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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임권·김은영 부부의 구기동 주택 빛도 바람도 우아하게 드나드는 집
약속 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해 맞은편 언덕에서 바라본 구기동 주택은 우아했다. 석고 위에 흰색 수성페인트로 마감하고, 그 위로 조병수 건축가의 시그너처가 된 흰색 철 그물망을 덮은 집. 군더더기라고는 없는 단정한 형태의 삼층집 뒤로는 북한산 자락이 깊은 초록 배경을 만들어냈다.

흰색 익스팬디드 메탈을 시스루처럼 걸친 이곳은 뒤편의 초록과 어우러지며 우아한 포스를 발산한다. 집에도 오트 쿠튀르가 있다면 아마도 이런 모습이 아닐까 싶다. 메탈을 덮으면서도 북한산을 조망할 수 있는 외부 덱의 벽체는 시원하게 터 초록 숲이 더욱 가깝고 생생하게 너울대는 집. 한마디로 “역시 조병수!”였다.
구기동에 있는 이 집은 외관도 내부도 압도적으로 근사한데, 건축가가 조병수다. 건축주와 조병수 건축가는 동서지간. 조병수 건축가 아내의 여동생과 그 남편이 이 집의 주인이다. 조병수 건축가는 지금 한국에서 설계비가 가장 비싸고, 전국 곳곳에서 러브콜을 받는 이다. 거제도에 오픈한 펜션 단지 ‘지평집’은 홈페이지 첫 화면에 그의 약력을 띄우며 조병수가 지은 공간임을 공표하는데, 이미 11월까지 예약이 꽉 차 있다. 동물병원을 운영하는 강임권 대표에게 “설계비는 얼마나 드렸느냐?”고 넌지시 물었다. 서글서글한 인상의 그는 “디자인비를 거의 안 내고 했어요. 형님이 안 계셨으면 집 못 지었을 거예요”라며 웃었다.

집 취재를 앞두고 조병수 건축가와 강임권 동물병원 원장을 함께 만났는데, 두 사람은 서로를 보자 금세 환한 얼굴이 되었다. 조병수 건축가가 말했다. “이 사람은 ‘돌파맨’이에요. 추진력이 대단하고 어려움이 닥쳐도 최선의 방법을 찾아내 문제를 해결하지요. 우리 같은 사람이랑 달라.(웃음)” 강임권 원장도 애정을 가득 담아 말했다. “형님으로서도 좋아하지만 ‘건축가 조병수’의 팬이기도 해요. 양평에 있는 형님의 땅 집과 ㅁ자 집을 보면서 이렇게도 생각할 수가 있구나 싶었어요. 땅 밑으로 집이 들어가 있고, 조명도 최소화하잖아요. 설계를 마친 건물이 있으면 형님이 꼭 구경을 시켜줘요. 둘 다 술을 좋아해서 술 한잔 하며 동물병원 운영하는 것도 논의하는데 조언을 잘 해주세요. 다른 사람은 극구 말리는데, ‘네 장점을 살려서 하는 것도 좋겠다’ 하고 이야기를 해주셔서 제가 좋아하지요.”

외부가 네이처 하우스라면 내부는 아트 하우스라 할 만했다. 아르텍의 조명, 조병수 건축가가 직접 디자인하고 제작해 선물한 테이블을 포함해 아름다운 가구와 조명, 예술품이 많았다.

콘크리트 구조를 그대로 노출해 내부 마감을 대신했는데, 견고한 질감의 회색 벽이 나름의 깊이와 밀도를 드러내며 공간에 물성의 아름다움을 더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대문을 지나 집으로 들어서 만나는 외부 계단. ‘빛의 땅’을 향해 한 발짝 한 발짝 올라가는 기분이다.
자연과 더불어 ‘시원해지는’ 마음이 드는 집
1차 미팅 후 찾아간 구기동 단독주택은 아름다웠다. 경사가 있는 구기동 주택가에서도 높은 곳에 자리하는데, 흰색의 단정한 사각 건물인 데다 뒤편으로 북한산 자락이 펼쳐져 흰색과 녹색, 그 위로 펼쳐지는 하늘색의 대비가 강렬했다. 노출 콘크리트로 마감한 건물 바깥으로는 익스팬디드 메탈expanded metal을 덮었다. 풀이하자면 ‘확장된 메탈’.어떤 강도로 당기느냐에 따라 표면 가득 나 있는 구멍의 간격과 크기가 달라지는 이 마감재는 섬세한 원단의 시스루 의상처럼 모던하고 우아한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계단을 올라 평평한 땅에 서자 시야가 확 트였다. 옆으로는 널찍한 정원이, 앞으로는 대나무 숲이 펼쳐졌다. 반듯하게 심어놓은 대나무 숲 옆으로 길이 나 있어 거의 무의식적으로 그 길을 따라 건물 뒤편으로 갔는데, 그곳에 후원이 있었다. 요새처럼 높게 쌓은 석축 위로 숲이 무성하고, 10여명이 한데 모여 와인을 마시기에도 부족함이 없을 만큼 넓은 덱이 있는 곳. 따라 나온 강임권 원장이 말한다. “집을 지으려고 보니 이 땅이 그린벨트와 맞물려 있는 거예요. 어쩔 수 없이 석축 앞쪽으로 공간을 많이 빼서 집을 짓다 보니 이 공간이 이렇게 넓어졌어요. 유휴 공간이 넓으니 시원하고 좋아요.” 처음 집을 지으면 이런 공간이 괜스레 아깝고 집의 면적이 줄어든 것 같아 억울한 마음도 들지만, 살다 보면 이내 잘했다 싶은 생각이 든다. 이런 공간이 있어 자연과 더 가까운 집이 되고 큰 ‘숨구멍’이 있는 집이 되는 것이다.

부부는 오랫동안 동부이촌동에 살았다. 창 너머로 한강이 보이는 전망 좋은 아파트. 평창동에 있는 조병수 건축가의 집에도 자주 놀러 갔는데, 집을 짓고 사는 것은 남의 이야기인 줄만 알았다. 아내 김은영 씨에게 어떻게 아파트를 포기 할 수 있었느냐고 물었다. “저희 역시 집 짓기를 막연히 어렵게 생각했어요. 돈이 아주 많은 사람이나 집을 짓고 살 수 있는 줄 알았지요. 그런데 언니가 계속해서 아이들 건강이나 우리 부부를 위해서도 주택에서 살 필요가 있다고 강조 하더라고요. 바깥 공기를 느끼지 못하고 사계절을 모르고 살면 바보라면서. 애 아빠가 강변도로에서 들리는 차 소리 때문에 힘들어하고 나중에는 잠도 제대로 못 자서 마음을 먹었죠. 형부 덕분에 쉽게 결단을 내리기도 했고요. 이렇게 집을 지어 살다 보니 공기부터가 다르더라고요. 몸도 가볍고 삶도 편해요. 조용하고. 아파트에 살 때는 딱히 불편함을 못 느꼈는데 다시 가라고 하면 못 갈 것 같아요.”

남편 역시 같은 마음. 아파트값은 지금도 끝없이 오르지만 미련일랑 없다. 1993년생, 1997년생인 두 딸도 이 집에 완전히 적응했다. 언덕이라 오가는 길이 조금 힘들어서 그렇지 일단 집에 들어오면 과연 집이 최고라는 생각을 한다. 눈이 많이 오는 날에는 이동하기 불편하지만, 그런 날은 1년에 며칠뿐. 좋은 날이 훨씬 더 많다.

간결한 라이프스타일과 정원의 시간을 위해 부러 나무와 돌을 최소화한 정원에서 포즈를 취한 강임권·김은영 부부.

후원으로 이어지는 측면의 오솔길. 한쪽으로 대나무를 도열하듯 심었다. 저 길을 지나면 높은 석축 앞으로 또 하나의 뻥 뚫린 외부 덱이 나온다.

부부가 가장 좋아하는 공간 중 한 곳인 옥상.
‘조병수표’ 마감재는 언제나 빛
집 안 구조를 살펴보면 조병수 건축가가 ‘자연의 집’에 얼마나 애정이 많은지를 알 수 있다. 침실 세 개는 2층에 나란히 배치했는데, 모든 방에서 북한산 자락을 조망할 수 있다. 정해진 용적률 안에서 1층 천고를 최대한 높였고, 정원과 맞닿은 바깥쪽 처마 역시 최대한 길게 빼 해가 쨍쨍한 날도,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날도 처마 밑에서 느긋하게 정원을 바라볼 수 있다.

하이라이트는 옥상. 게스트룸이나 시청각실로 활용하는 작은 방 하나만 그대로 두고 나머지 공간을 덱이자 테라스로 구획한 곳. 부부와 이 집을 찾는 손님들이 가장 좋아하는 공간이다. 그곳에 올라가니 북한산 일대와 구기동 주택가가 파노라마처럼 눈앞에 펼쳐졌다. 눈높이에 있는 측면 벽체를 모두 사각으로 길게 틔워 자연의 푸르름이 더 생생하게 와닿았다. 지붕에는 투명한 렉산Lexan(폴리카보네이트제품)을 얹고 그 위로 다시 그물망 같은 메탈을 덮어 직사 광선을 순화함과 동시에 나무 바닥과 벽면에 빛이 쪼개져 들어오도록 했다. 이 집을 찾은 날은 날씨가 흐려 그림자를 볼 수 없었지만, 결국 우리에게 남는 것은 그런 공감각적 경험과 감각의 기억. 한옥 창호 문이나 영창에 일렁이는 빛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듯 ‘쪼개져 들어오는’ 빛 역시 이곳에 사는 사람들의 마음에 선명한 여운을 남길 것이다. 강임권 원장이 생글생글한 얼굴로 말했다. “퇴근해 들어와 이곳에서 담배 한 대 피우고 있으면 정말 좋아요. 가슴이 뻥 뚫려요. 자유로운 기분도 들고. 아파트에서는 담배도 마음대로 못 피우잖아요.”

2층에 배치한 세 개의 침실 모두에서는 약속처럼 북한산 자락과 구기동 주택가를 굽어볼 수 있다.

극도로 미니멀하고 우아한 라인과 형태의 외관.
지금은 200% 만족하지만, 지붕에 렉산을 얹고 그 위로 또 익스팬디드 메탈을 덮는 것은 건축주에게 고민거리를 안긴 부분이었다. “비용도 비용이지만 혹 답답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붕까지 건축 평수로 들어가면서 설계 변경을 해야하는 부분도 있었고요. 그런데 이 지붕이 없었으면 직사광선에 고스란히 노출되는 데다 외부 시선으로부터 사생활 보호도 안 됐을 것 같아요. 이 집 공사를 하시면서 형님이 그러셨어요. 모든 풍광이 막힘없이 한눈에 다 들어오면 그 풍경이 고마운지, 애틋한지 모른다고. 풍광이 선택적으로 눈에 들어올 때만 느낄 수 있는 아름다움이 또 있다는 얘기도 해주셨지요. 바로 설득당했습니다.(웃음)”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자 조병수 건축가는 “내가 그랬나?”하고 웃으면서 “쉽게 말해서 빛이 바로 내리쬐는 게 아니라 낙엽 사이로 들어온다고 생각하면 돼요. 빛도 바람도 한 번 순화되는 거예요”라고 말했다. 그렇게 더 순해지고 더 깊어지는 빛과 그림자, 밀도와 분위기는 조병수 건축가의 인장 같은 것. 서촌에 있는 그의 공간 온그라운드 갤러리를 떠올리면 알 수 있듯 나무 사이로 춤추듯 쏟아지는 빛, 중정 한편에 작게 어른거리는 그림자는 ‘디자인 바이 조병수’ 프로젝트에서 늘 주연을 맡는다.

그린벨트와 맞물려 있는 지역이라 건축 허가를 받기도 쉽지 않고, 경사진 곳이라 땅을 고르기도 어려웠지만 결국 이렇게 멋지고 근사한 집이 올라갔다. 집을 짓게 되면 설계 비용을 민감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데, 조병수 건축가가 지은 구기동 집을 둘러보니 설계비만큼은 예산이 허락하는 범위 안에서 ‘통 크게’ 책정해도 될 것 같다. 건축가 역시 이왕이면 가장 잘하는 사람으로 선택하고. 빛의 형태와 밀도, 바람의 길까지 생각해 지은 집은 살면서 매 순간, 두고두고 좋을 테니까.

글 정성갑(한 점 갤러리 클립 대표) | 인물 사진 이은숙 공간 사진 제공 BCHO 파트너스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20년 9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