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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인테리어_ 에세이 블랙으로 인테리어하라 완벽하게!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블랙 마니아’가 되어버린 나의 타이틀이 조금은 부끄럽다. 검은색에 대한 나의 사랑이 얼마나 크고 깊은지에 관해 에세이까지 쓰게 되었으니 말이다. 글재주가 없는데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 이유 역시 주제가 ‘블랙’이기 때문이다. 고백하자면 나는 아주 어릴 때부터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한 가지 색(일명 깔맞춤)으로 착장을 맞춰놓고 자야 직성이 풀리는 이상한 아이였다. 월요일은 빨간 니트에 빨간 바지에 빨간 양말을, 화요일은 파란 티셔츠와 청바지에 파란 양말을 신는 식으로 매일의 컬러를 정했다. 그 버릇은 2000년대까지 이어져 위아래 보색 대비의 옷을 입고 같은 색끼리 물건을 정리하는 대단한 컬러 마니아였다. 그리고 그런 내가 만든 브랜드는 수많은 컬러와 패브릭을 다루는 일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다방면으로 시도해본 컬러 실험과 내가 매일 보고 결정해야 하는 모든 색이 지겹고 싫증이 났다. 가지고 있던 컬러풀한 옷과 물건, 귀엽다며 사 모으던 잡다한 것을 모조리 버렸다. 그러곤 검은 옷을 입고 검은 물건만 사고 검은색 침대에서 잠을 자는 검은 인간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마치 말레비치Malevich의 ‘검은 사각형(Black Square, 1915)’을 처음 봤을 때처럼 난생처음으로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절대적으로 완벽하다는 것을 느꼈다.


“나와 내 아이들 세대는 레몬색이나 감색 속옷을 입는 일, 주황색이나 진초록색 수건으로 몸을 닦는 일, 핏빛, 보랏빛 심지어 검은색 침대 시트에서 잠을 자는 일 등 우리 조부모나 증조부모들에게는 절대적 금기 사항이었던 일들을 자연스레하게 되었다. 그런데 잠깐! 검은색 침대 시트라니! 검은색 침대 시트에서 잠을 자는 남자나 여자가 정말로 있을까? 잘 모르겠다. 하지만 20여 년 전부터 그런 침대 시트들이 상점에 진열되어 있거나 카탈로그에 소개된 것을 보았다. 그런 침대시트가 정말로 팔릴까? 그렇다고 믿기는 어렵다. 검은색 침대 시트에서 잠을 잔다는 것은 밤에 악마가 찾아오는 것을 허락하는 행위가 아닐까 하고 생각해본다.” _ 미셸 파스투로의 <우리 기억 속의 색> 중

우리는 언제부터 악과 불운의 상징으로만 여기던 검은색을 사랑하게 되었을까? 블랙으로 옷을 차려입을 줄은 알면서 왜 집 안으로 블랙을 들이는 일은 쉽지 않을까? 우리는 더 이상 검은 이불을 덮는다고 악몽을 꿀까 두려워하지 않는다. 되레 검은 물건은 어떤 곳에 두어도 눈에 거슬리지 않고, 어떤 것과 매치해야 할지 고민할 필요도 없으며, 행여 고가의 가구나 오브제가 아니더라도 검은색이 지닌 힘으로 부족한 형태나 퀄리티를 보기 좋게 감출 수 있다. 고로, 세상의 모든 검은 물건은 완벽하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르코르뷔지에의 검은 가죽 소파, 대대로 물려 쓸 만한 내구성을 지닌 유에스엠USM의 크롬 모듈, 완벽한 형태를 갖춘 무어만Moormann의 가구, 매끈한 곡선을 자랑하는 프리츠 한센Fritz Hansen의 세븐 체어, 가장 따스한 검은색을 사용하는 아르텍Artek의 E60 체어는 완벽 중에서도 완벽에 가깝다. 여기에 검게 옻칠한 작은 소반이나 식기류, 따스한 소재의 모노톤 패브릭, 그레이 컬러와의 톤앤톤 조합, 오래된 빈티지 가구들이 품은 세월의 흔적까지 곳곳에 더하면 공간을 꾸미는 재미는 배가될 것이다. 게다가 특별히 빨강, 초록 같은 포인트 컬러를 정해보는 특권도 마음껏 누릴 수 있다. 종종 지인을 집에 초대하면 대체로 검은 가구로 꾸며 극도로 정돈된 우리 집 모습에 놀라곤 한다. 나는 검은 물건을 좋아함과 동시에 정리와 청소도 좋아하기 때문에 늘 빈틈없이 정돈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하루 종일 쉴 새 없이 움직인다. 그렇다고 검은 가구와 검은 패브릭을 관리하는 일이 어려운가? 그것은 아니다. 흰 침구가 부담스럽지만 써보면 의외로 쉽게 때가 타지 않듯이 검은 침구도 소재만 잘 선택하면 생각보다 먼지가 많이 붙지 않는다. 어떤 면에서는 청결함을 유지하기에 탁월하고, 어떤 면에서는 오염을 감추기에 더없이 좋다. 검은 가구에 스크래치가 생기면 표시가 많이 나긴 하지만 나는 그 흔적까지도 사랑한다. 이사하다 찍힌 모서리, 아이가 음식물을 흘려 남은 자국, 입김을 불어서 닦지 않으면 자국이 남는 지문들…. 절대적인 완벽함 위에 켜켜이 쌓이는 인간미와 공기 중 하염없이 떨어지는 먼지까지, 블랙은 모든 것을 포용하니!

글을 쓴 김진진은 광고 디자인과 시각디자인을 전공했다. 디자이너 이홍안과 의기투합해 2008년 패브릭 브랜드 키티버니포니 론칭, 제조사 진진컴퍼니의 섬세한 자수와 직조 기술을 접목한 패브릭으로 침구, 커튼, 쿠션 등 실용적 제품 라인을 선보인다. 기업 B2B 및 공간 스타일링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다양한 분야의 디자이너, 예술가와 협업해 전시도 펼친다.



김진진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9년 1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