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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븐도어즈 대표 민송이·민들레 닮은 듯 다른 집
국내 리빙 스타일리스트를 대표하는 세븐도어즈 민송이·민들레 자매가 집들이에 초대했다. 언니 민송이 실장의 신혼집, 그리고 동생 민들레 실장의 집이자 작업실에서 엿본 그들의 감도 높은 사적 취향. 부러 멋을 내지 않아도 그들이 머무는 공간에는 시적인 운치가 감돈다.

10여 년 전부터 <행복>의 굵직한 리빙 화보를 책임지고, 서울리빙디자인페어의 디자이너스 초이스 기획 전시를 두 차례 맡아 진행한 민송이·민들레 실장. <행복>과의 깊고 오랜 인연이 있기에 가능한 집들이 초대가 아니었을까.

민들레 실장의 반려견 오복이가 목청껏 짖다 이내 지쳐 소파에 늘어져 있다.

서촌에 작업실이 있던 시절부터 함께해온 한 쌍의 시계. 쿠바 출신 예술가 펠릭스 곤살레스토레스Felix Gonzalez-Torres의 ‘완벽한 연인들’을 오마주한 ‘완벽한 자매’를 상징하는 듯하다.
“우리는 서로를 이해할 수 있지만, 누구나 오직 자기 자신만을 해석할 수 있을 뿐”이라는 헤르만 헤세의 문장은 누구를 향한 것이었을까? 물보다, 어쩌면 피보다 진한 자매이자 든든하게 믿고 의지할 만한 최고의 파트너로 리빙업계를 종횡무진하는 세븐도어즈 민송이·민들레 실장은 헤르만 헤세의 말처럼 함께, 또 자신만의 길을 걷고 있다. 동고동락하며 오랜 기간 같이 살아온 둘은 민송이 실장이 지난해 결혼하면서 각자의 공간을 꾸리게 된 것. 그곳에 물건이 하나둘 자리 잡아가는 무렵, <행복>을 초대했다.

옛날 학교에서 사용하던 고재 마루를 헤드보드로 제작한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침실. 짙은 네이비색 벽은 민송이 실장이 직접 페인팅했다.

민송이 실장이 남편에게 프러포즈로 받은 르코르뷔지에 LC1 체어. 이름에 붙은 숫자 1에 시작이라는 의미를 담았다. 그 옆에 어머니가 직접 그린 다정한 모습의 커플 그림이 눈길을 끈다.
의도하지 않은 멋이 자아낸 풍취
여의도 근처에 위치한 민송이 실장의 신혼집은 거실을 넓게 쓰기 위해 방 하나를 튼 것 외에는 별도의 구조변경을 하지 않았다. “거창하게 무언가를 해볼 생각은 없었어요. 지금까지 쌓아온 물건을 조화롭게 놓은 것뿐이에요.” 그 누구보다 트렌드에 민감하고(혹은 해야 하고), 스타일리시한 공간 화보를 수없이 만들어낸 그의 대답이라기엔 어딘가 원숙한 힘 빼기가 느껴진다. “클라이언트의 목적이 있는 공간이라면 그에 맞는 스타일을 연출했을 텐데, 이곳은 제가 말 그대로 생활하는 집이다 보니 특정한 스타일을 추구하기보다 그간 모아온 것들로 조합했어요.” 스타일리스트란 필연적으로 물건이 많을 수밖에 없는 법. 있던 것을 버리고 새로 사기보다는 어떻게 효과적으로 수납하고 배치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벽 전체에 선반장을 설치하면 수납은 확보되지만 자칫 답답해 보일 수 있고, 보이지 않는 수납은 깔끔하지만 바로 꺼내 쓰기 불편하다는 단점이 있다. 그래서 찾은 방법은 얇고 긴 선반을 설치하는 것. 이로써 간결한 디자인과 쓰기 편한 수납을 모두 챙겼다.

큰 유리창 너머로 탁 트인 풍경이 내다보이는 거실은 곳곳에 다채로운 색이 생기를 더한다. 의도하지 않았으나 채도를 달리한 컬러 팔레트가 마치 계획한 것처럼 조화롭다.

다이닝룸과 주방 풍경. 벽에 걸린 그림은 다름 아닌 어머니가 그린 작품이다. 해가 지고 둥근 아카리 조명등을 켜면 유리창에 비친 형상이 마치 보름달 같다.
또 리네로제의 쁠룸Ploum 소파 외에는 대부분 쓰던 것을 활용했는데, 이전 집에서 쓰던 식탁 테이블은 사이드 테이블만 따로 제작해 필요에 따라 길이를 연장할 수 있는 오피스 책상으로 사용하고, 옛날 찬장은 그 크기에 맞춘 선반을 설치해 잔·그릇·소반·바구니 등을 보기 좋게 두었다. 출장길에 또는 여행하며 하나씩 수집한 사물은 그저 짐이 아닌 자주 손에 닿고 쓰는 애용품이다. 그의 추억과 애정이 깃들어 있기에 온화한 기운을 발산하는 것일 테다.

모던한 소파 앞에는 전형적인 소파 테이블이 아닌 소반을, 르코르뷔지에의 LC1 체어와 샤를로트 페리앙의 스툴 뒤로는 이사무 노구치의 아카리 조명등을 배치했다. 동양과 서양, 그리고 새것과 낡은 것이 적절히 어우러져 기존 스타일로 명명할 수 없는 그만의 고유한 스타일을 만들어낸다. “낡고 오래된 것에서 오는 정서적 안정감을 좋아해요. 그렇다고 옛 물건으로만 가득한 건 싫어요. 그냥 제가 좋아한다는 직관에서 오는 느낌이에요.” 이렇게 오래 쌓아온 안목을 바탕으로 한 본능적 감각이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백자 항아리와 화분으로 코너 공간을 꾸민 아담한 중정. 왼쪽은 거실과 작업실, 정면은 다이닝룸과 주방, 오른쪽은 침실이 자리한다.

한옥과 붉은색 버블 소파, 자개장의 색다른 매치는 누구나 따라 할 수 없는 민들레 실장의 탁월한 감각과 선택이다.

누비 원단으로 커버링해 동양적 분위기가 풍기는 하얀 침대와 필라스터 책장, 아일린 그레이의 E1027 테이블, 그리고 오복이 그림이 있는 아늑한 침실.

다이닝룸에 놓은 장 프루베의 게리동 테이블은 민송이 실장이 동생에게 독립을 기념해 선물한 것.
자매의 시간은 따로 또 같이 간다
올해 초, 민들레 실장 역시 이전 체부동 작업실을 정리하고 성북동으로 보금자리를 옮겼다. 작업실 겸 거주 공간을 위해 선택한 곳은 ㅁ자 중정이 있는 한옥. 아담한 크기지만 중간에 마당이 자리해 어느 곳에서든 건너편이 보이고, 무엇보다 침대에 누우면 중정 위로 서까래 끝에 하늘이 걸린다. 시야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개방감과 아늑한 안정감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것. 분명 공간은 다르지만 언니의 집과 묘하게 닮은 구석이 많다. 오랜 시간 같이 일해왔으니 서로의 취향이 포개지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이곳 역시 거실에 둔 버블 소파와 자개장 정도 말고는 모두 그가 소장해온 것이다. “작업실과 창고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던 소품은 동네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는 식으로 정리했어요.” 이사하기 위해 필요한 일이기도 했지만, 실은 민들레 실장이 입양한 반려견 오복이의 공이 컸다.

“비글구조네트워크에서 구조한 새끼 비글이던 오복이를 들이면서 삶의 관점도 바뀌고, 공간에 대한 관점도 변했어요. 이전에는 가구와 빈 공간의 비율을 촘촘하게 짜는 편이었거든요. 제 작업이나 일, 삶도 마찬가지로. 지금은 오복이가 불편하지 않게 공간을 되도록 비우려고 해요. 정말 필요한 것만 최소한으로 들이자는 마음으로요.” 삶에서도 조금씩 덜어내는 시기.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상의 우선순위가 다시 정렬되고, 일상의 빈틈에 소소한, 그러나 사려 깊은 배려를 채워간다. 차를 어떻게 정성스레 내릴지, 오복이가 어떤 사료를 더 좋아하는지…. 펠릭스 곤살레스토레스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아 벽에 걸어둔 똑같은 시계 두 개. 시침은 동시에 출발했지만 10여 년이 흐른 지금, 5분의 시간 차가 생겼다. 두 사람의 삶 역시 조금 씩 다르게, 그러나 같은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처럼.

글 이승민 기자 | 사진 박찬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20년 9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