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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속 안식처 연천 타라 패시브 하우스
풍요로운 대지에서 키운 콩을 수확해 메주를 띄우고 음력 정월에 장을 담그며 자연의 순리와 흐름에 맞춰 살아가는 강경중·박경주 부부는 그들의 슬로 라이프와 꼭 닮은 패시브 하우스를 지었다. 사뮤엘 울만의 시처럼 ‘청춘’이 인생의 어느 시기가 아니라 ‘마음의 상태’를 말하는 것이라면, 매일 자연의 경이를 가슴 벅차게 느끼는 부부의 청춘은 바로 지금이다.

적삼목 너와와 청고벽돌로 외부를 마감한 패시브 하우스의 뒷마당은 야트막한 숲이 감싸는 아늑한 형세로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혀준다.
연천군 장남면 원당리. 숨을 깊이 들이마시면 머리가 맑게 깨어나는 기분이 들 정도로 청정한 자연을 품은 땅. 4년전, 인쇄 기업 타라그래픽스 강경중 회장과 한식당 하모를 운영하는 박경주 대표 부부가 3년에 걸쳐 발견한 부지였다. “파주 회사와 멀지 않으면서도 아내가 일하는 강남까지 고속도로를 타면 1시간 30분 정도 걸리는 연천 일대를 줄잡아 3백여 곳은 보러 다녔어요.” 수고롭게 발품을 팔아 찾은 이곳은 집 앞으로 임진강이 흐르고, 주산主山으로는 경기도 5대 명산으로 꼽히는 감악산이 있으며, 뒤로는 산줄기가 집터를 포근하게 품어 좌청룡 우백호를 떠올리게 하는 지형이다. 풍수지리상 임산배수의 입지를 갖춘 그야말로 명당이었다. 이때만 해도 부부는 패시브 하우스를 지을 계획은 없었다. “처음에는 시골답게 소박한 농가를 지려고 했어요. 이전 성북동 집을 설계한 로디자인에 설계를 의뢰했지요.” 강 회장이 모눈종이 위에 그린 평면도를 기초로 설계도를 완성했고, 로디자인이 패시브 하우스 전문으로 정평이 난 이에코건설을 시공사로 소개했다. 2009년 국내 1호 제로 에너지 하우스를 시공하고, 2018 녹색 건축대전 대상을 수상한 바 있는 이에코건설의 제안으로 부부의 집은 패시브 하우스로 방향을 전환했다.

주방 한쪽에 놓은 고가구 문갑장과 소반이 소박하면서 정갈한 분위기를 만든다.

박공지붕으로 인해 벽면이 사선으로 떨어지는 침실은 심리적 안정감을 준다.

거실에서 주방을 바라본 전경. 가운데 복도를 기준으로 왼쪽에는 다이닝 공간이, 오른쪽에는 주방이 자리한다.

푸른 정원과 소나무가 창 너머 한눈에 내다보이는 다이닝 공간.

에너지를 배출하지 않는 집
8천 평대 부지에는 부부가 생활하는 주택, 아내 박경주 대표가 사용하는 테스트 키친, 관리동 등 크게 세 개 건축물이 자리한다. 이 중 동남향으로 길게 일자 배치된 주택이 패시브 하우스다. “나이가 들면서 점차 자연과 떨어져 살 수 없다는 것을 느꼈고, 궁극적으로는 자연 친화적 삶을 추구하게 되었어요. 집 역시 최소한의 에너지만 소비하는 자연 속 안식처가 되기를 바라는 생각으로 패시브 하우스를 짓자는 시공사의 제안을 받아들였지요.” 초기 설계 때 패시브 하우스를 전제로 하지 않았기에 공사 과정은 까다롭고 복잡할 수밖에 없었다. “패시브 하우스 기준을 충족하기 위해 현장에서 외부 단열 규정이나 상세 부분을 모두 변경해 건물 내·외부 마감으로 풀어내야 했지요.” 정병은 소장은 최대한 많은 양의 태양 빛을 실내로 들이고 빠져나가는 열을 최소화하기 위해 벽체와 창호를 활용했다. 우선 패시브 하우스에서 에너지 소모량을 낮추기 위해 성능 좋은 단열재를 사용하는 것은 가장 필수 기본 요건. 건 물 단열재로는 생고뱅 이소베Saint-Govain Isover의 친환경 섬유단열재(두께 140mm)를 세 겹으로 두툼하게 넣었고, 층고가 높아 지붕에는 네 겹을 넣어 단열과 흡음 성능, 기밀도를 높였다. 외부 마감은 천연 방부 기능이 뛰어난 북미산 적삼목 너와와 청고벽돌을 사용했다. 적삼목 너와는 영하 30℃ 이하에서도 동파되지 않을 정도로 기후변화에도 강해 겨울 한파에는 기온이 영하 20℃까지 떨어지는 연천 지역에 적합한 마감재였다. “작년 겨울 함박눈이 내린 다음 날, 실내 온도를 측정하기 위해 방문했어요. 당시 바깥 온도는 영하 14℃였는데, 실내 온도는 24℃, 바닥 온도는 30℃였지요.” 무엇보다 시간이 지나면서 회색빛으로 자연스레 바래는 덕분에 집의 규모가 큰데도 소박하고 정감 있는 시골 정취를 살릴 수 있었다.

건물 외벽을 마감한 청고벽돌과 적삼목 너와는 여름엔 열의 내부 유입을 막고 겨울엔 내부 열을 가두는 역할을 함으로써 기능과 미관을 모두 살렸다.

테스트 키친 내 나선형 계단 너머로 장독이 줄지어 있다. 오른쪽 4.5m에 달하는 높은 층고가 시원한 개방감을 더한다.
한편 천창으로 쏟아지는 빛으로 부드럽게 채워진 공간은 “집이 전반적으로 밝으면 좋겠다”는 건축주의 요구를 적극 수용한 것이다. 거실 전면에 통유리창을 비롯해 천창, 복도 하단에 낮은 창 등 집 안 곳곳에 크고 작은 창을 설계했는데, 이때 채광도 좋지만 단열 효과를 높일 수 있는 적정한 유리창을 선택하는 일도 중요했다. 정병은 소장은 아르곤가스를 충전한 로이(Low-Emissivity) 코팅 유리를 양면으로 설치해 실내와 유리 사이의 온도차를 낮춰 매우 높은 단열성을 확보했다. “냉난방비는 이전 대비 약 4분의 1수준으로 줄었어요. 평소에는 냉난방기를 틀 필요도 없고, 혹한·혹서기에는 잠깐만 켰다 꺼도 적정 온도를 오랫동안 유지해주지요.” 이로써 이곳은 ‘1년 동안 단위면적당 3.8L 이하의 난방유를 사용하는 에너지 효율이 매우 높은 주택’이라는 의미로 패시브 하우스 인증을 받았다(일반 주택은 평균 16L의 난방유가 필요하다). 에너지 절약이 에너지 생산만큼 중요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숲이 주변을 둘러싼 형세에 단층으로 길게 뻗은 집은 주변 자연 풍경과 위화감 없이 어우러진다.

작은 소나무 군락을 조성한 마당 뒤로 수백 개의 장독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손주들에게 아름다운 자연을 경험하게 해줄 수 있어 보람을 느낀다는 강경중·박경주 부부. 늘 자연을 곁에 두며 힘을 얻는다.
건강한 집에 건강한 생활이 깃든다
건축주 부부가 이곳에 살면서 가장 만족하는 점은 실내 공기가 깨끗하고 쾌적하다는 것. “감기 걸린 손주들이 여기서 이틀 밤만 자고 나면 약을 먹지 않아도 다 나아서 간다니까요.” 단열과 기밀 시공으로 실내 밀폐를 강화하면서도 어떻게 내부 공기를 정화할 수 있을까? 환기를 위해 문이나 창문을 열어두면 총에너지 요구량보다 열 손실이 훨씬 더 많아진다. 따라서 패시브 하우스는 열교환 환기장치를 통해 외부의 신선한 공기를 실내에 들이고, 내부 공기를 바깥으로 빼낸다. 장치 내에서 공기 교환이 이루어지기에 별다른 열을 발생시키지 않고도 환기가 가능한 것. “청소를 해보면 알아요. 까맣게 묻어나오는 먼지가 없거든요.” 쾌적한 실내 생활은 곧 건강한 외부 활동으로도 이어진다. 박경주 대표는 레스토랑 메뉴 개발과 운영을 위해 정원에서 취나물·곤드레나물 등 나물류와 블루베리·방울토마토·생강·수세미·부추·고추 등 각종 채소와 허브를 노지에서 재배한다. 어디 그뿐인가. 화룡점정은 2천 평대에 달하 는 콩밭이다. 한식의 근간이 되는 ‘장醬’을 직접 담그기 위해 매년 15~20가마의 콩을 재배하고, 이 콩으로 메주 2천여 개를 띄운다. 경상북도 무형문화재 제25호 옹기장 이무남 장인의 ‘숨 쉬는 항아리’에서 숙성한 장은 올해 정월에 담근 햇장부터 8년 된 씨간장까지 있다. “콩이나 다른 식재료도 사서 쓰면 경제적으로도 효율적이고, 신경도 덜 쓸 수 있어서 편리하겠지만, 제가 직접 재배해봐야 식재료에 대한 참지식이 쌓이더군요. 남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저 스스로 자부심을 지니죠. 그리고 무엇보다 이 맛을 알고 나니 다른 콩으로는 만족할 수가 없더라고요.”

강경중 회장 역시 이곳에 살면서 육체적·정신적으로 훨씬 건강해진 것을 실감한다. 도시에서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는 것만으로도 정서적 안정을 주고, 정원을 거니는 것만으로 육체적 운동이 된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맑은 공기를 마시며 운동을 합니다. 쉬는 날 마당에 나가 풀을 뽑다 보면 이내 잡생각이 모두 사라지고요. 일거리가 널려 있으니 조금도 지루할 틈이 없어요.” 조금씩 여명이 밝아오는 새벽, 그리고 짙게 젖어가는 저녁 어스름 때가 부부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다. 문을 열고 나가 흙에 발을 딛고 있으면 문득 알 수 없는 땅의 신비로운 힘을 느낀다. “봄이 되면 아무것도 없던 땅에 새순이 돋아나고, 어느새 열매가 맺혀 사람이 섭취하는 자원이 된다는 사실이 새삼스레 놀라울 따름이에요. 먹거리뿐 아니라 우리에게 늘 위로와 안정·생명력을 전해주는 자연이 정말 소중하고, 그렇기에 더욱 지켜야 하는 것 같아요.” 아름다운 자연환경에 패시브 하우스를 짓는 것은 로망 같은 일이지만, 실은 살아보면 불편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편리함만 추구해서는 결코 이렇게 살 수 없어요. 다른 가치에 의미를 두고 불편을 기꺼이 즐겨야 하지요.” 그 가치란 우리에게 성장과 약동의 기쁨을 주는 자연을 후대에 전해야 한다는, 어른으로서 또 그리고 자연의 일부로서의 책임일 테다.


건축 개요
설계 ㈜로디자인
대지면적 1330.00㎡
건축면적 199.11㎡
연면적 199.11㎡
건폐율 14.97%
용적률 14.97%
구조 철근콘크리트조
외부 마감 적삼목 너와, 청고벽돌
내부 마감 원목마루, 자기질타일, 도장
단열재 생고뱅 이소베 섬유단열재
창호 로이 코팅 유리
시공 이에코건설

글 이승민 기자 | 사진 박찬우 | 설계 ㈜로디자인(www.leau.co.kr) 시공 이에코건설(02-3431-8600, www.blog.naver.com/y0482)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20년 10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