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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디자이너 하이메 아욘 지중해, 발렌시아, 근원으로서의 집
스페인 출신의 아티스트이자 디자이너 하이메 아욘Jaime Hayon은 세계 어디를 가든 여러 권의 노트와 색색의 펜이 든 필통을 갖고 다닌다. 아이디어와 영감을 노트 위에 그리는 일을 멈추지 않기 때문이다. 동시대에 가장 유명하며 가장 바쁜 크리에이터 중 한 명인 그가 인간 하이메 아욘으로 돌아가는 곳, 스페인의 지중해 연안 도시 발렌시아의 집은 그가 심플 라이프를 되찾는 안식처이다.

언제나 새로운 가구나 작품을 선보이고, 흥미로운 스토리를 들려주는 아티스트&디자이너 하이메 아욘. 25년 동안 그림을 그리며 모아온 드로잉 북이 3백 권이 넘는다. 발렌시아 아파트 복도벽에 그가 직접 만든 거울, 보사 세라믹과 협업한 탈을 걸어놓았다.

뉴욕에서 활동하는 페파 프리에토가 그린 그림의 색채와 에너지가 이 아파트에서 그가 가장 마음에 들어 하는 모자이크 타일과 잘 어우러진다. 프리츠 한센 소파, 파라칠나의 테이블 램프, 보사 세라믹 스툴 등은 모두 그가 디자인한 가구다. 펜던트 조명등은 덴마크에서 구한 포울 헤닝센의 첫 번째 프로토타입.
몇 해 전 처음 하이메 아욘과 인터뷰를 했을 때 가장 인상 깊던 대목은 그가 거주할 곳으로 선택한 도시에 대한 이야기였다. 세계 각지의 프로젝트를 위해 1년 중 1백50일 이상을 출장으로 보내는 그가 마침내 여정에서 돌아와 쉴 수 있는 곳. 대도시를 피해 자신의 육체와 정신을 충전할 수 있는 곳으로 지중해 연안 도시 발렌시아를 선택했다는 것이다. “나는 마드리 드 출신이고 발렌시아로 옮겨오기 전까지는 런던에서 살기도 했어요. 하지만 대도시의 삶은 복잡하고 피곤하다는 걸 느꼈지요. 반면 발렌시아는 매우 흥미로운 도시입니다. 마드리드, 바르셀로나에 이어 스페인에서 세번째로 큰 도시지만 마치 작은 마을 같은 분위기죠. 발렌시아에서의 삶은 내가 지치지 않고 일하는 원동력이자 안정적인 지지대 같아요. 이건 정말 큰 의미죠.”

테라스로 향하는 문을 붉은색으로 칠해 지중해 도시 발렌시아의 밝은 분위기를 강조했다. 테라스에 놓은 원숭이 모양 테이블은 BD 바르셀로나 제품, 플라스틱으로 만든 의자는 마지스 제품으로 모두 하이메 아욘이 디자인한 것이다.

두 아들의 침실도 집 전체 분위기에 맞춰 화이트 벽마감으로 정돈된 느낌을 자아낸다. 펜던트 조명등은 앤트래디션 제품으로 종이 셰이드에 그가 직접 그림을 그렸다.

민트 컬러가 돋보이는 아이들 방의 서랍장은 지역의 목수와 함께 만들었으며, 프리츠 한센의 이케바나 화병은 프로토타입으로 만든 것이다. 벽에 건 그림은 1930년대 프랑스의 교육용 포스터다.
단번에 매료된 타일의 색채
인스타그램에 개인 사진도 꽤 많이 올리는 하이메 아욘이 몇 개월 전부터 자신의 새로운 아파트를 꾸미고 있다는 소식을 올리기 시작했다. 텅 빈 공간에서 시작해 점차 그의 스타일로 변모해가는 사진을 통해 그가 새집에 얼마나 큰 기대와 애정을 갖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새 아파트를 찾을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점은 전통과 역사가 남아 있는 개성 있는 공간이어야 한다는 것이었어요. 현대적으로 많이 개조한 곳에는 전혀 관심이 가지않아요. 남길 것은 남기되 손볼 부분은 내 스타일로 직접 고치고 싶었어요. 그리고 마침내 1920년대에 지은 건물 5층에 위치한 이 아파트를 만나게 되었죠.”

아파트와 인접한 아욘 스튜디오 작업실. 모든 디자인의 시작인 그의 스케치와 자재들, 프로토타입 모델 등이 그가 모아온 세계 각지의 공예품과 어우러진다. 로사나 오를란디Rosana Orlandi의 ‘Ro Plastic-Master’s Pieces’ 프로젝트로 플라스틱을 활용해 만든 태피스트리가 강렬한 인상을 준다. 사진 장피에르 바양쿠르Jean-Pierre Vaillancourt
오래된 아파트에 남아 있던 타일 바닥은 그를 단번에 매료시켰다. 바르셀로나와 발렌시아·마요르카 등지에서 20세기 초에 유행한 스타일로, 마치 픽셀처럼 자잘한 크기로 배치한 것이 특징이다. 금이 갔어도 상관없었다. 양한 컬러 대비를 통해 공간에 생동감을 주는 타일만큼은 지키고 싶었다고 한다. 이 타일 바닥과 클래식한 석고 몰딩을 빼고는 칙칙하고 오래된 나무 요소, 예를 들어 창문 등은 모두 새로 만들었으며, 벽은 모두 하얗게 칠했다. 주방의 캐비닛과 선반 등은 지역의 친한 목공과 함께 모두 짜 맞췄고, 이러한 컬러에 맞춰 그가 디자인한 가구를 배치했다. 집의 레이아웃은 심플하다. 마치 작은 아파트 두 채를 붙인 것처럼 두 공간으로 나뉘는데, 클래식한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면 복도가 나오고 빨간색으로 포인트를 준 문을 통해 리빙룸으로 통한다. 오른쪽으로는 다이닝룸과 리빙룸, 다른 쪽엔 더 큰 리빙룸과 마스터 베드룸 그리고 아이들 방이 자리하는 구조다. 프리츠 한센, BD 바르셀로나, 세코티, 앤트래디션, 엑스포민, 파라칠나 등 수많은 브랜드와 협업해 소파와 의자·테이블·조명 등 다양한 가구를 디자인해온 만큼 그의 집에서는 대표작을 한꺼번에 볼 수 있다. “사람들이 내가 디자인한 가구를 어떻게 사용하는지 인스타그램을 통해서, 또는 여러 나라를 방문해서 사람들과 만나 직접 보기도 합니다. 언제나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들을 미소 짓게 만드는 어떤 감성을 전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동시에 어떤 작업에서든 세심하고 정교하게 만든 훌륭한 퀄리티를 유지해야 합니다. 이 두 가지를 만족시키는 일이 나에겐 중요하죠. 가구뿐 아니라 인테리어 오브제와 장식 요소도 마찬가지입니다.”

지중해 연안 도시의 따스한 햇살이 창가로 스며드는 하이메 아욘의 침실. 기울일 수 있는 측면 날개가 특징인 침대는 그가 위트만과 함께 만든 것이다.

직접 와인을 생산한 적도 있고 요리를 즐기며 미식에 관심이 많은 그에게 주방은 매우 중요한 공간이다. 직접 짜 넣은 수납장에는 즐겨 사용하는 다양한 그릇을 보관한다.
덴마크에서 구한 포울 헤닝센의 첫 번째 프로토타입 조명, 베트남에서 산 조명, 프랑스에서 살던 때에 구입한 1930년대 포스터, 태국에서 구입한 핸드 페인팅 그릇 등 세계 각지에서 수집해온 예술품과 공예품도 가득하다. 그는 특히 탈 수집에 열중하는데, 그중 한국 전통 탈을 매우 아낀다고 했다. 거실 벽을 커다랗게 차지하고 있는 그림은 뉴욕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화가인 페파 프리에토Pepa Prieto의 작품이다. 색채감과 폭발하는 듯한 에너지가 좋아서 구입한 뒤 오크우드 프레임에 넣었다고 한다. 예술 작품은 친구들과 와인을 즐기는 저녁 시간에도, 아침에 일어나 거실로 나올 때에도 언제나 그에게 새로운 감성을 불어넣어준다. 집 안 곳곳에 자리한 모든 예술품과 공예품에 다 이야기가 있고, 추억이 있다. 순간을 기억할 수 있는 물건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바로 하이메 아욘 자신을 말해준다.

1920년대 스페인에서 모더니즘이 꽃필 당시 유행한 사각 형태의 모자이크 타일 바닥을 그대로 보존한 아파트 복도. 세계 각국의 탈을 모아 걸어놓았다.

오스트리아 건축가 요제프 호프만Josef Hoffmann을 좋아하는 그는 빈을 방문해 호프만의 디자인 흔적을 탐구하기도 했다. 1904년에 디자인한 푸르케르스도르프Purkersdorf 의자는 그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기도 하다. 한국 방문 당시 사 온 책가도도 눈에 띈다.
비전은 세계적으로, 삶은 로컬에서
그는 20년 넘게 활동해왔지만, 지난 1년은 아주 다른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모든 출장이 멈추었고 아이들과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그만큼 집이라는 공간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지난 1년간 근원으로 돌아가는 시간이었어요. 로컬 커피숍을 탐험하고, 이 지역의 아티스트·사진가·디자이너와 더 많은 교류를 했어요. 프로젝트의 계획을 세우고 차근히 해나가는 일을 집에서 했지요. 디지털 기술 덕분이죠. 팬데믹은 우리에게 시련인 동시에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게 했어요. 이전 같으면 시차에 시달렸을 시간이 이제는 오로지 나를 위해 채워졌고요.”

그는 요즈음 그림에 열중하고 있다. 자신의 아파트와 인접한 스튜디오에 출근해 직원들과 다양한 프로젝트에 대해 논의하다 보면 언제나 ‘조금 더’ 라는 말을 하게 된다. 하지만 페인팅 작업으로 돌아가면 모든 것은 멈추고 오로지 자신에게 집중하는 시간이 된다고. “내 머리는 늘 아이디어와 상상으로 가득 차 있어요. 이것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순간은 매우 정적이면서 동시에 명상적이기도 합니다. 예술은 내가 가진 모든 것을 표현하는 수단입니다. 나의 세계, 내가 좋아하는 것, 나의 감정 곧 나의 영혼 말이죠.”

산업적·상업적 프로젝트를 주도하는 디자이너라는 직업은 매우 지치기쉽다. 따라서 환경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데, 그런 점에서 발렌시아에서의 삶은 그에게 ‘크리에이티브 바이브’를 유지하는 원동력이 된다. 1년에 3백 일 이상 이어지는 온화한 날씨, 찬란하게 부서지는 햇빛, 신선하고 건강한 음식, 유쾌하고 밝은 사람들. 바다와 햇빛을 머금은 도시가 주는 긍 정적인 정서가 그에게 끊임없이 창의적 영감을 불어넣고 있다. 그의 비전은 세계적이지만 머무르고 충전하는 곳은 매우 지역적인 셈이다.

하이메 아욘은 어릴 때부터 집 안 곳곳에 낙서와 그림을 그리곤 해서 어머니가 화를 낸 적이 많다고 한다. 하지만 이내 그런 그를 자유롭게 놔주었고, 그는 매일 몇 시간이고 그림을 그리며 자신만의 그림 세계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자유가 지금의 하이메 아욘을 만들었다. 그는 지금도 자신의 커다란 테이블 앞에 앉아 끊임없이 드로잉을 하며 이 세계에 보여줄 디자인과 예술을 창작한다.
“나에게 그림을 그리는 것 말고 더 나은 일이 무엇인지 모르겠어요. 친구들과 와인을 마실 때도 한 손에 연필을 쥐고 그림을 그릴 때가 있죠. 지금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고 있어 행운이라 생각하지만, 초창기에는 쉽지않았어요. 어떻게 이 일로 먹고살 수 있겠냐며 주변에서 걱정도 했고요. 아무도 내 세계를 이해해주지 않는 어려운 시기가 있었지만, 자신에 대한 믿 음으로 지금까지 왔습니다. 집은 이런 나의 뿌리이자 근원으로 돌아가는 곳이에요. 가장 편안한 곳, 육체와 영혼이 쉴 수 있는 곳이죠.”

아파트에 이어 그는 발렌시아 중심가에 위치한 창고 건물을 개조해 아욘 스튜디오의 새 공간을 만들고 있다. 뮤지엄과 가까운 구시가에 위치한 건물이라 현재의 모던한 스튜디오와 분위기가 매우 다를 것이라고 한다. 외부에서 방문하는 사람들이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카페도 구상 중이다. 팬데믹 시기가 지난 후를 상상해본다. 스페인, 지중해 도시로 날아가 아욘 스튜디오의 근사한 카페에서 야자수나무 사이로 햇빛이 쏟아지는 풍경을 바라보며 커피를 마시는 그런 여행의 순간을.

글 강보라 | 사진 크리스티나 바케로Cristina Vaquero 스타일링 수사나 피알로 모타Susana Fialho Mota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21년 4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