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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확의 기쁨이 있는 농장 파머스 대디
공간 디자이너 최시영은 농장 파머스 대디의 주인, ‘농사짓는 건축가’다. 일찌감치 정원 문화를 예견하고 텃밭 디자인의 중요성을 설파해온 그는 작물과 꽃나무가 조화롭게 어우러진 농장과 그린하우스를 통해 자신은 물론 이웃에게 치유의 시간을 선물한다.

여유와 사색을 즐길 수 있는 쉼터가 농장 곳곳에 보물처럼 숨어 있다. 이곳에서 자연의 속살을 내밀하게 들여다볼 수 있다.

파머스 대디의 첫 수확을 축하하기 위해 최시영 디자이너와 이웃 농부들이 포틀럭 파티를 열었다.
서울에서 한강과 팔당호를 따라 차로 40여 분 남짓 달리면 광주시 남종면 삼성리에 위치한 농장 ‘파머스 대디Farmer’s Daddy’에 다다른다. ‘Feel the Breath of Nature’라고 적힌 담장 너머 싱그러운 정원과 그린하우스가 반갑게 맞아주는 곳. 오늘 그곳에서 첫 수확의 기쁨을 나누는 팜 파티가 열렸다.

꽃 피고 열매 맺는 풍요의 정원
“농장이라 하기에 넓은 땅은 아니지만 ‘팜’과의 연결 고리를 이어가고 싶었어요. 그래서 파머스라는 단어를 사용했고, 여담이지만 먼 훗날 막내 아이가 제 꿈을 실컷 펼친 뒤 종착역으로 이곳을 찾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파머스 대디라는 이름을 지었습니다.” 정원은 한 걸음 가까이 다가가서 보면 대부분 밭이다. 탐스럽게 열린 채소며 과일, 허브밭을 중심으로 들꽃이 피어 있고, 수로 양옆에는 사과나무가 일렬로 자라 있다. 농장의 가장자리를 따라 조성한 은행나무 둘레길을 찬찬히 걷다 보면 벤치와 오두막, 덱이 쉼표처럼 곳곳에 숨어 있고, 돌계단을 따라 오르면 퍼퓸 코티지도 마주하게 된다. 각종 가드닝 도구를 보관하고 농장에서 얻은 영감을 바탕으로 향수와 디퓨저를 연구하기 위한 공간으로, 뾰족한 박공지붕은 목가적 풍경을 자아내고, 사면의 유리창은 하루하루 변화하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코티지 안으로 끌어들인다. 정원을 가로지르면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온실, 그린하우스가 나온다. 다채로운 초록 식물을 마음껏 향유할 수 있는 곳. 세월이 내려앉은 빈티지 가구와 소품, 형형색색의 유리병은 그가 유럽에 다녀올 때마다 하나둘 모은 애장품이다. 클래식한 영자 신문에 꽃이나 과일, 곤충 그림을 그린 작품부터 천연 비누&향초, 정원 일의 즐거움을 더해줄 가드닝용품까지 재미있고 진귀한 아이템이 가득하다. 때때로 이곳에서 수확한 작물은 물론 인근 농장의 작물도 함께 판매한다.

파티는 그린하우스 뒤쪽에 프라이빗하게 꾸민 그래스 가든에서 최시영 대표와 마을 농부들이 각자 수확한 작물로 음식을 만들어오는 포틀럭으로 열렸다. 파머스 대디의 첫 수확을 축하하는 자리인 만큼 대화의 주제는 단연 파머스 대디의 출발이었다. 그가 이곳을 계획한 것은 10여 년 전의 일이다. 1세대 공간 디자이너인 그는 오랜 세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해오면서도 한국 특유의 ‘빨리빨리’ 문화에 염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쉴 새 없이 바쁘게 지내다 보니 어느 날 정신세계가 무너졌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막연히 쉬고 싶은 마음뿐이었죠. 도시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거예요. 그러다 식물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정원과 농사에 관심이 생기면서 15년 만에 옛 농장을 찾았어요. 밭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숲의 일부로 변해 버린 이곳을 개간하기 시작했습니다. 오늘 파티에 초대한 이춘열 이장과 안호현 농부, 박태성 농부는 오래전부터 알아온 이웃인데, 모두 유기 농법으로 농사를 짓고 있어서 텃밭을 가꾸는 데 많은 도움을 받았지요.” 첫 개간 작업을 마쳤지만 폭우에 텃밭이 망가지자 그는 본격적으로 가든 공부를 시작하고, 오경아 가든 디자이너와 함께 영국의 정원을 답사하며 농장에 미감을 불어넣기 시작했다. 그리고 4년 전부터 주말은 물론, 평일에도 한 번씩 이곳을 찾아 손수 농장을 가꿔나갔다.

그린하우스에서는 최시영 디자이너가 선택한 다양한 저원 아이템과 라이프스타일 용품을 판매한다.향기로운 차 한잔 즐기기에도 좋다.

숲과 농장 사이에 지은 그린하우스 전경.

관리 도구장 겸 향수와 디퓨저를 연구하는 퍼퓸 코티지.

갖가지 작물과 꽃나무가 조화를 이룬 아름다운 농장.

농장 한가운데 있는 우물과 수로는 그림 같은 풍경을 연출한다.

유기 농법으로 재배한 색색의 작물들.

직접 식물을 심거나 분갈이를 할 수 있도록 농장 한쪽에 가드닝 작업대를 마련했다.

이국적 분위기를 자아내는 파머스 대디의 그린하우스.

밭도 예쁠 수 있다
2천 평 대지에 농장과 온실, 퍼퓸 코티지가 오밀조밀 모인 파머스 대디. 남녀노소 누구나 이곳을 방문한 사람은 농장을 거닐거나 벤치에 앉아 사색을 즐기고, 온실에서 차와 커피를 마시는 등 저만의 방식으로 자연과 교감을 나눈다. 파머스 대디가 문을 열자 시골 마을에 모처럼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몇 해 전, 일본 니가타현 에치고쓰마리 지역에서 열리는 아트 트리엔날레를 관람했어요. 심각한 고령화 문제를 겪고 있는 농촌 지역에서 3년에 한 번씩 대지의 예술제를 여는데, 전 세계 아티스트가 참여해 논과 밭, 폐교에 예술 작품을 전시하지요. 쌀, 사과 같은 지역 농산물도 판매하는데, 패키지 디자인을 보고 굉장히 충격을 받았습니다. 우리라고 하지 못할 이유가 있을까요?” 유럽과 동남아시아에서는 밭에 꽃을 심고, 아름답게 가꾸는데 유독 우리만 천편일률적으로 밭과 비닐하우스를 만드는 점이 안타까웠던 그는 이곳 파머스 대디를 통해 도시인에게 치유의 환경을 제공하고, 낙후된 농촌 마을에 활 력을 되찾아주는 것이 바람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밭이 예뻐야 한다는 것. 관행을 벗어난 그의 온실을 두고 주위에서는 갑론을박하기도 했다. 과거 비닐하우스를 지을 때 가이드를 따랐을 지라도, 이제는 개성을 담아 보자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가 말하는 밭 디자인은 시대적 유행이 아니라 커다란 물결을 따른 것이다. 소박하지만 아름다운 밭을 통해 사람들은 혼탁한 세상에서 자신을 보호하는 힘을 얻고, 시골 마을에는 활력을 되찾아줌으로써 자연스럽게 부가가치를 이끌어낸다.

“앞만 보고 달려온 지난날과 정반대의 길을 걸으면서 삶의 균형이 맞춰지기 시작했어요. 반려 식물을 통해 정신을 치유하는 시간도 쌓여갔고요. 무엇보다도 후세를 위해 우리가 지금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원은 10년 이상을 가꿔야 비로소 모습을 갖추기 시작한다는데, 햇수로 4년이 되었으니 정교한 디테일이 더해질 앞으로의 시간들이 더욱 기대된다. 예술 전시회와 논두렁 패션쇼, 야외 음악회 같은 다채로운 문화 행사도 기획 중인 파머스 대디는 작지만 위대한 대지 예술의 무대가 되어 시골 마을의 풍경을 차츰 물들여갈 것이다.

주소 경기도 광주시 남종면 삼성리 380
문의 070-8154-7923
입장료 성인 8천 원, 어린이 6천 원

글 이새미 기자 사진 이우경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7년 10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