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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리아갤러리 김리아 대표&김세정 실장 집에서 시작하는 예술
놀이처럼 재미있게 시작했다. 가구보다는 그림이 먼저요, 그림 보는 눈이 관계를 읽는 지혜로, 공간을 보는 감각으로 성장했다. 생활 속에서 예술이 어떻게 살아 숨 쉬는지 궁금하다면 청담동 김리아갤러리의 세 번째 리빙 아트 프로젝트를 눈여겨보라.

지난여름 갤러리를 이전하고 새로운 시즌을 준비하는 김리아 대표(오른쪽)와 김세정 실장. 데이비드 호크니, 황도유 작가의 작품이 빈티지 가구와 조화를 이루는 거실&다이닝 공간은 갤러리의 라운지 역할을 한다.
최근 스페인 메노르카Menorca섬의 오래된 해군 병원을 개조한 복합 문화 공간이 오픈했다. 20세기 현대미술 거장들의 예술 작품으로 야외 산책로를 조성하고 갤러리와 아트 숍, 레스토랑으로 구성한 섬 예술 센터는 넥스트 구겐하임으로 불리는 하우저앤워스Hauser&Wirth의 새로운 오프라인 프로젝트다. 지난 2014년 영국 런던 근교에 자연과 예술·미식이 어우러진 ‘하우저앤워스 서머싯’을 조성한 그들은 미술사 연구원을 후원하는 인스티튜트를 설립하고, 주요 출판 사업은 물론 공공 예술도 적극적으로 지원한다. 갤러리가 작가 레지던시, 아트 호텔, 레스토랑, 서점을 갖춘 복합 문화 공간으로 거듭나면서 고객은 일상 속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예술을 접할 수있다. 삶과 쉼 안에서 예술을 경험하는 공간을 궁리하고 실험하며, 비즈니스의 새로운 전략을 제시하는 것은 비단 하우저앤워스뿐 아니라 모든 갤러리가 꿈꾸는 비전일 터. 갤러리가 단순히 그림 판매를 넘어 문화생활 전반을 안내하는 라이프 큐레이터로서 역할을 요구받는 지금, 일찍이 ‘Art for Everyone’을 주창하며 새로운 챕터를 준비하는 김리아갤러리의 행보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오트마어 회를의 컬러풀한 조각이 환한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김세정 실장의 오피스.

갤러리 2층 김리아 대표의 집무실. 집도, 갤러리도, 사무실도 작품 위치를 이리저리 바꿔보는 일상이 행복하다.
집이라는 캔버스
2008년 K& 갤러리로 시작한 김리아갤러리는 청담동의 문턱 낮은 갤러리로 유명하다. 미술대학 졸업 후 30년간 컬렉팅한 작품을 더 많은 사람과 나누고 싶어 갤러리를 오픈한 김리아 대표와 건축과 파인 아트를 전공한 딸 김세정 실장은 2012년 청담동 골목의 다가구주택을 개조해 주거 공간을 겸한 갤러리를 오픈하며 본격적인 리빙 아트 프로젝트를 시작한다(<행복> 2013년 10월호 ‘라이프&스타일’ 칼럼 참고). 작품이 생활의 일부가 되고, 일상 속 평범한 신이 다시 작품이 되는 삶과 예술의 접점은 가족 구성원 모두에게 적지 않은 영감을 줬고, 갤러리의 모토가 되었다.

“청담동 골목 갤러리를 밝힌 ‘모두를 위한 예술’이라는 문장이 더 이상 새롭게 느껴지지 않을 만큼 예술이 우리 일상에 더욱더 가깝게 스며든 것 같아요. 대중의 니즈와 눈높이가 높아진 만큼 우리도 변화가 필요했죠. 아이가 태어나고 라이프 사이클이 바뀌면서 공간의 한계도 느꼈고요.” 김세정 실장은 이사를 결심하고 동네를 먼저 알아봤다. 한남동, 성수동, 논현동을 두루 살폈지만 갤러리와 주거 공간이 함께하고, 3대가 따로 또 함께 사는 조건에 맞는 건물을 찾기가 수월했을 리 없다. “그러다 우연히 이 건물을 만났어요. 명품 플래그십 스토어가 즐비한 거리에서 1층은 편의점으로, 4~5층은 교회와 주거 공간으로 사용하는 모습이 사뭇 인상적이었죠. 줄자도 못 챙겨서 손대중으로 공간을 가늠했는데, 집에 와서 스케치를 해보니 왠지 재미있는 구성이 나올 것 같더라고요. 천장 보가 하중을 받치는 구조라 벽체를 털어 트인 구성을 할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었고요.”

청담동 골목길에서 사랑방으로 통하는 김리아갤러리. 1층 라운지는 지나다 차 한잔 마시며 편하게 밍글링을 할 수 있는 공간이다.

지난 8월, 이전 후 첫 전시로 독일 현대미술가 오트마어 회를의 설치&회화 작품을 선보였다. 독일 뉘른베르크시 광장에 7천 개의 토끼 오브제를 전시해 화제를 모은 오트마어 회를은 김리아갤러리의 모토가 된 “People buy, Shares in it, Art for everyone”을 주창한 작가로, "누구나 현대미술 한 점을 소유할 수 있으며, 토끼 자체가 아닌 토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의 시각이 곧 작품"이라고 말한다.
김세정 실장은 8년 전 다가구주택 레노베이션에 이어 또다시 실력 발휘를 했다. 편의점, 분양 사무실, 교회 등 다양한 상업 시설이 있던 상가 주택은 기존 구조의 장단점을 살려 갤러리와 사무실, 주거 공간으로 변신했다. 가장 먼저 1층은 어두컴컴하던 주 출입구를 넓히고 통창으로 마감, 창고로 사용하던 왼쪽 공간은 단을 올려 오픈 라운지로, 편의점이 있던 오른쪽 공간은 전시실로 구성했다. 분양 사무실이 있던 2층 공간은 내부 계단과 중앙 홀을 중심으로 양쪽에 방 세 개가 있던 기존 구조에서 벽을 해체해 메인 전시실, 서브전시실, 집무실을 배치했다.

“레노베이션은 주어진 재료로 맛있는 요리를 해야 하기 때문에 포기해야 할 게 많지만, 재료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전혀 예상치 못한 새로운 메뉴가 탄생하기도 하죠. 목사님 부부가 가장 꼭대기 층에 살면서 아래층에는 교회를 운영했는데, 보통 교회 예배당처럼 길이로 긴 공간이 하나로 트여 있었어요. 아파트에서는 구현할 수 없는 16m 긴 축의 장점을 최대한 살렸죠.” 4층은 주거와 갤러리의 역할을 두루 담은 구성이 특징이다. 16m 길이의 평면은 절반을 횡으로 나눠 동쪽으로는 주방과 침실, 서쪽으로는 라운지와 다이닝 공간이 자리한다. 현관을 들어서면 왼쪽에 다이닝, 오른쪽에 라운지가 있고, 라운지 뒤쪽으로는 딸 서령이 방, 다이닝 공간 뒤쪽으로는 게스트룸을 배치했다.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을 구분하기 위해 부부 침실과 드레스룸, 욕실 등을 마치 ‘집 속의 집’처럼 박스 형태로 구성한 것이 특징. 침실과 라운지를 나눈 하얀 벽체를 비롯해 다이닝 테이블 너머, 빈티지 사이드보드 위 모두 작품을 전시하는 홈 갤러리의 쇼케이스 역할을 한다. “고객은 항상 저희 집에 어떤 작품이 걸려 있는지 궁금해해요. 이전 집도 홈 갤러리 역할을 염두에 두고 레노베이션을 했지만, 아이 물건이 점점 늘어나면서 늘상 오픈하기에는 무리가 있었거든요. 서령이 방을 넓게 구성한 이유예요. 아이가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아치 벽을 통해 공간을 여러 조각으로 나누고, 핑크와 옐로 등 화사한 컬러를 입혔죠.”

‘방 속의 또 다른 방’을 콘셉트로 한 딸 서령이의 원더랜드. 아치형 통로로 들어서면 핑크색 침실이 나온다.

주방 맞은편, 다이닝 공간 너머로 게스트룸이 자리한다.
“마치 빈 캔버스 같았다고 할까요? 이사 결정 후 주말이면 세 식구가 김밥 싸 와서 둘러앉아 공간을 구상하곤 했어요. 각자 필요한 프로그램을 이야기하면 저는 마커로 구획을 나누고, 서령이는 벽에 그림도 그리고 롤러블레이드도 타며 놀았죠.” _ 김세정 실장

그림이라는 마감재
김리아 대표 부부의 주거 공간인 꼭대기 층은 반대로 동서로 길게 트인 것이 특징이다. 원래 거실과 안방이 있던 구조를 하나로 터 리빙 라이브러리를 만들고, 부실은 침실 하나만 두고 부엌도 최대한 간소하게 구성했다. “라이프 사이클에 맞춰 집의 구성도 바뀌더라고요. 예전 집은 부모님 댁이 더 컸는데, 저희 세 식구가 늘 올라가 있으니까 힘드셨나 봐요.(웃음) 밥솥도 필요 없다, 단출하게 살고 싶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살림의 기능은 온전히 저희 집으로 가져가고 꼭대기 층은 오롯이 라이브러리 기능을 강조했죠. 책 읽고 음악 듣는 걸 좋아하는 아버지를 위해 한쪽 벽면 전체에 책장을 구성했어요.”

침실과 메인 욕실, 드레스룸 등 사적인 생활공간은 ‘집 속의 집’을 테마로 존을 분리했다. 다이닝룸, 라운지 안쪽으로 문을 구성해 벽체 양쪽 복도를 순환하는 구조.

서령이 방 입구. 황도유 작가의 회화 작품이 환하게 맞아준다. 기존 벽체에 아치 구조를 더해 안쪽에 침실을 구성, 사진 왼편 창가 쪽으로 순환하는 구조로 창가 앞쪽에 책상을 배치했다.
서령이는 책을 읽고 싶을 때는 꼭대기 층으로 올라가 할아버지, 할머니 사이에 자리를 잡는다. 저녁 시간이 되면 다시 아래층 다이닝 공간에 모여 다섯 식구가 함께 밥을 먹는다. 식탁 맞은편에 걸린 작품은 자연스레 대화의 소재가 된다. 김리아 대표는 “저와 남편 모두 열정적인 컬렉터였기 때문에 세정이 어릴 때부터 가족이 모이면 그림에 대해 토론했어요. 이 작품은 화풍이 독특하다, 구성이 좋다 등 각자의 느낌을 이야기하다 어디에 걸까 의논하고, 또 어떤 가구와 어울리겠다는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죠. 아마도 이런 가족의 역사가 김리아갤러리를 만들었겠죠.”라고 회상한다. 김리아갤러리를 설명할 때 마중물 아트 마켓을 빼놓을 수 없다. 1년에 한 번 신진 작가를 발굴해 전시도 열고 작가와의 대화, 워크숍 등 다양한 행사도 진행하하는 마중물 아트 마켓은 올해 일곱 번째 전시를 개최했다.

세정 실장의 부부 침실과 서령이 방이 마주 보는 구조. 오른쪽 파티션 너머가 라운지 공간이다.

코로나19 발생 이후 재택근무를 하는 남편을 위해 침실 한쪽 테라스를 홈 오피스로 재구성했다.

미드센추리 사이드보드가 공간에 온기를 더한다. 사이드보드에 놓인 성경책은 조부모님께 물려받은 유산.
“요즘 많은 분이 갤러리 콘셉트가 뭐냐고 물어요. 그런데 그 질문은 이 세상에서 무슨 색이 가장 좋으냐고 물어보는 것과 똑같다고 생각해요. 콘셉트보다는 방향성을 정하는 게 우선이죠. 이민 갈 때 공항에 누가 마중 나오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인생이 바뀐다고 하잖아요. 작가에게도, 컬렉터에게도 첫 갤러리가 너무나 중요해요. 가격보다는 작품성을, 현재보다는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작가를 책임감 있게 소개하는 갤러리로 남기 위해 세정 실장이 더 노력해야죠.” 매일 아침 눈을 뜨면서 오늘은 또 얼마나 재미있을까 기대한다는 김리아 대표의 말에 세정 씨가 화답한다. “갤러리를 운영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아파트에 살고 있겠죠? 갤러리를 운영하면서 다른 삶의 형태가 가능하다는 걸 알았어요. 공간에 대한 고민도 실질적으로 더 많이 하는 것 같고요.”

4층 현관에 들어서면 오른편으로 고객들이 둘러볼 수 있는 라운지 공간, 왼편으로 집의 긴 축을 이루는 다이닝 존이 펼쳐진다.

아치 너머로 침실과 주방이 마주하는 구조. 안쪽 벽에 김리아 대표의 남편 김우경 씨의 초상이 걸려 있다.

우드와 베이지, 웜 그레이, 그린 등 따뜻한 색감이 어우러진 꼭대기 층 주거 공간. 한쪽 벽 전체를 책장으로 구성해 가족의 관심사를 알 수 있는 다양한 분야의 책(김리아 대표가 혼수로 가져온 브리태니커 사전까지!)을 충분히 꽂을 수 있다. 왼쪽부터 사위 전현준, 딸 세정, 손녀 서령, 남편 김우경 씨와 김리아 대표.
전공을 살려 건축을 주제로 한 전시 프로젝트 코디네이터로도 활동한 세정 씨는 건축과 작품 큐레이션이 완전히 다른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삶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작품이기에 공간을 보는 안목도 동시에 지니고 있어야 한다는 것. 그림을 걸기 위해 가구를 재배치하고, 스타일링도 제안하면서 성취감을 느낀다니 천생 갤러리스트다. “남편이 최근 비즈니스 미팅을 하는데, 상대 회사 공간에 마침 아는 작품이 걸려 있더래요. 실제 베를린 전시를 찾아갔을 정도로 좋아하는 작가 작품이라 신나서 경험담을 이야기하다 보니 미팅 분위기가 화기애애해지고, 비즈니스도 잘됐다고 흐뭇해하더라고요.” 서로에 대한 어떤 정보도 없이 교감할 수 있는 수단, 그게 바로 예술의 힘이 아닐까? 그림 보는 눈이 관계를 읽는 지혜로, 공간을 보는 감각으로 동반 성장하는 경험. 예술이라는 공통 관심사가 매개체가 되어 새로운 비즈니스를 시작하고, 예술을 주제로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는 가족의 모습은 대화 없는 식탁에서 스마트폰만 만지는 무미건조한 생활에 화두를 던지기 충분하다.

글 이지현 | 사진 박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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