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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창민·김영지 디자이너 부부 꼼꼼한 수납으로 정돈한 여섯 식구의 집
인테리어 디자이너 부부의 집은 외려 평범했다. 심오한 실험 정신이나 콧대 높은 철학이 없었다. 기물은 그들 눈에 좋아 보이는 대로 선택했고, 공간은 형편대로 고쳤다. 가족이 평안한 공간이면 족하다고 생각했다.

주방에서 바라본 거실. 창밖은 미래 도시를 연상케 하는 경치가 펼쳐진다. 간결하게 꾸민 거실은 온 가족의 쉼터다.

이 자리에 꼭 맞는 작품을 찾기 위해 오랜 시간 고민한 부부. 에이후스에서 구입한 골드컬러 수납장에는 인사동 등지를 샅샅이 뒤져 고른 조선시대 도자기며 수집품을 두었다. 벽에 걸린 것은 정현지 작가의 명주 작업이다.
샐러드보울 스튜디오는 최근 몇 년 사이 인테리어에 관심있는 사람들 입에 자주 오르내리는 인테리어 그룹 중 하나다. 몰딩이 안 보이게 칼로 쪼개어낸 듯 똑떨어지는 선, 백설기처럼 흰 벽면, 따뜻함을 자아내는 나무 선반과 디테일이 이들의 시그너처다. 텅 빈 공간처럼 보이지만 요모조모 뜯어보면 수납도, 동선도 예리하게 설계한 티가 난다. 샐러드보울 스튜디오 구창민·김영지 디자이너는 부부지간이다. 같은 대학에서 패션디자인을 전공한 캠퍼스 커플이었고, 긴 연애 기간을 거쳐 함께 사업을 시작했고, 결혼도 하고, 어여쁜 딸도 셋 낳았다.

이야기는 사람과 오브제가 한다
취재진을 맞은 김영지 디자이너가 개성주악 호두정과와 홍옥정과를 정갈하게 담아 대접했다. 손님을 맞는 그의 마음이 얇은 잔, 고운 세라믹 그릇, 조약돌을 닮은 수저받침과 투박한 모양의 포크에 녹아 있었다. 매일 이렇게 차려먹진 않을 것이나, 손님이 온다고 이 정도 다과 반상을 차려내는 부부라면 분명 좋은 취향을 지녔을 터. “어떤 물건 이건 조심스레 취하고 있어요. 오랫동안 찾고, 단박에 결정하죠.” 예를 들면 거실에 있는 스툴 같은 게 그러하다. “한참 동안 거실에 놓을 스툴을 찾았어요. 몇 개월을 내내 고민하다, 세라믹으로 만든 저 스툴을 보자마자 ‘이거다!’ 했죠.” 이 집에는 유명한 디자이너의 가구나 소품은 보이지 않는다. 예스럽고, 나이와 때가 적당히 묻고,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는 물건들이 있었다. 부부가 최근 구매했다며 자랑하는 건 조선시대에 제작한 굽이 깨진 호리병.

“인사동을 뒤져 이걸 찾아냈을 때 아주 기뻤죠. 가게 주인 아저씨는 ‘설마 이걸 사려는 거냐’는 표정이었고요. 그래도 이런 게 좋아요. 왜 그런지 잘 모르겠어요. 뭘 고를 때 물질의 가치를 보는 것은 분명 아니에요.” 살 집을 결정할 때도 부부는 비슷한 태도였다. “올해 초 아홉 살이 된 첫째와 무럭무럭 커나갈 두 동생을 위해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기로 했어요.” 부부와 세 아이, 외할머니까지 여섯 식구가 33평 아파트로 이사했다. 지은 지 오래됐지만, 지척에 야트막한 산이 있고 그 산을 넘는 터널이 있어 마치 미래 도시 같은 느낌이 나는 경관이 펼쳐졌다. 그 경치에 반해 곧바로 이사를 결정했다. “33평은 여섯 가족이 살기에 크지않은 공간이잖아요. 절대로 디자인적 기교를 부릴 수 없어요. 더 큰 집에 살 수 있는 형편도 아니고, 가진 것 안에서 취향에 맞춰 선택과 집중을 해야지요. 저희가 좋아하는 물건을 채워 취향을 녹인 집을 만들면 되겠다 싶었어요.” 이야기는 사람과 오브제가 한다는 게 두 사람의 지론이다. 공간은 거들 뿐. “공간이 굳이 클 필요 있나요? 이 정도면 충분해요. 더 넓어야 한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어서…. 주말에 가족이 오순도순 모여 앉을 수 있는 것도 좋고, 관리하기 편한 것도 좋아요.” 김영지 씨의 말에 일리가 있다.


디자이너 김영지는 이날을 ‘촬영하는 날’이 아니라 ‘손님이 오는 날’이라 생각했다. 그가 서 있는 왼편의 나무 장은 큰 가구처럼 보이지만 왼쪽은 신발 장, 오른쪽은 부엌 가전과 식료품 수납 기능을 하는 개별 장이다.

안방 안쪽의 욕실은 건식으로 만들고 하부에 수납장을 배치했다.
꼼꼼한 수납의 힘
아무리 딸이라 해도 아이 셋이 사는 곳이라고 하기엔 너무 깨끗한 집 상태. 의아했다. “깨끗하진 않아요. 커다란 보행기, 온갖 장난감과 잡동사니가 있지요. 구석구석 들어가있을 뿐이에요.” 부부의 말대로 ‘특별한 구조는 아니’지만 디자이너로서 노하우가 수납 방식에서 드러난다. 부부는 현관의 신발장과 주방 가구 수납장은 하나의 가구처럼 크게 만들었다. 거실과 현관, 주방을 잇는 큰 면적을 비워낸 셈이다. 그 사이사이 조밀하게 수납을 짜 넣었다. 현관 신발장 옆 빈 공간을 팬트리로 사용하고, 냉장고 옆 빈 공간에는 그릇과 커피 도구 등을 수납할 수 있게 수납 공간을 서랍처럼 제작했다. 옆면의 작은 공간도 식재료를 보관할 수 있도록 바닥부터 천장까지 촘촘하게 수납공간을 만들었다. 부피가 큰 가전도 모두 부엌에 있다. 개수대 옆 팬트리를 열면 세탁기와 건조기가 등장. 작은 짐을 보관할 수 있는 서가 같은 수납장과 세제 등 세탁용품을 보관할 수 있는 수납장은 천장까지 닿아 있다. 거실 벽면에 맞춰 우드 슬라이딩 도어를 달아 로봇 청소기 집도 만들었다(구창민 씨가 보기 싫어하는 방화용 섀시 문을 가리는 효과도 있다).

“평범하죠. 일단은 비우는 게 목적이었어요. 공간적인 걸 먼저 염두에 두고 수납을 하나씩 채워 넣는 순서만 있었죠.” 구창민 씨의 말이다. 손님 입장에선 촘촘한 구성이라고 여겨졌다. 이 가족의 주말은 비워둔 공간에서 단란하고 평화롭게 흘러간다. 이 집에서 가장 즐거운 순간을 묻는 질문에 부부는 가족과 함께하는 주말을 떠올린다. “그냥 음악 들으면서 아무 생각 안 할 때? 주말에 아이들과 놀 때? 아이 한 명은 보행기를 탄 채 거실을 활보하고, 첫째와 둘째는 아빠와 샌드위치가 되어 있어요. 가끔은 아이들이 좋아하는 노래도 부르고….”

이 집의 다른 곳과 같이 침실도 완전히 고쳤다. 세로로 길게 낸 창은 가벽을 타공해 만든 것이고, 벽면 끝까지 닿아 있는 목제 헤드보드도 짜 맞춘 것. 전체적인 무드에 맞춰 지복득 마루를 시공했다.

파우더룸 안쪽에 욕실이 있다. 아이들이 놀기 좋게 윤현상재의 타일로 매립식 욕조를 만들었다.
샐러드보울 스튜디오는 요즘 바쁘게 재정비 중이다. 리브랜딩 작업을 시작했고, 이들만의 감각을 담은 룸 프레이그런스와 소품 등을 기획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은 샐러드보울이 주거 인테리어에서 한 발짝 나아가 그들이 생각하는 최고의 경험을 즐길 수 있는 숙박 공간, 그러니까 호텔을 만들기 위한 첫걸음이다. “5년 전부터 구상하던 일이에요. 호텔을 만들려면 누구보다 공간을 많이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했지요. 그래서 남이 만든 공간, 자연 속 공간을 아이들과 열심히 보러 다니고 있어요. 진정성 있게 하고 싶어서요. 스테이를 만드는 게 유행인 것 같긴 한데, 저에겐 오랜 꿈이에요. 무엇보다 우리 아이들이 놀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어요.” 김영지 씨가 차려낸 다과상에서 본 ‘환대’가 그들의 호텔에서 구현될 날이 머지않은 것 같았다.

스물네 시간 붙어 일하지만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기 위해 메모장 하나를 함께 쓰는 부부. 김영지 씨가 얼마 전 남긴 메모는 은희경 작가의 인터뷰였다. “삶은 짧은 행복, 기쁨, 위안이 지나가는 것이래요. 일과 생활의 밸런스를 맞추고, 스쳐 지나는 일상 속에서도 서로에 대한 감사함을 발견하는 그런 가족이고 싶어요.” 비운 듯하나 부족하지 않게, 채운 듯하나 넘치지 않게. 샐러드보울 스튜디오의 철학과 이 가족의 생활 중심에는 집이 있다.

글 박민정 기자 | 사진 이경옥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20년 8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