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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렴 가옥 담담한 먹빛이 번져가는 화가의 집
작은 돌멩이에 매일같이 물을 주어 이끼가 자라게 한 사람이 있었다. 조각보만 한 작은 안마당에도 송림과 풍림을 나누어 심고, 사랑방을 겸한 화실에 분재와 수석과 글씨를 들여놓고, 근대라는 화려한 시간에 휩쓸리지 않은 채 고요하게 천천히 스미는 수묵의 번짐처럼 살아간 화가 배렴. 돌에 이끼를 키우고 한 평 화실에 우주를 들인 그의 작은 한옥에는 여전히 조용하고 낮게 문기文氣가 흐르고 있었다.

내셔널트러스트 기행 4
(재)내셔널트러스트 문화유산기금은 시민과 함께 우리 문화 유산과 전통 마을을 지키고 가꾸는 일에 앞장서는 재단입니다. 역사와 문화 인물의 숨결이 살아 숨 쉬는 공간을 <행복>이 먼저 찾아가 가만히 지켜보고, 귀 기울여보았습니다. 

조선 선비들의 붓끝에 담긴 마음과 태도가 그대로 녹아 있는 배렴의 집에는 아직도 수묵 산수화의 고요하면서도 정갈한 기운이 흐르고 있다.

방 안에는 난초와 분재를 들이고 마당에는 목련나무, 감나무 그리고 작은 초목류를 가득 심었다던 그의 아늑한 집.

담백한 먹빛 같은 그림처럼 배렴가옥에는 아직도 묵향 같은 나직한 평화가 깃들어 있다.

주름진 산은 원근이 분명치 않고 먹빛은 아주 천천히 번져가는, 도무지 화사할 일이라곤 없는 수묵 산수화를 보고 있자면 눈이 금세 심심해진다. 풍경보다 마음을 그렸다는 편이 훨씬 이해하기 쉬운 수묵화는 그래서 한 번의 눈길로는 알 수가 없다. 엷은 묵빛이 종이에 천천히 번지듯 그렇게 욕심 없는 마음으로 오래오래 그림 앞에 서 있어야 그 농담이 신기하게도 눈과 마음에 번져온다. 주말이면 여행객들과 어깨를 부딪치며 걷게 되는 계동길 허리춤에 작은 한옥이 한 채 자리하고 있다. 한국화에 대한 전문 지식이 없다면 그 이름조차 낯선 수묵 산수화가 배렴의 집이다. 1912년 경북 금릉에서 태어난 배렴은 어려서부터 할아버지에게 한학을 배우고, 당시 시골 풍속에 따라 열다섯세에 결혼까지 하게 된다. 어려서부터 ‘글씨’에 대한 애착이 강하던 그가 그림을 배우러 경성까지 온 것도 바로 한학을 배우며 익힌 서예 때문이었다. 미술사적으로 계보를 짚어갈 때도 근대를 여는 화가로 꼽히는 필력을 지닌 그는 열일곱에 서예와 사군자를 공부하기위해 서울에 살던 외종조를 의지해 홀로 상경했고, 청전 이상범 선생의 화실에서 공부하게 된다. 화실에서 그림을 배운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는 자신만의 화풍을 찾아가면서 화가로서 자리를 확실히 잡아갔다. 그가 한창 화가로 활동하던 시기의 서울은 근대의 한복판이어서 선비들이 그리던 문인화나 산수화가 서양의 붓질에 이리저리 다른 색과 모양으로 휩쓸리고 있을 때였다. 당시 함께 활동한 화우들의 그림과 비교하면 배렴의 그림은 확실히 심심하다. 그림에 대한 출발이 한학과 서예에 있었기 때문일까. 서울에 올라와 그림을 배우고자 이름 있는 동양화 선생이나 선배를 찾아서 예술의 길을 닦고 찾던 그였지만, 그의 그림은 왠지 조선의 선비가 그린 듯 그렇게 담담하고 담백했다. 배렴에 대한 인물평은 항상 일관적이었는데, 시골 선비 같은 풍모와 늘 다정하고 부드러운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얌전하고 아담한 생김새에 말소리도 항상 나직나직한 데다 누구에게나 친절해서 화우들끼리 길을 걸으면 아는 이를 몇 사람씩 만나 한참 얘기를 나누는 바람에 가는 길이 항상 늦어지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글씨에 대한 마음을 키워 그림을 그려가듯 그는 생명 있는 것에 대한 애정을 키워 집에 담아냈는데, 식물을 아끼고 사람은 더 아껴서 그의 작은 한옥에는 나무와 꽃 그리고 사람들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림에 대한 출발이 한학과 서예에 있었기 때문일까. 서울에 올라와 그림을 배우고자 이름 있는 동양화 선생이나 선배를 찾아간 그였지만 그의 그림은 왠지 조선의 선비가 그린 듯 그렇게 담담하고 담백했다.

글과 그림과 식물을 사랑한 배렴의 방. 당시에는 관재 이도영의 그림, 성당 김돈희의 글씨를 걸고 그가 좋아하는 차를 준비해 벗들을 불러 늘 다정한 시간을 보냈다.
1940년대 지은 근대 한옥인 이 집은 배렴이 살던 처음의 모습과는 많이 달라졌지만, 문인화의 전통을 단박에 버리지 않고 현대의 선비 같은 화가가 살던 조용하면서도 예술적 일렁임이 흐르는 집의 기운은 여전하다. 대문을 들어서면 튼 ㅁ자형 한옥이 한눈에 모습을 드러낸다. 그가 살던 당시에는 지금의 대문 자리에 사잇담이 있고 그 밖으로 바깥채와 바깥 마당이 있었다. 경성의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났을 때라 도시의 한옥들은 옛 한옥처럼 너른 터를 갖추기도 힘들고, 기능에 따라 공간을 명확하게 구분하는 전통 한옥의 구조를 따를 수도 없었을 것이다. 하여 나름대로 바깥 길과 집을 구분하는 작은 건축 요소가 필요했을 테고, 그것이 사잇담이었을 것이다. 통하면서도 막혀 있는 공간. 아무튼 지금은 없어진 옛 공간을 상상하는 것도 이런 옛 가옥을 보는 숨은 재미가 아닌가 싶다. 주인이 바뀌면서 이렇게 저렇게 바뀌기는 했지만, 그가 좁은 집에도 송림과 풍림을 나누어 가꾸었다던 안마당의 따듯한 사각 공간은 이 집에 들어섰을 때 제일 먼저 만나는 곳이다. 지금은 목련나무 한 그루 단정하게 서 있는 공간이지만, 고택의 깊고 넓은 마당처럼 집으로 들어서는 사람을 따듯하게 맞아준다. 오른쪽으로 자연스럽게 몸을 돌리면 배렴의 방이 보인다. 분재와 수석과 고완품과 글씨를 늘 곁에 두고 아꼈다는 그의 생활이 묻어나는 방이다. 원래 배렴의 방은 지금 방의 건너편에 있었고, 최순우 선생의 알전구가 걸린 사랑방 같은 모습이었다고 후손들은 말하지만, 지금은 그때 그대로의 모습을 찾기는 힘들다. 하지만 배렴의 생활을 지금의 집에 겹쳐 보면 단정하고 밝은 이 ㅁ자 한옥이 조금 더 입체적으로 보인다. 기둥마다 걸려 있던 그가 아끼던 글씨들의 주련과 편액들, 작은 공간에서도 옹기종기 용케도 심고 가꾸던 식물들, 생명을 다루듯 물 주고 만져주던 돌들, 그리고 사람과 차茶를 좋아해 항상 분주하던 그의 사랑방과 화실을 지금의 집에 조금씩 겹쳐서 보면 배렴의 다정한 성격처럼 옛집이 더욱 친근하게 느껴진다. 특히 그의 글씨에 대한 사랑은 유난해서 추사의 글씨부터 중국의 고체古體까지 그의 집 기둥 하나하나에는 창덕궁의 기둥처럼 늘 글씨가 단정하게 걸려 있었다고 하니 빈 기둥에 그가 아끼던 글씨 하나씩을 얹어보는 재미도 배렴의 집을 바라보는 풍취가 될 것이다.

배렴은 돌에도 식물에도 글씨에도 한결같이 다정다감한 사람이었다. 날이 차가워지면 매화를 방 안에 들여서는 혹여 여린 생명이 혹한에 얼지 않을까 자신은 윗목에서 자고 매화를 아랫목에 가져다놓는 사람이었고, 그림 선물하기를 좋아해 친구의 자녀가 결혼하면 항상 꽃과 새가 있는 화조도를 건네고, 여름이면 부채에 조그만 그림을 그려 지인들에게 건네는 것을 기쁨으로 알던 사람이다. 적을 만들지 않고 항상 타협으로 사람 간의 끈을 이어간 그는 예술원 회원, 홍대 교수, 국전심사위원, 문화재 위원으로 현실에서의 처세와 흐름에도 늘 물 흐르듯 몸을 맡기는 사람이었다. 미술 현장의 중요한 행정가이자 선생으로 활동하면서 화가로서도 본인만의 화풍을 찾고 2m가 넘는 대작을 그리며 예술가로 날개를 펼칠 무렵, 그는 벗들과 헤어지고 두 시간 후 그 어떤 징조나 예고 없이 그의 방에서 숨을 거두었다. 예술에 한생을 활활 불태우는 천재형 화가는 아니었지만, 조선의 선비처럼 삶을 그림 그리듯, 또 자연에 물들 듯 그렇게 가꾸며 산 화가. 먹빛과 화선지가 서로에게 스며들 듯 생활과 그림이 그렇게 느슨하게 번져가는 삶을 살다 간 배렴의 생이 이 조그만 한옥에 그렇게 물들어 있다.
주소 서울시 종로구 계동길 89 관람 문의 02-765-1375 (월, 공휴일 휴관)

서울시의 공공 한옥인 계동 배렴 가옥은 등록문화재 제85호로 현재 (재)내셔널트러스트 문화유산기금이 위탁 운영하며 다채로운 문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제당 배렴 작고 50주기를 맞아 <수묵에 묻힌 인생> 전시를 기일인 9월 5일부터 11월 4일까지 두 달 동안 개최합니다. (재)내셔널트러스트 문화유산기금은 시민들의 자발적인 기부와 후원으로 문화유산을 보존하는 비영리법인입니다. 시민문화유산 1호 최순우 옛집, 2호 나주 도래마을 옛집, 3호 권진규 아틀리에를 보존하며 근대 문화유산의 역사적 · 문화적 가치를 찾아 알리고, 역사 인물들이 남긴 삶의 흔적을 살려내는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글 김은 | 사진 박찬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8년 9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