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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일리스트 최지아 계동 작업실 식물과 대화하는 놀이터
호들갑스럽지 않은 잔잔한 생기가 흐르는 계동 골목길. 동네 정취와 꼭 닮은 가라지 최지아 리빙 스타일리스트의 새 작업실을 찾았다.

1층 쇼룸 페이스트는 다양한 클래스를 진행하는 워크숍 공간이자 전시 갤러리 역할을 한다. 밝은 원목 테이블 위로 빛이 떨어지는 모르텐 보스Morten Voss가 디자인한 프리츠 한센의 이온 로켓Aeon Rocket 조명등이 포인트. 왼쪽 통창으로 햇빛이 실내를 환하게 비춘다.

평소 디자인과 인테리어 분야의 책을 즐겨 읽는 최지아 스타일리스트.
“스타일링의 마지막은 꽃, 다시 말해 식물, 자연이에요. 워낙 꽃을 좋아하다 보니 생화뿐 아니라 꽃 패턴이나 꽃을 담는 화기에도 자연스레 관심을 가지게 되었죠.”

‘잡지에 나올 법한’이라는 관용적 수식어를 가능케 하는 근사한 화보는 다름 아닌 스타일리스트의 손끝에서 탄생한다. 막연한 느낌, 뭉뚱그린 주제를 섬세하게 풀어 헤쳐 구체적 이미지로 시각화하는 그의 작업은 창의적 예술인 동시에 고도로 숙련된 기술과도 같다. “무언가를 잘 만드는 일이 곧 자기 자신을 투사하는 일이고, 온전한 정신을 찾는 일이며, 영혼을 따르는 일이다”라는 작가 어설라 K. 르 귄의 말에 빗댄다면, 지난 24년간 무엇이든 아름답게 만드는 가라지 최지아 대표는 작업마다 자신의 정신과 영혼을 투사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 그가 작년 여름 새로운 작업실을 열었다. 이번에도 위치는 계동. 10년째 이 동네에 자리 잡은 이유가 있을까? “낮은 건물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풍경에서 안정감을 느껴요. 골목 구석구석 감성적으로 누릴 수 있는 것이 많거든요. 삼청동, 가회동과는 한 블록 차이인데 유동 인구도 적어서 붐비지 않고요.” 옛 정취를 그대로 품고 있으면서 어니언, 젠틀몬스터 쇼룸 같은 트렌디한 공간도 끊임없이 생긴다. 늘상 새로운 것을 발굴해야 하는 직업상 지루할 틈이 없는 영감을 안겨주는 데다 정겨움까지 품은 계동은 그에게 나무랄 데 없는 적격지였다.

1층에 들어서면 정면으로 베이지와 블랙 컬러의 매치가 돋보이는 주방이 자리하며, 왼쪽으로는 화장실과 소품실, 플라워 작업실로 통하는 문이, 오른쪽으로는 메인 공간인 살롱으로 이어진다. 잎이 크고 시원한 활엽 식물과 아기자기한 꽃이 기분 좋은 활기를 전한다.

흑색과 백색의 대비가 포인트인 주방 소품이 모던하면서도 우아한 동양적 분위기를 뽐낸다.
살아 있는 것이 아름답다
국내 1세대 스타일리스트인 친척 언니의 일을 돕다가 자연스레 리빙업계에 발을 들인 지도 24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공간 스타일링을 기반으로 접목할 수 있는 영역을 하나씩 확장해나 가며 대치동에 편집매장 겸 카페 까사드마사를 오픈하기도 했고, 청담동에 렌털 스튜디오를 운영하기도 했는가 하면, 한때는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변신하기도 했다. 여러 갈래로 자유분방하게 뻗어가다가 점차 가지치기를 하며 고른 줄기는 그가 처음 시작한 리빙 스타일리스트 본연의 일이었다. “클라이언트 개개인을 상대하는 것보다 기업이나 매체와 협업하는 것이 제 성향에 더 잘 맞더라고요. 트렌디한 스타일을 과감하게 시도할 수 있고, 또 빠르게 효과를 내고 끝맺을 수 있죠. 가장 큰 장점은 똑같은 일을 반복할 필요가 없다는 거예요.” 항상 새로운 이미지를 갈구하는 그가 스타일링에 변함없이 사용하는 것이 있다. 바로 플라워다. “스타일링의 마지막은 꽃, 다시 말해 식물, 자연이에요.” 일찍이 꽃의 중요성을 깨닫고 영국 콘스탄트 스프라이에서 전문적으로 플라워 스타일링을 배우고 돌아왔다. 들녘에 자연스럽게 피어난 꽃을 형상화해 공간에 매치하는 기술은 그만의 전매특허. 한떨기 작은 꽃이라 할지라도 살아 있는 생명이 공간에 더하는 생기는 그 무엇과도 비할 수 없는 힘을 지닌다고 그는 믿는다. “워낙 꽃을 좋아하다 보니 생화뿐 아니라 꽃 패턴이나 꽃을 담는 화기에도 자연스레 관심을 가지게 되었죠.” 윌리엄 모리스의 보태니컬 패턴 벽지를 장식한 1층 쇼룸 ‘페이스트’는 물론, 2층 ‘가라지 스튜디오’의 사무 공간이 화사한 식물 화분으로 가득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리라.

살롱은 포근한 패브릭 소파를 중심으로 윌리엄 모리스 패턴 커튼과 플라워 패턴 쿠션, 텍타의 D42 체어, 루이스 폴센의 PH80 플로어 조명등이 한데 어우러져 이국적 정취를 흠뻑 느낄 수 있다. 오각 모양으로 조형미를 더한 온화한 색감의 러그는 페이스트의 자체 제작 상품.

화려한 컬러와 패턴이 시선을 끄는 윌리엄 모리스 벽지로 마감한 화장실은 보는 것만으로 기분을 상쾌하게 전환해준다. 흰색 튤립과 짙은 노란색 수건을 놓아 화사한 봄의 정취가 물씬 풍긴다.
스타일리스트에게 어떤 특정한 스타일이 있다는 것을 위험하다고 여긴 그에게 이 공간을 어떻게 꾸밀지는 당연히 고민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으레 누군가의 작업실이란 곧 그의 스타일과 취향을 반영하는 거울로 여기기 때문. 그래서인지 한눈에 클래식, 오리엔탈, 아르데코, 모던 등 어떤 하나의 스타일이라 감지할 수 없는 오묘한 분위기가 감돈다. 한국적 미감을 지닌 순백색 주전자와 찻잔을 스테인리스 트레이 위에 올려놓는가하면, 낭만적 아르데코 스타일의 배경에 모던한 검은색 조명등이 무게를 잡고 있는 식이다. 서로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낯선 스타일이 섞여 조화를 이루는 절묘한 믹스 매치의 진가를 엿볼 수 있다.

페이스트에서는 작은 돌기를 하나씩 이어 붙여 시각적·촉각적 감각을 자극하는 한수영 작가, 블록을 쌓아 올린 듯 형태적 재미를 준 유희송 작가 등 개성 있는 아티스트의 작품을 자유롭게 감상하고 구매할 수 있다.

1층 주방 맞은편의 풍경. 통창 너머로 단정한 기와지붕이 보인다. 시야가 가려졌는데도 낭만적 운치를 느낄 수 있는 건 이곳이 계동길에 자리한 덕분일 것.

노란색 꽃송이가 거울에 비쳐 더욱 서정적인 모습.

작업실 곳곳에 아트 북이 쌓여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책과 잡지, 영화 등 다양한 시각적 매체는 최지아 대표가 에너지를 충전하는 수단이자 영감을 얻는 원천이다.

텅 빈 창고에 원하는 것을 마음대로 채우겠다는 의미로 이름 지은 ‘가라지’ 스튜디오.

최지아 대표는 라이프스타일 에디터 출신의 김윤영 아트 디렉터와 스타일리스트 하해지 씨와 함께 공간 스타일링부터 브랜딩, 플랜트 컨설팅, 파티 플래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작업을 펼치고 있다.
집요함은 나의 힘
1층 페이스트에서는 최지아 대표가 직접 스타일링한 플라워 사진을 프린트로 판매하는 것은 물론, 액자 프레임까지 제작 판매한다. “시장조사를 하다가 마음에 드는 것을 찾기가 어려워 제가 직접 원하는 걸 만들기로 했죠. 시장에는 돈이 많이 들어온다고 해서 해바라기 그림이 대부분이었거든요.” 찾는 것이 세상에 없으니 급기야 스스로 만들어버린 일례만 들어도 그의 집요함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해볼 수 있다. 무언가 하나 던져지면 머릿속의 그림을 구현하기 위해 끝까지 찾아내고야 마는 성향. 이를 그는 직업적 특성이라고 말한다. “원래 스타일리스트는 서로 혀를 내두를 정도로 끈질겨요.” 천생 스타일리스트인 그를 24년 동안 쉼 없이 달리게 만든 동력은 단순하다. 스타일링하는 그 순간의 희열이 무엇보다 크기 때문이다. “늘 새롭고 재미있어요. 10년, 20년 전에 물어봤어도 똑같이 대답했을 거예요.” 일의 특성이 빠르고 격정적인 만큼 감정적·육체적 소모는 어떻게 충전할까? “몸과 마음이 지쳤을 때는 어디론가 떠나기도 힘들더라고요. 저는 책이나 영화를 주로 보면서 위안을 얻어요.” 최근 그의 마음에 평안을 안겨준 영화로 <빨강 머리 앤>을 꼽았다. 초록색 지붕 집의 소박하고 정감 있는 인테리어,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꽃과 나무와 대화하는 앤의 모습은 어릴 적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가슴이 벅차오를 만큼 커다란 감동을 준다. 영화 속 장면이 남긴 영감의 흔적은 작업실 곳곳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꽃과 식물, 하다못해 플라워 패턴 쿠션 하나만으로 공간이 살아날 수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기 때문. 그가 제안하는 스타일링은 다분히 현실적이다. “비싸면 예쁜 거야 당연하겠죠. 하지만 누구나 예산이 충분하지 않잖아요. 저는 그 부족한 부분을 스타일링으로 커버해주고 싶어요.” 그는 이제껏 그래 왔듯이 앞으로도 좋은 사람들과 좋아하는 일을 함께 해나가기를 바란다. “정말로 행복한 나날이란 멋지고 놀라운 일이 일어나는 날이 아니라, 소박하고 자잘한 기쁨이 조용히 이어지는 날들인 것 같다”고 속삭이는 빨강 머리 앤의 말처럼 최지아 대표는 알 수 없는 새로운 내일을 즐겁게, 기꺼이 기다린다.

글 이승민 기자 | 사진 박찬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20년 4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