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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허명욱의 풍경이 익는 작업실
허명욱 작가가 경기도 용인에 새 작업실을 지었다. 숲과 면한 오각형 땅에 나란히 자리한 쌍둥이 건물은 작품과 공간, 안과 밖의 경계 없이 자연과 관계를 맺는다. 생명이 움트는 봄, 한없이 푸른 여름을 지나 다채로운 색色의 기운이 가을을 맞는다.

옻칠 작업 외에도 사진 촬영과 전시 등 다채로운 작업이 펼쳐지는 만큼 공간 활용에 제약이 없도록 탁 트인 구조를 구현했다.

오각형 땅에 쌍둥이 건물 두 채(A동과 B동)가 나란히 자리한 스튜디오는 길과 면한 건축물 입면을 차단하고, 숲(중종산)과 면한 안쪽을 폴딩 도어로 완전히 오픈해 마치 자연이 건물로 들어온 듯한 공간감을 느낄 수 있다.
허명욱은 경계를 넘나드는 작가다. 사진과 페인팅, 공예와 파인 아트, 전통과 현대 중 어느 한쪽에도 안주하지 않고 늘 새로운 장르를 찾아낸다. 오랫동안 수집한 빈티지 오브제를 촬영해 물감을 입힌 후 다시 촬영하는 레이어 작업, 금속과 나무를 가공해 옻칠로 마감하는 생활 공예와 아트퍼니처, 색을 쌓는 옻칠 페인팅까지 작업의 스펙트럼만큼이나 다양한 작업 공간이 필요하다. “기존 용인 작업실 외에도 안국동의 사진 촬영 스튜디오, 분당의 옻칠 스튜디오 등 작업 공간이 나뉘어 있었어요. 흩어져 있는 동선을 효율적으로 운용하면서, 동시에 작업 환경을 개선할 필요가 있었죠. 용인 작업실이 숲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그곳에서 작업하면 좋은 기운을 느껴요. 옻칠 스튜디오 직원들도 좋은 기를 받으며 작업할 수 있도록 자연과 벗한 새 작업실을 짓기로 계획했어요.” 2017년 겨울, 용인 작업실에서 멀지 않은 전원주택 부지에서 숲을 면한 땅을 찾은 그는 건축가 이성란(이건축연구소)에게 설계를 의뢰했다. 첫 미팅에서 길쭉한 쌍둥이 건물 두 동을 나란히 배치하는 아이디어가 나왔고, 두 번째 미팅 때 앞 건물과 뒤 건물을 어긋나게 배치해 건물 어디에서나 자연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설계안을 구체화했다.

건물 입면은 막힌 형태다. 앞 건물( A동)의 육중한 철문을 열고 들어서면 옻칠 작업장이 나오고, 폭 1.6m 남짓한 사잇길을 지나 뒤 건물(B동)의 사진 스튜디오가 자리한다. 4.9m 어긋나게 배치한 A동과 B동은 기둥 열을 맞추고 모든 문을 폴딩 도어로 선택해 앞 건물에서도 뒤 건물 너머의 숲을 바라볼 수 있다. 옻칠 작업장의 방짜 작업대에서 직접적으로 자연을 접한다면, 옻칠 작업대는 뒤 건물 사진 스튜디오를 통해 자연을 바라보는 구조다. 2층도 마찬가지다. A동 2층은 허명욱 작가의 페인팅 작업 공간으로, B동 2층 라운지(전시장) 너머의 울창한 숲을 마주하며 작업할 수 있다. B동 2층 라운지의 바닥면 일부를 커팅한 아이디어도 재밌다. 메자닌 구조를 통해 탁 트인 개방감을 느끼는 것은 물론, 앞과 뒤, 1층과 2층 사이의 수많은 공간 레이어를 경험할 수 있다. “효율성만 생각한다면 라운지 같은 공간은 필요 없겠죠. 매일 아침 출근하면 옻칠 작업팀과 금속 작업팀이 모두 이 곳에 모여 커피를 마시며 조회를 해요. 아직 이사한 지 얼마 안 돼 공간과 사람도 합을 맞추고 있지만, 자연을 흡수하면서 하는 작업의 결과물은 분명 다를 거라 믿어요.”

뒤 건물은 사진 촬영 스튜디오와 라운지로 구성했다. 2층 라운지 바닥면을 커팅해 1층과 2층을 관통하는 다채로운 레이어가 만들어진다. 커팅한 공간으로 사다리차를 이용해 앞 건물과 뒤 건물의 브리지로 활용한다.

허명욱 작가와 설계를 맡은 이건축연구소(02-566-5620, www.yiarch.com) 이성란 소장. 이성란 소장은 지난해 초 용인 작업실 설계를 시작하면서 허명욱 작가의 옻칠 작업을 만날 수 있는 한남작업실 리모델링도 동시에 진행했다.
자연스러움의 기준
자연과 통通하는 공간은 작가의 작업과도 연결된다. 작가는 옻칠을 매개로 공예와 회화, 설치, 사진까지 다양한 장르의 작업을 펼친다. 장르가 달라도 관통하는 주제는 하나, 바로 ‘시간의 중첩’이다. “제 작업의 주제성에 가장 가까운 도료가 옻칠이에요. 옻칠은 칠을 할수록 색의 기운이 좋아져요. 한번 칠하면 이틀 정도 말리고 다시 칠하고 또 말리는 과정을 수없이 반복하는데, 재료 자체가 시간성을 지니고 있기에 숙성된 발효 음식처럼 때마다 다른 맛을 내죠. 어제의 칠, 오늘의 칠, 내일의 칠… 수십 겹의 시간이 켜켜이 쌓인 색色은 환경의 변화나 쓰임에 따라 더욱 자연스럽게(자연에 가깝게) 피어나고요.”

색을 쌓기 전 바탕을 만드는 작업은 더욱 지난하다. 나무가 옻을 흡수하면서 틀어지지 않도록 삼베를 붙이고(베싸기), 토분과 생칠을 섞어 삼베 사이사이 틈새를 메우고(눈 메우기), 사포질과 흑칠을 반복해 완벽히 코팅한 뒤에야 색을 쌓는 작업을 할 수 있다. 옻칠 페인팅의 경우 이러한 건칠 방식으로 캔버스를 만드는 데만 두 달 이상의 시간이 소요되는데, 그 과정이 마치 건축의 과정처럼 느껴진다. “콘크리트 골조와 인테리어 마감 사이에 단열재와 방습재, 퍼티를 고정하는 철망 등등 보이지 않는 수많은 과정이 존재하는 것처럼 옻칠 역시 색을 올리기 전 바탕을 만드는 작업이 중요해요. 요즘에는 삼베와 금속 소재를 켜켜이 레이어한 뒤 다시 층을 뜯어내는 작업을 하고 있어요. 오래된 벽지를 벗겨냈을 때 흔적처럼 삼베에 스민 금속 소재의 자국 등 등 과거의 시간을 들여다보는 묘미가 있지요.” 허명욱 작가의 옻칠 작업의 방식이 전통 옻칠 기법을 그대로 따르는 것은 아니다. 베싸기와 눈메우기 등 도료 특성상 필요한 과정은 수행하지만 순서나 횟수를 변형하거나 마감의 정도를 달리하는 등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한다(얼굴이 비칠 정도로 광을 내는 대신 오히려 스크래치를 내서 광택을 없애는 식이다).

그리고 이러한 작업의 감도는 공간에도 고스란히 투영된다. 그의 옻칠 작업을 두고 “전통 옻칠이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처럼, 공간의 콘크리트 마감을 보고 ‘하자’ 혹은 ‘짓다 만 집’이라고 표현하는 이도 있다. 노출 콘크리트 벽면은 거푸집을 떼고 구멍 난 곳이나 요철을 자연스럽게 채우는 견출 작업을 수반하는데, 허명욱 작가는 견출작업을 최소한으로 요구했다. 콘크리트 표면의 자연스러운 흔적이야말로 현장의 우연성으로 채워진, 의도하지 않은 모든 과정의 산물이 아닌가! 단답형으로 어느 지점이면 완성이라 할 수 없는 그의 옻칠 작업처럼 오직 작가의 감이 기준이 된 공간은 덜 다듬은 건축이야말로 더 풍성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명제를 자연스럽게 이끌어낸다.

다이닝 테이블과 주방 아일랜드. 사이드 보드 등 허명욱 작가의 옻칠 가구와 하나둘 모은 빈티지 컬렉션을 만날 수 있는 라운지 공간. 마치 작업의 연장처럼 빈티지 가구와 조명등도 옻칠로 마감해 작품처럼 연출했다.

A동 2층 허명욱 작가의 옻칠 페인팅 작업실. 사계절 다른 풍경을 품은 자연을 벗삼아 ‘시간의 중첩’을 주제로 매일 다른 색을 쌓고 있다.
덜 만들어진 공간이 풍요롭다
한 치의 흐트러짐 없는 밀도 높은 평면은 기능적이라는 장점이 있지만 변화의 여지가 없다. 반면 열린 공간은 시간의 축적을 통해 무엇이든 채워질 가능성이 있다. 용인 작업실은 세부 구성 없이 열린 공간으로 설계했다. 폭 7m, 길이 16(B동17)m, 높이 11.55m(박공 천장의 가장 높은 부분)의 박스형 건물은 추후에 갤러리 등 용도를 변경해 사용할 수 있도록 두 건물의 평면을 동일하게 대칭으로 구성했다. 또 계단과 화장실을 한쪽으로 배치하면서 비어 있는 공간을 최대한 확보하고, 천장과 벽·바닥을 동일한 재료로 마감해 통일감을 줬다.

“클라이언트는 보통 원하는 것을 세세하게 요구하는데, 허명욱 작가는 반대였어요. 공간의 스케일이 정해지면 동선이나 용도, 마감 등 세부 계획은 얼마든지 조율할 수 있다고요. 덕분에 설계할 때 공간과 작품, 자연과 사람, 안과 밖 등 관계와 소통의 의미에 대해 좀 더 고민할 수 있었어요.” 이성란 소장은 두 동의 건물과 사잇길을 통해 만들어지는 수많은 레이어가 다양한 공간을 경험하게 하고, 이는 르 코르뷔지에가 주창한 ‘건축적 산책(promenade)’의 묘미로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A동 옻칠 스튜디오의 방짜 작업대, 오븐, 칠 작업대, 칠 건조실 등의 동선은 주어진 공간과 작업 효율에 맞춰 자연스럽게 구성했는데 건물 내·외부가 연속적으로 조율된 공간에서 작업자는 산책하듯 이동하며 다른 시선과 풍경을 경험한다. 시간성을 지니는 재료, 물 흐르듯 자유로운 동선, 안과 밖을 구분하지 않는 유연함으로 작품과 공간, 자연과 관계 맺고픈 창작자를 위한 수십 갈래의 산책로가 된 용인 작업실. “저를 비롯한 작업자에게 작업장은 깨어 있는 대부분의 시간을 머무는 공간이죠. 건물 앞쪽을 차단하고 산과 면한 뒤쪽을 완전히 개방하니 건물이 자연의 일부가 된 게 아니라 마치 자연이 건물로 들어온 것처럼 느껴져요. 그냥 눈으로 보기만 하는 게 아니에요. ‘자연’이 ‘자연’스럽게 흡수되면서 ‘자연’에 가까운 작업이 탄생하지요.”

비례와 색감 등 허명욱 작가 특유의 감도로 많은 인기를 얻고 있는 옻칠 테이블웨어&소품 작업. <행복> 독자를 위해 옻칠 작업 과정을 경험할 수 있는 클래스도 진행할 예정이다.

옻칠을 전공한 추광근 실장과 이근영 씨, 커피 수업을 병행 중인 이지용 씨 등 옻칠 스튜디오 스태프들이 자연을 벗한 작업실에서 칠 작업에 열중하고 있다. 오전 9시 30분부터 저녁 8시 30분까지 점심 먹는 시간을 제외하면 작업실을 벗어나는 법이 거의 없다.

건축 개요

위치 용인시 처인구 모현면 능원리
지역 지구 도시지역, 자연녹지지역, 자연취락지구
용도 제2종 근린생활시설
대지 면적 549㎡(166.1평)
건축 면적 238.32㎡(72.2평)
건폐율 43.48%(자연취락지구 법정 60% 이하)
연면적 455.15㎡(137.7평)
용적률 82.91%(자연녹지지역 법정 100% 이하)
규모 지상 2층
구조 철근콘크리트구조 마감 붉은벽돌(외벽), 노출 콘크리트(벽), 콘크리트 버니싱(바닥)


오픈 스튜디오
허명욱 스튜디오에서 특별한 시간을 준비했습니다. 작업실을 둘러보고 작가와 차 한잔 마시며 이야기를 나눕니다.

일시 11월 6일(수) 오후 2시~3시 30분
장소 경기도 용인
참가비 2만 원(정기 구독자 1만 원)
인원 12명
신청 방법 <행복> 홈페이지 ‘이벤트’ 코너에 신청해 주세요.

글 이지현 | 사진 박찬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9년 10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