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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향각書香閣 책 향기가 그윽한 집
백운산과 용수골 계곡에 둘러싸인 원주시 판부면 서곡리. 풀벌레 울음소리와 새소리만이 전부인 고요한 마을에 서향각이 자리한다. 이름 그대로 글의 향기로 가득하다는 낭만적인 집. 누구든 그곳에 가면 바람결에 실려오는 책의 향기, 자연의 내음에 취하고야 만다.

별채는 부부의 서재이자 이웃을 위한 작은 도서관으로 꾸몄다. 서향각이란 이름에 걸맞게 칸칸마다 책이 빼곡하다.

서향각은 살림채와 대청마루, 별채로 구성된다. 특히 대청마루는 중목을 사용해 우물마루 방식으로 짜 전통 한옥의 정취를 더해준다.
집 이름을 지을 때는 주로 ‘재齋’나 ‘헌軒’을 쓴다. 하지만 서향각書香閣은 의미는 같지만 주로 궁궐이나 관서에 붙이는 ‘각閣’을 썼다. 별채에 꾸민 서재를 작은 도서관으로 운영하고 싶은 박탄·이효숙 부부의 바람을 고스란히 담은 것. 각각 한문 산문과 한시를 전공하고, 교육자의 길을 걷는 부부는 사람들이 자유롭게 와서 차를 마시고 책도 읽을 수 있는 도서관을 꿈꾸며 서향각을 지었다.


자연과 사람을 생각한 경량 목구조
“택지로 조성한 동네보다 이처럼 오래된 마을에 들어와 자연스럽게 어우러지고 싶었어요. 그러 보니 이곳 서곡리까지 오게 되었지요. 와보니 정원에 감나무가 두 그루 있었고, 예상대로 온종일 햇빛이 아주 잘 들더라고요.” 박탄 씨는 당시를 회상하며 이야기를 꺼냈다. 건축은 스튜디오더원의 원계연 소장이 맡았다. 광주 부메랑 하우스(<행복> 2016년 11월호)를 설계한 원 소장은 이번에도 자연과 최대한 맞닿을 수 있는 경량 목구조의 집을 설계했다. 경량 목구조란 비교적 가벼운 목재로 집의 뼈대를 구성하는 공법. 콘크리트나 조적조처럼 물을 사용하는 습식 공법이 아닌, 건식 공법이어서 공사 기간이 짧고 비용이 절감된다. 게다가 벽체와 지붕의 구조체가 단열 벽체 역할을 하기 때문에 집의 유효 면적을 넓혀주고 단열성이 뛰어나다. 다른 건축자재보다 가볍고 지진에도 강하기 때문에 최근 경량 목구조로 집을 짓는 이들이 늘고 있다. “경량 목구조는 기초를 다지는 것부터 조립과 마감, 단열과 방수까지 전 과정을 이해하는 전문 목수가 작업을 해야 합니다.” 원 소장은 나주의 김민수 목수와 부산의 김민기 목수를 섭외했다. 두 사람 모두 한옥을 잘 짓기로 정평이 난 인사. 이들은 한 땀 한 땀 장인 정신을 담아 집을 지었다. 두 목수가 꼬박 6개월을 작업한 뒤에야 서향각이 모습을 드러냈다. 서향각은 건축면적(건축물의 외벽을 기준으로 한 수평 투영 면적) 147.5㎡, 연면적(바닥 면적의 합계) 126.4㎡ 규모로 완성되었다. 집의 실제 면적보다 지붕의 처마를 길게 냈다는 뜻이다. 기다란 처마가 집을 비바람과 눈보라로부터 보호해주고, 궂은 날씨에도 대청마루를 사용할 수 있게 해준다. 대청마루 위쪽의 지붕은 불투명 유리를 사용해 하늘과 나무가 어른어른 비친다.

“바람 불고 눈비 내리면 따사롭고 자애로운 눈빛 발맘발맘 찾아오시는 발걸음 아늑하고 편하게 하리.” _ 박종화 시인의 ‘여정’ 중

창 너머로 본 별채. 평소 가족이 책을 읽는 널찍한 책상은 손님이 오면 다이닝 테이블로 변신한다.

별채 입구에는 보이차가 소담히 걸려 있다.

서향각은 한옥처럼 문을 열고 닫으면서 공간을 가변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문에는 삼베를 덧대어 건너편 공간이 비쳐 보인다.

원주 한도시 한책 읽기의 도서 위원장을 맡을 만큼 애서가인 박탄 씨는 살림채에도 서가를 길게 배치했다.

주방은 아일랜드와 수납장을 11자로 배치해 공간의 구성과 동선의 효율성을 최대한 높였다.
서향각은 뼈대는 가문비나무를, 내벽은 홍송을 사용했다. 세월이 흐를수록 붉게 짙어지는 홍송은 집이 멋지게 나이 들도록 해주는 소재. 원계연 소장은 한정된 예산 안에서 선택과 집중을 했다. “나뭇결 문양의 시멘트 사이딩Siding을 외장재로 사용해 예산을 줄이고 관리의 편리성을 높였습니다. 본래 회색빛이었지만 노랗게 도장하니 나무와도 잘 어우러지지요. 반면 햇빛을 부드럽게 끌어들이는 한지 문은 예산에 비해 과감히 투자한 부분이에요.” 온돌방인 서재는 한지를 두 겹으로 바른 문을 달고, 보일러를 사용하는 살림채는 유리 창호 안쪽에 한지 슬라이딩 창호를 덧대 디자인과 실용성을 모두 잡았다.

박탄 씨는 주택살이를 하면서 DIY라는 새로운 취미가 생겼다. 주방 맞은편의 벽 선반은 그가 처음 만든 것으로, 볼 때마다 그때의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현관 너머로 보이는 풍경이 일품이다. 한지 문을 사용해 제작한 신발장이 인테리어와 훌륭한 조화를 이룬다.

대청마루에 앉아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는 박탄·이효숙 부부. 길게 낸 처마는 집을 보호해주고 훌륭한 그늘막이 되어준다.
집과 사랑에 빠지는 시간
서향각은 많은 부분이 한옥과 오버랩된다. 대청마루를 중심으로 살림채와 별채가 나누어지고, 문을 열고 닫으면서 공간을 가변적으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통 우물마루 방식으로 짠 대청마루와 곳곳의 한지 문이 한옥의 느낌을 더해준다. 예산이 초과해서 주인이 포기한 대청마루는 지난 반년간 이 집에 애정을 쏟은 목수의 깜짝 선물이다. 서향각은 지난여름에 완성했지만 부부는 올해 3월 말에 이사를 했다. 꼬박 반년을 기다린 셈이다. “시간을 두고 찬찬히 살펴본 뒤 입주했어요. 그사이 부족한 부분을 틈틈이 손보기도 했고, 살림에서 가져가야 할 것과 버려야 할 것도 정리했지요. 그러자 이삿날이 더욱 애타게 기다려졌어요. 집에 대한 애정도 하루하루 커져갔지요.” 서향각은 부부의 일상에 밀착되었다. 마스터 베드룸처럼 구성한 침실, 드레스룸, 보송보송한 건식 욕실과 동선의 효율성을 높인 11자형 주방이 그렇다. 특히 목조 주택의 결을 흩뜨리는 주방 가전을 한데 모은 팬트리룸 겸 보조 주방도 신의 한 수였다. 무엇보다도 서재는 부부의 취향과 관심사를 담으며 애정 어린 공간으로 변모했다. 아름다운 클래식 선율이 나무 집을 울림통 삼아 웅장하게 울려 퍼진다. 중앙에는 원 소장이 디자인한 대형 원목 테이블이 놓여 있다. 책을 마음껏 늘어놓고, 손님이 와도 넉넉히 둘러앉아 담소를 나눌 수 있어 가장 인기 있는 자리다. 서재는 집에서 유일한 구들방이기도 하다. 뒤쪽 아궁이에서 불을 때면 한겨울에도 땀이 송골송골 맺힌다.

서향각은 거실이 따로 없다. 대신 침실과 작은 방 사이의 삼베 미닫이문을 열면 커다란 거실로 활용할 수 있다.

간접 조명등으로 아늑한 분위기를 더한 건식 욕실.
“아주 옛날, 콩기름을 바른 노란 한지 장판이 생각나서 서재 바닥에 한지를 깔았어요. 구들의 흙을 말려서 습기를 모두 없앤 다음 콩기름을 발라야 한다고 해서 기다리고 있지요.” 인터뷰를 하는 내내 효숙 씨의 얼굴에 행복감이 묻어났다. 그는 전원주택 생활은 아파트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몇 배는 바쁘지만 그 이상의 기쁨을 맛보게 해준다고 덧붙였다. “아침 6시만 돼도 눈이 저절로 떠져요. 그러면 맨 먼저 쪽마루로 가서 정원과 텃밭을 둘러보고, 처마 끝에 맺혀 있는 이슬을 보며 하루를 시작하지요. 아궁이에서 불을 피우는 모습을 넋 놓고 바라보기도 해요. 묘하게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기분이 들거든요.” 박탄씨는 요즘 DIY에 흥미가 생겼다. 주방 맞은편의 벽 선반이 그의 작품 1호. 주택살이를 하다 보니 자연스레 손을 써서 무언가를 만드는 일이 잦아졌단다. 하지만 가장 큰 변화는 역시 자연의 아름다움을 몸소 마주하는 것! “집 앞 복숭아 과수원이 계절의 변화를 제일 먼저 알려줘요. 복사꽃이 피었을 때 굉장히 근사했지요. 날마다 자연과 마주하며 지내니 잊고 있던 것을 하나둘 찾아가는 느낌입니다.” 그의 아버지인 박종화 시인의 시 ‘여정’의 한 구절이 잘 어울리는 집이다. “바람 불고 눈비 내리면/ 따사롭고 자애로운 눈빛/ 발맘발맘 찾아오시는 발걸음/ 아늑하고 편하게 하리”


건축가 원계연은 강원대학교 건축학부를 졸업하고 건축포럼과 스튜디오 어싸일럼에서 실무를 수련했으며, 현재 고향인 강원도 원주에서 건축 설계 사무소 스튜디오더원을 운영한다. 단독주택 등 소규모 건축물의 설계를 중심으로, 오래된 공간의 리모델링과 도시 재생에 관심을 갖고 연구한다. 대표작으로는 광주 부메랑 하우스가 있다.

글 이새미 | 사진 박찬우 | 설계 스튜디오더원(070-4416-1005, www.thewon.kr)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8년 6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