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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건축가가 재해석한 빅토리안 양식 런던 브로클리의 에치 하우스
전통 주택과 현대 주거 환경이 조화를 이루는 일은 모든 건축가와 디자이너에게 주어진 공통의 과제다. 한 나라의 문화유산이 응축된 수도에서는 더더욱 화제의 이슈일 터. 옛 빅토리안 하우스 모습을 아로새긴 에치 하우스(The Etch House)는 이에 대해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에치 하우스의 아래층은 내벽을 철거하고 개방감 있게 변경해 빅토리안 하우스의 구조적 단점을 보완했다. 정면에 보이는 수납장은 계단의 입면도처럼 제작했는데, 실제로 계단이 있던 위치를 디자인적으로 표현한 부분이다.

증축을 통해 확장한 주방 모습. 삼나무 합판으로 외벽을 마감한 부분이 확장한 공간이다. 이 공간 위에는 루프톱 가든을 조성했다.
으레 새 집은 비싸고 오래된 주택은 가격이 더 낮다. 하지만 이러한 통념을 깨는 곳이 바로 파리와 런던, 서울 등이다. 오랜 세월, 수도로 기능하며 다채로운 문화유산이 응축돼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중에서도 런던은 전쟁과 침략으로부터 자유로웠기 때문에 당시 유행하던 시대 양식으로 지은 집들이 지금까지도 잘 보존되어 있다. 도심에는 옛 상류층의 거주지로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고전주의 양식을 차용한 조지안 하우스(로코코·바로크 양식이 유행하던 유럽 전역과 달리 영국은 독자적 시대 양식이 유행했다), 외곽으로 나가면 산업 시대 이후 중산층에 인기 있던 빅토리안 하우스가 밀집해 있다. 도시의 전체적 조화와 역사를 중요시하는 런던에서는 엄격한 규제를 통해 옛 주택을 허물고 새로 짓기보다 레노베이션을 통해 구조적 단점을 보완하는 작업이 빈번하다. 그 말인즉슨, 런던이야말로 전통과 현대를 믹스하는 기발한 아이디어의 원천이라는 뜻. 런던 브로클리Brockley의 에치 하우스는 ‘아로새기다, 역력히 드러나다’는 뜻의 에치etch를 집의 이름으로 붙인 점에서 유추할 수 있듯 19세기에 지은 전형적 빅토리안 하우스의 원형을 실내에 기록하며 레노베이션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19세기 말 런던에 거주하던 사람들을 떠올리며 인테리어를 했어요. 지금은 흔한 소재지만 그때는 이슈로 떠올랐던 석고보드와 타일, 벽돌을 데코 요소로 활용했지요.” _ 조 프라허

자연 친화적 합판인 발크로맷을 사용해 주방 가구를 제작했다.

데코 타일과 여인의 옆모습을 형상화한 장식으로 개성 있게 연출한 현관 입구.

다락방이 있는 꼭대기 층은 아이들의 놀이 공간으로 꾸몄다.

주방에서 바라본 정원 풍경. 높이 4m의 유리문은 실내와 정원을 잇는 연결 고리로, 시시때때로 변화하는 근사한 차경을 보여준다.
어둡고 답답한 구조 대신 오픈 플랜으로!
런던에 본사를 둔 프라허 아키텍츠Fraher Architects의 건축가 부부 조 프라허Joe Fraher와 리지 웹스터Lizzie Webster. 두 사람은 3년 전 브로클리지역에 주택을 구입했다. 주택은 19세기 말에 지은 전형적인 빅토리안 양식의 테라스 하우스로, 아래층과 위층에 각각 방이 두 개씩 있다. 특히 아래층의 방은 각각 주방과 거실로 사용했는데, 복도를 따라 방을 일렬로 배치하면서 필요 이상으로 많은 내벽을 설치해 빛과 바람이 잘 들지 않고 좁아 보이는 단점이 있었다. 외관은 매우 클래식하고 기품이 있었지만, 내부는 오늘날 사용하기엔 다소 불편한 상황. 조 프라허와 리지 웹스터는 어린 두 딸을 위해 편의성에 초점을 두고 레노베이션을 했다. “저와 남편은 주로 런던에서 활동하기 때문에 빅토리안 양식의 테라스 하우스를 개조하는 프로젝트를 의뢰받을 때가 많아요. 영국을 대표하는 주거 양식이기에 신중하게 작업하고 싶은데, 그러자면 우리 가족의 집으로 먼저 실험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부부는 생활하기에 편리하도록 평면도를 바꾸는 작업부터 시작했다. 현관에 들어서면 바로 보이는 계단과 비좁은 복도를 없애고, 시야를 차단하던 내벽을 철거해 아담하지만 개방감 있는 오픈형 공간으로 바꾸었다. 중문을 지나 들어가면 우측에는 거실이, 좌측으로는 주방이 연결된다. 주방을 지나면 안뜰에 가족의 프라이빗한 정원이 나오는데, 전원에서의 삶을 이상향으로 삼으며 제한된 여건에서도 꽃과 나무를 가꾸고 여유를 즐기던 빅토리안 시대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두 사람은 아래층 바닥을 최대한 낮추고 증축을 통해 다락방이 딸린 2층 주택으로 확장했다. 실내에는 계단을 새로 설치했는데, 다용도로 쓸 수 있는 넓은 층계참을 마련해 트리 하우스처럼 재미있는 구조를 완성했다. 아래층에서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침실과 서재, 욕실을 연결하는 계단참이자 오피스 겸 놀이 공간이 나오고, 꼭대기 층으로 올라가면 아이들의 로망을 실현한 다락방 놀이터가 나온다. 창 너머로 붉은 벽돌의 빅토리안 하우스가 다닥다닥 붙어 있는 진풍경이 펼쳐지는 곳. 하지만 빅토리안 양식은 창밖뿐 아니라 집 안 곳곳에서도 살아 숨 쉰다.

현관 입구와 바로 연결되는 아담한 가족실. 삼면으로 낸 베이bay 창문은 빅토리안 하우스의 전형적 특징이다.

위층과 계단참에 높이 변화를 주어 오르내리는 재미가 있는 트리 하우스를 완성했다. 슬라이딩 도어의 육각 손잡이는 기존 욕실의 육각 타일을 모티프로 디자인했다.

막간을 이용하거나 늦은 밤, 아이들을 재운 뒤 업무를 볼 수 있는 홈 오피스. 리지 웹스터가 집에서 가장 좋아하는 공간이다.

심플한 화이트 타일과 짙은 콘크리트 세면대, 아이들이 고른 샛노란 색깔의 수전이 조화를 이룬다.
벽과 문에 새긴 오리지널 디테일
현재의 라이프스타일에 충실하게 변모한 에치 하우스. 하지만 주의 깊게 살펴보면 빅토리안 하우스의 레이어가 중첩된 사실을 금세 눈치챌 수 있다. 먼저 기존 벽과 천장은 석고보드(당시의 대중적 마감재)를 유지한 반면, 계단을 포함해 새롭게 구성한 공간은 더글러스 전나무 합판으로 마감해 차별화했다. 벽에는 회색 줄이 세 줄씩 그려져 있는데, 첫째 줄과 둘째 줄에 각각 ‘original skirting level(몰딩의 위치)’ ‘original ground floor level(바닥의 레벨)’이라고 적혀 있다. 기존 빅토리안 하우스의 바닥과 몰딩 위치를 그대로 기록한 것이다. 그뿐 아니다. 주방으로 향하는 길목의 수납장은 본래 계단 위치에 맞춰 입면도처럼 도어를 제작하고, 블랙과 머스터드 컬러의 발크로맷을 사용해 컬러의 대조를 이루었다. 소소한 디테일에서도 시대의 원형을 찾을 수 있다. “당시 런던에 타일이 대량 공급되기 시작하면서 개성 있는 타일 인테리어가 등장했어요. 지금은 흔한 소재지만, 그때 사람들을 떠올리며 현관 입구와 욕실에 타일로 포인트를 주었지요. 슬라이딩 도어에는 기존 욕실에 있던 육각 타일을 모티프로 육각형 손잡이를 만들었어요. 안쪽에 황동 판을 덧대니 포인트 역할을 톡톡히 하네요.” 집 안 곳곳에는 옐로, 그린 컬러가 스며들어 공간에 생동감을 불어넣는다. 아이들이 집을 꾸미는 데 동참하기 위해 직접 고른 색깔이라고. 옛집의 구조와 인테리어를 기록으로 남긴 에치 하우스는 단순히 수치를 기재한 게 아니라, 전통 양식을 재해석하는 남다른 관점을 가르쳐준다.

글 이새미 | 사진 애덤 스콧Adam Scott | 취재 협조 Fraher Architects(www.fraher.co)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8년 8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