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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씨타피스 오너 부부의 밀라노 아파트 버킷 리스트 저장고
러그로 세상을 따뜻하게 감싸려는 이들이 있다. 이탈리아 디자인 러그 브랜드 씨씨타피스 오너 부부. 유명 디자이너의 감각과 네팔 장인들의 수작업으로 완성하는 러그는 플라스틱을 일절 사용하지 않고 생산, 포장, 배송한다. 또 판매 기금 일부는 네팔 아이들을 돕는 데 쓰며 사회 공헌 활동을 해온 그들의 따뜻한 마음씨는 최근 이사한 그들의 집에도 여과 없이 드러난다.

하루 종일 따스한 빛이 머무는 부부의 삶의 무대. 커다란 통창을 따라 일렬로 거실, 다이닝룸, 라운지, 스터디룸 그리고 부엌과 부부 방으로 이어지는 수직 구조가 특징이다. 다이닝룸은 빈티지 제품을 모아 장식했다. 에로 사리넨Eero Saarinen의 튤립 테이블, 피에르 폴랭Pierre Paulin의 리틀 튤립 체어, 지노 사르파티Gino Sarfatti의 샹들리에, 핀란드 아티스트 아니아 니에미Anja Niemi의 사진 작품으로 꾸몄다.
추운 겨울 집 안을 따뜻하게 유지하기 위해 러그를 깔아야 한다는 일률적 인테리어 공식에서 벗어난 것은 러그 전문 브랜드 씨씨타피스CC-Tapis 덕분이다. 창업자 파브리치오 칸토니Fabrizio Cantoni와 넬키아 캄스차데Nelcya Chamszadeh 부부는 ‘러그는 사람’이라는 메시지를 담아 네팔 장인이 일일이 손으로 만든 ‘느낄 수 있는’ 러그를 만들었다. 그리고 세계적 디자이너 파트리시아 우르키올라, 파예 투굿, 베단 로라 우드 등과 협업해 바닥이 아닌 벽에 그림처럼 걸어 보여주는 방식으로 ‘러그는 예술 작품’이라는 새로운 관점을 제안했다. 또 부부의 이름으로 네팔 아동 교육 재단을 설립하고 판매 기금 일부를 기부함으로써 ‘러그는 사랑’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올해 그들은 코로나19 시기를 보내면서 러그가 할 수 있는 또 다른 역할을 고민했다. “결국 환경이더라고요. 저희는 오래전부터 탄소 발자국을 줄이기 위해 네팔에서 모든 재료를 조달하려고 노력했고, 화학 처리와 오염 폐수 없이 양탄자를 씻는 방법을 연구해왔죠. 올해는 플라스틱 제로 캠페인을 시작하려 해요. 비즈니스가 거의 정체되어 있지만 올바른 방향을 보았으니 달려야죠. 뉴 노멀 시대인 만큼 일도 삶도 아등바등하며 애쓰기보다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내공있는 힘 빼기에 돌입하려고 해요.”

영감의 원천인 디자인 서적들. 책 사이사이에 여행 기념품과 예술품이 놓여 있다. 그중에서도 루차 리브레(프로 레슬링) 마스크를 제일 아낀다. 미국 디자이너 워런 플래트너Warren Platner의 커피 테이블과 알플렉스Arflex에서 생산하는 디자인 그룹 BBPR의 피치 컬러 벨벳 암체어.

컬러와 디자인이 주는 행복을 이해하는 파브리치오 칸토니와 넬키아 캄스차데 부부. 비즈니스 파트너 다니엘레 로라와 함께 환경을 보호하고, 네팔 전통 장인과 협업해 판매 기금 일부를 네팔 아이들을 위해 기부하는 착한 브랜드 ‘씨씨타피스’를 론칭했다.
원점에서 시작하는 부부의 삶
그런 의미로 그들은 이사를 감행했다. 아들이 다니는 학교 근처에 살았지만 아들이 열아홉 살이 되어 독립하자 부부는 둘만의 삶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집을 찾았다. 조건은 밀라노 중심지 브레라에 위치한 쇼룸과 가까운 곳. 새집을 찾는 데는 생각보다 오래 걸리지 않았다. 건축에 관심이 많아 시간 날 때마다 밀라노 건축 탐방을 해온 파브리치오가 미리 점찍어둔 곳이 있었기 때문이다. “19세기의 클래식한 외모를 지녔지만 내부는 완벽히 컨템퍼러리 모던 스타일로 개조한 탐나는 아파트가 있었죠. 저희가 살던 집을 인테리어한 그대로(가구, 조명, 러그까지) 통째로 구입하겠다는 사람이 바로 나타나 보금자리를 옮기는 데 한 달도 채 걸리지 않았어요.” 씨씨타피스의 러그처럼 컬러풀한 의상을 입고 나타난 파브리치오가 눈을 반짝이면서 몇 달 전 이야기를 꺼냈다. “과거와 현재 분위기가 공존하는 건물처럼 집 안도 그렇게 꾸미기로 했는데, 문제는 커다란 통창을 끼고 수직으로 뻗어 있는 독특한 내부 구조였어요. 넬키아가 가벽을 모두 허물고 가구와 소품으로 보이지 않는 벽을 만들자는 아이디어를 제안했죠. 그리고 스튜디오 밀로Studio MILO에 전화를 걸었어요.”

오닉스 스톤, 옻칠 나무, 핑크 파우더를 이용해 만든 부엌은 집 안의 하이라이트다. 내부 소품은 넬키아가 가장 좋아하는 핑크 컬러로 그녀가 직접 꾸몄다. 에토레 소르사스의 시바 꽃병, 아티스트 러그맨Rugman의 데이비드 보위 드로잉, 폴 스미스의 래빗 세라믹 오브제, 파트리시아 우르키올라의 과일 바구니 등 작은 소품까지 디자인 물건을 매치했다.

굵직한 행사를 하면서 호흡을 맞춰온 스튜디오 밀로는 말하지 않아도 두 사람의 취향을 잘 알고 있었다. 맥시멀리스트에 가까울 만큼 다양한 디자인 소품을 가지고 있고, 선명한 컬러를 좋아하는 부부가 마음껏 인테리어 드로잉을 펼칠 수 있도록 그들은 화이트 캔버스를 만들기로 한 것. 광택 차이가 있는 화이트 컬러 소재로 벽과 바닥을 깔끔하게 통일하고, 화이트 하이글로시 소재로 수납장과 가구(침실, 드레스룸)를 만들었다. 빛이 부드럽게 투과할 수 있도록 반투명 천으로 커튼을 달았다. 그리고 부엌 공간만 넬키아가 가장 좋아하는 핑크 컬러로 꾸며 반전을 꾀했다. 부부 모두 “와!” 하고 탄성을 질렀을 정도로 핑크 컬러 오닉스onyx가 거친 파도처럼 출렁이는 부엌. “바라보기만 해도 배가 부르다”고 넬키아가 농담을 던진다.

하이메 아욘의 캐비닛, 앤티크 책상 등 몇 가지 가구는 옛집에서 가지고 왔지만 나머지는 모두 새로 구입해야 했다. 부부가 빈 화이트 상자 안을 채우는 데는 열흘도 걸리지 않았다. 가족 대대로 카펫 사업을 해온 넬키아 아버지의 비즈니스를 이어받아 운영하면서 2011년 동업자인 건축가 다니엘레 로라Daniele Lora를 만나 씨씨타피스를 창립하기까지, 부부는 무려 20년 이상 손발을 맞춰온 동반자이니 말이다. 척하면 척 진행은 순조로웠다. “버킷 리스트에 있던 제품을 가져온 것뿐”이라며 파브리치오가 겸손한 말을 보탠다. 그러나 가구와 소품에 따라 복도, 거실, 다이닝룸, 라운지, 서재가 자연스럽게 나뉘며 보이지 않는 벽이 감지되는 것은 오래 쌓아온 안목을 바탕으로 한 본능적 감각이 유감없이 발휘된 것일 테다.

침대는 전체 인테리어를 맡은 스튜디오 밀로가 직접 제작했다. 침대 위에는 부부의 비밀스럽고 사적인 이야기가 담긴 이미지를 액자에 끼워놓았다. 투명한 플라스틱 통에 들어 있는 십자가는 넬키아가 직접 제작한 아트 작품이다.

하이메 아욘이 디자인한 쇼타임 멀티레그 캐비닛 사이드보드는 부부가 특히 아끼는 가구다. 화이트 컬러로 마감한 실내와 더할 나위 없이 잘 어울린다. 가구 위에 보사Bosa에서 구입한 엘레나 살미스트라로Elena Salmistraro가 디자인한 꽃병을 놓았다.

한 지붕 아래 ISFP와 ENTJ 유형
잉꼬부부라도 코로나19로 하루 종일 집에서 같이 지내면 충돌이 잦을 수밖에 없을 터. 슬며시 현재 상황을 물어보자 “완벽히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면 싸울 일이 없다”는 20년 차 부부의 내공 있는 답이 돌아온다. “우린 정말 다른 사람이에요. 넬키아는 이란과 프랑스 혈통이고, 저는 영국과 이탈리아 혈통이죠. 넬키아는 좋아하는 컬러가 분명하지만, 저는 다양한 컬러를 섞는 것을 즐겨요. 넬키아는 대화의 주도권을 이끌어나가는 타고난 리더고 이론적인 ENTJ 유형이지만, 저는 정반대로 호기심 많은 예술가 스타일로 감성적인 ISFP 유형에 가깝죠.” 극과 극. 두 사람은 일찍부터 서로 달라서 끌렸고 그래서 함께하면 더 시너지가 난다는 것을 깨달았다. 스위스에서 호텔리어 공부를 한 두 사람은 공통분모가 있었다. 당시 남은 학업을 계속하던 파브리치오는 파리 리옹 호텔에서 일하는 넬키아를 만나기 위해 금요일 밤마다 야간 열차를 탔다. 제네바에서 밤 10시 기차를 타면 오전 8시 리옹에 도착했는데, 1년 넘게 로맨스 소설 같은 사랑을 했다고.

이후 그들은 각자의 다른 종교와 문화 방식에 따라 세 번의 결혼식을 치렀다. 첫 번째는 넬키아 부모님이 있는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서 모로코식으로, 두 번째는 파브리치오의 뿌리인 이탈리아 포르토피노에서 친구 1백50명과 함께 현대식으로, 마지막은 파브리치오 부모님만 참석한 채 스위스 알프스 성당에서 기도를 올렸다. 서로 달라서 더욱 풍성하던 나날들. “저희 부모님 모두 호텔리어였고 저는 호텔에서 태어나고 자랐어요. 부부도 때론 타인처럼 조심스러운 태도로 서로를 배려해야 한다는 것을 부모님으로부터 배웠죠. 각자의 공식으로 상대방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차이가 오히려 해결책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요. 특히 다각적 사고가 필요한 비즈니스에서 차이는 곧 힘이 되죠.” 그러나 서로의 다른 방향을 짐작하려면 대화가 필요하다. 두 사람은 가능하면 쇼핑할 때도, 운동할 때도, 래브라도레트리버 이기(가수 이기 팝에서 이름을 따왔다)와 산책할 때도 함께 한다. 또 ‘차이’가 ‘오해’로 변하지 않도록 중요한 일에는 반드시 함께 참석한다.

가족에게 물려받은 앤티크 책상이 놓인 넬키아 전용 스터디룸. 책상 주변에는 가족, 고향과 관련한 다양한 수집품을 놓았다. 지치거나 우울할 때 서랍을 열어본다. 서랍에는 행복하던 날을 상기시키는 사진, 편지, 카드 등이 들어 있다. 빈티지 옐로 램프는 베르너 판톤이 디자인한 플라워팟으로 앤트래디션에서 판매. 벨벳 암체어는 스튜디오 페페의 작품으로 타치니Tacchini에서 판매한다. 러그는 씨씨타피스의 인베이더스 시리즈.

넬키아의 아버지가 할아버지로부터 이어받아 그녀에게 물려준 19세기 페르시안 태피스트리. 넬키아의 가족은 대대로 카펫 사업을 해왔다.
집에서 할 수 있는 일
집 안에는 타인에게는 보이지 않지만 부부에게만 보이는 선이 있다. 아무리 취향이 비슷하다고 해도 각자에게 소중한 물건이 있는 법. 폴 매카시, 제프 쿤스 등 유명 작가의 리미티드 에디션이 걸려 있는 현관 복도 벽에도 부부의 영역이 따로 있다. 부엌과 침대 머리맡은 넬키아가 맡고, 거실과 욕실은 파브리치오의 기호를 더해 물건을 배치하는 식. 그렇게 밀당을 하다가 서로의 영역이 자연스럽게 만나는 곳이 책장이다. 서로의 취향을 존중하게 된 데는 책장의 도움이 컸다. 각자의 책을 한 책장에 꽂아놓으니 각자 좋아하는 주제를 알게 되고, 책을 바꿔 읽으면서 서로를 알아간다. 특히 코로나19로 집에 머물면서 많은 책을 볼 수 있었는데, 포스트잇이 잔뜩 붙어 있고 밑줄 그은 문장을 읽어보면서 20년간 함께했어도 미처 알지 못한 서로의 생각을 더듬어볼 수 있었다.

최근 부부의 공통 관심사는 환경이다. 코로나19로 인간의 활동이 잠시 멈추면서 대기 환경이 깨끗해지고 자취를 감춘 동물이 나타나기 시작했지만, 비대면 활동이 늘어나면서 플라스틱 쓰레기는 물론 일회용 방역 제품 사용으로 전염병보다 더 큰 위기와 대면하게 될지도 모른다. “기후변화와 환경오염을 막기 위해 집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고민하다 재활용을 떠올렸는데, 그보다 중요한 것은 쓰레기를 줄이는 것이에요. 씨씨타피스가 플라스틱 제로 운동을 시작했듯 저도 생활 속에서 작은 실천을 해보려 해요. 방마다 있던 쓰레기통을 치우고 현관 앞에 하나만 남겨두었죠. 아침마다 샤워기 아래에서 시원한 물줄기를 맞으며 명상을 즐겼는데 반성하려고요. 샤워기를 절수형으로 바꾸고 양치용 컵을 사용하는 것만으로도 50%의 절수 효과를 볼 수 있어요. 집에서 지구환경을 지킬 수 있는 일이 생각보다 많아요.”

글 계안나 | 사진 엘레니오 바르베타Helenio Barbetta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21년 2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