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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年大計 전원주택 프로젝트 [전원주택 2] 이외수는 달집에 산다
둔한 오감보다 마음의 눈, 영혼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하는 작가 이외수. 춘천 교동 집을 떠나 화천의 산자락, 다목마을에 자리 잡았다. 꽃 피고 새 울고 달빛 가득한 이 집, 우주의 기운을 빨아들이는 영지가 따로 있으랴. (달집이란 음력 정월 보름날 저녁 달맞이를 할 때 불을 질러 밝게 하려고 생솔가지를 묶어 집채처럼 만든 무더기를 뜻한다.)

화천군 상서면 다목리에 자리 잡은 이외수 집필실. 건축가 조병수 씨(조병수 건축연구소 대표, 02-537-8261)가 설계했는데, 벙커 같은 이 콘크리트집이 뜻밖에 뒷산과, 하늘과, 나무와 그렇게 잘 어우러질 수 없다고 이외수 씨는 감탄한다. 주택과 집필실 두 동이 한 채처럼 연결돼 있다.

바람은 뒷동산 청솔잎을 빗질해주고, 소쩍새는 바람결에 한 목청 다 싣는다. 달까지 낮게 떠서 가난한 들을 비춘다. 강원도 화천, 나무 많아 다목리多木里라는 곳에 이외수 씨가 산다. 박수근의 납작지붕 그림처럼 야트막한 산에 안긴 납작한 집에서. ‘국제적인 미모를 넘어선 은하계의 독보적인 존재’ 전영자 여사와, “부모님께서 가르치시는 대로 살아가다 보면 경쟁사회에서 낙오되는 건 아닐까요?” 고민했던 둘째 아들 진얼 씨와, 아리따운 문하생과, 늠름한 문하생과, 개 세 마리가 같이 산다. 이 집에 사는 사람들은 달을 볼 줄 안다. 방의 천창으로 달을 보고, 달이 구름장 속에 숨는 날엔, 마음에 담아야 보이는 달 ‘심월心月’을 본다. 강아지 흑룡이·백룡이·대웅이는 달밤이면 더 컹컹거린다. 별도 본다. “별들이 어찌나 영롱하게 반짝이는지 잠시만 쳐다보고 있어도 안구가 따가울 지경이다. 이따금 바람이라도 스쳐 가면 하늘이 소스라치면서 별들이 우수수 떨어져 내린다. 그러면 노인의 문하생들이 떨어진 별들을 한 바구니씩 주워서 술을 담그기도 한다. 하늘의 꽃으로 담근 술이라 하여 천화주天華酒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그의 새 책 <여자도 여자를 모른다> 중)

‘춘천 3수(호수, 막국수, 이외수)’라 할 정도로 40년 동안 이외수 문학의 그루였던 춘천을 떠나, 그는 지난해 봄 다목마을에 자리 잡았다. 화천군이 그를 초대하기 위해 26억 원을 들여 짓고 있는 ‘감성마을’, 그 첫 결과물이 이 집과 집필실이다. 그는 이 집을 ‘반신반속半神半俗의 집’이라, 집 앞 연못을 ‘몽요담夢遙潭’이라, 제일 먼저 달이 뜨는 동쪽 봉우리를 ‘모월봉慕月峰’이라, 앞산 봉우리를 ‘와선봉臥仙峰’이라 이름 지어줬다. 이 집에 사는 1년 4개월 동안 화집 한 권을 만들고, 소설집 다섯 권을 재출간했다. 마침표 하나 찍는 데도 4년이 걸린다는 그에겐 정말 왕성한 활동이었다. ‘집필실로는 최상의 공간’이었단다.

1 그의 집필실로 가는 골목에는 이런 ‘놀이방’이 있다. 이 방에서 노래방 기계 틀어놓고 ‘당신은 몰라’도 부르고 벗들과 긴 수다로 밤을 지새기도 한다.
2 심심파적으로 그리는 수준을 뛰어넘은 그의 그림 실력은 다른 이의 작품을 고르는 눈으로도 이어진다. 예술 작품이 제자리를 찾아 앉은 갤러리 같은 공간.
3 주택과 집필실을 연결하는 통로 같은 틈에 그의 신간들이 진열돼 있다. 부인 전영자 씨의 감각이다.
4 실내의 벽 마감은 얇게 켠 나무 아니면 황토, 아니면 한지다. 건강한 집이다. 엎드려 글을 쓴 탓에 허리가 고장나 주로 앉아서 지내는 이외수 씨를 위해 건축가는 낮은 창을 만들어주었다.
5 이외수 감성문학의 산실인 집필실.

이 반신반속의 집에는 기인이나 도사가 아니라, 평범하고 순진하고 때묻지 않은 이외수가 산다. 소문으로 듣던 그 행색-오래 감지 않아 기름이 잘팍한 머리칼, 깎지 않아 휘어진 발톱, ‘만유인력의 법칙에 따라 몸 끝으로 내려와 발뒤꿈치에 뭉쳤다가, 어느 날 내공이 쌓이면서 없어져버린 땟자국’-따위는 이제 없다. 안방에서 건넌방으로 갈 때 벽을 통과한다는 도술도 없다. 대신, 보름날 밤 몽요담 물로 세수하니 피부가 맑아졌다고 즐거워하는 그가 있고, 컴퓨터 자판을 또닥거리며 턱을 길게 뽑는 그가 있고, 검은 나비의 ‘당신은 몰라’를 불러젖히는 그가 있다. 예고 없이 찾아온 정신병자 하나도 내치지 않고 몇 시간이고 얘기를 들어주는 그가 있다. 그 옆에는 한 달이면 이삼백 명씩 찾아드는 이외수 마니아가 있고, 가끔씩 들러 달 구경하는 젊은 벗(소설가 박민규, 가수 김장훈·윤도현·김C, 배우 엄태웅 같은)이 있고, 불평 한 번 없이 기껍게 그들을 대접하는 마누라가 있다.

춘천집에서 <벽오금학도>와 <황금비늘>을 쓸 때 그는 감옥 철문을 구해 달고 원고가 끝날 때까지 ‘글 감옥’에 자신을 가두었다. 다목마을에서도 여전히 다 쓰고 나면 허옇게 뼈만 남고 숟가락 위로 이빨이 떨어지는 고통이 찾아오지만, 춘천 집에서보다 두루 편안해졌다. 최소한의 생존을 위해 들던 하루 한 끼 밥도 이곳에선 두 끼로 늘었다. 몸피도 한결 두꺼워졌다. 건축가 조병수 씨는 작가 이외수를 위해 집과 집필실을 따로 나누고 크고 굳건한 나무 문으로 두 채를 이어줬다. 나무 문만 꽝 닫으면 그는 그 글 감옥에 들어가 단어 하나에 3백 장의 파지를 만든다. 하루 80개비의 담배를 피워 문 채 쓰고 또 쓴다.

‘내가 깨달은 걸 혼자 알고 있으면 너무 싸가지 없는 것 같아서’ 쓰고, ‘내 소설이 방부제조차 부패해버린 이 세상의 하나 남은 방부제가 되기를’ 바라며 또 쓴다. 나무 문을 열면 밤이 이슥토록 껄껄거리는 예순 살의 한량이 되고, 마누라를 존경하는 남편이 된다. “앉아서 사는 거 좋아한다고 조 박사가 앉은키 높이로 창을 내줬고, 담배 많이 피운다고 천장 높여줬고, 맘껏 바깥 내다보라고 어느 곳에서든 자연이 보이게 해줬어요. 참 좋아요. 집 앞으로 계곡물 흐르고 뒷산에선 꽃 피고 새 울죠.” 그의 소설 <벽오금학도>엔 이런 글이 나온다. ‘금과 보석을 원래 있던 산과 물속으로 되돌려주는 자 비로소 자연을 그의 마음에 앉힐 수 있다’(장자의 <장금어산장주어연臟金於山臟珠於淵>). 그는 이곳에 와 자연을 그의 마음에 앉혔다. 이곳에 와 욕망을 내줌(내버림이 아니라 내줌), 관조, 빙그레한 웃음 같은 것도 얻었다. 이제, 그가 원하고 원하던 그 바람, ‘아직은 잔뿌리 하나도 건지지 못했지만, 언젠가는 산삼보다 더 영험스러운 소설, 그래서 어느 산 사람 병든 영혼이라도 잠 깨울 수 있는 기의 소설을 내 손으로 쓰게 되리라고 감히 나는 믿는다’는 바람은 한결 쉬이 이뤄질 것이다. 밤꽃 냄새 흥건한 초여름날 저녁, 노래방 기계 앞에서 예순 살의 작가가 ‘가는 세월’을 부른다. 명창 이외수의 가락에 초승달이 초롱한 눈물을 머금고 나타났다가, 스러진다.

1 앉은자리에서 눈을 돌리면 창이 있고 그 창밖엔 가장 좋아하는 조팝나무가 있다.
2 활처럼 휜 자세로 앉아서 글 쓰고 그림 그리는 이외수 씨.
3 ‘하트 모양’으로 생긴 몽요담에서 산책하는 이외수, 전영자 씨.

최혜경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07년 6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