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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예가 송민호·금속공예가 김민선 부부 남과 여: 마주잡은 손의 힘
자동차 디자이너를 꿈꾸던 남자와 그림 그리는 게 좋았다는 여자는 첫 만남에서 서로를 알아봤다. 살며 사랑하며 서로를 성장시키고, 중심보다는 주변에 서서 진취적 삶을 함께하기로 한 송민호・김민선 작가. 부드러운 듯 단단하고 단단한 듯 부드러운, ‘흙’과 ‘쇠’의 조합은 생각 보다 아주 ‘자연’스러웠다.


“당당당!” 쇠를 아우르는 소리. 울림이 채 그치기도 전에 흙과 물, 불이 만나 타다닥 불꽃을 일으킨다. 고집 센 금속을 두드려 단단함을 부드러움으로 슬쩍 바꿔치기하는 여자. 여자가 만든 금속 오브제는 봄바람에도 스러질 것 같은 연약한 나뭇잎을 닮았다. 모든 사물이 소멸하는 불 속에서 아기 궁둥이처럼 보드랍고 말간 백자를 빚는 남자. 남자의 매끈한 도자가 품은 것은 한 치의 티끌도 용납하지 않은 집요하고도 부드러운 카리스마다. 흙과 쇠가 지닌 무심한 진심에 빠져 공예가의 길을 걷는 두 사람. 흙과 쇠, 집과 일터, 디자인과 공예…. 다른 듯 다르지 않은 부부의 삶의 결을 들여다보았다.


흙과 쇠: 부드럽거나 단단하거나
사업을 하던 부모님을 따라 인도네시아에 살다 대학에 입학하며 12년 만에 홀로 한국 땅을 밟은 민선 씨에게 민호 씨는 언제나 든든한 ‘남자 사람 친구’였다. 대학 동기에서 부부가 되기까지, 문화적 배경이 서로 다른 두 사람이 만나 이런저런 부딪침이나 고충이 없었을 리 만무하다. 하지만 두 사람은 첫 만남에서 서로를 알아볼 정도로 참 많이 닮았다. 좋아하는 것도 비슷하고, 무엇을 선택하든 방향성이 일치한다(각각 흙과 쇠라는 물성에 빠져 전업 작가로 활동하는 모습을 보라!).

“학부 3학년 때 전공을 선택하잖아요. 디자인학부에서 디자인을 전공하는 게 오히려 당연한(자연스러운) 수순이겠지만, 저희 둘 다 공예를 선택했죠. 자의 반 타의 반이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맞는 길을 잘 찾은 것 같아요.” 성적(!)이라는 숙명으로 도자 공예로 전공을 선택한 송민호 작가는 물레를 차는 순간 온몸에 전율이 일었단다. 흔히들 도자를 두고 누구나 쉬 접근하지만 결과물을 얻기가 가장 힘든 공예 분야라는 말을 한다. 특히 백자는 점력도 없고 힘도 없어 잘 붙지 못하는 재료의 특성으로 작업이 더 예민해질 수밖에 없다. 송 작가는 도자 중에서도 까다롭다는 백자토로 2년 내내 항아리를 빚었고, 대학원 졸업 후 지금까지 백자 소지를 물레 성형하거나 슬립 캐스팅slip casting(석고틀 안에 부어 성형하는 공정)하는 기법으로 생활 자기를 만든다. 안팎의 유약을 달리하거나, 형태를 변주한 합을 만드는 등 자기만의 도자 세계를 찾으려고 무던히 애쓰는 모습이 믿음직하다. 그저 그림 그리는 게 좋아 미대에 진학했다는 민선 씨 역시 손으로 무엇을 만드는 일을 할 거라는 생각은 못 했단다. “막연하게 인테리어 디자인을 공부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진로 상담을 하러 故 유리지 선생님을 찾아갔죠. 금속과 교수님께 인테리어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고 면담을 신청했으니 황당하셨을 법도 한데, 바로 ‘금속을 해라. 결이 맞다’고 하시더라고요.”

김민선 작가는 판재를 망치로 두들겨 두께를 줄여가며 표면을 확장하거나 왜곡하는, 매우 원시적 해법으로 작업한다. 그가 생각하는 금속의 가장 큰 매력은 두들기면 답이 나오는 재료의 정직성이다. 물성에 대한 이해(정교한 배합)와 다룰 줄 아는 손기술이 만나면 원하는 것을 모두 표현할 수 있다는 점도 금속공예에 끊임없이 도전하게끔 하는 원동력이 된다. “혼자 작업하면 작품을 스스로 판단해야 하는 것이 가장 어렵고 고통스러운 일이죠. 구성하고 계획을 짜고, 결과물에 대해 오케이 사인을 내는 일, 자신의 작업에 대해 100% 객관적이기가 쉽지 않으니까요. 그럴 때 파트너는 존재 자체로 쉼표 역할을 해줘요. 나에게 빠져드는 시선을 환기할 수 있는 친한 ‘친구’가 있다는 것, 늘 서로 관심을 갖고 들여다봐주는 게 작업의 원동력이 되죠.”

송민호 작가의 생활 자기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작업실 2층 쇼룸 공간. 천장고가 높은 작업실을 메자닌 구조로 반 층 나눠 백자 그릇을 전시하는 쇼룸으로 활용한다. 테이블 세팅과 꽃꽂이는 아내의 솜씨다. 

실용적으로 구성한 주거 공간. 현관 바로 앞에 주방이 자리하고 주방 안쪽으로 전망 좋은 거실이 있다. 

작은 티끌도 용납하지 않는 백자 작업에 필요한 섬세한 작업 도구들. 

딸기 케이크 디저트와 백자가 잘 어울린다. 가느다란 선이 섬세한 식물 줄기를 연상케 하는 받침 위에 금속 볼을 얹은 김민선 작가의 작품은 오브제로, 용기로 손색이 없다. 

백자 찻잔 위에 올리는 차 거름망과 스푼은 김민선 작가가 만든 작품. 

최소한의 사이즈로 콤팩트하게 제작한 조리대. 자주 사용하는 소스와 양념을 후드 위에 조르르 올린 아이디어가 재밌다.

침실 안쪽으로 작은 거실이 있는 구조. 5월에 태어날 2세를 위한 공간으로 문을 설치해 분리할 수도 있다. 
집과 일터: 경계가 있는 삶
부부는 도시 중심의 삶 대신 도시 주변의 삶을 택했다. 경기도 광주, 그야말로 더 이상 올라갈 곳이 있을까 싶을 때까지 굽이굽이 올라간 언덕에 자리한 소담한 집과 작업실. 해마다 널뛰듯 오르는 전셋값, 서울에서 이천까지 작업실을 오가는 고단함 등의 이유로 3년 전 이곳에 땅을 사고, 땅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집을 짓는(살면서 가장 큰 모험이라 여기는!) 결단을 내렸다. 집과 일터는 직사각형 건물 두 채가 ㄴ자로 배치된 구조다. 작업실 문이 열리자 문짝에 분필로 쓰인 다양한 스케치와 숫자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출근하자마자 그날 할 일을 바로 적어둬요. 이 집의 콘셉트는 사실 집과 일터의 분리예요. 집과 일터를 최대한 가까이 두되, 진입로와 출입문을 나눠 나름의 심리적 경계를 마련했죠. 작업실에서 살림집으로 바로 연결되는 문은 없어요. 전실이나 화장실 등 완충지대를 거쳐야 하죠.”

도자 작업의 특성상 일을 딱 마무리 짓고 돌아올 수 없어 몸만 집에, 정신은 작업장에 두고 온 적이 많았다는 송민호 작가. 축축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꼼꼼하게 덮는 데만 한 시간 이상이 걸리고 불을 때는 날은 꼬박 지켜봐야 하니 출퇴근 거리를 줄여 작업의 효율성을 높이는 것이 급선무였다. 작업실은 세 공간으로 나뉜다. 김민선 작가의 금속 작업 공간, 송민호 작가의 가마와 성형 공간, 그리고 2층의 작은 쇼룸. 무엇보다 한 치의 티끌도 용납하지 않는 백자 작업을 하다 보니 스스로 정리 정돈의 귀재라 말할 정도로 갖은 도구와 재료들이 완벽하게 제자리를 잡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작업장과 살림집이 만나는 중간 지점의 문을 콩 닫고 퇴근하고, 한 발짝 앞의 문을 다시 콩 열고 집으로 들어서면 작가가 아닌 부부의 일상이 시작된다. 이들의 집은 젊은 부부의 생활 패턴에 꼭 맞도록 기능적으로 설계한 공간이자, 지극히 이성적 요소로 구성했다. 주방과 거실이 있는 1층은 17평 남짓, 2층은 그보다도 작지만 꽤 커보이는 것은 군더더기 없는 디자인과 높은 천장 덕분이다. 주방의 동선과 아일랜드를 중심으로 한 가구 배치, 마감재 선택 등 인테리어는 모두 김민선 작가가 직접 했다. 아일랜드 조리대에는 송민호 작가의 그릇을 장식 겸 수납할 수 있도록 선반장으로 구성했다. 식탁과 침대 등 원목 가구는 혼수로 장만한 인도네시아산 제품이다. 한때 인테리어 디자이너를 꿈꾸기도 했던 김 작가는 집을 지으면서 집이 그냥 ‘디자인’만은 아니라는 아주 값진 공부를 했단다.

“모두에게 그렇겠지만 작가 역시 저녁 시간이 굉장히 중요해요. 여가 시간의 밀도를 높여 삶을 살찌워야 새로운 것을 창조할 수 있으니까요. 그렇기에 주방은 삶의 균형을 맞춰주는 사적이면서도 공적인 공간입니다. 생활 자기는 직접 써봐야 좋은 제품을 만들 수 있으니까요. 내 가족이, 내 친구가 써보고 좋다고 하는 물건은 더 믿을 만하지 않을까요?” 부엌일을 하고 작업을 시작하는 것과 부엌일을 안 하고 작업을 하는 것은 완전히 다를 터. 남편의 백자를 다양하게 매치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아내. 자신이 만든 금속 볼과 커틀러리를 매치하면 근사한 상차림이 완성되니 그야말로 환상의 궁합 아닌가. 


쇼룸에서 작업실로 내려가는 좁은 나무 계단. 콘크리트 벽면에 분필로 적은 ‘STUDI HOME’ 글귀가 감각적이다.

아래 생활 자기는 직접 써봐야 좋은 제품을 만들 수 있다. 실제 요리를 즐기는 김민선 작가는 남편이 만든 접시를 즐겨 사용하며 직언을 아끼지 않는다. 
디자인과 공예: ‘쓸모’라는 교차점
청자는 흙의 점력도 좋고 힘이 좋아 얇고 섬세한 것이 나온다. 하지만 백자는 쉽지 않다. 점력도 없고 힘도 없어 청자만큼 얇게 만들기 어렵고, 그렇기 때문에 형태가 단순하고 질박해진다. 간결한 디자인의 식기와 컵으로 대중과 소통하는 송민호 작가. 그가 말하는 생활 도자의 가장 큰 매력은 바로 ‘소통’이다. “커피를 즐기는 사람과 커피 잔 하나를 두고두 시간을 이야기한 적이 있어요. 입술에 닿는 부분, 즉 ‘전’이 두꺼우면 입술이 닫히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려요. 커피나 차가 밖으로 새어 나와 묻게 되죠. 따뜻한 것을 담는 잔은 입구를 약간 오므리면 열이 새 나가는 것을 막아주죠. 옛날 그릇도 보면 여름용은 살짝 벌어지고, 겨울용은 입구를 오므렸어요. 생활 자기는 관찰이자 과학이에요.”

도자를 고를 때는 바닥을 잘 봐야 한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도자를 구울 때는 바닥의 유약을 닦아내야 하는데, 유약 처리를 하지 않아 거친 바닥면을 다이아몬드 패드로 세심하게 갈아내는 공정을 거쳐야 가구에 흠집이 나지 않는다는 것. 안과 밖의 유약을 다르게 사용하는 작가는 안쪽은 조금 더 광택을 준다. 음식을 담았을 때 식감이 살아나기 때문이다. “왠지 엄숙해야 하고 선비적이어야 한다는 것은 백자가 갖고 있는 편견이자 한계예요. 하지만 지금은 조선시대와 다르잖아요. 한옥에서 한식을 담던 백자가 콘크리트 건물 안에서 세계의 음식을 담아내는 시대예요. 이 시대에 맞는 실용적 제품들이 나와야 하죠. 백자의 발전을 위해 무엇보다 편견을 깨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합은 그런 편견에 대한 제 생각을 담은 작업이죠.”

한창 준비 중인 개인전에서 합 설치 작품을 선보인다는 송민호 작가. 보통 그릇의 경우 안의 형태는 바깥 형태를 따르게 마련이다. 합이란 뚜껑이 있고, 뚜껑을 열면 합의 모양 그대로 안쪽으로 비어 있다는 게 우리가 인식하는 합에 대한 편견이다. 첫 번째 합을 열면 우리의 짐작처럼 안이 비어 있다. 두 번째 합을 열면, 어라? 접시처럼 안이 편편하게 막혀 있다. 세 번째 합은 어떤 풍경이 펼쳐질까? 나무 잔이나 금속 도구가 들어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네 번째, 다섯 번째로 갈수록 관객의 상상은 증폭된다. 드디어 마지막 합에 도달했다. 하지만 마지막 합은 아예 열리지 않을지도 모른다. 형태적으로 걸림을 만들어준 부분은 그냥 무늬일 뿐이다. “자동차 디자인을 예로 들면 콘셉트카와 상용차가 있잖아요. 컵과 접시는 상용차, 합과 항아리는 콘셉트카예요. 생활 자기로 대중과 소통하고 도자에 대한 패러다임, 방향성은 자연스럽게 콘셉트카로 표현하는 것, 그것이 생활 도자를 빚는 전업 작가의 궁극적 바람입니다.”


천장의 박공 구조를 살려 편안한 느낌을 자아내는 김민선 작가의 작업 공간. 

아내의 작업 공간과 나란히 붙은 작업실에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묵묵히 작업을 하는 송민호 작가. 

개인전 준비 작품. 백자는 점력도 없고 힘도 없어 얇고 정교하게 만들기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형태가 단순하고 질박해진다. 간결하면서도 부드러운 선의 맛이 살아 있는 송민호 작가의 작품은 정소영의 식기장에서 만날 수 있다. 

단단한 금속 판재를 불꽃에 녹여 두들기고 표면을 왜곡하는 작업을 수없이 반복하면 작고 둥근 수저가 탄생한다. 

2층은 긴 복도를 사이에 두고 양쪽 끝에 서재와 침실이 자리한다.

테이블 냅킨을 액자 프레임에 넣어 하얀 벽면을 장식했다. 
반면 지금까지 작품 위주의 작업을 해온 김민선 작가는 최근 생활 금속으로 시선을 돌리고 있다. 최근 박사 논문의 주제를 잡으며 시작한 장신구 작업 역시 소통이 주제다. 생활에서 활용하며 사용자와 소통하는 금속 장신구. 금속에 도자를 접목한 목걸이는 사용할수록 흑연이 도자 장식과 부딪쳐 거뭇거뭇해지는데 이는 단순히 낡았다는 의미가 아닌, 세월의 흔적을 도자기에 남긴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김 작가는 남편이 만든 백자 컵에 차를 우릴 수 있는 거름망과 주전자 받침 등은 물론 최근에는 금속으로 스위치 커버를 만들고 있다. “집을 지으면서 마음에 드는 스위치 커버를 찾기가 가장 힘들더라고요. 금속으로는 무엇이든 제작이 가능하니 재미 삼아 금속과 나무 등을 소재로 디자인하고 있어요. 양산이 가능한 제품으로 디자인해 상용화하고 싶은 바람도 있죠.”

상식을 지켜 잘 만든 공예품은 디자인과 마찬가지로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저절로 전파된다. 문득 좋은 도자는 아래를 봐야 한다는 작가의 말이 떠올라 잔 아래를 뒤집어보았다. 이름 대신 점 세 개가 찍혀 있다. “지금은 유명하지 않은 도예가니까 송민호라고 써도 사람들은 점처럼 인식하겠죠. 하지만 제 작업이 성숙해진 언젠가는 이 점 세 개가 ‘송민호’로 읽힐 날이 있지 않을까요? 그때까지 열심히 작업해야죠.” 일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했다는 게, 여유가 있든 없든 이 안에서 다 해나갈 수 있다는 게 행복하다는 부부. 그야말로 대한민국 엘리트 코스를 착실히 밟아온 이들이 첫눈에 반해 부부가 되고, 중심보다는 주변에 서서 서로를 성장시키는 모습이 아름답다.

글 이지현 기자 사진 박찬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6년 4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