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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를 잇는 집 경주 하온정嚇溫庭
집을 짓는다는 것은 관계를 맺는 것이다. 집과 자연, 건축주와 건축가, 그 집에 머무는 이들 사이까지. 관계의 지평을 넓혀주는 집은 풍성한 이야기와 건강한 삶을 담는다.

오른쪽부터 하온정 건축주 양승철·홍진순 부부, 건축가와 소통을 담당한 딸 양정화, 첫째 손주 유지온, 사위 유정훈, 둘째 손주 유하준.
봄의 절정이었다. ‘하온정’을 만나기 위해 당도한 경주는 백옥같이 밝은 벚꽃이 눈부셨다. 그렇게 마음에 봄을 들이고 하온정을 바라보니 이곳은 대지에 단단히 안착한 민들레였다. 씨를 뿌려 가꾸지 않았는데도 자갈 깔린 마당의 돌 사이에 피어나는 노란 민들레처럼 소박하고 간결하다. 어딘지 모를 곳에서 날아온 연약한 민들레 풀씨 하나가 내려앉아 뿌리내리는 것이 경이롭듯이 사람의 일도 마찬가지다. 고향도 아닌 데다 40년 가까이 서울에서 살던 가족이 경주에 터를 잡고 집까지 짓는 일은 민들레 풀씨가 바람에 날려 100km를 날아간다는 사실만큼 놀랍다. 건축주 양승철·홍진순 부부는 무남독녀 딸과 사위가 경주로 발령을 받자 손주들을 돌봐주기 위해 서울에서 경주로 내려왔다.

“그저 평범하게 딸 가족과 같은 아파트, 같은 동에 살며 육아를 도와주었어요. 그러다 코로나19로 인해 외부 활동이 자유롭지 않자 가족과 집의 가치를 깊게 들여다보기 시작했습니다. ‘앞으로 우리는 어디에 살 것인가’라는 주제로 수없이 의논한 끝에 현재 살고 있는 경주에 집을 짓고 뿌리를 내리기로 결정지었어요.”

대지에 심겨 있던 큰 소나무를 깨끗하게 정리했더니 하온정의 듬직한 조경으로 거듭났다.
자연과 사람을 이어주는 집
집 짓기를 결정하기까지 고민은 깊었지만, 건축가 선정은 순조로웠다. 건축주 부부의 딸이 단골로 다니던 카페는 부부 건축가 엄태규·방기애 소장이 이끄는 씨엠엠 아키텍츠의 건축 사무소이기도 했고, 딸은 그들의 작업을 좋아했다. 언젠가 집을 짓게 된다면 부탁하겠다고 한 말이 현실이 되어 건축가와 함께 땅부터 보러 다니며 부지를 찾았다. 그렇게 경주 불국사 인근 작은 마을 초입, 대나무가 군락을 이룬 삼각형 대지는 하온정의 자리가 되었다. 하온정이라는 택호는 두 손주의 이름에서 따왔다. 둘째 손주하준이의 ‘하’, 첫째 손주 지온이의 ‘온’이다. 행복은 모호하지 않고 구체적이기에 집을 지을 때는 일상을 세심하게 배려하는 세밀한 설계가 필요하다. 건축주는 원하는 것을 명확하게 전달하고 건축가는 최선을 다해 고민했다. 먼저 본채와 별채, 두 동을 계획하고 동선이 분리되길 원했다. 그리하여 대지를 중심에 두고 본채는 남향, 별채는 서향으로 배치해 같은 곳을 바라보지만 서로 간섭하지 않는다.

거실 통창 앞에 쪽마루 형식의 벤치를 설치하고, 외부 덱과 연결해 대나무 풍경을 여유롭게 즐길 수 있다. 안마당을 구획한 담장은 사생활 보호 역할을 한다.

주방에도 마당을 바라보는 커다란 창을 내어 대나무 숲 전망을 담고, 주방에서 일하는 동안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지켜볼 수도 있다.
두 동 간의 프라이버시를 확보하기 위해 본채의 거실 앞에 낮은 칸막이 벽을 둘러싸 여유로운 밀폐감이 있는 작은 안마당을 구획했다. “집과 자연이 어우러지는 방식에 대해 많이 고민했습니다. 건축의 일부를 내어주면서 자연을 끌어들이기도 하고, 자연의 일부를 가져와 생활공간으로 만들기도 하는 방식이길 바랐어요. 거실 앞 안마당은 그런 고민 끝에 진행했는데, 사생활을 보호해주면서도 소담한 정원을 꾸밀 수 있는 특별한 공간이 되었습니다.”

마을의 좁은 골목길을 따라 하온정 대문을 들어서면 이웃집들은 시야에서 사라지고 오롯이 하온정과 마당만 남는다. 푸른 대나무 숲이 담이 되어 외부와 집을 자연스럽고 고요하게 분리해주기 때문이다. 이 또한 건축주의 요청으로 세밀하게 설계한 덕분이다. 더불어 동선에 따라 자연을 계속해서 볼 수 있도록 건물과 공간을 배치했다. 본채의 복도를 지나 거실에 들어서면 커다란 창을 통해 안마당 정원과 대나무 풍경을 끌어안을 수 있고, 거실창 앞에 설치한 좁은 마루 같은 벤치는 안마당의 외부 덱으로 연장되어 안팎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가구를 최소화한 미니멀한 구성의 침실. 한옥의 창호지 문을 모티프로 설계한 수납장은 씨엠엠 아키텍츠가 디자인, 제작했다.

현관 복도에는 외출 후 돌아와 겉옷과 마스크를 걸 수 있는 수납장을 설치해 편리함을 더했다.

빛과 그림자가 만들어내는 변화가 드라마틱한 본채 외부 테라스.
사람과 세대를 이어주는 집
집에도 성품이 있다면 하온정은 순량한 편이다. 경량 목조 주택을 선택해 집은 가벼워졌고, 공사 기간도 6개월 정도로 예상보다 짧았으며, 목재의 유연함 덕분에 지진 충격도 흡수하는 효과까지 있으니 선량하다. 디자인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목조 주택이지만 하온정은 집이 지닐 수 있는 가장 간결한 형태이길 원했다. 집을 관리하는 데 부담스럽지 않도록 전체 면적을 넓지 않게 설계한 덕분에 아담하고 순진한 1층 집이 되었다. 외부 마감재는 스토sto(외장 단열재), 타일 벽돌, 아스팔트 롤싱글(방수재) 등을 사용해 기능적 견고함과 풍부한 입면 질감을 살렸고, 회색 도장은 차분하고 진중한 면을 표현했다. 단순함의 미학을 위해 디테일에 승부를 걸어야 했다. 벽돌과 스토가 만나는 부분, 지붕과 벽이 만나는 처마 선 등 다른 재료들이 만나는 접합부가 무겁게 보이지 않도록 처리하고, 지붕 용마루와 외부 테라스 천장도 깔끔한 마무리를 위해 고민을 거듭했다.

현관에서 복도를 지나 들어서면 박공지붕을 살려 개방감을 극대화한 거실과 주방이 펼쳐진다.

본채와 별채는 커다란 덱 마당으로 연결해 이동하기 편리하고, 다양한 야외 활동을 편하게 즐길 수 있다.
짙고 간결한 외부 공간과 달리 내부는 환하고 편안하다. 거실과 복도는 박공지붕 모양을 그대로 살려 개방감을 극대화하고, 주방은 천장을 낮춰 안정감을 준다. 이는 환기에도 더 유리하다. 내부 마감재는 무늬목을 사용해 따뜻한 분위기가 감돌게 했다. 싱크대, 거실 벤치와 곳곳의 수납장 등 가구의 디자인과 제작도 씨엠엠 아키텍츠에서 맡아 건축과 인테리어가 동떨어지지 않게 배려했다. “외출했다가 집에 들어올 때 현관 수납장에 마련된 마스크 보관 걸이에 마스크를 걸어두고 높은 층고의 쾌적한 거실에 들어서는 기분이 너무 좋습니다. 아름답고 편안하게 쉴 수 있는 우리 집은 이런 거구나 싶어요.” 아파트에 살고 있는 손주들에게 방과 후부터 엄마 아빠가 퇴근할 때까지 하온정은 신나고 안전한 놀이터가 된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뿌리내린 이 집은 아이들을 키우는 든든한 자양분이 될 것이다. 사는 사람의 일상을 세심하게 배려해 참신하게 만들어낸 집, 설계자의 숨결과 사는 이의 숨소리가 어우러져 웃음 가득한 따뜻한 집, 하온정의 첫 봄은 유난히 안온하고 해사하다.

씨엠엠 아키텍츠는 부부 건축가 엄태규·방기애 소장이 함께 운영하는 건축 사무소다. 건축과 인테리어는 물론, 가구 디자인과 제작까지 아우르며 씨엠엠 아키텍츠만의 결을 그리는 다양한 공간을 제안한다. 간삼건축, 현대종합설계, 이손건축, oddaa architects에서 각각 실무를 쌓았고, 현재는 부산을 거점으로 활동하고 있다.

글 박효성 기자 | 사진 이우경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22년 5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