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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유네스코 대한민국 대표부 김동기 대사 부부 사람 냄새 나는 문화 외교 선봉자
김동기 주유네스코 대사가 유명 셰프 피에르 상과 한국 전통 음식 ‘감자전’을 소개하는 유튜브 영상이 공개된 후 많은 사람이 문화 외교의 요체를 체감했다. 2019년 임명된 후 ‘문화 외교전 선봉’ 역할을 해온 김동기 대사와 서지원 여사 부부. 이들의 일상을 잠시 함께했다.

각국을 떠도는 외교관 생활은 김동기 대사 부부를 한 팀으로 단단히 묶어주었다. 진솔하고 진심 어린 외교를 펼치는 데는 서지원 여사의 조력이 큰 역할을 한다.
김동기 대사는 2019년 7월 주유네스코 대사로 임명되었다. 특별히 외교계 소식에 관심 있는 이가 아니더라도 유네스코라는 이름은 누구에게나 친숙하다. 유네스코는 제2차 세계대전 직후인 1945년 창설한 국제기구로, 교육과 과학·문화 영역에서의 협력을 통해 “사람의 마음에 평화의 방벽”을 세우기 위해 만들었다. 현재 유네스코의 멤버는 1백93개 국가로 그중 한국은 분담금 규모 10위 국가다.

“우리나라와 유네스코는 특히 인연이 깊습니다.” 김동기 대사는 차분하면서도 정감 있는 말투로 그 인연을 풀어나갔다. 우리나라가 유네스코에 가입한 것은 한국전쟁이 발발하기 11일 전인 1950년 6월 14일이다. 유네스코는 신생 가입국임에도 불구하고 피란지에서조차 천막 교실을 세워 공부를 계속할 만큼 배움에 목말라 한다는 한국 사정을 전해듣고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바로 미화 10만 달러를 지원해 교과서 인쇄 시설 건립을 원조한 것. 현재 가치로는 4백 50억 원이나 되는 막대한 자금을 투입한 덕분에 1954년 최신식 대한문교서적 인쇄 공장이 세워졌고, 어린이 수십만 명이 여기서 인쇄한 교과서의 혜택을 받았다. 재미있는 점은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역시 어린 시절 이 교과서로 공부했다는 것.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은 1956년판 4학년 2학기 자연 교과서를 유네스코에 기증하기도 했다. 김동기 대사의 관저에도 이 교과서의 영인본이 있는데, 교과서 마지막 페이지에 유네스코의 지원으로 인쇄했다는 문구가 여전히 선명하다.

한국은 전쟁 후 원조를 받던 국가에서 현재는 유네스코의 주요 공여국이 되었다. 아프리카의 직업훈련 교육, 아시아의 소녀 교육, 세계유산, 무형 문화유산, 세계기록유산, 깨끗한 물 인증, 인간과 생물권 보전 지역, 지질 공원 등 유네스코의 다양한 국제 협력 활동에 많은 지원을 하고 있다.

유네스코는 다자 국제기구이기 때문에 유네스코 대사의 업무는 한 국가에 파견되어 양자 외교를 주로 하는 외교관과는 사뭇 다르다. 주재국의 정부 인사나 한인 동포를 상대로 외교 활동을 펼치는 일반 외교관과 달리 다자 국제회의 참석, 유네스코 사무국이나 회원국 대표부, 교육 및 문화 분야 전문 기관과의 교섭 등이 주요 업무다. 이를테면 제주도의 화산섬과 용암 동굴에 이어 14년 만에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된 갯벌은 당초 유산 구역이 충분하지 않다는 등 여러 이유로 선정 순위에서 밀렸고, 심사 반려 권고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김동기 대사를 비롯한 주유네스코 대한민국 대표부 직원들과 문화재청, 관련 지자체가 국제자연보호연맹과 세계유산위원국들을 접촉하면서 설득에 나섰고, 결국 2021년 7월 등재되었다. 최근 유튜브를 달구는 한국관광공사의 충남 서산 ‘머드 맥스’ 비디오 뒤에는 갯벌을 세계자연유산으로 인정받도록 한 치밀한 외교전이 있었다.

교육·문화·과학이 주요 사업이기는 하지만, 막후에서 벌어지는 외교전은 그 어떤 국제기구 못지않게 치열하다. 국내에서는 군함도로 알려진 일본 메이지 근대산업 시설 등재 이행 문제에 대한 신경전이 대표적 예다. 일본은 지난 2015년 군함도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될 때 군함도를 세우는 데 노역으로 강제 동원된 한국인 등 희생자를 기리기 위한 정보 센터를 설치할 것을 약속했다. 하지만 일본은 일본 노동자들 역시 가혹한 노동 조건을 강요받았다는 식의 설명으로 약속 이행을 회피했다. 올해 7월 세계유산위원회가 일본의 약속 불이행에 대해 강한 유감을 표명하고, 충실한 이행을 촉구하는 결정문을 채택하게 된 배경에는 김동기대사를 비롯한 외교부와 재외공관의 끈질긴 외교 활동이 있었음은 물론이다.

대사 관저의 거실에는 김동기 대사가 특히 애착을 가지는 불가리아 출신 추상화가 페타르 도체브의 작품과 전명자 화가의 작품(오른쪽 벽)이 걸려 있다.

문화 외교를 펼치는 또다른 장이 되는 관저의 식당.


스타 셰프 피에르 상 부아예Pierre Sang Boyer와 김동기 대사의 인연
올 7월 주 프랑스문화원이 배포한 한식 레시피 영상에 김동기 대사와 피에르 상 셰프가 참여해 화제를 모았다. 두 사람 모두 감자로 유명한 한국 강원도와 프랑스 오베르뉴 지역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기에 감자에 대한 애정을 아낌없이 드러냈다. “음식을 통한 문화 교류는 아주 큰 힘을 지닙니다. 2012년 파리에 연 첫 식당 ‘피에르 상 오베르캄프’를 통해 한식 재료와 요리법을 프랑스 요리에 접목했을 때도 반응이 무척 좋았지만, 요즘은 프랑스인의 한식에 대한 이해도가 더욱 높아졌습니다. 올해 6개월간 고속철도 TGV에서 비빔밥을 판매했는데, 프랑스 지방 곳곳에 한국 문화를 알리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진행했습니다. 한국 음식을 알리는 행사에 김동기 대사님과 참여한 것도 의미 있는 경험이었습니다. 대사님이 프랑스어를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도 매우 인상적이었어요. 앞으로도 기회가 있다면 한국 음식 문화를 알리는 데 동참하고 싶습니다.”


‘마음을 얻는’ 외교
주요 활동 대상처가 외교에는 이골이 난 각국의 유네스코 외교관이다 보니 식사 준비 하나도 허투루 할 수 없다. 김동기 대사 부부는 작은 배려와 제스처가 상대방의 마음을 얻는 비결이라고 생각한다. “제가 직접 담근 김치를 보자기로 포장해 관저를 찾은 분들께 보내드리기도 해요.” 서지원 여사가 한국을 대표하는 음식을 보내는 것 외에도 이 부부는 음악으로 외교 사절단의 마음을 어루만진다. 김동기 대사는 1999년 주불가리아 한국 대사관 서기관으로 근무하던 시절 성악 발성 레슨을 받기 시작했다. 타고난 목소리는 좋다고 내심 생각했지만, 음감을 익히고 오페라곡과 가곡을 배우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고 한다. 늘 음정이 불안했기에 수심 가득한 선생님 얼굴을 보며 노래를 익혔다는 김동기 대사는 고교 동창들과 ‘감자바우’라는 중창단을 구성해 불우 이웃 돕기 음악회에 참석하기도 했다.

서지원 여사는 뉴잉글랜드 컨서버토리에서 수학한 후 진로를 바꾸면서 전문 피아니스트의 길을 걷지는 않았지만, 지금도 리스트 곡을 연주할 정도의 실력파이다. 불가리아 근무 시절 소피아 음대 강당에서 부인과 아홉 살 아들이 피아노 연탄곡을, 김동기 대사는 성악 연주를 하며 ‘Kim’s concert’라는 가족 음악회를 열기도 했다. 주미국 한국 대사관에서 총영사로 근무할 때에는 한인이 많이 거주하는 페어팩스 카운티에 한인 커뮤니티 센터 건립 기금을 모으기 위해 부인이 피아노, 아들이 바이올린과 대금, 딸이 해금, 김동기 대사가 성악으로 함께하는 연주회를 열었다. 주유네스코 대사 부임 이후 종종 다른 관저 행사 때 노래를 불러달라는 요청을 받을 만큼 음악은 김동기 대사 부부의 외교 자원이다.

비단 음악뿐이 아니다. K-pop이나 드라마, 음식 등 문화는 우리나라를 알리는 외교 수단이 된 지 오래다. 강릉 출신인 김동기 대사는 입양아 출신으로 프랑스의 대표 셰프가 된 피에르 상과 함께 감자전을 만들며 한국 문화를 소개하는 영상에도 출연했다. 대사 관저를 찾은 이들에게 손수 만든 감자전을 대접하는 외교라니. 문화 외교란 거창한 말이 아니라 결국 정체성을 잃지 않는 자세와 사람 냄새 나는 진솔한 자세가 아닐까 싶다.

나전칠기와 신라 시대 금제 귀걸이 복각본, 보자기 등 한국 대표 문화유산으로 꾸민 장식장.

이 부부에게 음악은 취미이자 외교 자원이다. 뒤쪽 벽에 한국적 색채가 강한 김시현 작가의 작품이 걸려 있다.

유네스코 지원으로 인쇄했다는 문구가 선명한 1950년대 교과서의 영인본을 김동기 대사가 펼쳐보고 있다.

한인회 삼일절 행사 때 아들이 대금을, 딸이 해금을 연주했다.
소탈하고 진솔한 삶
“좋은 피아노를 들여놓지 못해 부끄럽네요.” 음악을 좋아하는 가족이지만 대사 관저에는 그랜드피아노가 없다. 일반 가정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전자피아노뿐이다. 그러고 보니 관저에 걸린 그림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나라 작가라는 색채가 확연히 드러나는 전명자 작가나 김시현 작가의 작품이 걸려 있는데, 모두 정부 미술은행에서 대여한 것이다. 또한 관저를 방문한 외국인들이 감탄해마지않는 나전칠기 작품 역시 무형유산원에서 대여해주었다. “관저는 우리 문화를 홍보하는 전시장인 만큼 우리나라의 문화적 역량을 잘 보여줄 수 있는 예술품으로 꾸미기 위해 애썼습니다.” 언뜻 화려해 보일 수 있는 외교관 생활이지만 김동기 대사는 그렇지 않다고 손사래를 친다. 사람 냄새 나는 정감 있는 외교를 펼쳐온 김동기 대사 부부, 그래서 그들의 일정표는 오늘도 촘촘하기 그지없다.

글 이지은(오브제 아트 감정사) | 사진 임정현 진행 최혜경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21년 11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