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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해안동 206.4㎡ 주택 파노라마 풍광 담은 심플 하우스
소란스러운 서울을 벗어나 제주로 떠나온 의사 문준 씨가 해안동에 206.4㎡ 주택을 지었다. 제주의 거친 바람을 닮은 그의 집은 다채로운 섬의 풍경을 넉넉하게 끌어 안는다.

커다란 박스가 바람에 돌아간 듯한 형태의 외관. 집 밖의 모든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붙박이장과 방 문은 모두 자작나무 소재 합판으로 제작했다. 건축주가 서울에서 즐겨 묵는 콘래드 호텔을 참고한 것.
제주국제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짭짤한 내음을 머금은 바닷바람이 거세다. 태풍을 겪어낸 지 겨우 나흘이 지났는데, 저녁에 또 비 소식이 있단다. 수많은 관광객을 불러 모으지만, 휴양지라고 하기에 제주의 날씨는 다소 거친 면이 있다. 공항에서 그리 멀지 않은 해안동 어귀, 그런 제주의 바람을 유연하게 품은 집이 있다. 멀리서 봐도 눈에 띄는 역동적 외관. 3층으로 쌓아 올린 네모반듯한 집이 거친 제주의 바람에 빙글빙글 돌아가는 듯한 형상이다. 희귀한 열대식물을 키우는 작은 정원ㆍ감귤밭과 이웃하고, 남쪽으로는 한라산이, 동쪽으로는 제주 바다의 수평선이 펼쳐지는 아름다운 경관은 심플 하우스의 백미다. 이 경관을 집 안에서 3백60도로 즐길 수 있도록 설계했는데, 그에 담긴 발상이 재미있다. 3층으로 포갠 집이 바람을 따라 회전하다가 적절한 방향에 위치한 순간, 콘크리트 끈으로 묶어 고정했다는 것. “제주의 자연환경을 안팎으로 표현하자는 생각에서 출발했어요. 일종의 설화 같은 거지요. 아무리 제주 바람이 거칠어도 저렇게 큰 콘크리트 구조물이 돌아가겠어요? 제주도이기에 가능한 시각적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집을 지은 건축가는 유쾌한 상상을 현실화하는 문훈발전소의 문훈 소장이다. 제주의 풍경을 남들과 다른 모습으로 표현한 콘크리트 집은 건축가를 향한 의뢰인의 전적인 믿음에서 실현되었다. “형님의 건축 스타일을 존중해요. 좋아하지 않았다면 다른 건축가에게 의뢰하지 않았을까요?” 문 소장보다 다섯 살 어린 남동생 문준 씨는 13년 전, 재활 요양 병원 운영을 제안받고 제주에 내려와 고양이 두 마리와 함께 살고 있는 의사다. 문준 씨는 설계에 관한 건 모두 형에게 맡겼다. 그가 요청한 유일한 조건은 단순하고 기능적인 내부였다. 일주일에 한 번은 서울로 올라가 친구를 만나고, 1년에 두세 차례 훌쩍 여행을 떠나는 유목민의 성향을 지닌 그다운 요구 사항이었다. “이름과는 완전히 다른 집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복잡해 보이는 외관과 달리 내부는 철저하게 단순합니다. 쉽게 말하자면 네모반듯한 박스 세 개를 그저 엇갈리게 겹쳐서 지은 집일 뿐이지요. 역설적의미를 담아 심플 하우스라고 이름 지었어요.” 나의 마음속 궁금증을 들여다본 듯, 문 소장은 이름의 속 뜻을 먼저 설명했다.

건축주의 취향을 엿볼 수 있는 책장이 계단을 따라 펼쳐진다. 2층과 3층 사이 베란다에는 스크린을 설치한 야외 상영관을 마련했다.

한식 조리 자격증을 딸 정도로 요리를 좋아하는 건축주의 주방. 고양이 두부는 애교가 많다.

변기 뒤편은 감싸 안는 듯 둥글게 마감한 것이 독특하다. 3층 욕실 맞은편에는 로션을 바를 수 있는 붉은색 콘솔이 있다.

현관문을 열면 문 안쪽에 여행지에서 사 온 자석 배지가 붙어 있다.

돌아가신 할머니가 쓰시던 고가구와 이케아 선반을 나란히 둔 거실 풍경에서 따뜻함이 느껴진다.

집의 중심인 계단 바깥쪽은 둥글게 마감해 동선이 효율적이다.
제주의 자연을 초대하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가장 먼저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책이 빼곡하게 꽂힌 계단. 1층부터 3층까지 이어진 계단은 각 층마다 두 개의 공간을 나누는 중심축 역할을 한다. 1층은 손님이 머무는 작은 방과 운동기구를 모아둔 홈 짐이 있다. 각각의 방은 현관으로 이어지는 문을 따로 설치했다. 화장실은 공유하면서도 독립 공간으로 쓰기 위해서다. 2층은 거실과 주방이, 3층은 개인 공간으로 침실과 드레스룸, 욕실이 있다. 집을 한 바퀴 둘러보고 나면 회전하는 집이 탄생한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무작위로 건물을 돌려놓은 것 같지만, 사실은 사용자의 라이프스타일을 고려한 방향이지요. 각각의 방마다 주변의 다른 풍경을 볼 수 있어야하고, 햇빛을 듬뿍 받는 곳과 덜 받아도 되는 곳을 고민한 결과입니다.” 예컨대 침실은 남동향으로 한라산이 보이면서도 햇볕이 강하지 않은 쪽으로 배치했고, 요리를 좋아하는 집주인을 위해 주방은 빛이 잘 드는 정남향으로 배치한 식이다.

 

가장 독특한 포인트는 집 안에 제주의 자연과 호흡할 수 있는 야외 공간이 많다는 점. 사각형 구조물을 서로 다른 방향으로 돌리다 보니 베란다로 사용 가능한 외부 면적이 자연스럽게 생겼다. 정확히 세어보면 베란다가 네 개, 발코니가 여섯 개, 옥상이 한 개다(베란다는 아래층 면적이 위층보다 넓어서 생기는 공간, 발코니는 건축물 외벽에 돌출된 형태로 설치하는 바닥 구조물이다). 각각의 베란다에 임시 역할을 부여했다. 침실과 이어진 베란다는 야외 독서를 위한 공간, 계단 뒤편에는 스크린을 설치해 야외 상영관으로 꾸몄다. 날씨가 좋은 계절이면 주방 베란다로 나가 혼밥을 즐기기도 한다. 침실이 있는 3층 복도로 난 베란다에서는 석양을 보며 노천욕을 할 수 있다. “앞집은 예쁜 식물을 가꿔서 파는 정원인데, 밥을 먹으면서 아름다운 자연을 볼 수 있으니 감사하지요. 우연히 만나면 관람 요금을 내라고 농담을 하곤 하세요.” 시내처럼 소란스러움과는 거리가 먼, 감귤밭을 사이에 두고 집이 띄엄띄엄 자리한 동네이기에 가능한 이야기다. 소유하지 않아도 누릴 수 있는 멋진 자연은 서울에서 접하기 어려운 귀한 경험이다.

침실에는 문훈 소장이 그린 그림이 걸려 있다.

2층 복도에는 선반장을 만들어 수집한 고양이 피겨를 전시했다. 고양이 두 마리를 모시는 집사다운 공간이다.

주방 아일랜드 테이블에서 바라본 주방 풍경. 실내는 좁아 보이지만 혼자 살기에 충분하고, 베란다 덕분에 날씨가 좋은 날이면 집을 넓게 쓸 수 있어 좋다.

옥상으로 올라가는 작은 베란다에는 작은 노천탕을 마련했다. 남서향에 위치해 석양이 지는 경치를 즐길 수 있다.
잘못된? 잘된 만남!
형과 동생이 건축가와 건축주로 만나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과연 힘든 일은 없었을까? “아마 하고 싶어도 못한 말이 있을 거예요.” 두 형제는 입 모아 말했다. “사실 처음 동생이 이 프로젝트를 의뢰했을 때, 주변에서 많이 말렸지요.” 문 소장이 입을 열었다. 가까운 사람의 집을 짓고 나면 서로 사이가 틀어진다는 이야기는 건축업계에서 흔히 들을 수 있다. 사실 처음 둘이서 이야기한 집은 지붕이 낮은 제주의 전통 가옥에서 영감을 받은 단층집이었다. “이야기를 들을 때와 모형을 눈으로 확인했을 때 느낌이 다르더라고요. 모든 일이 그렇지만, 건축은 소통이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체감했습니다.” 두 사람의 의견이 조율된 결과 제주의 거친 바람을 그 자체로 표현한 외관과 제주의 풍경을 들인 집이 완성됐다. 이 집은 거칠고 예민해 보이지만, 집 문을 활짝 열고 시종일관 명쾌한 답변을 내놓던 건축주와 건축가 형제의 모습과 겹쳐 보인다. “건축물은 저보다 오래가잖아요. 제가 죽고 누군가 이 건축물을 부수지 않는다면, 저는 그저 이 집에 머무르다 가는 여러 사람 중 하나에 지나지 않겠지요. 그 자체로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합니다. 경험이 부족해 주저한 첫 설계도 다시 도전해보고 싶어졌습니다.” 문준 씨가 두 번째 집에 대한 구상을 얘기하는 사이 제주 하늘에서는 빗방울이 떨어졌다.


건축가 문훈은 인하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매사추세츠 공과대학 대학원에서 건축학 석사 학위를 받은 후 2001년 문훈발전소(www.moonhoon.com)를 열었다. 에스마할, 롤리팝, 윈드하우스 등 대표 건축물이 있고, 이 외에도 드로잉, 설치, 단편영화 제작 등 건축과 예술의 경계를 넘나들며 다채로운 활동을 펼치고 있다. 2005년 서울 홍대 앞 상상사진관으로 건축가협회상을 수상했고, 2014년 베니스 건축비엔날레, 2015년 시카고 건축비엔날레 초대 작가로 선정되었다. 사진 제공 강영수

이세진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8년 11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