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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스십 프로젝트 기후변화를 이기는 노아의 방주
한 괴짜 건축가의 엉뚱한 발상이 반세기가 지난 지금, 지속 가능하고 실용적인 건축으로 거듭났다. 폐타이어와 알루미늄 캔, 유리병으로 만든 가장 급진적 재생 건축, ‘어스십Earthship 프로젝트’.

미국 뉴멕시코주 타오스 사막지대에 자리한 어스십 커뮤니티. 색색의 벽이 동화 속 마을을 연상시킨다. 폐타이어와 유리병, 알루미늄 캔 등 재생 소재와 진흙으로 지은 어스십 1백20채에 설립자 마이클 레이놀즈를 포함한 주민 2백여 명이 살고 있다.

당장이라도 영화 <반지의 제왕>에 등장하는 난쟁이 호빗Hobbit족이 유쾌하게 웃으며 문을 열고 나올 것같다. 각도를 달리해서 보면 사막에 불시착한 우주선 같기도, 지구 종말을 다룬 영화에 나오는 건물 같기도하다. 벽돌 대신 타이어에 흙을 채워 외벽을 쌓고, 집 안의 벽은 재활용 알루미늄 캔과 유리병에 진흙을 발라 만든다. 유리병에 비친 햇살이 교회의 스테인드글라스처럼 벽에 색색의 무늬를 새긴다. 전체적으로 말발굽모양인 건물은 볕이 드는 남쪽에 창문을 내고 태양광 집열판을 설치했으며, 북쪽으로 땅에 파묻힌 것처럼 경사를 이룬다. 화석연료 대신 태양열과 지열로 난방을 해결하기 위함이다.

타오스Taos 어스십의 실내 온실. 건물 남쪽에 경사진 통유리와 온실을 두어 태양의 빛과 열을 최대한 실내로 들이고, 식량을 자급자족할 수 있도록 했다.

색색의 유리병으로 만든 벽에 각종 해양 생물 무늬를 그려 넣은 벨레시토스Vellecitos 어스십의 벽.

독특한 형태를 지닌 피닉스Phoenix 어스십 거실의 벽난로.

피닉스 어스십 실내 정원. 정글을 콘셉트로 꾸몄다.

웨이비Waybee 어스십 외관. 어느 기후에나 지을 수 있도록 설계한 글로벌 어스십의 표준 모델이다.
거친 기후를 기회로 삼다
이 독특한 건축물을 ‘어스십’이라 한다. 노아의 방주를 연상시키는 이름. 괴짜 건축가이자 환경 운동가인 마이클 레이놀즈Michael Reynolds가 1971년 시작한 친환경 건축 프로젝트다.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재료와 재활용품, 심지어 쓰레기를 활용해 집을 짓고, 그 안에서 인간에게 필요한 기본 물품인 물과 전기, 식량을 모두 자급자족한다는 급진적 발상이 지난 47년간 진화를 거듭해 전 세계로 뻗어나갔다. 처음으로 이 아이디어를 현실화한 미국 뉴멕시코의 사막 도시 타오스Taos에는 어스십 1백20채에 설립자 마이클 레이놀즈를 포함한 2백 명의 주민이 생활하는 커뮤니티가 조성되었다. 원한다면 그곳에서 하룻밤을 묵거나 어스십의 철학과 짓는 법을 배우는 6주 과정 아카데미에 등록할 수도 있다. 기존 건축을 모두 ‘엉터리(bullshit)’라고 일축하는 마이클 레이놀즈는 건축업자이던 아버지를 도와 어려서부터 직접 사는 집을 지었다. 대학에서 건축을 공부한 후 사막에서 열리는 모터사이클 경주에 참여하기 위해 타오스를 찾은 그는 레이스 도중 부상을 입고 그곳에 정착했다. 타오스 사막의 기후는 극단적이었다. 뜨거운 햇볕과 세차게 부는 모래바람으로 연중 일교차가 20℃가 넘었고, 비는 거의 내리지 않았다. 낙천주의자를 자임하는 레이놀즈에게 사막의 거친 기후는 또 다른 기회였다. 풍부한 태양과 풍력 에너지로 전기를 만들고, 눈과 비를 정화·저장해 식수와 생활용수로 활용하는 순환식 배수 시스템을 고안했다. 일교차를 극복하는 건물을 짓기 위해 지표면에서 1.2m를 파 들어갔고, 진흙과 폐타이어, 알루미늄 캔, 유리병은 훌륭한 건축 재료가 되었다. 재활용이라는 개념조차 없던 시절이었다. 너무나도 급진적인 탓에 한때 마이클 레이놀즈의 건축가 면허가 취소되기도 했지만, 그는 자신과 생각을 같이하는 사람을 꾸준히 늘려갔다.

어스십 커뮤니티의 마을 회관 역할을 하는 이브Eve 어스십 실내. 이곳에서 어스십 프로젝트의 철학과 집 짓는 법을 배우는 아카데미가 6주 과정으로 열린다.

벨레시토스 어스십의 거실과 주방. 어스십의 실내장식은 타오스 사막에 살던 푸에블로인디언의 양식에서 영향을 받았다.

벽돌 대신 흙을 채운 타이어로 건물 외벽을 설치하는 모습.

어스십 프로젝트를 창안한 건축가 마이클 레이놀즈.
모든 것은 자원이다
마이클 레이놀즈는 어스십 프로젝트의 원칙을 여섯 가지로 정했다. 1 유지비가 들지 않을 것. 2 태양광과 풍력으로 모든 전기를 충당할 것. 3 눈과 비로 생활용수를 충당할 것. 4 생활하수를 건강한 방식으로 처리할 것. 5 지열과 태양열을 이용해 연중 실내 온도를 적절히 유지할 것. 6 식량을 생산할 것 등이다. 어스십 안에서 모든 것은 순환한다. 햇볕과 바람으로 전기를 생산하고, 온실이 있는 남쪽 통유리창으로 들어온 온기는 진흙 벽을 따라 실내를 데운다. 영하의 겨울 추위에도 어스십 실내는 평균 22℃를 유지한다. 눈과 비는 경사진 지붕을 따라 저장고에 담기고, 정수·여과해 식수와 생활용수로 쓰거나 태양열로 데워 온수로 활용한다. 한 번 사용한 물은 실내 정원에서 자라는 식물에게 주거나 수로를 흐르게 하고, 남은 물로 화장실 변기에 사용한 후, 하수는 집 밖 정원과 연결되어 나무에 비료로 준다. 한 번 내린 빗물을 총 네 번 활용하는 셈. 실내 정원엔 각종 식물과 함께 채소와 과일나무가 자라고, 닭을 치거나 연못에 물고기를 기르는 사람들도 있다. 물고기 배설물도 비료로 활용한다. 어스십 안에서 쓸모없는 것은 하나도 없다. 마이클 레이놀즈와 어스십 프로젝트 팀은 2017년 네팔의 지진 피해 지역을 찾아가 그곳에서 수집한 재료와 폐기물을 활용해 작은 학교를 지었다. 이를 위해 지진에 견딜 수 있는 구조를 연구·개발했고, 올해 11월엔 지진 피해가 잦은 일본에서 어스십 프로젝트를 교육하는 프로그램을 개최할 계획이다. 허리케인 피해를 입은 미국 남부 플로리다 지역과 푸에르토리코엔 강풍에 견딜 수 있는 구조의 어스십을 짓기도 했다. 환경과 쓰레기 문제가 심각해지고, 기후변화가 심해지는 오늘날, 마이클 레이놀즈의 어스십 프로젝트는 스스로를 경신하며 날이 갈수록 그 의미를 더하고 있다.

글 정규영 기자 | 사진 제공 어스십 바이오텍처(earthshipglobal.com)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8년 10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