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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테크 디자인의 마술사 시골 오두막을 꾸미다
선명한 핫핑크와 오렌지 컬러, 기하학적인 패턴과 유기적인 형태로 하이테크 디자인의 진수를 보여주는 디자이너 카림 라시드. 스스로도 도시의 번잡함과 열기가 체질에 맞고 시골의 풀과 나무에는 알레르기 반응을 보인다고 하는 그가 도시 근교의 숲 속, 뜻밖의 오두막집을 꾸몄다.

1 현재 가장 각광받는 제품 디자이너 중 한 명인 카림 라시드는 늘상 비행기를 타고 세계를 누비는 것이 일이다. 때문에 휴식을 위해서 또다시 비행기를 타는 것은 견딜 수 없었다고. 그래서 고속열차로 45분이면 도착하는 도시 근교에 작은 집을 마련했다.
2 카림 라시드 부부가 휴식을 위해 새로 마련한 귀여운 시골집 ‘테크 빌트’의 내부.

이 집은 숲 속에 자리한 조용한 은신처이지만 도시에서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도심에서 단 45분이면 아름다운 초록 나무가 우거진 이곳에 도착할 수 있다. 나는 이 집을 특별히 ‘나의 벨베데레belvedere(전망대)’ 혹은 ‘나의 사랑스러운 오두막집’이라는 애칭으로 부르곤 한다.

나의 경우처럼 일 때문에 여행을 많이 다니는 사람이라면 휴가를 보내려고 또다시 비행기에 오르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뉴욕에 사무실을 연 이후 지난 10년 동안 제대로 된 휴가를 보낸 적도 없지만 말이다. 항상 너무 바빴고, 며칠 쉴 수 있는 날이 생기더라도 비행기를 타고 떠나는 대신 뉴욕에 머물며 보낼 궁리를 했다. 비행기를 타는 것도 싫고 시차를 극복하는 것도 정말 힘들다. 세상은 언제 ‘인터넷 타임’으로 바뀌는 걸까? 언제 나는 클릭하듯 다른 곳으로 눈 깜짝할 사이에 이동할 수 있을까?

1, 4 뾰족 지붕 아래 다락층은 침실 위주로 구성되었다. 경쾌한 컬러의 가구와 소품으로 채워져 있는데 대부분 그가 직접 디자인한 것들이다. 핫핑크, 오렌지, 그린 등 달콤하고 경쾌한 컬러와 이음매 없이 매끈한 유기적인 형태가 두드러지는 특징이다. 
2  핫핑크 컬러가 없는 카림 라시드를 상상할 수 있을까? 항상 다정한 모습을 보여주는 디자이너 카림 라시드와 매건 랑 부부.

일하지 않는 쾌락을 느껴보고 싶었다
시골에 집을 살 거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보지 않았다. 사실 나는 풀과 나무, 꽃가루에 심한 알레르기가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복잡한 도시의 열기와 악취가 나의 생체 시스템과 더 잘 어울린다. 그런데 2년 전 여름, 나는 8월 한 달 동안 온전히 사무실 문을 닫기로 결심했다. 게다가 참기 어려울 정도로 더운 8월에는 유럽이 그러하듯이 뉴욕의 모든 비즈니스도 정지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다녔고, 그 한 달 동안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법을 배웠다. 하루라도 일하지 않는 나 자신을 상상하기가 힘들었지만 향락주의자의 떳떳하지 못한 쾌락을 느껴보고도 싶었다.

나는 오두막집을 하나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현대적인 건물에 가까운 오두막집을 말이다. 내가 어린 시절을 보낸 캐나다에서는 우리 가족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오두막집을 하나씩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처럼 맥주를 마시고 모기를 죽이면서 머물 수 있는 오두막집을 갖는 꿈을 꾸곤 했던 것이다. 크로톤온허드슨Croton-on-Hudson으로 가는 기차를 타고 부동산 중개인을 만나 비싼 집 세 채를 소개받았다. 왜 크로톤온허드슨이었냐 하면, 뉴욕 주 롱아일랜드 동쪽 끝의 휴양지 햄튼에서 악몽 같은 주말을 보낸 이후로 여느 품위 있는 뉴요커처럼 매주 일요일 밤에 3시간 이상 교통 체증에 묶이지 않겠다고 굳게 다짐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휴식을 위한 집을 찾는다면 그곳은 비행기, 보트나 기차로 한 시간 이상 걸리지 않는 곳이어야 했다. 나는 비행기는 사업상으로나 탈 뿐이고 물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더군다나 자동차는 교통 체증을 논하기 전에 그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차는 내게 모두 똑같아 보인다.

못생겼고 스타일이 과장되어 있다. 결국 기차만이 유일한 대책이었기에 크로톤이 물망에 올랐던 것이다. 그러나 부동산 중개인이 소개해준 세 곳을 둘러보고는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나와 아내 메건 랑은 그 집들은 잊어버리자고 서로에게 말했다. 비싸기만 할 뿐 전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아마도 우리가 꿈꾸던 집을 찾으려면 비행기를 타고 저 멀리 지중해로 날아가야 했는지도 모른다. 새까맣게 몸을 그을린 해변 마니아들의 독한 향수 냄새 때문에 모기 따위는 살지 않는 그런 곳 말이다.

3 거실 위주로 구성된 지하층에서도 그의 감성이 물씬 느껴진다. 

3일 만에 만든 조립식 패널 집
그 후 우리 부부는 인터넷을 통해 노란색과 파란색 패널로 지은 집 ‘테크 빌트Tech-Bulit 1956’을 발견했다. 이 집은 내부 상태도 양호하고 도심과의 거리 또한 적당히 멀기도 하고 가깝기도 했다. 이 사랑스러운 오두막집까지는 마을을 가로지르는 버스보다는 고속열차를 타야 더 빨리 도착한다. 우리는 이 집을 망설임 없이 즉각 인터넷으로 구입했다.

테크 빌트는 1909년 시어스(Sears)의 조립식 집에서 시작된 대중적인 집 운동의 일환으로 지은 곳이다. 카탈로그에서 마음에 드는 집 한 채를 사서 주문하면 그 지역 건설회사가 조립형 부품을 배달하면서 건축까지 해 주는 식이다. 실험적이고 저렴한 여느 조립식 집처럼, 이 집은 단 4천 달러에 판매해 3일 내에 패널 시스템과 기둥, 들보를 바탕으로 완성되었다. 한때는 급진적이고 새로웠을 이 집의 콘셉트는 1, 2층이 없고 지하와 다락방만 있는 것이다. 건물 오른쪽의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면 아래로 내려가는 지하층과 위로 올라가면 나타나는 뾰족 지붕 아래 다락으로 연결되는데 그것이 이 집 구조의 전부다.

1,2 카림 라시드 부부는 전원 속에 있는 작은 집이지만 현대적인 소재와 시스템으로 완성한 테크빌트를 보고 단번에 구입을 결정했다. 이들은 이곳에서 디자인을 하고 그림도 그리고 공상도 하면서 재충전의 시간을 가진다.

테크 빌트를 설계한 선구적인 건축가 칼 코크Carl Koch는, 지하와 다락은 각각의 콘크리트 판에 만든 분리된 콘셉트의 공간으로 지하는 거실로, 다락은 침실로 사용된다고 설명했다. 전면 창 패널의 그리드 덕분에 집의 어느 곳에나 창문을 낼 수 있다. 덕분에 이 집은 전망이 좋을 뿐 아니라 햇빛과 바람도 시원스레 들어온다. 그동안 이 집을 거쳐 간 주인이 둘밖에 없어서 집 상태는 처음 지었던 1956년의 모습과 흡사할 정도로 거의 완벽하다. 아내와 나는 이 꿈같은 장소에서 대부분은 휴식을 취하거나 공상과 생각에 잠겨 보내고, 때로는 그림을 그리고 디자인도 한다. 나의 이 다음 집은 바라건대, 내가 쉰 살이 되기 전에 직접 디자인하여 완성한 집이기를 바란다. 그 집은 아마도 모두 플라스틱으로 이루어졌으나 생명체를 연상시키는 유기적인 디자인을 보여주는 21세기의 ‘테크오가닉techorganic’ 집이 될 것이다.

카림 라시드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07년 6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