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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정숙 씨 가족의 화성주택 다시, 집으로
경기도 화성시 기산동. 아파트가 즐비한 신도시를 지나 한산한 구도로에 진입하면 아직 개발이라는 변화를 맞지 않은 작은 마을이 나온다. 시부모님이 살던 집터에 3대가 함께 살 집을 짓고 이사한 지 3년. 한옥과 현대건축을 접목한 백정숙 씨 가족의 화성주택은, 외피는 단단하고 속은 새콤달콤한 과일처럼 안과 밖이 서로 다른 매력을 선사한다.

콘크리트 건물과 작은 한옥을 함께 구성한 화성주택(대지 면적 325㎡, 건축면적 158.4㎡). 중정은 습한 대지의 단점을 극복하는 바람길이자 3대가 따로 또 함께 사는 열린 동선을 구성해주는 요소로 사계절 다른 풍경을 선사한다.

돗자리를 깔고 낮잠을 자거나 바비큐 파티를 즐길 수 있는 널찍한 주차 공간. 왼쪽은 본채, 오른쪽은 야외 창고와 별채로 구성했다.
집 안에 들어오면 예상한 것과는 다른 열린 공간이 펼쳐진다. 프레임 역할을 하는 오픈 벽면의 레이어와 중정을 통해 열리고 닫히는 장면은 바라보는 각도에 따라, 계절에 따라 매 순간 새로움을 경험하게 한다.

한옥과 콘크리트 건물의 동거
프랑스 철학자 가스통 바슐라르Gaston Bachelard는 “집은 우리가 경험하는 최초의 세계”라고 말했다. 어머니의 자궁에서 무의식적으로 느꼈을 안온함과 평화로움을 우리는 집이라는 물리적 공간에서 기대한다. 태어나고 자란 유년 시절의 집을 추억하고, 고향으로 회귀하고 싶어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본능인 셈이다. 백정숙 씨는 4년 전 시부모님이 살던 한옥을 고칠 요량으로 건축가를 수소문하던 중 임지수 소장을 소개받았다. 지은 지 50년이 훌쩍 넘은 집은 노모 혼자 지내기에 불편한 부분이 많았고, 관리가 필요했다. “시부모님과 남편이 살던 집이고, 제가 결혼해서 신혼을 보낸 집이기도 해요. 이 집에서 둘째까지 태어났으니 아이들에게는 고향이나 마찬가지죠. 처음에는 단순히 혼자 계시는 어머님이 편하게 쓰실 수 있도록 레노베이션을 구상 중이었어요. 그러다 소장님을 만나고 대수선에서 신축으로 계획이 전면 수정됐죠.”

설계를 맡은 와이엠스튜디오 임지수 소장은 대지의 컨디션을 체크한 뒤 한옥의 스토리와 장점을 살리되 단점을 보완하는 프로젝트로 현대건축을 접목하는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먼저 대지 특성상 남쪽과 북쪽의 단 차이가 커 한옥이 푹 꺼진 듯 앉혀 있고, 습이 많다는 단점이 있었다. 질서 없이 개발된 주변 환경은 외부로 열려 있는 전통 가옥보다 닫힌 구조의 현대건축이 적합하다고 판단했고, 중정으로 바람길을 만들어 습한 대지 환경을 극복하고자 했다. “건축주는 미혼인 두 아들과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었어요. 시어머님이 계신 한옥을 소중히 여기는 애틋한 마음과 관리해야 하는 부담감을 동시에 갖고 있었죠. 두 집을 관리하는 것보다 한 집으로 살림을 합치는 게 어떨지 조심스럽게 물었어요. 콘크리트조의 현대 주택 2층에 작은 한옥을 사랑채처럼 올리는 방법을 제안했고, 3대가 함께 살기 불편하지 않도록 공간을 배치하고 동선을 구획했죠.”

화성주택의 사랑방 역할을 하는 2층 한옥. 온돌방과 거실, 욕실로 구성해 딸 내외를 비롯해 친척들이 놀러 오면 게스트룸으로 활용하기 좋다.

대문과 중정 사이에 벽체를 세워 2층으로 올라가는 동선을 구분했다. 계단 아래 공간은 야외에서 쓰는 물건을 수납하는 창고 역할을 한다.
설계는 마인드맵 건축사사무소 최하영 소장과 함께 진행했다. ‘디자인’과 ‘주택에서의 삶’이라는 관점에서 중점을 둔 것은 ‘균형’이다. 한옥과 콘크리트 구조의 현대 건축물을 자연스럽게 연결해나가는 작업에서 적용할 재료의 조화는 물론, 어색할 수 있는 비율을 세심하게 정리하는 것이 중요했다. 두 아들이 모두 분가했을 때 관리하기 편하도록 본채와 별채를 분리하고, 결혼한 딸 내외도 편안하게 오갈 수 있도록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따로 냈다. 나무 대문으로 들어서면 중정 너머로 주방과 다이닝룸이 있는 본채가 바라보이고, 주차장 옆쪽으로 작은아들이 사용하는 별채가 자리한다. 현관 옆 우측 계단을 오르면 본채 2층과 연결되는 작은 마당 너머로 소담한 한옥이 나오는 구조다.

“마치 성처럼 닫혀 있는 노출 콘크리트의 매스 사이로 살짝 드러나 보이는 한옥 지붕과 조경이 이 집의 관전 포인트예요. 강원도와 파주에서 구한 목재를 건조하고 다듬는 기간에 콘크리트 본공사를 진행했어요. 2층 골조가 완성된 후 한옥 팀이 합류해 조립 작업을 이어갔죠. 이 집의 단초인 옛집의 기억이 연결될 수 있도록 기존 한옥의 대들보는 대문 옆에 벤치처럼 두고, 돌기와는 중정과 외부 계단 바닥 그리고 장독대 등의 마감재로 활용했고요.”

가공하지 않은 재료와 노출 콘크리트를 그대로 적용하는 브루탈리즘Brutalism 건축을 연상케 하는 파사드. 송판으로 구현한 노출 콘크리트의 거친 질감과 나무 대문, 소나무와 한옥 지붕이 묘한 대조를 만들어낸다.

작은 거실과 간이 부엌, 침실, 드레스룸으로 구성한 본채 2층. 야생화 정원과 한옥의 정취를 즐길 수 있다. 사진 노경
매일 다른 풍경
집 안에 들어오면 집 밖에서 예상한 것과는 완전히 다른 열린 공간이 펼쳐진다. 중정과 프레임 역할을 하는 오픈 벽면의 레이어를 통해 열리고 닫히는 장면은 바라보는 각도에 따라, 계절에 따라 매 순간 새로움을 경험하게 한다. “수많은 공간 이미지를 소비하는 시대인 만큼 오히려 건축은 무던하고 조용한 배경이 되어 중심을 잡아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집은 어쩌면 우리가 가장 오래 사용해야 하는 소비재잖아요. 고정적이며 화려한 재료를 사용한 인테리어보다는 계절에 따라, 날씨에 따라 변화하는 환경이 주는 즐거움을 제공하는 것이 이 시대 건축의 역할이죠. 창밖의 정원이 하나의 공간으로 읽히는 것보다 그 너머 다른 공간이 연속해서 있다는 것이 포인트예요. 같은 나무지만 어디서 보느냐에 따라 다른 얼굴을 보여주죠.”

공간 구성의 백미는 마감재나 가구가 아닌 공간마다 적용한 한 뼘 정원이다. 주방과 거실은 물론 각 방에서도 자연을 경험할 수 있도록 작은 뜰을 구성한 것. 조경 디자인은 ‘뜰과 숲’의 권춘희 소장이 맡았다. 1층 다이닝룸과 연결되는 메인 중정은 단풍나무·소나무 등 큰 나무를 심어서 2층에서도 보일 수 있게 했고, 주방과 연결되는 북쪽 정원은 계수나무와 자귀나무를 고즈넉하게 배치했다. 2층은 참골무꽃, 조팝나무, 눈개승마, 용머리, 원평소국 등 야생화를 심고 콘크리트 본채와 한옥을 디딤석과 마사토로 자연스럽게 연결했다. 노출 콘크리트의 차가운 공간에서는 이른 봄부터 늦가을까지 다른 꽃을 즐기고, 한옥 툇마루에서는 사계절 파란 하늘을 바라볼 수 있다.

대지 형태에 맞춰 사선으로 설계한 북쪽 입면. 계단실과 쪽창이 공간에 입체적 매력을 더한다. 본채 2층과 한옥, 별채 모두 간이 부엌과 화장실을 구성해 식구가 많아도 불편하지 않다.

본채 1층 다이닝 공간에서 주방을 바라본 모습. 방은 물론 부엌까지 작은 뜰을 만들어 어디서든 자연을 볼 수 있다.
변화하는 환경이 주인공인 만큼 인테리어는 최대한 담담한 톤 앤 매너로 완성했다. 가구와 벽 도장 컬러, 원목 바닥재, 외부 콘크리트와 창호 라인 등의 경계가 도드라져 보이지 않도록 디자인하고, 큰 살림에 필요한 수납공간을 최대한 많이 구성했다. 기본 붙박이장 외에도 계단 하부 구조, 방과 방 사이의 다용도실, 팬트리, 외부 창고까지 마련해 라이프스타일이 서로 다른 3대가 함께 살며 때론 늘어나고 때론 줄어드는 짐에 대한 걱정이 없다.

주택을 짓고 산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특별한 경험일 터. 특히 대가족이 아파트에서 살다가 주택으로 옮겨간다는 것은 특별함을 넘어 불편함에 대한 어느 정도의 각오도 필요한 부분이다. “물론 많은 살림과 건물, 조경 관리에 대한 걱정도 있었어요. 하지만 각 층별로 독립된 공간과(본채 2층, 별채, 사랑채 모두 화장실과 간이 주방을 구성했다) 다 같이 모여 즐길 수 있는 중정처럼 아파트에서 경험하지 못하는 다각적 공간에 대한 바람이 더 컸던 것 같아요. 소장님들과 미팅 때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오래전 한옥에서 생활하던 때가 하나둘 떠오르더라고요. 이사 와서 거실에 앉아 정원 너머 달을 보았을 때 참 행복했고요. 얼마 전 아이를 낳은 딸 내외가 불편해하지 않고 자기 집처럼 편안하게 지내는 모습을 보면 집을 정말 잘 지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실제로 집을 짓고 코로나19가 오기 전까지는 집이 늘 손님들로 북적북적했어요. 주차장에 돗자리 깔고 고기도 구워먹고, 한옥 툇마루에서 낮잠도 자고… 다들 저마다의 방식으로 이 집을 편안하게 즐겼죠.”

2층 백정숙 씨의 공간. 가장 안쪽에 구성한 드레스룸과 화장실은 맞은편에 벽체를 두고 시선이 가려지도록 아래쪽에만 쪽창을 냈다.

시부모님이 살던 집터에 3대가 살 집을 지은 백정숙 씨 가족. (왼쪽부터) 사위 심상우 씨와 딸 전상미 씨, 손자 강현, 백정숙 씨, 막내아들 전상옥 씨가 한자리에 모였다. 가족이 앉은 벤치는 옛날 한옥의 주춧돌에 대들보를 얹어 만든 것. 아래 돌기와를 켜켜이 쌓아 장식했다.
지난 1년을 돌아보면 우리가 가장 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은 ‘중간 공간’이었다. 집과 일터를 오가는 중간에 들르던 카페나 공원 등 소소한 휴식과 여가 공간이 우리 삶에서 하나 둘 희미해졌고, 자유로운 외출도 통제하며 ‘집’에 머무를 수 밖에 없는 시간. ‘중간 공간’이 있는 건축은 상황에 맞춰 방이 될 수도 마당이 될 수도, 함께할 수도 따로 지낼 수도 있다. 외피는 단단하지만 속은 새콤달콤한 과육이 있는 과일처럼 매 순간 변화하는 환경을 즐기며 익어가는 화성주택의 ‘집의 시간’이 옹골차게 느껴지는 이유다.

와이엠스튜디오 임지수 소장은 시간이 쌓인 재료와 공간으로부터 찾아낸 편안함을 재해석해 건축에 반영한다. 대표작으로 공주 소소아 한옥, 통의동 박스하우 스 1·2, 청담 wnp office 등이 있으며 리조트 마스터플 랜과 주택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마인드맵 건축사사무소 최하영 소장은 공간 경험이 주는 긍정적 방향성이 건축물로, 동네로, 도시로 확장되는 것에 관심을 갖고 있다. 전농동 유일주택, 기산동 화성주택, 안성블루창고 등을 설계했고, 타운하우스 마스터플랜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두 건축가 모두 (주)BCHO 건축사사소에서 실무를 익히고 독립한 후 다양한 프로젝트를 따로 또 함께 진행한다.

글 이지현 | 사진 박찬우, 와이엠스튜디오 제공 설계 와이엠스튜디오(yimjisoo8676@naver.com), 마인드맵 건축사사무소(mindmaparchitects.com)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21년 4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