 벽돌벽도 그대로 두었다. 합판을 친 벽에 숨겨진 창들도 찾아 다시 썼다. 여유가 없어 그리했지만, 별로 손을 대지 않은 덕분에, 40여 년 된 집의 정취를 지킬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도 다행한 일이다.

처음 며칠간은 웃지 못할 일이 많았다. 근처 사우나에서 새벽에 물 대는 소리가 너무도 크게 들려왔다. 신새벽 툇마루에 앉아 마당으로, 차양으로 튀어 떠다니는 소리들을 원망했다. “원래 이사를 가면 모르던 소리에 예민해져. 근데 금방 익숙해지지.” 며칠 후 아는 교수님이 그런 말씀을 해주셨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그날 밤부터 아무 일 없듯 편하게 잠을 잘 수 있었다.

“남우 어딨니? 우리 남우 어딨어?” 마당을 둘러 l자와 ㄱ자로 생긴 집은 구석구석 아이가 숨어 놀기에 정말로 좋았다. 이를 보니 옛날 어렸을 적 내가 경험했던 시골 평택 큰집 생각이 났다. 10형제를 두고 방앗간을 하시던 할아버지의 집이었는데, 설날이나 추석 같은 명절에 내려가면 차가운 마룻바닥과 뜨거운 방바닥을 10여 명의 사촌들과 누비며 신나게 놀고는 했다. 그처럼 세 살 남우에게도 우리 집은 커다란, 너무도 커다란 놀이터가 되었다.


1 남우와 순우가 침대에서 신나게 뛰어내리고 있다. 층간 소음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숨을 곳 또한 많은 한옥은 아이들에게 멋진 놀이터다.
2, 3 막 이사를 왔을 때의 남우와 강아지 두기. 그리고 3년 후 똑같은 장소에서 다시 사진을 찍었다.

일상에서의 깨달음
보슬비가 오면 정확히 기단 아래로 마당이 고요히 젖어 들었다. 해가 지고 어둠이 내린 저녁이면 고고히 안에서부터 빛을 내며 창문들이 서 있다. 장마가 오면 심장이 울릴 정도로 큰 빗소리가 온 집 안을 가득 채웠다. 겨울 어느 날 자고 일어나니 마당 하나로 흰 눈이 가득했다. 잭 키츠의 그림 동화 <눈 오는 날>의 피터처럼 우리들은 신나게 나가 눈을 치며 놀았다.

이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는, 모기장이 없어 남우 얼굴이 싸움 끝난 권투선수 얼굴이 되어버렸다. 그 후로 여러 가지 모양으로 더욱 효과적인 모기장을 연구하고 있다. 또한 여름이면 빼놓지 않고 고무 풀을 꺼내 마당에서 물놀이를 한다. 낮에는 아이들과 아이의 친구들이, 밤에는 내가 들어가 물놀이를 한다.

한옥에서의 이러한 평범한 일상 속에서 나는 집이 어떻게 땅과 관계를 맺는지 알았고, 거친 자연 환경 속에서 사람의 삶을 보호하는 것이 집의 중요한 본질 중 하나임을 깨달았다. 마당이 자연의 한 조각을 가져다, 나 혹은 우리 가족과 하나로 연결해줌을 알았다. 거기에는 다른 이의 시선도, 어떤 잣대도 없는 벌거벗은 자신과 자연의 만남이 있었다. 계절에 따라 필요한 이것저것을 붙이고 떼는 동안에 집과 우리 가족의 관계는 깊어지고, 평범한 도시 한옥은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우리 집’이 되었다.

삶은 불어가는 것
이사 온 그해 겨울 강아지 ‘두기’가 들어왔다. 곧 둘째 순우가 태어나 아내는 산후 조리를 안방에서 했다. 그리고 다시 27개월 후, 셋째 연우가 태어났다. 세 식구가 몇 년 사이에 다섯 식구, 아니 두기까지 여섯 식구가 된 셈이다. 아이들이 태어나고 자라는 모습을 보면서 ‘삶은 붙어가는 것’이라는 매우 보편적인 진리를 깨닫게 되었다.

어디 식구들만의 일일까? 2004년 봄에는 지인의 아버님이 나무를 주어 감나무를 심었다. 국회의원 선거 날 들어온 대봉시가 열리는 감나무에 우리는 ‘민주’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제자가 가져다준 배 모양 분재부터, 감나무와 같이 온 연산홍, 밤에 솔솔 나는 향이 좋다고 아끼던 것을 주신 ‘돼지 칠’ 사장님의 야래향, 동사무소에서 나누어 준 매실나무 등등. 집 안에서는 식구들이 늘어날 때, 마당에도 풍성하게 자연의 식구들이 불어갔다.

가끔 TV에 나오는 연예인들의 집이나 아파트 모델 하우스, 때로는 새로 지은 한옥에서 가끔 너무도 세련되고 군더더기 없이 정리된 모습을 볼 때 나는 생각이 많아진다. 여러 사람에게 보이려니 그러하겠지만, ‘물건들을 골라 맞추고 정리하는 일에 애를 쓰지만 정작 사람과 생명이 자유로이 누릴 공간의 여지는 사라진 것이 아닌가’ 의문을 갖게 된다.


4, 5 오석을 깐 마당은 조정구 씨 가족에게 사계절 다른 즐거움을 주는 놀이터다.

우리 집은 내 건축의 기점 우리 집을 와본 사람들의 반응은 크게 두 가지다. “아, 역시 한옥이 참 좋구나!” 하는 분들이 있는가 하면, 조용히 우리 집사람을 불러 “한옥 사시는 것 불편하지 않아요?”라며 걱정해주는 분이 있다. 아내의 표현을 빌리면, 자꾸 아들을 보고 “딸이면 참 좋지 않아요?” 하는 것 같단다. 아들은 딸과 당연히 다르고 아들 자체로 소중한 자식인 것처럼, 한옥은 아파트나 빌라와 다를 수밖에 없고 그 자체로 이미 사랑하고 아끼는 집이다. 불편한 점이 없을 수 없지만 사람들이 생각하는 만큼은 아니다. 거기에 ‘건축가가 사는 한옥’의 기대감을 더한 분들이 실망을 하는 듯하다. 어디 하나 세련되게 디자인하거나, 전통 가구로 장식한 부분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가미되지 않은 ‘무덤덤함’이 우리 집이 나에게 주는, 혹은 내가 사람들에게 전하고픈 메시지다. 마당으로 자연을 품고, 따스한 나무얼개로 우리 가족을 감싸 안은 집. 공간도 조형도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나, 삶은 그 안에서 자연과 같이 더욱 풍성해지는 집이 있음을 말하고픈 것이다.

나는 우리 집의 각 부분들의 크기가 어떠한지, 그 공간감은 어떠한지, 또 아침과 저녁으로 혹은 봄·여름·가을·겨울로 대략 어떤 모습으로 변하는지 알고 있다. 우리 집으로 들어서는 골목의 길이와 넓이, 주변 한옥들과 다른 골목의 느낌을 잘 알고 있다. 어떤 설계가 시작되면, 그것이 한옥이건 아니건 우리 집, 혹은 우리 골목과 집을 대입하여 그 장소의 크기를 음미한다. 더 작은 세부에 이르러서 방이 어떠한 느낌이 될지도 우리 집에 근거하여 판단한다. 어떻게 보면 답답하고 딱할 정도의 끈기를 가지고 우리 집을 그 가상의 공간에 넣어보고,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그간 수년에 걸쳐 설계한 한옥 호텔 경주 ‘라궁’이 최근 완성되어 많은 분들이 관심을 보이고 있다. 그 개념과 설계가 도시 한옥을 바탕으로 하였다는 말에 사람들은 의문을 품는다. 궁궐 같은 휴식 공간 혹은 화려한 전통 공간을 꾸미면서 왜 하필이면 평범한 도시 한옥인가 하고. 사람들은 전통 한옥의 외양과 격식에 주목하지만, 내가 전하고 싶은 것, 혹은 내가 알고 있는 인식의 우물에서 퍼낼 수 있었던 것은, ‘우리 가족을 품고 있는 작은 도시 한옥이고 내가 기억할 수 있는 깊은 편안함’에 기인한다.

얼마 전까지 기단 아래 떨어져 놀던 햇볕이 맑은 얼굴을 하곤 대청에 들어와 말했다. ‘저 가을인데요.’ 나도 속으로 대답했다. ‘음, 또 왔구나. 반갑다.’ 이 집에서 처음 보았던 빛나는 창들이 여전히 새벽이면 아직도 잠에 빠져 있는 식구들 뒤로 훤히 비치고 있다. ‘아, 나의 소중한 가족들, 그리고 나의 집이여!’

구가도시건축 조정구 소장이 전하는 한옥을 꿈꾸는 이를 위한 조언
한옥에 살고 싶기는 하지만 무엇을 어떻게 알아보아야 할지 막연할 수 있다. 어디에 한옥이 남아 있는지, 어떤 기준으로 한옥을 골라야 하는지, 한옥에 살려면 어떤 마음가짐이 필요한지 등. 우선 한옥 밀집 지역으로 유명한 북촌이 아니고서도 옥인동, 용두동, 사직동과 같은 서울의 구도심에는 아직도 한옥이 꽤 있다. 경복궁의 서쪽, 서울 도성 안쪽으로는 군데군데 한옥이 여럿 남아 있는 편. 한옥 주위에 높은 건물이 있으면 조망권과 생활권을 해치므로, 한옥이 몰려 있는 지역의 집을 구하는 것이 좋고, 큰길에서 너무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곳이 좋다. 큰길에서 가까우면 변화를 많이 타고, 너무 멀면 생활이 불편하다. 마음에 드는 한옥을 발견하면 도심 재개발이나 뉴타운 개발에 의해 없어질 우려는 없는지 확인해보아야 한다. 집 자체로 보았을 때는 대청 대들보의 앞뒤 기둥 사이가 넓은 집이 좋다. 이처럼 속 깊이가 깊어야 덩치 큰 가구가 수월하게 들어가고 공간을 활용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 창호나 기둥이 많이 틀어지지 않고 반듯하게 서 있는지도 확인한다. 한옥에 살면 불편할 것이라 막연히 생각하지만 약간의 보수를 하면 큰 어려움은 없다. 겨울엔 조금 춥지만 겨울은 본래 추운 것이며, 이는 내복으로 충분히 견딜 수 있다. 사람들이 한옥에 살기를 주저하는 가장 큰 이유는 불편함보다는 오히려 재테크와 같은 다른 데 있는 듯하다. 주차가 쉽지 않다는 것은 감수해야 한다.

이 글을 쓴 조정구 씨는 구가도시건축(02-3789-3372) 대표로 도시형 한옥을 비롯한 다양한 건축 프로젝트의 설계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최근 작업으로는 <행복> 9월호에도 소개되었던 경주의 한옥 호텔 ‘라궁’, 안동 군자마을 회관, 인사동 레스토랑 ‘누리’ 등이 있습니다. 부인 김영희 씨와 남우, 순우, 연우 세 아이와 함께 서대문에 있는 한옥에서 정겨운 일상을 누리고 있습니다.

진행 손영선, 글 조정구(건축가)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07년 10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