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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J 중정갤러리 정진이 대표 가장 완벽한 작품은 ‘자연’
많은 갤러리는 희귀한 작품을 소장하거나 전시 중이라는 홍보 문구로 관람객을 끌어들이려 한다. 수많은 갤러리 중 어떤 갤러리가 될 것인가? 작품을 보다 마당을 산책하고, 숲을 바라보며 차 한잔 마시는 여유. 혼자 있어도 어색하지 않은, 자기만의 시간을 충분히 만끽할 수 있는 공간. 정진이 대표가 평창동 JJ 중정갤러리를 찾는 모든 이가 느끼고 향유하길 바라는 점이다.

지난해 봄 평창동으로 이전한 JJ 중정갤러리. 1~3층은 전시관으로, 4층은 프라이빗한 개인 공간으로 사용한다. 사진은 4층의 거실 겸 다이닝룸. 창 너머로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북한산과 평창동 풍경이 일품이다. 정진이 대표와 지인들이 좋은 작품 마주하며 차 한잔 마시고 쉬었다 가는 공간이지만, 요즘에는 이런 행복감을 더 많은 이와 나눠야겠다는 책임감을 느낀다.
알랭 드 보통은 그의 책 <영혼의 미술관>에서 “이상적 미술관이라면 훌륭하고 중요한 것을 매우 일상적으로 만들고 널리 보급하는 쪽으로 나아가야 맞다. 높은 벽 뒤에 보물을 쌓는 일에 열정을 쏟는 대신, 예술 작품의 가치를 보다 널리 전파하는 데 힘써야 한다”라고 말했다. 진정한 예술 애호가라면 미술관의 상대적 문턱을 낮추는 데 사명감을 지녀야 한다는 의미다. 2018년 현재, 국내 박물관과 미술관 수가 1천80여 개에 달한다. 사설 갤러리까지 포함한다면 미술인프라가 상당히 잘 갖춰진 편이다. 하지만 설립 목적에 맞게 잘 운영하는지는 반문해볼 일이다. 대중의 일상으로 예술을 끌어들이는 것이 그들의 역할이라면, 좋은 전시를 기획하는 것은 물론, 공간의 심미적 콘텐츠까지 고려해 그 자체로 머물고 싶고 다시 찾고 싶은 미술관을 만드는 것 또한 중요한 일이다. 루이 비통은 파리 부촌 인근에 있는 볼로뉴 숲에 엄청난 규모의 현대미술관을 지어 운영하고 있다. 그린벨트 지역이기에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은 50년만 쓰고 박물관과 소장품 모두를 파리시에 기증하겠다는 조건으로 미술관을 건립할 수 있었다. 현대건축의 전설인 프랭크 게리가 설계한 미술관은 한 송이 연꽃처럼 물 위에 떠 있는 건축물 자체가 또 하나의 작품이 된 좋은 사례다. 일본 나가노현 가루이자와에 있는 히로시 센주 미술관은 세계적 건축가 니시자와 류에가 설계해 외관부터 특별한 미감이 느껴진다. 오솔길처럼 굽이진 정원을 지나 전시관으로 들어서면 중간중간 유리로 감싼 중정을 만날 수 있는데, 이 중정을 통해 전시장으로 빛이 충분히 들어오는 것은 물론, 어느 지점에서나 초록 정원을 마주할 수 있어 산책하는 기분이 든다. 국내에도 이런 사례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양주 시립 장욱진미술관, 파주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은 전형적인 화이트 큐브 형태에서 벗어나 마름모, 곡선으로 구현한 생경한 공간감과 커다란 창을 통해 내·외부가 소통하는 건축의 묘미를 즐길 수 있다. 그리고 2017년 봄, 청담동에서 평창동 산 중턱으로 이전 개관한 JJ 중정갤러리 역시 숲과 탁트인 전망이라는 두 가지 코드로 고유한 색깔을 만들어낸 좋은 사례다. 봄에는 벚꽃을, 여름에는 울창한 신록을, 가을에는 낙엽을, 겨울에는 눈 내린 풍경을 마주하는 공간은 ‘가장 완벽한 작품은 자연’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최영욱 작가의 ‘달항아리’가 인상적 첫인상을 만들어내는 4층 개인 공간. 갤러리 하우스를 구현한 4층은 작품이 주거 공간에 온기를 불어넣는다는 것을 증명하는 좋은 예다.

4층 개인 공간 가장 안쪽에 자리한 침실. 창밖의 도토리나무도 하나의 작품이 되는, 비움의 미학을 실현한 공간이다.

JJ 중정갤러리 정진이 대표. 예술을 통해 좀 더 많은 사람과 행복을 나누고 싶어 지난해 봄 청담동에서 평창동으로 갤러리를 이전했다.
창 너머 풍경, 작품이 되다
아찔한 언덕을 올라야 마주하는 JJ 중정갤러리는 안으로 들어서야 공간의 진면목을 알 수 있다. 평창동 경사지에 있는 대부분의 건축물이 그렇듯 도로와 같은 레벨에서 건물의 지하 주차장으로 연결되고, 주차장을 통해 갤러리로 진입하는 구조다. 1층부터 3층까지는 갤러리로, 4층은 정진이 대표의 개인 공간으로 사용한다. 건축을 설명할 때도 가장 먼저 하고 싶은 말은 자연이다. JJ 중정갤러리는 흔히 평창동이라 불리는 동네를 마주 보는 반대편 산자락에 자리하는데, 그래서 평창동 사람은 오히려 보지 못하는 북한산 능선이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실제 갤러리 3층과 4층의 창 너머로 탁 트인 풍경을 보고 있으면 시쳇말로 ‘전망이 팔 할은 했다’는 생각이 떠오를 정도다. 절터보다 더 위에 있는 끝 건물이라 건물 뒤편과 양옆으로도 숲을 오롯이 즐길 수 있다. 적재적소에 창을 뚫으면 하늘이, 숲이, 나무가 프레임 안에 들어와 하나의 작품이 되니 공간에 따로 디자인을 더하거나 기교를 부릴 필요가 없었다. “처음 뼈대만 있는 건물을 봤을 때도 황량한 느낌은 들지 않았어요. 마치 무언가에 홀린 듯 건물을 본 날부터 가슴이 뛰고, 이곳을 어떻게 활용할지가 머릿속에 마구 그려지더라고요. 의욕이 얼마나 넘쳤는지 큰길 도로부터 갤러리까지 올라오는 골목길도 이렇게 저렇게 바꿀까 구상할 정도였어요.” 정진이 대표는 건물을 레노베이션하면서 시행착오도 많았지만, 과정이 주는 기쁨은 무엇에도 비할 수 없다고 말한다. 4층에 프라이빗한 공간을 구성한 것도 이런 연유에서다. “한때 집처럼 꾸민 전시 공간이나 호텔 아트 페어가 각광받기도 했어요. 내 집 같은 안락한 공간에 작품을 자연스레 배치한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게 골자였지만, 막상 생활의 흔적 없이 인위적으로 만든 공간으로는 설득력이 떨어지더라고요. 실제로 사람들이 머무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어요. 마침 공간에 여유가 있던 터라 1층부터 3층까지는 갤러리로, 4층은 생활 공간으로 꾸몄죠.” 건물은 전체적으로 마감을 최소화하고 간결하게 구성했다. 지하 주차장과 연결되는 갤러리 1층은 선큰 구조로 건물 중 유일하게 창이 한쪽으로만 난 지극히 ‘갤러리 다운’ 공간이다. 봄이면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는(지난해 봄 개관식도 벚꽃 개화 시기에 맞춰 진행했다!) 마당은 갤러리 2층과 연결된 다. 2층에는 전시 오프닝 때 파티 준비를 할 수 있도록 한쪽에 주방시설을 갖추고, 창가에 그랜드피아노를 배치했다. 3층은 기획전시관으로 작가들의 조명등을 선보였던 <다르게 생각하기 다르게 살아보기>를 비롯해 <바람이 분다> 등의 전시를 펼쳤다. 꼭대기 층인 4층은 생활 공간이라는 것 외에 어떤 용도도 정하지 않고 설계한 것이 특징. 레노베이션은 디자이너나 건축가 없이 정진이 대표가 시공팀을 선정해서 직접 진행했다.

갤러리는 작품이 돋보일 수 있도록 마감을 최소화하고 최대한 간결하게 구성했다.

4층 개인 공간.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면 왼쪽으로 거실과 다이닝 공간이 펼쳐지고, 정면으로 테라스가 연결된 작은 거실과 서재 겸 침실이 자리한다

정진이 대표가 집에서 가장 좋아하는 공간. 건물 뒤편 일부를 증축해 테라스를 만들었는데 자연을 벗 삼아 차 한잔 마시기 좋다. 기존에 있던 가죽나무가 한여름에도 그늘을 만들어줘 유유자적 휴식을 취하기 제격이다.
그림은 말 없는 시
“1층부터 4층까지 벽이 하나도 없이 트인 구조였어요. 3층까지는 갤러리로 사용하기 때문에 가벽을 세워 그때그때 활용하면 되지만, 4층은 생활 공간이라 집처럼 구획을 나누었으면 했죠. 배관을 고려해 주방 자리를 가장 먼저 정하고, 주방 앞쪽으로 다이닝 공간과 리빙룸을 배치했죠. 두 공간을 나누면 탁 트인 전망을 오히려 해칠 것 같아 스튜디오 형식으로 오픈했어요.” 집 혹은 세컨드 하우스, 프라이빗 하우스 갤러리 등의 용도는 중요하지 않았다. 공간의 최대 장점인 전망을 해치지 않으면서 공간을 어떻게 활용할지 상상하니 쓱쓱 구도가 그려졌다. 공간의 가장 큰 특징은 작품. JJ 중정갤러리 소속 작가의 작품뿐 아니라 정진이 대표의 테이스트를 느낄 수 있는 컬렉션을 공간 곳곳에 배치해 감상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먼저 제가 좋아야지 누군가에게도 좋다고 말할 수 있잖아요. 전시를 관람하는 인구는 늘어났지만, 정작 집에 둘 그림은 여전히 어렵게 생각하는 분이 많아요. 그럴 때마다 마음을 한껏 끌어당기는 작품을 선택하라고 조언하죠.” 처음부터 완벽한 그림을 사려고 벼르면 평생 못 건다는 것이 정 대표의 지론이다. 아이의 삐뚤빼뚤한 그림이라도 자꾸 매치해봐야 안목이 생기고, 그래야 정작 작품을 사려고 할 때 자신의 취향에 맞는 작품을 고를 수 있다는 것. 경쾌하게 와닿는 그림은 밝아서 힘이 되고, 슬픈 그림은 함께 슬퍼해줘서 위로가 된다. 그만큼 주관적이라는 뜻이다. 만약 전시회에서 작품을 감상하다 뭔지 모를 울림으로 가슴에 툭 와닿는 그림이 있다면 그 작가가 표현하고자 한 인생의 정수를 가슴으로 먼저 느꼈다는 것이다. 마치 한 편의 시처럼! 또한 단순히 인테리어 소품은 아니니 작가에 대해서도 공부해야한다. “작가의 사생활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갤러리스트로 작품을 팔고 있지만, 반대로 구매자의 입장이 될 수도 있잖아요. 작품에 대해서는 최대한 말을 아끼지만, ‘이렇게 해보면 어떨까요?’라는 조언이 무심코 나올 때가 있어요. 그래서인지 가끔 선생님 같다는 소리도 종종 들어요.(웃음)” 그는 중학교 역사 선생님이었다는 특별한 이력도 덧붙였다. 학교를 그만두고 가족이 미국 여행을 떠났을 때,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는데 문득 제자들 얼굴이 한 명 한명 떠오르며 울컥했다. 그제야 ‘낳은 아이들만 내 자식이 아니구나. 그 아이들 역시 자식이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단다. 그래서 그는 전속 작가들이 자식처럼 애틋하고 더 고맙다. “중정의 중은 가운데 중中, 정은 바를 정正 자를 써요. 남편(‘달항아리’ 최영욱 작가)이 작가다 보니 주변에 작가 친구가 많잖아요. 그들이 어렵게 작업하는 것도 알고, 작품이 필요한 고객의 니즈도 아니까요. 양쪽 사이에서 균형을 잡고 바르게 해야겠다는 뜻으로 이름을 지었어요.”

회화나 사진 외에도 공간 곳곳에서 다양한 설치 작업을 만날 수 있다. 처마 위에 얹은 아트워크는 박훈 작가 작품.

평창동 높은 지대에 자리해 탁 트인 전망과 자연 그대로의 숲에 둘러싸인 JJ 중정갤러리(02-549-0207). 봄이면 벚꽃나무의 서정적 풍경을 마주하는 마당과 갤러리 2층이 연결되는 구조다.

창 너머 풍경과 작품이 조화를 이루는 모습. 이곳에 걸린 작품은 일반 갤러리에서와는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박찬우 작가의 ‘스톤’ 시리즈, 최영욱 작가의 ‘달항아리’, 황승우 작가의 아트워크 ‘페이스’ 등 자연과 하나가 되길 원한 작가의 예술 세계를 음미하기엔 그만이다.

가구를 최소화한 대신 작가의 아트 퍼니처나 빈티지 디자인 피스를 선택했다. 4층 작은 방에 둔 옷장은 독일에서 구입해 온 아트 퍼니처로 그릇을 수납하기도 제격이다.

박진규 작가의 민트색 아트워크와 주칠한 반닫이가 매력적인 컬러 대비를 만들어낸 코지 코너.

마당에서 바라본 갤러리 2층의 작은 방. 이상용 작가의 테이블과 클래식한 앤티크 체어, 박찬우 작가의 ‘월’ 시리즈와 샹들리에가 어우러져 마치 쇼케이스를 들여다보는 듯하다.

작가들과의 조촐한 와인 파티. 옥상을 어떻게 활용할까 고민하다 지난봄 블루베리 포트를 가득 옮겨 블루베리 가든을 만들었다. 올여름 내내 디저트로 맹활약한 블루베리는 무성하게 숲을 이뤄 북한산 능선을 물든 석양과 함께 잊지 못할 풍경을 빚어냈다.
다르게 생각하기 다르게 살아보기
정진이 대표는 요즘 피아노를 다시 배우고 있다. 건강하고 재미있는 50세를 맞이하기 위한 나름의 ‘소확행’ 실천이다. 갤러리 2층에 그랜드피아노를 두고 연습을 시작했는데, 비록 유튜브에서 본 영상처럼 손가락이 현란하게 움직이지는 않지만 느릿느릿 곡 하나를 완주해나가는 성취감이 크다. 그는 갤러리에서 1년에 한두 번이라도 작은 음악회를 해보고 싶다는 소망도 비쳤다. 클래식을 잘 모르는 사람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연주회, 그가 추구하는 행복의 청사진이다. “제가 사회운동가나 행복 전도사는 아니지만, 평범한 사람의 이런 소소한 행복이 모이면 주변이 더 행복해지고, 주변의 행복을 챙기다 보면 더 따뜻한 사회가 되지 않을까요?” 지난해 4월 벚꽃 흐드러진 어느 날, 평창동으로 살림을 옮긴 JJ 중정갤러리는 사람들을 초대해 마당에서 국수를 삶고 싶었다. 소박한 국수 한 그릇을 나누고 싶은 바람은 올해 봄 결실을 거뒀다. 그리고 계절은 다시 여름에서 가을로 익어갔고, 갤러리 옥상에는 블 루베리나무가 풍성한 밭을 이뤘다. 여름의 끝자락, 갤러리를 취재하며 지저귀는 새소리를 들었고, 나뭇가지 그림자가 작품에 스미는 걸 보았다. 작품은 공간의 일부로서, 자연의 일부로서 존재했다. 아침, 점심, 저녁…느끼는 주체에 따라 각각 다른 미감을 발휘하는 치유의 예술. 자연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 있는 공간은 ‘예술을 즐기는 방법은 이렇게도 바뀔 수 있다’는 걸 일깨워준다.

글 이지현 기자 | 사진 박찬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8년 9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