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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밀라노 국제가구박람회로 본 대접받는 디자인의 조건
2007년 4월 18일부터 23일까지 밀라노 국제가구박람회가 열렸다. 세계 최대 규모의 디자인 행사답게 도시 전체가 전시장이 되어 다양한 디자인 이슈를 만들어냈다. 올해 그곳의 기운이 예사롭지 않았다. 딱히 디자인이라고도 예술이라고도 말하기 어려운 작품을 만들어온 디자이너들의 활약은 정점에 이른 듯했다. 다른 한편에선 서울의 디자인 홍보대사를 자처하며 서울디자인페스티벌(SDF)과 서울리빙디자인페어(SLDF)가 전시회를 열었다. 메이저 리그로의 첫 진출이었다. 이 두 가지 사건을 통해 밀라노 국제가구박람회를 만나본다.

1 드룩 디자인에서 선보인 여러 겹의 철제 의자와 제이미 헤이온이 디자인한 ‘폴트로나Poltrona 싱글 커버’. 바로크 스타일에서 영감을 얻은 클래식한 디자인의 의자이다.
2 제이미 헤이온의 ‘픽셀 발레’. 타일 브랜드 비사자 전시장을 위한 설치 작품.

Part 1 올해의 MVP, 작가 정신으로 무장한 디자이너
올해 밀라노 국제가구박람회에서는 첨단 기술에 인공 지능까지 갖춘 가구와 조명 기구가 대거 소개되었는가 하면, 한쪽에서는 예술·공예적 디자인이 호황을 누렸다. 예술성이 짙을수록 사람들은 열광했다. 작품성과 상업성 사이에서 계속되어온 줄다리기. 2007년에는 ‘작품성’이 우세하다. 유명 디자인 숍들은 갤러리처럼 바뀌고, 유명 디자이너의 프로토타입prototype(대량생산에 들어가기 전에 시험적으로 만들어보는 것)은 가격에 ‘0’ 한 개는 더 붙여 팔린다. 그들의 제품이 세계적인 경매장으로 향한다. 호주 출신의 마크 뉴슨이 디자인한 의자 하나가 지난해 소더비 경매에서 9억 6천만 원가량에 팔렸다. 2005년 세계적인 건축가 자하 하디드의 테이블은 2억 9천만 원에 팔렸다. 현대 미술 컬렉터들의 상당수는 1900년대 중반의 가구에 집중하고 있다. 이는 요즘 가구 시장에서 벌어지는 일대 사건이다. ‘예술작품처럼 만들어지는 디자인이 대접받는 시대’의 풍경이다.

퓨처리즘의 다른 해석 2007년 트렌드 키워드 ‘퓨처리즘’이 좀 식상하다면 이렇게 생각해보자. 미래주의, 달리 말해 ‘오늘날의 일반적인 수준을 넘어서는 무엇’이란 표현도 가능하다. 디자이너들은 그 해답을 예술과의 접점에서 찾았다. 과장된 스케일, 은유적 디자인, 동화적 상상력 같은 얘기도 여기서 비롯된 것이다.

올해 밀라노 국제가구박람회에서 가장 두드러졌던 인물 중 한 명인 제이미 헤이온Jamie Hayon. 그는 클래식한 디자인을 특유의 유머 감각으로 재구성하고 있다. 집 안에 들여놓고 싶은 재미있는 작품들이다. 이번 행사의 야심작은 비사자 타일을 이용한 ‘픽셀 발레Pixel Ballet’. 이 거대한 인형을 중심으로 자신의 가구와 오브제를 마치 체스판 위의 말처럼 배치했다. 비사자는 제이미 헤이온과 함께 ‘스튜디오 욥Studio Job’이란 네덜란드 디자인팀도 영입했다. 이 둘에게 ‘예술과 디자인의 경계를 제시하는 작업’이란 과제를 냈고 그 결과를 전시한 것이다.

1 헬라 용게리우스가 디자인한 비트라의 ‘워커스Worker’ 체어. 일하는 사람의 모습을 형상화했다.
2 마르셀 반더스가 디자인한 ‘크로셰(Crochet) 체어’. 코바늘로 레이스를 짜듯이 의자를 만들었다.
3 자하 하디드가 디자인한 2천만 원짜리 ‘아쿠아’ 테이블.
4 제이미 헤이온의 ‘아쿠헤이온 컬렉션AQHayon Collection’. 아름다운 방으로서의 욕실을 제안했다. 

예술 같은 디자인이 대접받는 시대 요즘 디자인계가 가장 주목하고 있는 나라는 네덜란드다. 특히 예술적 디자인이 급부상하면서 자유로운 교육 환경에서 성장한 네덜란드 디자이너들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그들은 유연하다. 하나의 사물을 놓고 보통의 디자이너들이 다섯 가지 경우를 생각한다면, 네덜란드 디자이너들은 열 가지 경우를 생각할 수 있도록 교육받는다. 네덜란드 디자이너들의 정신적 지주로 실험적인 디자인을 전개하는 ‘드룩Droog’, 아기자기하고 사람 냄새 강하게 풍기는 디자인의 헬라 용게리우스Hella Jongerius, 르네상스의 부활을 외치는 네덜란드의 아이콘 마르셀 반더스Marcel Wanders, 뉴 앤티크를 말하는 남녀 한 쌍으로 구성된 ‘스튜디오 욥’, 막 창고에서 건져낸 듯 거친 선이 매력적인 피에트 하인 엑Piet Hein Eek이 올해 밀라노에서 만난 네덜란드 대표 주자였다. 이들은 수공예적인 것과 기계적인 것의 매력을 동시에 취한다.

노골적으로 예술작품처럼 보이고 싶어 하는 디자이너도 있다. 하지만 이들은 “그 출발점이 같은데, 예술이냐 디자인이냐가 뭐 그렇게 중요한가”라고 말한다. 말 그대로 전위적인 디자인을 하고 있는 자하 하디드는 ‘에스태블리시드&선스Established & Sons’와 함께 2천만 원짜리 ‘아쿠아’ 테이블을 소개했다. 식탁도 되고 책상도 되는 이 제품의 최초 프로토타입이 2억 9천만 원을 기록했던 것이다. ‘에스태블리시드&선스’는 컬렉션을 위한 가구를 만드는 브랜드다. 이들의 만남처럼 비트라, 에드라, 무이Moooi와 같은 세계적인 브랜드들도 스타 디자이너들과 예술적인 가구를 선보였다. 이런 상업적인 브랜드들이 예술 가구 시장의 판도를 바꾸는 데 지대한 역할을 하고, 세계 디자인계가 이들의 행보를 주목한다. 10년, 20년, 50년쯤 후에는 과연 2007년 4월 밀라노를 시끄럽게 만들었던 디자이너의 작품에 얼마의 값이 매겨질 것인가? 오늘날 1900년대 중반의 작품이 컬렉터들에게 인기 품목인 것처럼, 그들이 기록한 오늘의 디자인이 어떻게 변화해가며, 어떤 경쟁력을 갖게 될지 궁금해진다.

1, 2 서울디자인페스티벌의 밀라노 전시장 입구와 내부 전경.
3 스페인에서 활동 중인 이장섭 씨가 서울의 지도를 응용해 패턴을 만들었다.

Part 2. 위풍당당! 서울 發 디자인의 밀라노 입성기
한국 디자인의 현주소를 가늠케 하는 두 가지 행사 서울디자인페스티벌과 서울리빙디자인페어가 밀라노로 무대를 옮겼다. 그중 젊은 디자이너들의 잔치인 서울디자인페스티벌은 밀라노 국제가구박람회가 열리는 기간 동안 시내에 전시장을 마련했다. 도시 전체가 디자 인 전시로 달아오른 가운데 세계 각국의 디자이너들이 모인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서울의 디자인을 이야기했다. 지난 2006년 베를린에서 열린 젊은 디자이너 페스티벌 ‘디자인 마이 영스터스Design Mai Youngsters’에 이은 두 번째 해외 진출.

전시는 크게 두 파트로 구성되었다. 디자이너 개개인의 작품을 선보이는 ‘디자인 프로모션’과 참여 디자이너들이 하나의 공통된 소재로 작업을 하는 ‘디자이너스 랩’이 그것. 역대 서울디자인페스티벌 참가자들과 미국·영국·스페인·이탈리아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국인 디자이너까지 총 29명의 빛나는 아이디어가 2007년의 서울을 각기 다른 방식으로 기록하고 있었다.

Made in Seoul, Soul in Seoul 이들이 말한 ‘서울’은 지금 우리의 눈에 감지되는 서울의 모습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 안에 담긴 다양한 일상 풍경, 우리의 생활 속에서 만들어지는 다양한 이야기들이었다. 그래픽 디자이너 이에스더와 이장섭, 제품 디자이너 이성용 씨의 작품에서 그런 주제가 잘 드러났다. 이에스더 씨는 ‘10리터 쓰레기 봉투’라는 제목으로 2006년 서울디자인페스티벌에 참여해 큰 호응을 얻었다. 이번 밀라노 전시에서는 실제 비닐봉투를 제작해 전시했다. 그 비닐봉투에 눈독 들인 관람객이 아주 많았다는데…. 전시장 벽면과 작품, 여러 제작물에 그려진 일러스트레이션의 주인공들은 너무 바쁘다. 이는 아주 평범한 서울 시민의 모습이었다. 이성용 씨는 서울의 대표적인 주거 형태인 아파트의 이미지에서 음식을 담는 용기를 생각해냈다. 공간을 많이 차지하지 않고 차곡차곡 위로 높게 쌓을 수 있어 쿠키, 케이크, 과일 등 많은 양의 음식을 종류별로 담을 수 있다. 현재 스페인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장섭 씨는 ‘복잡한 도시 서울’이라는 제목의 작품을 소개했다. 이는 서울의 지도를 리듬감 있게 변형해 그래픽적인 문양을 추출해낸 것이다. 벽에 걸 수 있는 인테리어 아이템으로 활용할 수 있다.

4 캘리그래퍼 김종건 씨는 이번 전시회의 방명록을 준비했다. 관람객들은 화선지에 먹과 붓으로 자신의 이름을 남기며 즐거워했다. 사진은 이탈리아의 디자인 거장 알레산드로 멘디니.
5 디자이너스 랩에 출품한 작품으로 남상우 씨가 태권도복을 응용해 쇼핑백을 디자인했다.
6 양재원 씨가 디자인한 강아지 대걸레. 이번 전시회에서 가장 높은 호응을 얻었던 작품의 하나로 대걸레mob이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서양의 문화를 반영한 것이기도 했다. 7 한국인의 자화상을 그린 이에스더 씨와 그의 작품. 시간에 쫓기며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을 일러스트레이션으로 표현했다.

‘서울표’ 디자인, 추억으로 기억시키다 추억이란 것은 디자인에서 중요한 모티프이다. 여기 밀라노에 모인 서울의 디자이너들도 그러했다. 공감대를 형성하기에 추억만큼 좋은 소재는 없을 것이다. 양재원의 강아지 대걸레가 이를 증명해준다. 유럽인들에게 뜨거운 반응을 얻으며 이번 전시의 화제작이 되었다.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하다 떠오른 아이디어로 많은 이들에게 쉽고 친근하게 다가갔다. 박진우는 ‘페이크 백Fake Bag’이란 가방을 전시했다. 루이비통 가방을 그려 넣고 과감하게 ‘모조품fake’이라는 글씨를 써 넣었다. 너도나도 명품에 열광하는 세태를 살짝 비꼬아보았다. 남상우 씨는 디자이너스 랩에 출품한 디자이너로, 17명의 디자이너에게 나눠준 태권도복을 쇼핑백이란 의외의 제품에 적용시켰다. 도복의 띠를 잡아 들면 태권도 선수가 자세를 가다듬고 허리띠를 묶은 듯한 모습이 연출된다. 디자이너스 랩에는 편의점 플라스틱 의자, 고무신과 같이 지극히 한국적인 소재가 주어지는데, 올해에는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태권도복을 사용해보았다. 밀라노에서의 ‘승리를 기원하며’ 도복을 자르고 꿰매 만든 연, 조명 기구, 의자 등의 다양한 결과물이 소개되었다. 서울디자인페스티벌의 밀라노 전시는 세계 최고의 디자인 축제 현장에서 한국 디자이너들의 역량과 가능성을 펼쳐 보인 전시회였다. 이탈리아의 디자인 거장 알렉산드로 멘디니를 비롯해 여러 디자인 관계자들이 다녀가고 이탈리아, 영국, 일본, 독일 등의 디자인 전시 기획자들이 관심을 보여 또 다른 세계무대로의 진출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기회였다. 그들은 서울의 디자인을 새로운 것으로 받아들였다. 2007년 12월 코엑스에서 열리는 서울디자인페스티벌을 통해 밀라노의 열기를 다시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또 하나의 진출, 서울리빙디자인페어 ‘로 피에라Rho Fiera’는 밀라노 국제가구박람회의 본전시장으로 상업적인 교류를 목적으로 한다. 서울리빙디자인페어는 이곳에서 세계적인 소재 연구기관 ‘머터리얼 커넥션Material Connexion’과 <소재의 문제Material’s Matter>전을 열었다. 가구, 전자제품, 그래픽 등 그 어떠한 디자인 분야도 재료에 대한 고민을 피해 갈 수 없다. 소재는 아이디어를 결과물로 완성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소재는 작업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이들이 중점적으로 이야기한 것은 금속과 자연적인 소재였다. 특히 천장에 쓰이는 필름 같은 소재는 거울이라 착각할 정도로 반사도가 뛰어났다. 고유의 물성에 새로운 가공법을 더하거나 패턴을 덧입힌 소재들도 주목받았다. 이 전시회의 진행은 서울리빙디자인페어가 배출한 스타 디자이너 박재우 씨와 로베르토 셈프리니 씨가 맡았다. 이들은 2007 서울리빙디자인페어에서 현대 힐스테이트의 후원으로 특별 전시를 열기도 했다.

김명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07년 6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