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해주세요.
본문 바로가기
홍건익 가옥 골목에서 세계를 꿈꾼 중인의 집
안채의 반듯한 마루에 가만히 앉아 있으면 고요한 바람이 시냇물처럼 흐른다. 바람에도 길이 있다면 아마 이 길이지 싶다. 역관(통역사)의 집터이던 이 가옥은 작은 글방에서도 지구 반대편 새로운 세상을 찾아 나서던 중인들의 꿈이 아직도 바람처럼 흐르고 있었다.

내셔널 트러스트 기행 3
(재)내셔널트러스트 문화유산기금은 시민과 함께 우리 문화유산과 전통 마을을 지키고 가꾸는 일에 앞장서는 재단입니다. 역사와 문화 인물의 숨결이 살아 숨 쉬는 공간을 <행복>이 먼저 찾아가 가만히 지켜보고, 귀 기울여보았습니다.

전통 한옥과 도시 한옥의 장점이 아주 적절히 섞인 이 집의 일미는 철제 난간이다. 안채와 별채를 투명하고 자연스럽게 구별하는 동시에 이어주는 이 난간은 고요하면서도 화려한 인상을 풍기는 이 집의 중요한 건축적 요소다.
자기가 사는 동네를 벗어나지 못하던 시절에 이미 지구 반대편, 새로운 세상에 발을 디디고 다른 세상을 꿈꾸던 사람들이면서도 임금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돕던 사람들이었기에 의리는 돌처럼 단단하고 생각은 바람처럼 유연했는지도 모른다.

문의 열고 닫음에 따라 공간이 무한히 변주되는 것이 한옥의 큰 매력이다. 단정한 나무 창살 위에 곱게 바른 순하고 따뜻한 눈 같은 한지 문과 간유리의 경쾌함이 어우러져 아름다움을 자아내는 근대 한옥에 즐거운 호기심을 갖게 되는 집이다.
세상에 화려한 집은 많지만, 그 아름다움은 시간이 차곡차곡 쌓인 집의 아름다움을 넘어서기는 힘들다. 아직도 모르는 골목이 여전히 존재하는 서촌의 꼬불꼬불한 골목 틈에 말(馬)이 드나들었다는 높은 문의 한옥 한 채가 비밀처럼 숨어 있다. 드러나기보다 배어 나오는 아름다움, 보이기보다 깃들어 있는 마음처럼 겉으로는 알 수 없는 이 집의 내력은 그렇게 시작된다. 배화여자대학교를 향해 오르는 일방통행 길 초입, 오른쪽으로 몸을 돌리면 골목 안으로 높은 대문이 보인다. 규모가 2백40평이나 되는 큰 한옥인데 ‘용케도 잘 숨어 있다…’라고 느낄 만큼 밖에서는 그 크기와 형태를 짐작하기 어렵다. 필운동 88번지 홍건익 가옥. 이 집의 주인이던 홍건익은 당시 부유한 상인이었고, 등기상의 소유주라는 것 말고는 별다른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 서울시가 이 오래된 한옥을 구입해서 민속문화재로 지정하고 토지대장을 찾아 들추어내면서 홍건익이 이 집을 짓기 전에 고영주라는 역관이 이 터에 살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기록을 더 찾아보니 고영주 일가는 그의 아버지와 형제들 그리고 조카들까지 대대로 서촌에 살면서 역관을 지낸 집안으로, 그들이 세계 일주를 한 기록까지 남아 있어 이 집 의 이야기는 실제로 홍건익이 아닌, 고영주와 형제들의 흔적과 숨결로 기억하게 되었다. 왕이 기거하던 경복궁의 서쪽이라 해서 이름 붙은 서촌은 조선시대의 실무직을 맡은 의사, 역관, 예술가 등 중인이 모여 살면서 만들어낸 독특한 문화적 풍취가 스며 있는 동네다. 특히 고영주 일가의 직업이던 역관은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통역과 번역을 맡은 관직으로 중국이나 일본에 연행사와 통신사로 보내던 사신들의 의전을 담당하며 여러 나라를 오가면서 해외 문물을 누구보다 먼저 경험하고, 세계 정세에 먼저 눈 뜨는 행운을 누린 직군이었다. 보통 사람들이 자기가 사는 동네를 벗어나지 못하던 시절에 이미 지구 반대편, 새로운 세상에 발을 디디고 다른 세상을 꿈꾸던 사람들이면서도 임금과 가장 가까운 곳에 살면서 임금을 돕던 사람들이었기에 어쩌면 의리는 돌처럼 단단하고 생각은 바람처럼 유연했는지도 모른다. 특히 역관은 보수가 일정치 않았지만 해외로 파견될 때 허락되는 개인 무역 등으로 사업을 할 수 있어서 수완과 배짱만 좋다면 많은 부를 축적할 수 있었다. 그렇게 얻은 부로 문인이나 예술가들과 교류할 수 있어서 역관의 집에는 항상 풍류가 흘렀다고 한다. 당시에는 대문으로 말이 드나들고 집 안에 빙고氷庫가 있다는 것은 엄청난 부의 상징이었다. 대문으로 말이 드나들고 별채 아래쪽에 빙고를 둔 것을 보면 서촌이라는 동네와 그곳에 자리 잡은 중인의 삶을 엿보고 느낄 수 있는 집이 바로 이곳이다.

도시 한옥의 특징인 마음이 아련해지는 간유리를 좁고 간결하게 사용한 덕분에 담백한 한옥에 비밀의 통로처럼 깊은 공간감을 자아내는 기나긴 복도가 생겨났다.
대문채, 행랑채, 사랑채, 안채, 별채 이렇게 다섯 동이 낮은 언덕을 따라 자연스럽게 놓여 있는 큰 한옥이지만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참 아담한 한옥이구나…” 하고 발길을 돌려 나올 법한 집의 입구다. 실제로 이 집을 처음 찾아온 사람 중 사랑채 앞만 보고 서둘러 대문을 나서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지금은 ‘역관의 방’이라는 전시실로 쓰는 사랑채 옆의 일주문을 열면 비로소 집의 중심인 안채가 나온다. 작은 부엌이 딸린 안채에 들어서면 마음이 아늑해지면서 안채를 둘러싼 앞과 뒤의 유리창 너머로 작은 언덕 위에 차곡차곡 잘 쌓여 있는 듯한 별채와 후원이 보인다. 홍건익 가옥은 당시로는 드물게 전통 한옥과 도시 한옥의 좋은 점을 잘 섞어서 지은 집으로, 도시 한옥의 특징인 마음이 아련해지는 간유리와 나무 창호에 곱게 바른 전통 한옥의 한지 문이 안팎으로 조화롭게 섞여 있다. 특히 근대 한옥의 특징인 작은 복도를 두고 덧문으로 만든 유리문은 한옥에 새로운 생동감과 입체감을 더한다. 긴 줄무늬 그리고 작은 양치식물의 잎을 그대로 탁본한 듯한 간유리들, 그리고 아름답게 중첩된 한옥이 그대로 비치는 투명한 유리까지. 세 가지 형태로 변주를 준 유리문들은 이 집을 고요하면서도 화려하게 만드는 요소다. 안채의 마루에 앉으면 마치 고운체에 거른듯한 미풍이 분다. 거친 기운 하나 없이 결이 고운 바람을 맞고 앉아 있으면 스르르 눈이 감기면서 금세 먼 곳에 도착한 기분이 드는 쾌청한 마루다. 안채의 마루에 앉아 별채가 시작되는 작은 동산을 보고 있으면 수령이 1백 년도 훨씬 넘은 회화나무가 드리워진 별채로 올라가는 계단이 보인다. 또 한옥에서는 생소한 철제 난간이 보이는데 이 낯선 기물이 주는 기분 좋은 파격은 이 집의 일미다. 한옥의 철제 난간은 이질감을 주기 십상일 테지만 얇고 가볍게 돌계단 위에 얹힌 이 난간은, 겹겹으로 보일 때 집의 풍미가 더해지는 한옥과 아주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별채로 들어가는 일주문 옆에는 아주 잘생기고 듬직한 우물이 있는데, 별채 아래에 만들어둔 음식 저장고인 빙고와 함께 이 한옥의 독특한 점이면서 서촌에 살던 중인들의 부와 문화적 풍요로움을 그대로 보여주는 건축적 요소이다. 후원이 있는 작은 동산 위에 지은 별채는 지금 작은 어린이 도서관으로 꾸며 이 동네 어린이들이 하원하는 길에 엄마와 함께 들르는 동네 도서관 역할을 하고 있다. 작은 ㄱ자 모양으로 예전에도 분명 서재로 쓰던 곳이라고 자연스레 짐작할 수 있을 만큼 소란한 일상과 분리되어 적막감을 자아내면서도 아담한 동산의 작은 정원에서 들어오는 초록 기운과 공기가 마음과 머리를 정갈하게 깨운다.

별채를 지나 작은 돌계단을 오르면 비로소 미로 같은 이 집의 전체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작은 후원이 나온다. 소담한 뒷문 곁에서 잠시 서서 숨을 고르면 이 집의 길고 깊은 지붕과 만나게 된다. 흡사 한국의 모노크롬 회화 같은 지붕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마음의 바닥까지 평온의 바다에 잠기는 기분이 든다. 대문 안으로 들어서더라도 알 수 없는 집 구조를 이곳 별채 꼭대기 작은 동산에 오르면 마치 집의 멋진 해부도를 들여다보듯 온전하게 알 수 있는 것도 큰 매력이다. 이 터의 주인인 고영주는 21세에 역과에 합격해 차상통사로 근무했는데, 내의원에 필요한 약재를 중국에서 구입하던 실무자로 많은 돈을 벌었다고 한다. 그가 빈민을 구제했다는 신문 기사가 아직 남아 있을정도로 지역에서 존경받는 유지였고, 여러 문인과 교류했다고 한다. 또 그의 동생 고영철은 최초의 영어 번역관이었고, 고영철의 아들 고희경은 영국에 파견되어 세계 일주까지 했다고 한다. 이렇듯 남들보다 먼저 새로운 세상을 찾아 나섰던 역관 집안의 이야기는 집 밖에서는 알 수 없지만, 낮은 언덕을 따라 지은 독립적이면서 긴밀히 연결된 이 집의 구조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열쇠가 된다. 이 집의 입구인 사랑채에 꾸린 ‘역관의 방’에는 단정한 서체로 옛 나라 이름을 적은 세계지도와 그들이 조선을 벗어나 움직인 여행의 궤적이 빨간 실과 파란 실로 표시되어 있다. 안채의 대청마루에 앉으면 이 집 전체를 관통하며 불어오는 바람이 유난히 사람의 마음을 깨우는 것은 아마도 아주 작은 나라의 가장 작은 방에서도 이제 막 열리기 시작한 다른 세상, 지구 반대편 세계를 공부하고 꿈꾸던 중인의 바람 같은 정신이 지금까지 살아서 흐르기 때문일 것이다.

주소 서울시 종로구 필운대로1길 14-4 관람 문의 02-735-1374, 월요일ㆍ공휴일 휴관

서울시의 공공 한옥인 필운동 홍건익 가옥은 현재 (재)내셔널트러스트 문화유산기금이 위탁 운영하며 다채로운 문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재)내셔널트러스트 문화유산기금은 시민들의 자발적 기부와 후원으로 문화유산을 보존하는 비영리법인입니다. 필운동 홍건익 가옥 외에도 시민문화유산 1호 최순우 옛집, 2호 나주 도래마을 옛집, 3호 권진규 아틀리에를 보존하며 근대 문화유산의 역사적 · 문화적 가치를 찾아 알리고, 역사 인물들이 남긴 삶의 흔적을 살려내는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글 김은 | 사진 박찬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8년 7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