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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호 정원사 매일 자연과 식물에게 질문합니다
충남 태안반도 ‘막골’, 서해 바다와 맞닿은 곳에 자리한 천리포수목원은 우리나라 최초의 사립 수목원이다. 최창호 정원사는 이곳에서 부원장 겸 식물부 총괄을 맡고 있다. 18만 평에 가까운 수목원에서 그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식물은 없다고 할 수 있다.

가을에 가장 아름다운 억새원에 선 최창호 정원사.

유럽너도밤나무과의 다윅 골드, 다윅 퍼플이 보이는 수목원 풍경. 지형을 그대로 살려 마치 숲처럼 조성했다.
식물이 행복한 정원이 아름답다
우리나라로 귀화한 미국인 故 민병갈 설립자가 1962년 사재로 매입한 땅에 1970년부터 조성한 이곳은 우리나라 수목원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우리나라 자생식물이 약 5천 종인데 천리포수목원은 1만 6천5백 분류군이 넘는 다양한 식물을 보유하고 있다. 그중 목련 8백40분류군, 무궁화 3백11분류군, 동백 9백45분류군, 단풍나무 2백51분류군, 호랑가시나무 5백29분류군을 보유하고 있으며, 특히 목련·호랑가시나무·무궁화속屬은 세계 최고로 꼽힌다. 그 외에도 여러 분류군의 멸종 위기 식물을 보전하면서 자생지에서 멸종 위기에 처한 식물을 번식시켜 자생지로 되돌려보내는 일도 하고 있다.

1993년 천리포수목원에 입사해 27년째 일하고 있는 최창호 정원사는 이곳의 역사를 지켜본 산증인이다. “1970년대에 이곳을 찍은 사진을 보면 거의 허허벌판이에요. 그 생땅에 씨앗이나 어린 묘목부터 심어 이렇게 울창한 숲을 만들었습니다. 우리는 다 큰 식물은 심지 않아요. 유아기, 청소년기를 보지 못한 식물을 기르는 건 의미가 없죠. 우리 식물원에 씨앗이나 묘목이 들어오면 일련번호를 부여해 죽은 이후에도 관리합니다. 원산지, 도입처와 도입 연 월, 식재 장소 등의 정보를 식물 관리 프로그램에 입력해 관리해요. 1970년대부터 이 일을 해왔으니 천리포수목원이 여러 면에서 선구자 역할을 했죠.”

천리포수목원은 맨 처음 생긴 밀러가든을 중심으로 낭새섬, 목련원, 에코힐링센터 등 일곱 개 구역으로 구성되며 이 중에서 밀러가든과 에코힐링센터의 일부만 일반인에게 개방한다. 밀러가든은 ‘동백나무원’ ‘수국원’ ‘모란원’ ‘겨울정원’ ‘호랑가시나무원’ 등 주제별로 조성했는데, 지형을 그대로 살린 산책길을 따라가다 보면 숲에 들어왔다는 착각을 하게 된다. “어떤 분은 그냥 방치해놓은 줄 아세요. 방치한 듯한 자연스러움을 추구하는 것이 천리포수목원의 콘셉트입니다. 사실 이렇게 심고 가꾸기가 더 힘들어요. 어떤 식물의 꽃이 피고 지면 바로 다른 꽃이 필 수 있도록 구상하고 색감까지 디자인해서 심는 거죠. 특히 구근은 하나씩 심으면 희한하게 줄이 맞아요. 자연스럽게 표현하기 위해 다양한 구근을 섞어서 땅에 확 뿌린 다음 떨어진 자리에 심기도 합니다. 식재할 때 또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이 빛입니다. 식물에 빛이 스미는 모습이 아침, 점심, 저녁마다 달라요. 그 빛까지 고려해서 어떤 각도에서 봐도 아름답도록 식물을 심어요. 그러려면 무엇보다 식물의 특성과 토양, 햇빛에 대해 잘 알아야 해요. 훌륭한 정원사는 매일 자연과 식물에게 질문을 합니다.”

2000년 영국의 힐리어 가든(The Sir Harold Hillier Garden & Arboretum)에서 1년간 머무른 경험이 지금의 정원 스타일에 많은 영감을 주었다. “영국에 있을 때 주말만 되면 정원을 둘러보곤 했어요. 영국 정원이 식물을 자연스럽게 식재하는 ‘자연 풍경식’이거든요. 여러 식물이 어우러져 자라는 이런 ‘와일드 가든’이 요즘 정원 트렌드이기도 해요.” 그가 생각하는 아름다운 정원도 같은 맥락이다. “정원은 항상 진행형이죠. 식물 모습이 달라지듯 정원도 늘 변화할 준비를 해야 합니다. 한 시기에만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겨울에도 누가 보더라도 정말 아름답다고 느낄 수 있게 설계하고 심고 가꾸는 것이 정원사가 할 일입니다. 무엇보다 식물이 행복해야 정원의 완성도가 높아집니다. 그런 정원이 사람이 보기에도 아름답죠.”


천리포수목원 안에 있는 큰연못정원에는 연잎이 가득하다.

수목원 입구에 조성한 건생초지원.

故 민병갈 원장이 1978년 완도 식물 답사 여행에서 발견한 호랑가시나무. 뾰족한 잎이 특징으로, 겨울이 되면 열매가 빨갛게 변해 크리스마스 장식에 많이 사용한다.
“정원은 항상 진행형이죠. 식물 모습이 달라지듯 정원도 늘 변화할 준비를 해야 합니다. 언제 누가 보더라도 아름답다고 느낄 수 있게 설계하고 심고 가꾸는 것이 정원사가 할 일입니다.” _최창호

일반인도 한국 정원 식물에 대해 폭넓게 알 수 있는 도감. 총 4백90속 2천8백73종에 대해 실려 있다.

정원사에게 물었습니다

그 많은 식물 중 정원에 심을 식물을 어떻게 고르면 될까요?
어떤 콘셉트로 정원을 꾸밀지 정하면 그에 따라 식물이 달라집니다. 그러려면 물론 식물 공부를 많이 해야 하죠. 좋아하는 식물 한 가지를 고르는 것도 방법입니다. 예를 들어 작약을 좋아하면 작약 위주로 심는 거죠. 그런데 작약은 한 시즌에만 꽃을 피우니까 작약을 돋보이게 하고 뒷받침하는 조연들을 선택해야 합니다. 결론은 자연과 식물의 생리에 대해 잘 알아야 한다는 거죠. 어떤 식물들이 어느 조건에서 서로 도우며 살아가는지 자연에서 배우는 것이 최선입니다.

직접 가본 정원 중 소개하고 싶은 곳은?
식물의 아름다움을 조화롭게 디스플레이한 곳으로는 아침고요수목원이 떠오릅니다. 학술적으로 식물을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천리포수목원, 한택식물원, 국립수목원 등을 추천합니다. 외국 정원의 경우에는 캐나다의 부차드 가든이 대표적인 디스플레이 정원입니다. 그리고 식물 공부를 제대로 하려면 영국의 큐 가든, 위슬리 가든, 새빌 가든과 미국의 롱우드 가든, 뉴욕 식물원, 모리스 수목원, 시카고의 보태닉 가든, 미주리 식물원, 모튼 식물원 등 정말 많습니다. 역사적으로 유서 깊은 정원을 둘러보고 싶으면 프랑스, 영국, 폴란드의 오래된 성이나 성당에 있는 정원을 추천합니다.

정원 가꾸기에 관심 많은 일반인이 참고하면 좋은 책은?
국내 서적 중 도감으로는 최근에 나온 <한국정원식물 A-Z>를 비롯해 <한국의 나무> <한국식물도감> <한국의 양치식물도감>이 있고, 해외 서적으로는 등을 추천


독자 체험

천리포수목원 최창호 정원사와 함께 숲을 산책하며 감상해보세요. 식물 관리법을 배우고, 계절 식물을 황토분에 심어 가져갈 수 있습니다.

일시 11월 5일(화) 오후 1~4시
장소 충남 태안군 천리포수목원
인원 20명
참가비 5만 원(정기 구독자 4만 원)
신청 방법 <행복> 홈페이지 ‘클래스’ 코너 또는 전화(02-2262-7222)로 신청하세요.

글 박진영 | 사진 이창화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9년 10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