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宿 풍경에 머물다
에피그램의 감성을 입은 올모스트홈 스테이에서 하동의 풍경을 만끽한다.

일영재, 화람재, 연하재가 차례로 내다보이는 한옥문화관 전경. 저 멀리 지리산 산자락이 아득하게 펼쳐지고, 오른쪽엔 곧게 뻗은 대나무 숲이 너울댄다.
평사리 자연을 품은 한옥 
섬진강은 지리산을 굽어 유유히 흐르고, 평사리 들판은 이불처럼 고르게 펼쳐져 있다. 이 무해한 광경만으로 충분히 마음은 무장해제되건만, 꽃이 피어나는 하동의 봄은 자 못 알 수 없는 희열에 들뜨게 한다. 섬진강 곁을 두르는 벚꽃길을 한참 달리다 ‘최참판댁 한옥문화관’ 안내 표지판을 보고 오르막길로 방향을 틀었다. 박경리 작가의 대하소설 <토지>의 배경이 된 평사리 언덕에 호젓하게 들어선 한옥 마을이 시야에 들어온다. 무려 25년 동안 집필한 끝에 총 스무 권으로 완간한 <토지>가 잉태한 마을. 이곳에 2001년 드라마 <토지> 촬영을 위해 지은 세트장이 남아 있는데, 그 끝자락에 최종 목적지인 에피그램의 올모스트홈 스테이가 자리한다. 중간 언덕에 들어선 신축 한옥 네 채는 구가도시건축 조정구 소장이 설계하고, 문화 기획자 김선경 이사가 공간 기획을 맡아 완성한 한옥문화관이다. 경주 라궁 호텔, 진관사 템플스테이 역사관 등으로 여러 건축상을 받은 바 있는 조정구 소장과 안동 전통 리조트 구름에, 차 문화 연구소 일상다반사를 기획한 김선경 문화 기획자, 이렇게 한옥에 관한 열렬한 연구자 두 사람이 만나 안팎을 닦았으니 범상치 않을 수밖에 없다.

구옥 중 가장 높은 지대에 위치한 운락재의 침실. 

화람재에는 독서하기 좋은 데이베드와 서가를 배치했다. 박경리 작가의 <토지> <김약국의 딸들>을 비롯해 다양한 문학작품을 읽을 수 있다. 

2층 구조로 지은 일영재와 월영재에는 삼면에 낸 창문으로 자연과 맞닿은 대청마루가 있다. 
비움으로 채우다 
조정구 소장은 울창한 대나무 숲과 지리산 산자락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집을 앉혔다. 덕분에 누마루를 둔 별채부터 안채의 시원한 대청마루까지 하동의 수려한 풍광을 대담하게 끌어안았다. 김선경 씨는 하동 자연, 차, 문화의 세 가지 풍경을 네 채의 한옥에 담아내고자 했다. 무언가 담기 위해서는 그릇을 비워야 하는 법. 열린 한옥 설계의 매력을 살리기 위해 최소한의 마감만 했다. 그가 가장 각별하게 여긴 것은 섬진강을 가장 한국적 정서로 꼽은 예술가의 작품을 들인 점이다. 故 김백선 디자이너가 개발한 백선한지로 한옥 내부를 마감했는가 하면, 내촌목공소의 이정섭 목수에게 차탁 제작을 의뢰했다. 서가에는 박경리 작가를 비롯해 하동 출신 문학가의 책을 비치해 하동에 서린 정서를 조용히 들여다볼 수 있다. 툇마루에 앉아 대나무 숲 사이로 지나는 바람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마치 시원한 빗줄기가 감정의 찌꺼기를 말끔히 씻어내는 기분이 든다.

가장 넓은 연하재 침실 안에 깔끔한 흰색 타일로 마감한 욕실이 보인다. 

부엌과 다이닝룸을 갖춘 연하재는 풍부한 햇살을 받아 온기가 가득하다. GHGM이 제작한 식탁과 의자, 조명등 모두 한옥의 밝은 원목과 톤을 맞추어 일체감이 느껴진다.

에피그램의 감성을 더하다 
지난 3월 20일, 에피그램이 한옥문화관 운영을 맡으면서 고창, 청송에 이은 세 번째 하동 올모스트홈 스테이가 탄생했다. 너울거리던 감정의 파도가 이곳에 닿아 잔잔해졌듯, 일상의 쉼을 제안하는 올모스트홈 스테이가 하동에 터를 잡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이곳은 크게 숙박체험동(에피그램 숍&콘시어지), 한옥문화관(신축 한옥 네 채), 한옥체험관(구옥 두 채) 세 영역으로 나뉜다. 

2008년 최참판댁 일원에 개관한 한옥체험관도 이번에 가볍게 새단장했다. 회경재 누마루에 서면 평사리 들판이 한눈에 내다보인다. 

숍으로 운영하는 환영재 내부. 삼화금속의 솥, 우석공예사의 소반 등 에피그램이 큐레이션한 생활 공예품을 선보인다. 

하동의 자연을 배경으로 금세 작은 카페를 차릴 수 있는 피크닉 세트는 농월재에서 대여한다. 
우선 박경리문학관 옆에 자리한 숙박체험동은 에피그램 숍과 콘시어지로 운영하는 환영재와 숙박객의 휴게 공간으로 조성한 농월재로 구성했다. 환영재에는 에피그램 제품과 녹차씨 생기름, 알밤 등 하동의 자연에서 난 먹거리가 전시되어 있고, 판매도 한다. 아궁이에 불 때던 흔적이 고스란히 남은 소박한 초가삼간이라 푸근한 시골 정취가 진하게 배어 있다. 문화 공간 농월재는 다이닝룸에서 조식을 먹거나 차를 마시는 등 여유롭게 풍류를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숙소를 벗어나 섬진강 변, 들녘, 벚나무 아래 피크닉을 하고 싶다면 간이 테이블과 의자, 커피 혹은 차로 구성한 피크닉 세트를 이용해보자. 잠깐의 휴식을 마주한 자연 속에서 잊고 있던 자신을 되돌아보게 될 것이다. 

초가집의 수수한 정취가 느껴지는 환영재. 이곳에서 체크인을 한다. 

객실에 비치된 문방사우 세트를 열어 선비가 된 기분으로 붓글씨를 써보자.
앞서 설명한 한옥문화관 중앙에 자리한 연하재는 대청마루 밖으로 대나무 숲이 펼쳐져 고요한 산수를 오롯이 만끽기에 더없이 흡족하다. 화람재의 서가에는 소설 <토지> 전권을 갖추었고, 동일한 구조의 일영재와 월영재는 복층 한옥으로 2층 침실에서 해가 지고 뜨는 광경을 감상할 수 있다. 또한 공간 곳곳에는 에피그램이 준비한 위트 있는 아이템이 숨어 있다. 종이, 붓, 먹, 벼루를 마련해 붓글씨 로 추억을 남길 수 있는 문방사우 세트가 바로 그것. 현대적 미감을 지닌 한옥문화관과 달리 오랜 구옥이 자리한 한옥체험관은 언덕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운락재, 누마루가 있는 회경재 두 채로 나뉜다. 고풍스러운 양반가의 고택을 체험해보고 싶다면 이곳에서 머무르기를 추천한다. 예약 은 에어비앤비와 스테이폴리오를 통해 할 수 있다.
주소 경남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길 75 문의 055-882-5094

류현경, 이승민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20년 5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