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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 조정선·목수 최성순 부부 나무가 선물해준 한옥 인생
서울에서 살다 양평에 직접 한옥을 지어 이사한 부부의 집은 간소했다. 나 같은 사람은 마당이 생기자마자 온갖 나무와 꽃을 가득 심을 텐데 이 부부의 마당에는 작년에야 심은 산초나무 한 그루가 전부였다. 이것저것 장황하게 보고, 또 보여주는 삶에는 관심 없는 듯했다. 아내는 집에 딸린 작은 공간에서 설계를 하고, 남편은 집 옆에 마련한 작업장에서 종일 한옥에 사용할 나무를 깎는 집. 마음속 심지가 굳건한 이 부부는 오늘도 자신들만의 삶을 산다.


건축설계 사무소에서 일하던 아내와 목수로 현장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던 남편은 가족이 도란도란 사는 ‘일상의 한옥’을 지어보자 합의했고, 그렇게 양평 살림한옥을 지어 매일매일 소박한 삶을 쌓아가고 있다. 취재 당일, 아내는 정성껏 만든 진달래화전과 쑥버무리를 내놓았다.
한옥에 도착해 혹시 마당에 꽃과 나무를 심지 않은 이유가 있냐고 물었다. 아내 조정선 씨가 웃으며 답했다. “저희가 이래요. 집 지은 지 3년이 넘었는데 이러고 있네요. 별다른 이유는 없고, 처음엔 마당 흙이 다져질 때까지 지켜본다는 마음이었어요. 그런데 또 대문만 나가면 들과 뒷산이고 나무와 꽃도 많아서 꼭 무언가를 심어야 하나 싶더라고요.” 그의 말처럼 문 앞에는 작은 야생화가 많았다.

집 앞 흙길 언저리에는 함께 사는 시할머니가 옥수수를 심었다. 대문 바로 옆 텃밭에는 감자를 심었는데, 새싹이 빼꼼 올라왔다. 남편 최성순 씨는 3대 독자로 할머니를 모시고 산 지 10년이 다 되어간다. 나무를 깎다 합류한 남편에게 “아내분께 정말 잘하셔야겠어요” 하고 말했더니, 남편 최성순 씨는 수줍은 미소를 띤 채 화답했다. “그러게요. 사람들이 업고 다녀야 된다고 하더라고요.” 결혼 전 아내가 최성순 씨를 인사시키러 집에 데려갔을 때 그녀의 아버지는 “미장하는 사람은 붙이는 사람이니 잘 살고, 목수는 깎아 먹는 사람이니 못 산다. 목수는 또 거칠지 않으냐”고 말했다고 해서 웃었는데, 최성순 씨는 거친 구석이라고는 전혀 없는 순한 사람 같았다.


그렇다면, 직접 집을 지어보자
부부가 이곳에 터를 잡은 때가 2015년이다. 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한 후 건축설계 사무소에서 일하던 아내와 목수로 집을 짓고 문화재도 복원하던 남편은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한옥을 직접 만들어보자고 합의한 후 ‘살림한옥’을 지었다. 마당을 중심으로 주방부터 안방까지 빙 둘러 자리 잡은 ‘ㅁʼ자집. 쪽문을 열면 뒤란과 연결되는 전망 좋은 방을 시할머니에게 드리고 중학생 딸 승원이에게는 목구조를 높이 들어 올려 다락방을 만들어주었다. 아홉 살인 승효는 엄마 아빠 방과 맞닿은 방을 쓴다. 승효의 취미는 종이접기. 티라노사우루스부터 피카츄까지 얼추 봐도 식별이 가능할 만큼 솜씨가 대단하다. 승원이는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되면 기차를 타고 시내 중학교로 통학해야 하는데 괜찮을지 걱정이다. “가구 수가 많지 않은 작은 동네다 보니 또래 아이가 없어서 지들끼리만 노는 것이 미안해요. 주변에 친구들이 없으니까.” 하지만 다 자기들만의 놀이가 있는 법. 아이들은 흙으로 호떡 장사 놀이도 하고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쏘다니기도 한다. 지난여름과 지지난 여름에는 강원도 화진포로 다 같이 해수욕도 다녀왔다. 마당에는 그때 주워 온 조개껍데기가 예쁘게 놓여 있었다. 부부는 아무리 바쁘거나 경황이 없어도 1년에 한 번 가족 여행만큼은 꼭 가려고한다. 이 집을 지은 것도, 하루하루 열심히 사는 것도 결국 가족의 시간을 위해서니까.

할머니 방에서 내다본 거실. 정선 씨와 성순 씨는 뒤란으로 이어져 답답하지 않고 널찍하기도 한 방을 할머니에게 내어드렸다.


부부 침실로 가는 길목에 있는 가족실. 벽면 한쪽으로 긴 수납장을 짜 넣어 청소와 정리 정돈이 용이하도록 했다. 한지 바른 영창은 언제 봐도 아름답다. 문을 열면 바깥 풍경이 들어오고 문을 닫으면 한지 위로 빛이 일렁인다.

딸 승원이가 그린 그림.
이 집을 설계하며 바란 것도 ‘우리의 삶과 생활이 있는 집’이었다. “한옥이라면 말이지” “한옥에는 자고로” 같은 세상의 얘기에는 귀 기울이지 않았다. 3대가 각자 적당히 자신의 공간을 가지면서도 문만 열면 맞바람이 불 듯 시원스레 이어지도록 했고, 겨울 추위에 대비하기 위해 나무로 짠 목시스템 창호를 넣었다. 지붕은 맞배지붕으로 했다. “한옥은 나무가 많이 들어가고 암키와와 수키와가 만나는 선을 포함해 화려한 구석이 많아요. 그 안에서 사는 사람의 삶도 충분히 역동적인데, 불필요한 장식이나 형식적인 것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어요. 맞배지붕을 심심하다고 생각하는데, 저희는 되레 단순해서 모던해 보이더라고요. 맞배지붕이 만들어내는 용마루 선이 담백하게 안마당을 품어 줘 매일 봐도 부담이 없고요.”

내 눈에는 거실과 안방 쪽에 단 영창映窓(창문 바깥쪽으로 한지를 발라 덧댄 나무 미닫이문)의 높이가 인상적이었다. 바닥에 앉아서도 창문을 열 수 있도록 낮은 곳에 낸 창문. 영창을 닫아놓으면 한지 안으로 빛이 일렁이고, 영창과 창문까지 툭 열면 바깥쪽 풍경이 ‘낮게’ 펼쳐진다. 물론 모든 것이 이상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한옥의 단점 중 하나는 수납공간의 부족. 이 집 역시 마찬가지지만 할머니 방에 반침(벽장)을 만들고, 안방에는 가로로 긴 수납장을 짜 넣어 정리와 청소하기 간편하다. 김치냉장고는 마당에 묻은 항아리가 대신한다.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새로운 아이디어가 생기고, 그렇게 되면 불편하다고 생각하던 것이 어느새 정말 좋은 것이 되기도 한다.

영화감독이 영화 한 편을 찍으며 결정해야 할 일이 수천가지에 이른다는데, 집을 지을 때도 수없이 많은 선택지가 앞에 던져진다. 돌쩌귀를 고르는 일부터 바닥재를 선택하는 일까지 계속해서 선택, 선택, 선택의 연속이다. 시간이 지나면 잘한 선택과 후회하는 선택이 선명하게 드러나고, 후회하는 선택을 좋은 쪽으로 돌려보려 다시 또 애 쓰는 것이 집 짓고 사는 일반적 흐름이다. 이 집 역시 마찬가지인데, 두고두고 잘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대들보며 서까래를 모두 소나무로 올린 것. “한국에 가장 흔하던 나무가 소나무잖아요. 그래서 옛집들도 대부분 소나무로 지었어요. 우리나라 소나무의 특성이나 한계까지 껴안으며 만든 집이 한옥이다 보니 우리도 소나무를 사용하면 그만큼 편안하고 친근한 집이 되지 않을까 싶었어요. 국산 소나무는 곧은 것도 있고 휜 것도 있는데, 이것들이 서로 어우러지며 만들어내는 미학이 있어요. 그것이 우리 목구조의 특징이고요. 수입하는 나무는 곧기만 합니다. 나무의 특성을 아는 것은 자연스러운 미감과 연결되는 문제라 중요해요.”

조용히 아내 말을 듣던 남편의 부연 설명. “한옥 목재로 소나무뿐 아니라 느티나무 수종도 많이 써왔어요. 부석사 무량수전 기둥도 느티나무지요. 우리 부부는 한옥 짓기가 좀 더 쉬운 일이 되면 좋겠어요. 그러려면 자재를 구하는 것도 쉬워야 하는데, 이렇게 우리 나무로 집 짓는 문화가 형성되면 제재소를 포함해 목재 관련 산업도 좋아질 거고, 더 넓게는 숲도 다양해지지 않을까 싶은 거예요. 그 혜택을 제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못 누리겠지만, 그렇게 점점 좋아지면 좋은 거니까요.”

부부는 대들보며 서까래를 모두 우리 땅에서 자란 소나무로 올렸다. 조금 휜 것도 있고, 몸통이 갈라진 것도 있지만 그래서 오래 봐도 질리지 않고 푸근하다.

집 바로 옆에 마련한 널찍한 작업장. 이 곳에서 남편은 나무를 깎고 다듬고 말린다
시작 단계부터 우리 나무와 함께하고 싶다
이들이 한옥을 대하고, 만드는 과정은 여느 곳과 사뭇 다르다. 설계부터 시공까지 전 과정을 직접 관리 감독한다. 흔히 한옥에 쓰는 목재는 ‘나무 백화점’인 제재소에서 공급받는데, 이 부부는 전국의 벌목 현장까지 직접 찾아간다. 그곳에서 나무의 생김새도 보고 굵기도 확인한 후 양평 작업장으 가져온다. 설계한 집에 들어갈 나무를 처음부터 들여다보고 가능한 한 자세하게 아는 것. 그래서 적재적소에 딱 는 나무를 쓰는 것이 부부에겐 중요하다. “제재소에 있는 나무는 누군가 그 가능성과 역할을 결정한 것이잖아요. 물론 전문가의 식견이 반영된 결정이지만, 처음부터 저희 눈과 마음으로 해보고 싶은 거예요.”

그렇게 가격을 치른 나무는 25톤 트럭에 실려 몇 차례에 걸쳐 작업장으로 온다. 날씨에 따라 나무를 못 싣는 날도 있고, 벌목현장에 눈이 많이 내리면 한참을 기다려야 해서 작업장으로 가져오기까지는 시간이 제법 걸린다. 그리고 마침내 우람하고 듬직한 나무가 작업실 마당에 도착하면 부부는 부자가 된 것 같아 기분이 좋아진다. 한옥 공사에는 국산 소나무를 많이 사용하는데 이 나무를 베고, 구매할 수 있는 시기는 따로 정해져 있다. “봄이 되면 나무에 물이 오르잖아요. 그렇게 물이 많이 오른 상태에서는 건조가 잘 안돼요. 베기도 어렵고. 처서가 지나 몸통에 오른 물이 내려가기 시작하면 벌목 허가가 나지요. 옛날에는 강원도 산에서 벤 나무를 엮어 뗏목으로 만든 후 북한강, 남한강을 따라 필요한 곳까지 옮겼잖아요. 나무를 그렇게 물속에 담그면 나무의 수액과 불순물이 빠져나가면서 나뭇결은 단단해지고 무늬도 아름다워지지요. 그 옛날에 어떻게 이런 것을 알았는지 신기해요.”

최대한 시간과 공을 들여 나무를 건조하는 것은 부부가 가장 중시하는 단계다. 제대로 말리지 않으면 살면서 변형이 되기 때문이다. 건조기에 나무를 넣고 고온으로 말리는 경우가 많은데, 부부는 적당한 온도로 가급적 느리게 말리고 시간이 충분하다면 자연 건조도 마다하지 않는다. 지은 지 몇 년이 지나면 나무 미닫이문의 아귀가 맞지 않아 그 틈으로 바람이 숭숭 들어오는 경우가 많은데, 이 역시 나무를 제대로 충분히 말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선 씨가 본인의 인스타그램(@sallimhanok)에 올린 살림한옥의 시간들. 석양이 아름다워 잠시 사진을 찍고 다 같이 대동단결해 김장을 하고 할머니와 함께 옥수수를 쪄 먹는다. 아이들은 마당을 보며 공부하고(그렇게 믿기로 한다) 호박걷이를 한 날은 집 한쪽에 호박이 한가득 쌓인다. 아이들과 같이할 때는 커피 대신 차를 내린다. 오른쪽 조금 멀리 떨어져 바라본 작업장과 맞배지붕이 정갈한 살림한옥의 전경.
20년 가까이 목수로 살아온 남편은 그저 나무가 좋은 사람이다. 내장 목수로 일을 시작했는데, 소가구를 만들 일이 많다 보니 합판을 만질 일이 많았고 좋은 원목을 만지고 싶다는 바람이 컸다. 주말에만 잠시 가족을 보러 오고, 평일이면 몇 달씩 작업 현장에서 숙식을 해결해야 했지만 같이 작업하는 형님들과 즐겁게 지냈다. 일이 힘들어서인지 이 일을 하려는 젊은 사람은 많지 않다. 이야기는 자연스레 그 시절로 옮겨갔다. “아내보다 그분들하고 함께 산 세월이 더 길어요.(웃음) 작업장을 차려놓고 삼시 세끼를 함께 먹으니 정이 많이 들죠. 다들 음식도 잘해요. 고기도 능숙하게 해체하고요. 취사도구도 많이 필요 없어요. 난로하고 들통만 있으면 거기에 돼지머리를 푹 삶아내요. 시골에서 작업을 하다 보면 멧돼지 머리를 들고 현장으로 오는 분도 있어요. 지역마다 사냥 허가권을 갖고 계신 분들이 있는데, 멧돼지 머리는 인기가 없으니까 ‘선물’로 들고 오는 거죠. 언젠가는 큰 머리, 작은 머리 한 가족의 멧돼지가 다 온 적도 있어요.(웃음) 삶아 먹으면 아주 맛있는데 꼭 한약 같아요. 육질도 쫄깃쫄깃하고 향도 좋아서 일반 돼지머리 고기를 먹으면 싱겁게 느껴지더라고요. 그렇게 솥을 걸어놓고 일했는데 지금은 작업환경도 많이 바뀌었지요. 목수들이 이곳에 오면 좋아해요. 세상에서 제일 좋은 작업장 같다고. 나무로 만든 넓은 작업장에 청보리도 보이고 명아주밭도 보이니 좋지요. 꿈이 있다면 작업장이 더 넓어서 원하는 만큼 많은 목재를 더 잘 말리는 거예요.”

부부의 하루는 단순하다. 남편은 아침 일찍 작업장으로 출근하고, 아내는 사무실에서 도면을 펼쳐놓고 최적의 솔루션을 고심한다. 나무를 갖고 오는 동네 어르신의 부탁에도 기꺼이 시간을 할애한다. 도마도 만들어드리고, 소 키우는 이웃집 어르신을 위해서는 대팻밥과 톱밥을 담아드린다. 젊은 부부의 그런 마음 씀씀이가 고마워 어르신들은 푸성귀와 달걀까지 다양한 먹을거리를 아낌없이 나눠준다. 그런 관계가 불편하지 않냐고 물었더니 덕분에 연고도 없는 마을에 쉬 적응할 수 있었고, 받는 것도 많으니 나쁠 것이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나무를 좋아하고 나무를 만지는 직업이라 참 다행인 것 같아요. 이렇게 찾아주는 어르신도 많잖아요.” 한옥 짓는 솜씨와 마음 씀씀이가 점점 알려지면서 부부는 예전보다 바쁜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 요즘에는 서까래 작업이 한창인데 날이 점점 따뜻해져 남편은 종종 장갑을 벗고 작업한다.

글 정성갑(한 점 갤러리 클립 대표) | 사진 박찬우 문의 살림한옥(010-8799-83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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