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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이 춤추는 집 과천 선유재線遊齋
경기도 과천, 관악산 자락에 산 능선을 따라 부드러운 선을 그리는 건축물이 있다. 선의 미학과 패시브 하우스 기능을 동시에 구현한 집이다.

선유재는 전통 건축 요소인 처마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건축물로, 2020년 경기도건축문화상 은상을 수상했다.
건축주 부부는 아파트 생활을 정리하고 여생을 보낼 집을 짓기로 했다. 지은 지 40년 이상의 세월이 흐른 구옥은 경기도 과천, 관악산 자락에 위치했다. 산이 요새처럼 둘러싼 형세의 땅에 비범한 집이 들어서길 바란 부부는 조호건축 이정훈 소장을 찾았다. ‘곡선이 있는 집’ ‘플랫폼 엘’ 등 예사롭지 않은 그의 작업이 꼭 이 지형에 어울릴 것 같았다. 주택 설계가 가장 난이도가 높은 작업이라 생각하는 이정훈 소장은 처음에는 정중하게 거절했다. 건축주는 부지의 주소를 알려주고 땅을 보고 결정해달라 청했다. 그렇게 번지수를 찾아간 이정훈 소장은 한눈에 대지가 품은 산의 절경에 반해 프로젝트를 맡기로 결정했다. “땅에서 어떤 영감을 받으면 일을 시작하는 것 같아요. 건축은 근본적으로 땅에서 형태가 나오니까요.” 외관에 대한 구상은 산형과 지세로부터 그려졌다. 이 지대는 지금보다 경사가 더 가파른 땅이었고, 측면의 깎아지른 산 표면은 거친 암반으로 되어 있었다. “산줄기에서 끝자락으로 흐르는 드센 기세를 안아줄 수 있는 집이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땅의 기운을 품어줄 수 있는 강한 디자인이 필요했지요.”

푸른 정원이 커다란 액자처럼 걸린 거실. 집 내부는 외관과 통일성을 위해 대리석을 쓰되 화선지 느낌이 나는 문베이지를 시공해 안정감을 더했다.

‘뜰과 숲’의 권춘희 소장이 조경 디자인을 한 아름다운 정원. 본래 있는 나무를 없애지 않고 조화롭게 재배치해 탄생했다. 부부는 이곳에서 텃밭을 가꾸고 차를 마시며 산책을 즐기곤 한다.
산과 산을 이어주는 선을 그리다
‘선유재’라는 이름에서도 유추할 수 있듯이 집을 잇는 선이 산의 능선을 따라 유유자적 놀고 흐른다. “좋은 사찰에 가보면 마음이 편하잖아요. 그 이유가 뭔가 보면 단순히 사찰이 거기에 있기 때문이 아니라, 사찰이 만들어놓은 선이 주변 풍광의 선과 잘 어우러지기 때문에 그런 편안함을 느낀다고 생각해요. 과하지도 않고 너무 약하지도 않은 적절한 선이 산의 흐름과 흐름을 연결해주는 맛이 있는 것이지요.” 이정훈 소장의 말처럼 선유재의 인상을 결정하는 것은 바로 이 부드러운 곡선이다. 버선코처럼 위로 살짝 치켜 올라간 곡선은 한옥 처마를 연상시킨다. “이 지역이 시각적으로는 청계산이 보이고, 물리적으로는 관악산과 연결되는 지점이에요. 그 두 산을 선으로 연결하고 처마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곡선미를 살리면 매력적이겠다고 생각했지요.” 선은 좌우가 대칭을 이루지 않고 양옆으로 비틀리는데, 이로써 동적인 비례감을 집에 부여하며 균형미를 절묘하게 완성한다. 이 아름다운 디자인에는 기능적 원리도 담겨 있다.

쉽게 설명하면 계절에 따른 태양의 고도 변화를 이용한 자연 채광 원리가 그것이다. 낮이 가장 짧은 동짓날 태양의 남중고도는 28도인 반면, 하지의 남중고도는 76도에 이른다. 이렇기에 처마는 해가 높은 여름철에는 그늘을 만들어주고 겨울철에는 방 안에까지 햇볕이 들어올 수 있도록 공간을 열어주는 역할을 한다. 1층 상단부의 돌출된 곡면은 아내의 공간인 주방에, 2층 상단부의 곡면은 남편의 공간인 서재에 적절한 그늘을 만들어주는 것. 이정훈 소장은 이 곡면에 스테인리스 원형 파이프를 나란히 배열해 자연스럽게 곡면을 형성했다. 파이프의 직선과 곡면이 빚어내는 곡선의 조화가 선의 또 다른 미학을 만들어낸다.

1층은 크게 거실과 주방으로 나뉜다. 주방 바닥과 벽은 대리석 타일로 시공해 거실 공간과 분리되는 효과를 냈다.

한옥 처마를 연상시키는 부드러운 곡선의 돌출부는 그늘을 만들어주는 동시에 2층 테라스 공간을 확보해준다.
따뜻한 빛과 시원한 그늘이 되리
선유재는 단순히 외관만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것이 아니라, 패시브 기준의 성능을 지닌 건강한 집이다. 이정훈 소장은 47mm 두께의 트리플 로이코팅 유리, 고단열, 고기 밀, 그리고 폐열 회수 환기 시스템을 적용해 바깥 공기로부터 독립적인 에너지 시스템을 구축하고자 노력했다. 건축주 부부 역시 이 집의 최고 장점으로 밝고 쾌적하다는 점을 꼽았다. 그 비결은 2층의 천창에 있다. 집의 후면은 뒷집의 프라이버시를 고려해 창을 최소화할 수밖에 없었기에 천창을 확보한 것. “무더운 여름에는 실내 온도가 올라갈 것이 염려되어 블라인드를 설치해달라고 했어요. 막상 살아보니 빛은 풍부하게 들어오고 열은 막아주도록 설계해 한여름 낮에도 덥지 않더군요. 블라인드를 친 적이 거의 없었지요.” 집은 절대적으로 어두운 공간이 없게끔 설계한다는 건축가의 철학이 반영된 부분이다. “자연광이 주는 즐거움, 밝고 건강한 에너지를 신뢰해요. 복도가 어둡고 답답하지 않기를 바랐어요. 계단을 오르는 동안 천창을 통해 빛의 샤워를 받는 것이지요.”

기능적으로는 패시브 기준을 충족하기 위해 천창은 열관류율 0.6의 로이코팅 유리를 포함한 삼중 유리를 적용해 열 손실을 최소화하고, 두께 220mm의 지붕 단열을 통해 열교환 현상을 차단했다. 여름철에는 습기로부터 실내 공간을 최대한 쾌적하게 유지하고, 겨울철에는 자연광을 최대한 유입해 실내 온기를 공간적으로 가두어 최소한의 에너지만 소모하는 것이다. 또한 고기밀 주택에서 필수적으로 적용하는 환기 시스템과 공기 정화 시스템을 통해 공기중 오염 물질을 제거하고 실내를 쾌적하게 유지한다. 이로써 대지 면적 264㎡에 달하는 큰 규모에도 불구하고 월 전기료가 10만 원대에 불과하다.

천창을 통해 풍부한 빛의 샤워를 받으며 오르내리는 복도 계단. 단열 성능이 뛰어난 최상급 삼중 유리가 실내 열 손실을 최소화하고 집의 에너지 효율을 높인다.

2층 서재와 침실을 이어주는 복도 중간에 작은 거실을 마련했다.
건축주 부부는 이 집에서 시시각각 자연이 부리는 색채와 형상의 변화에 매일같이 감탄하고, 작은 생명도 소중히 여긴다. 산에서 사는 길고양이를 위해 아침마다 사료를 준비하고, 고양이 집도 모자라 겨울에는 전기장판까지 마련한 건축주의 지극한 정성 덕분에 길고양이들은 이제 이곳을 제집처럼 드나든다. 함께 사는 반려동물과 길고양이까지 동물과 인간, 자연과 건축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진풍경. “집 안에서도 테라스에 나오면 바로 자연을 마주할 수 있어 좋아요. 어떤 방에서 나와도 서로 만나게끔 테라스가 연결되어 따로 또 같이 바라볼 수 있지요.” 이정훈 소장은 내부에서 보면 외부이기도 하고, 외부에서 보면 내부이기도 한 중성적 공간이 집에 꼭 필요하다고 보았다. “내부 혹은 외부, 이분법적으로 공간을 분할하는 것보다 애매모호한 중간 지대를 만들어주는 것이 주택 설계에서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심리적 안정감을 부여하고, 무엇보다 공간을 풍요롭게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산세의 너그러움을 닮고 밝은 빛과 에너지를 품은 집에서 가족은 건강한 삶의 태도와 즐거움을 다시금 얻는다.


조호건축 이정훈 소장은 성균관대학교에서 건축과 철학을 공부하고 프랑스 낭시 건축학교 및 파리 라빌레트 건축대학에서 건축재료 석사 및 프랑스 건축사를 취득했다. 파리 시게루반 사무소, 런던 자하 하디드 오피스를 거쳐 2009년 서울에 조호건축사사무소를 개설했다. 2010년 젊은건축가상, 2013년 미국 ‘Architectural Record’ Design Vanguard(차세대 세계 건축을 이끌 10인의 건축가상), 2014년 독일 프리츠 회거Fritz Ho ¨ ger 건축상, 서울시 건축상 등을 수상했다.

글 이승민 기자 | 사진 이우경 기자 설계 조호건축(www.johoarchitecture.com)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21년 6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