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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배동 빌라 '호박이 넝쿨채'의 매력 거친 철망 사이로 흐르는 달콤한 불빛
철망, 콘크리트, 돌…. 주택에 좀처럼 쓰지 않는 거칠고 강한 소재들이 이름하여 ‘호박이 넝쿨채’라 불리는 이 집에 당당히 자리 잡고 있다. 이색적인 마감재 위에 놓이니 전형적인 클래식 가구도 한층 세련된 빛을 띤다. 이곳의 인테리어를 결정하는 8할은 마감재임이 분명하다. 그리고 나머지는 철망 사이를 따뜻하게 흐르는 감각적인 조명이고.

1 집을 들어서는 현관부터 철근을 입체적으로 장식한 모습이 예사롭지 않은 첫인상을 선사한다. 현관 너머로 보이는 복도 전경. 자칫 차가울 수 있는 마감재의 느낌을 중화시켜주기 위해 손맛 담긴 조각보 조명을 설치했다. 조각보는 작가 장미선 씨 작품. 
2 주방은 이 집에서 가장 실험적인 모습으로 완성되었다. 주방 확장 공사를 하면서 뜯어내다 만 콘크리트 벽을 그대로 두고 그 위에 철망을 씌웠다. 철근 사이의 뚫린 공간으로 인해 소통의 가능성이 생겨난다. 정면에 보이는 과일 그림은 에칭 글라스에 실사 프린트한 것으로 동양화가 선수연 씨 작품.

디자이너가 가장 신날 때는 자유로운 사고를 가진 클라이언트를 만났을 때다. “마음대로 하세요.” 플랜잇의 윤석민 소장이 방배동 빌라 주인 부부의 이 같은 리모델링 주문을 듣고서 반색을 한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때론 디자이너에 대한 클라이언트의 완전한 신뢰가 가장 참신하고 매력적인 결과를 탄생시키는 동기가 되기도 한다. 윤석민 소장은 그동안 집에 대한 보수적인 관념으로 인해 섣불리 주택에 풀어놓지 못했던 새로운 시도를 이곳에 도입했다. ‘톰보이’ ‘코모도’ 등 패션 매장 작업을 많이 했던 디자인 경력에서 비롯된 그의 감각은, 실험적인 시도를 위험에 빠뜨리지 않으면서도 신선하고 멋스러운 ‘집’의 모습을 만들어냈다. 아파트만큼은 아닐지라도 세대마다 비슷한 구조를 띠는 것은 빌라 또한 마찬가지. 하지만 이 새로운 시도로 리모델링 후 이 집은 이웃 세대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180도 변신하는 데 성공했다. 스타일은 트렌디한 패션 매장을 방불케 하면서도 집으로서의 기능 또한 성실하게 담아냈다.

빌라이긴 하지만 개별적이고 특별한 정체성을 부여하고 싶었던 윤석민 소장은 이 집에 ‘호박이 넝쿨채’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호박이 넝쿨째’가 아니고? “그야말로 호박이 넝쿨째 굴러들어 오듯 이 집에 복이 깃들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붙여준 이름입니다. 마지막 글자인 ‘째’를 집을 세는 단위인 ‘채’로 바꾸어 중의적인 즐거움을 준 거예요. 지어놓고 보니 참 마음에 드는 이름이라 여러 다른 해석을 덧붙이기도 합니다. ‘호박’은 자연친화적인 웰빙을 추구하는 요즘 시대를 반영하는 말이기도 하고, 늙은 호박을 연상시키면서 풍성하고 넉넉한 마음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이 집의 조명이 보석인 호박의 황색 빛처럼 달콤하게 감도는 보물 같은 집이라는 해석도 가능하죠. 여러 가지로 다 뜻이 좋습니다.”

3 조각보를 덧댄 조명과 블루 라임스톤 대리석 벽면, 아트 월처럼 연출한 수납장이 거실의 바탕을 이룬다. 가구는 이 집 가족이 미국에서 생활할 때부터 쓰던 것. 전형적인 클래식 가구지만 독특한 마감재 위에 놓이니 그마저도 세련되어 보인다. 
4 손님 초대가 많은 이 집의 특성을 감안해 주방 앞에 세면대를 마련했다. 자연에서 그대로 가져온 듯한 돌 세면대가 시선을 끈다. 거울 속에서 빛을 뿜어내는 큐브는 감각적인 포인트.

인테리어의 8할은 마감재다 이름부터 남다른 이 집을 실질적으로 멋스럽게 만들어주는 최고의 보물은 이색적인 마감재다. 윤석민 소장이 도입한 가장 눈에 띄는 시도는 다채롭기 그지없는 낯선 소재들. 이 집의 현관에서부터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오브제처럼 입구를 장식하고 있는 과감한 철망이다. 콘크리트를 부어 굳힐 때 뼈대 역할을 하는 철근이건만, 이 집에서 철근은 콘크리트 옷을 입지 않은 채 직각으로 교차하는 뼈대를 그대로 내보이며 곳곳에서 다양하게 변주되고 있다. 현관뿐만 아니라 거실, 부엌, AV룸 등에서 철망은 그대로 기둥·가구·조명 박스의 역할을 하며 공간의 느낌을 전혀 새롭고도 매력적으로 만들어준다. 그런데 혹여 시간이 지나면서 철망에 녹이 슬지는 않을까?



1 마치 공중에 떠 있는 듯한 안방 화장대의 수납장. 하부의 조명이 에폭시 바닥에 투영되어 신비로운 느낌을 더한다.
2 침실은 파벽돌로 마감하고 깨끗한 화이트 컬러로 아늑함을 강조했다.

“오히려 부식되는 느낌이 더 매력적일 수 있지요. 하지만 투명 래커를 칠해 집 안 공간에 두기에도 무리가 없도록 마감했습니다. 이 같은 철근은 공간의 소통을 이끌어내는 장치입니다. 거칠고 무거운 느낌을 주는 소재지만 교차하는 철근의 망 사이로 빛과 공기가 자유롭게 통할 뿐 아니라 공간들이 모두 관통되어 보이죠. 다행히도 이 집의 주인들이 ‘집 안에 들이기 흉물스럽다’ ‘왜 공사를 하다가 마느냐’ 같은 불만 없이 이 시도를 유연하게 받아들여 주었어요.”

주방 공간의 멋을 최종적으로 완성시키는 것은 정면 벽을 따뜻하게 장식하고 있는 화가 선수연 씨의 과일 그림. 에칭 글라스에 실사 프린트되어 내부 조명으로 환하게 빛나는 이 그림은 은은하고도 달콤하게 공간을 장식한다. 이 벽면은 자칫 삭막한 느낌이 들 수 있는 주방을 아늑하고 따뜻하게 만드는 일등공신. 이처럼 공을 들인 주방은 요리와 손님 초대를 즐기는 이 집 안주인의 성향을 고려한 것이다. 이곳에서라면 초대받은 손님이 기분 좋은 시간을 보내는 것은 물론 돌아간 후에도 두고두고 이야깃거리로 삼을 법하다.

3 파벽돌로 마감한 AV룸. 영화를 좋아하는 이 집 식구들을 위해 철망으로 TV 테이블 겸 DVD 수납대를 설치했다. 윤석민 소장은 주택에 좀처럼 쓰지 않는 거친 소재를 도입하면서도 집으로서의 기능에 충실해야 한다는 원칙을 잊지 않았다. 곳곳에 이 같은 배려를 담아 디자인을 완성했다.
4 온통 삼면으로 거울이 부착된 드레스룸. 앞모습, 옆모습은 물론 뒷모습까지 점검하고 외출할 수 있다. 거울 안쪽은 모두 옷을 수납하는 공간.
5 아이 방의 한쪽 벽면은 컬러 글라스로 마감했다. 이를 큰 칠판 삼아 자유롭게 그리고 지우는 것이 가능하다.

차가운 마감재에 조명으로 숨을 불어넣다 돌 또한 이 집에 주요하게 사용한 마감재. 현관부터 거실로 이어지는 공간은, 바닥은 크림색의 천연 대리석으로 마감하고, 벽은 블루 라임스톤 대리석을 사용했다. 대리석은 고급스러움을 더해주지만 자칫 지루한 느낌을 줄 수도 있기 마련. 윤석민 소장은 대리석 패널을 매끈하게 평면으로 붙이지 않고 패널마다 높낮이를 달리하는 것으로 단조로움을 극복했다. 얼핏 평면인가 싶지만 가까이서 보면 올록볼록 입체감을 드러내는 벽면은 조명 빛에 따라 그 음영이 강조된다. 밋밋한 벽을 그냥 버려두지 않고 나름의 장식 효과를 내본 것인데, 이는 거실 소파 뒤편에 자리한 수납장 디자인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릇이 많은 이 집의 특성상 거실 벽면을 이용해 별도의 그릇 수납장을 빌트인으로 설치했는데, 결코 수납장처럼 보이지 않도록 나무 문 표면에 문짝의 이음매와 비슷한 골을 불규칙하게 만들었다. 마치 나무로 마감한 이색적인 아트 월처럼 보이도록 의도한 것. 이 같은 벽면 디테일은 튀지 않고 미세하기 때문에 전체 공간 분위기를 해치지 않으면서도 완성도 높은 집의 바탕을 만들어주는 데 한몫한다.


1 현관을 들어서자마자 나타나는 과감한 빨간 박스. 패브릭 질감의 벽지로 마감한 것이다. 무채색 마감재가 대부분인 이 집에서 유일한 컬러 포인트가 된다. 강렬한 원색은 집안에 생동감과 활기를 부여하고 있다. 내부는 화장실.
2 빨간 박스의 안은 이치럼 생겼다. 이곳은 자녀들이 주로 사용하는 화징실로, 간접 조명을 활용한 감각적인 디자인이 시선을 끈다. 곡선으로 마감한 모서리 벽면이 그 멋을 배가시켜준다. 조명은 이 집에서 어둠을 밝히는 빛이자 공간을 꾸미는 장식 요소로 활용되었다.

“철망과 돌에 이어 침실과 AV룸 바닥을 마감한 투명 에폭시까지, 집 전체의 마감재는 모두 현대적인 소재예요. 세련되고 감각적일 수 있지만 차가운 느낌을 줄 수도 있었는데 이를 보완하고 집다운 온기를 불어넣기 위해 조명을 이용했습니다. 따뜻한 빛으로 공간을 채우려고 한 것이죠.” 조각보를 덧대 그 은은한 색감을 퍼뜨리는 현관과 거실 천장의 조각보 조명, 친근한 과일 그림이 식감을 돋우어주는 주방 벽면의 과일 그림 조명이 뚜렷한 개성을 더하며 따뜻함을 만든다면, 곳곳에 설치한 간접조명은 은은하게 그 분위기를 보조한다. 특히 간접조명은 1층이라는 특성상 종일 어두운 편인 실내 상태를 해결하기 위해 넉넉하게 설치했다.

생동감 불어넣는 과감한 레드 큐브 천장 둘레를 따라 설치된 조명, 서랍장 밑면에 설치된 조명 등은 어둠을 밝히는 빛인 동시에 장식이 된다. 특히 세면대 위 거울에는 빛으로 스티치처럼, 큐브 그림처럼 모양을 내어 재미있는 포인트를 주었다. 이것이 애교 있는 작은 포인트라면 현관 옆에 자리 잡은 거대한 빨간 박스는 이 집 전체를 통틀어 가장 눈에 띄는 과감한 포인트. 이 빨간 박스의 내부는 화장실 공간으로, 집 전체에서 유일하게 이곳에만 강한 원색 컬러를 주었다. 이 빨간 박스는 무채색의 집에 유쾌한 생동감을 더하는 동시에 온기와 활력을 불어넣는다.

그 밖에도 집 안 곳곳에는 디자이너의 아이디어가 빛나는 흥미로운 장치가 많다. 삼면이 거울로 되어 있어 앞모습, 옆모습은 물론 뒷모습까지도 점검할 수 있는 드레스룸, 자라는 아이의 상상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거대한 메모판으로 활용 가능한 컬러 글라스 벽면, 목욕이나 반신욕 시간이 지루하지 않도록 설치한 욕조 정면의 TV 등 이곳에서는 디자이너가 분명 신이 나서 작업한 흔적이 엿보인다. 제한 없는 자유를 주었을 때 가장 흥미진진한 구상이 떠오르는 법이다. 실험적인 마감재, 거침없는 아이디어를 통해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빌라가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멋진 집으로 완성되었다. ? 글 손영선 기자 사진 박찬우그 밖에도 집 안 곳곳에는 디자이너의 아이디어가 빛나는 흥미로운 장치가 많다. 삼면이 거울로 되어 있어 앞모습, 옆모습은 물론 뒷모습까지도 점검할 수 있는 드레스룸, 자라는 아이의 상상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거대한 메모판으로 활용 가능한 컬러 글라스 벽면, 목욕이나 반신욕 시간이 지루하지 않도록 설치한 욕조 정면의 TV 등 이곳에서는 디자이너가 분명 신이 나서 작업한 흔적이 엿보인다. 제한 없는 자유를 주었을 때 가장 흥미진진한 구상이 떠오르는 법이다. 실험적인 마감재, 거침없는 아이디어를 통해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빌라가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멋진 집으로 완성되었다.

디자이너의 아우라가 느껴지는 외모와는 다르게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와 재치 있는 유머의 소유자인 윤석민 씨는 스튜디오형 인테리어 디자인 회사 플랜잇(02-575-8166, www.planitdesign.co.kr)의 대표이다. 그는 전디자인, 성도어패럴, 다원디자인, 샘스SAMS 등 큰 규모의 디자인 회사에서 인테리어 실무를 익혔는데, 서양화를 전공했던 이력 때문인지 그의 손길을 거친 공간은 하나같이 감성을 자극하는 매력적인 요소를 담고 있다. 특히 ‘호박이 넝쿨채’의 거울 위 큐브 장식이나 거실 벽면에 높낮이를 준 대리석 패널처럼 얼핏 봐서는 눈에 띄지 않는 세심한 부분에 특별한 디자인 콘셉트를 심어 놓는 것이 그의 특기. 플랜잇은 윤석민 소장과 이지순 실장을 중심으로 상업 공간 디자인은 물론 주택 공간 디자인으로도 맹활약 중이다. 주택은 사람이 잠시 머물다 가는 상업 공간과 달리 일상을 사는 공간이기 때문에 고려해야 할 요소도 훨씬 많고 그만큼 까다로운 작업이라고 전한다. 그럼에도 획일화된 아파트나 빌라에 개성을 불어넣는 디자인 작업은 보람 또한 크기에, 플랜잇 특유의 주택 디자인을 선보이겠다는 의지를 다지고 있다.


손영선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07년 3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