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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테리어 디자이너 강정선 취향의 증명
사람들은 여행을 흔히 장소로 인식하지만 정작 그들이 경험하는 것은 그곳에 깃든 문화다. 공간도 마찬가지다. 누군가의 집이 탐구 대상이 되는 것은 그 사람을 알아가는 단서가 있기 때문이다. 무수한 조각으로 결국 하나의 그림을 완성하는 퍼즐처럼 고유한 취향을 한데 모아 자신을 꼭 닮은 공간을 꾸리며 사는 디자이너 강정선의 오픈 하우스.

일본에서 공수한 장과 서용선 작가의 드로잉, 여행에서 구입한 빈티지 소품 등 공간 곳곳에서 그의 취향과 감도를 느낄 수 있다.


인테리어 스타일리스트로 활동하다 공간 연출, 브랜딩, 전시 큐레이팅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며 라이프스타일의 심미안을 쌓는 엘쎄드지 강정선 대표(@_jungsun). 쏟아지는 정보에서 옥석을 가려내는 큐레이션의 역할, 행복이 가득한 집을 만드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새롭지만 전혀 새롭지 않다? SNS에 ‘도배’되는 인테리어 관련 피드를 보면 어김없이 드는 생각이다. 피드의 인기도를 좌우하는 것은 ‘인싸템’. 새로 오픈한 공간, 신상품 이슈는 또 어떠한가? 출석 도장 찍듯 앞다투어 올리는 피드를 보면 마치 ‘누가 누가 잘하나’를 뽐내는 각축장을 보는 듯하다. 온라인 속에서 모든 정보가 등가가 되며 콘텐츠 역시 빠르게 휘발되는 지금, SNS는 궁금증을 즉각적으로 해소하기엔 더없이 좋은 툴이다. 하지만 공간이라는 콘텐츠가 과연 정보 전달만으로 해소될 문제인가? 타고난 ‘감각’을 발견해 다듬는 ‘심미안’과 이것이 지속적으로 숙성됐을 때 발산하는 ‘고유성’이 합을 이룰 때 완성되는 것이 바로 ‘취향’ 있는 공간이다. 하지만 이런 내공이 꼭 좋아요나 팔로어 숫자와 꼭 비례하지 않는 다는 것이 아이러니. 영리하게 시대의 흐름에 맞게 자신만의 플랫폼을 구축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넘쳐나는 정보 속에서 무엇을 취하고 콘텐츠에 어떤 가치를 담을 것인지 자정 능력이 더 중요한 지금, <행복이 가득한 집>이 ‘진짜’에 주목해야 할 이유다.


슬기로운 탐미 생활
그런 면에서 오랜 시간 보아온 스타일리스트 강정선은 고유한 속도와 기준으로 끊임없이 스스로를 담금질하는 탐미주의자다. 인문학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서 비주얼 머천다이징 공부를 한 그는 대학에서 강의를 하다 운명처럼 우연히 스타일리스트라는 직업을 갖게 됐다. 앞선 트렌드를 잡지 화보, 공간 디자인으로 현실화하는 스타일링 작업은 보이는 이미지처럼 화려하거나 꽃길만 걷는 일은 아니다. 이른바 아름다운 비주얼을 만드는 스타일링을 위해서는 내용을 먼저 이해하는 역량이 중요하다. “첫 촬영이 생생하게 기억나요. 스타일리스트 경력이 전혀 없던 제게 12페이지 분량의 스타일 트렌드 화보가 맡겨졌어요. 스타일은 이미 지난 시대에 규정된 양식이잖아요. 현실에 맞게 재해석하려면 배경을 이해하는 것이 우선이죠. 글로벌 트렌드 정보 회사에 자료를 요청하고, 네 가지 스타일을 재해석한 칼럼이었는데, 운 좋게도 그 중 한 컷이 표지로 선정됐어요. 그 뒤로 패션지 화보 세트 제작, 백화점 기념 디스플레이, 호텔 웨딩 스타일링 매뉴얼까지… 스타일링이라는 큰 틀 아래 조금씩 다른 해석과 방식을 요하는 일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죠.” 30대 초반, 완전히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에 분명 쉬운 나이가 아니다. 하지만 “같은 일을 반복하는 것을 가장 참을 수 없다”는 호기심은 그의 업을 확장시켰고 스타일리스트에서 VMD, 아트 디렉터, 인테리어 디자이너 등 경계 없는 활동을 이어갔다(제주 포도호텔 별관 로비와 VVIP룸 데커레이션, 대림미술관 <스와로브스키>전과 핀 율 탄생 1백주년 기념 전시 스타일링, 아크로 서울 포레스트·구호 플래그십 스토어 가구 컨설팅을 맡았으며, 2017 서울리빙디자인페어 <디자이너스 초이스> 전시에 참여했다). 한창 활동하던 2013년에는 문득 인테리어 디자인을 제대로 배우고 싶어 런던으로 유학을 떠나기도 했다. “그 시기를 기점으로 인테리어 디자이너로서 일의 영역이 더 넓어졌어요. 스타일링이 순간의 아름다움을 위한 것이라면, 인테리어는 보편적이면서도 지속적인 것이어야 하죠. 오래 머물 수 있는 편안한 공간이면서도 지루하지 않은, 금방 싫증 나지 않고 볼수록 감흥을 돋워주는 ‘이중성’. 2017년 서울리빙디자인페어 <디자이너스 초이스> 전시에 참여하며 취향 담은 공간에서 라이프스타일 자체를 놀이하듯 즐기자는 콘셉트의 ‘에클레틱 플레이그라운드’를 선보였는데, 남산에 오픈한 사무실 겸 작업실이 저에겐 바로 그런 개념의 공간이죠.”

똑같지 않고 새로운 것을 찾아내는 큐레이션, 다양한 스타일의 조합을 늘 염두에 두는 디자이너에게 책상은 또 하나의 쇼케이스와 같다. 책상은 DK3, 불을 켰을 때 진가를 발휘하는 라이팅은 플로스 제품이다.

강정선·서동현 부부의 주거 공간. 테카의 원목 바닥재, 제르바소니의 고스트 리넨 커버링 소파와 빈티지 나무 드로어, 피에르 잔느레의 케인 소재 라운지체어, 모로칸 수직 카펫과 타데의 주석 스툴 등 내추럴한 소재와 디자인 피스 가구가 조화를 이뤄 특유의 감도를 만들어낸다.

영감의 창고
디자이너의 작업실은 그 자체가 하나의 포트폴리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강정선 씨의 남산 작업실이자 엘쎄드지L’- C de J(L’appartement -curiosités de Jungsun, 호기심 있는 공간) 사무실은 일상에서 찾아보기 힘든 조각품이나 예술품을 한방에 모아둔 분더카머Wunderkammer 스타일(경이로운 방)을 연상케 한다. 폭이 좁고 일자로 긴 공간은 복도를 사이에 두고 사무를 보는 공간과 그가 좋아하는 가구와 소품의 감도를 보여주는 라운지로 나뉜다. 라운지에 들어서면 완성도 높은 가구와 디자인 아이템에 호기심이 샘솟는다. DK3의 커다란 테이블을 가로지르는 플로스의 구조적 조명등과 철망이라는 재료로 새로운 형태를 탐구한 구라마타 시로의 의자, 트롱프뢰유 기법의 메종 마르지엘라 문 프린트 등 예사로운 것이 하나도 없다. 우리가 알고 있는 북유럽, 프렌치, 코리안 스타일의 교과서적 해석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 조합이다. 철제 프레임의 크리스탈리아 장식장에는 무수한 디자인 서적과 작품집, 유리, 도자, 매드엣렌의 토템 디퓨저 등 그의 취향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오브제가 자리한다. 프랑스에서 공수한 빈티지 테이블 위에는 최근에 진행하는 프로젝트와 관련한 로컬 오브제들이 놓여 있다. 복도를 사이에 두고 이웃하는 사무 공간은 영화 제작을 하는 남편 서동현 프로듀서의 ‘간헐적’ 작업공간이다. 사실 이 건물에는 남편뿐 아니라 서로 좋은 영향을 주고받는 이웃이 많다. 영화 <스캔들> <여배우들> <죽여주는 여자> 등의 연출을 맡은 이재용 감독의 작업실과 베니스 황금사자상을 받은 세계적 건축가 조민석의 건축사무소 매스스터디스가 자리한다.

“건축, 인테리어, 영화 제작 등 비슷한 듯 다른 분야의 일을 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다 보니 따로 또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도 있어요. <곡성> <죽여주는 여자> 이후 새 영화 제작을 앞둔 남편도 본격적으로 팀을 꾸리기 전까지는 이곳에서 사람들과 섞여 아이디어를 나누고요. 창의적 일을 도모하는 공간인 만큼 너무 깔끔하거나 미니멀한 대신 영감을 주는 요소들을 자유롭게 두는 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어요.”

진행 중인 프로젝트를 위해 찾아낸 제주 옹기와 바구니.

인테리어 시공할 때 꼭 제안하는 제품이 바로 오픈 타입의 모듈 장식장이다. 바닥과 천장을 고정하는 디자인은 벽에서 띄워 공간을 구분하는 파티션 역할을 하기도 한다. 장은 크리스탈리아 제품.

공간과 삶을 공유하는 남편 서동현 PD. 스쿠버 다이빙을 좋아해 홍해에 살며 게스트 하우스를 운영했을 정도로 새로운 장소와 경험, 도전을 즐기는 모험가다.

네덜란드에서 공수한 스툴과 좋아하는 매드엣렌 토템 디퓨저.

자신이 좋아하는 가구를 오브제처럼 연출한 작업실의 라운지. 구라마타 시로의 철망 의자가 콘크리트 벽과 절묘하게 어우러진다.
오늘도 내일도 완벽한 날들
여전히 그의 영감의 원천은 여행이다. 디자이너의 직업병일 수도 아름다움에 대한 강박일 수도 있지만, 여행에서는 숙소를 고르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최근에 다녀온 리스본 여행에서도 숙소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산타클라라 1728 호텔에 묵었는데 감동 그 자체였어요. 세월의 관록이 느껴지는 건축물에 라운지 가구부터 조명등, 문손잡이, 욕조까지 호텔을 위해 제작한 기물들이 예사 감각이 아니었죠. 꼭대기 층에서 아이 셋과 살고있는 부부가 주인이었는데, 남편이 같이 호텔 사업 해보지 않겠냐고 농담할 정도였어요.” 디자이너 강정선이 생각하는 집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편안함이다. 오랫동안 틀어박혀 있어도 불편할 것 같지않고, 또 언제든지 정갈하게 정리 정돈되어 들어서는 순간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집. 집에서의 즐거움을 찾지 못해 밖으로 나가는 이들이 행복이 가득한 집을 맞이하려면 먼저 공간에 안락함이 깃들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실제로 강정선·서동현 부부의 아파트는 5년 전 고쳤다고는 믿기 힘들 만큼 정갈하고 담백하면서도 세련된 아름다움이 느껴졌다. 그는 거실과 주방이 트인 LDK 구조의 아파트에 벽체를 더하고 위치를 바꿔 전형적 아파트에서 탈피한 색다른 레이아웃을 만들었다. 현관과 주방 사이에 벽체를 추가해 복도 라인을 만들고, 주방 안쪽으로 가로지르는 부분 벽체를 세우니 자그마한 다이닝 존이 생긴 것은 물론 거실에서 주방 조리 공간이 완벽하게 가려진다. 드레스룸으로 사용하는 작은 방 벽 역시 안쪽으로 들여 다용도실을 넓히고, 그 공간에 냉장고를 배치해 폭이 좁은 주방 조리 공간이 불편하지 않다. 거실에는 피에르 잔느레의 찬디가르 빈티지 체어를 중심으로 제르 바소니의 화이트 리넨 소파와 김수강 작가의 사진 작품이 마주하며, 전통 반닫이와 구비 체어, 임스 스툴 등이 자유롭게 조화를 이룬다. 지금 한창 유행 중인 가구를 5년 전부터 사용했으니 늘 트렌드를 진단하던 직업적 레이더가 어쩔 수 없이(!) 발동된 것일 터.

가구 배치를 바꿔 전통 지장과 김수강 작가의 작품을 한 앵글에 담았다.

놀의 테이블과 토넷 케인 체어에 구비 펜던트 조명등으로 포인트를 준 다이닝 공간. 김수강 작가의 사진이 걸려 있는 오른쪽 벽은 주방과 다이닝 룸을 분리한다.

패브릭 연출로 분위기를 바꾸는 침실.

창고 문을 가리기 위해 마틴 마르지엘라 문 패턴 시트지를 붙였다.

취향이든 감각이든 매일의 삶 속에서 자연스레 습득하는 것. 자유롭게 놓인 책과 소품 또한 기분 좋은 영감을 주는 요소다.
“인테리어 시공을 할 때도 가구 셀렉션에 공을 들이는 편이에요. 시간이 지나도 멋스러운, 싫증 나지 않고 오래도록 감흥을 주는 아름다운 제품을 찾기 위해 국내에 들어오지 않은 브랜드를 연결할 때가 많은데, 마치 제 가구를 고르는 것처럼 신나서 진행하죠. 프랑스 크리스토프 델코트Christophe Delcourt, 크리스티앙 리에그르Christian Liaigre 가구는 주문 후 6개월씩 기다려야 받을 수 있는데, 그렇게 자분자분 채워지는 공간은 뿌듯함이 더욱 커요. 믿고 기다려주시는 클라이언트의 마음이 고마운 것은 물론이고요.” 어떤 것이 아름다운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사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아름다움을 파악하고 경험하면, 무용한 것이 유용한 것으로 바뀌는 선순환을 체험하며 자신도 모르는 사이 심미안이 쌓인다. “취향만큼 중요한 것이 바로 취미예요. 액티비티를 즐기는 남편의 권유로 캠핑과 스쿠버다이빙을 시작했는데, 자연이라는 생경한 경험에서 느끼는 행복감이 상당해요. 캄캄한 바다에서 유영하는 만타(대왕쥐가오리)를 발견하고, 따뜻한 모닥불을 마주하며 등줄기로는 차가운 기운을 느끼는 기분은 그 순간 그곳에 있지 않으면 알 수 없으니 더 많이 경험하려고 노력하죠.” 때론 화장기 없는 민낯이 더 세련될 때가 있다. 힘이 들어가지 않은 손짓도 그렇다. 무덤덤한 노출 콘크리트 공간에 가구와 디자인 제품이 가득하지만 오히려 여백이 느껴지는 탐미주의자의 작업실. 수많은 요소가 펼쳐져 있는데도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세련미가 흐르는 것은 아마도 지금의 여유에서 기인한 것일 터. 마음이 향하는 곳으로 여행을 떠나고, 몸이 원하는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고, 손길이 향하는 물건을 곁에 두고…. 인생은 경험의 축적인 만큼, 크고 작은 경험을 쌓으며 스스로 만족하는 진짜 행복을 채워가기를.


오픈 하우스
강정선 대표의 작업 공간에 독자를 초대합니다. 디자이너의 취향과 감도를 느낄 수 있는 가구 셀렉션과 공간 연출 아이디어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일시 4월 30일(화) 2시
장소 남산
참가비 1만 원
인원 8명
신청 방법 <행복> 홈페이지 '이벤트' 코너에 참가 이유를 적어 신청하세요.

글 이지현 기자 | 사진 박찬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9년 4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