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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두면 쓸모 있는 신비한 디자이너의 요리 토크
쿡방, 먹방 등의 신조어가 생겨났을 만큼 요즘 최고 화두는 음식이다. 특히 SNS를 통해 모든 걸 알리는 시대, 어느 때보다 좋은 그릇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이에 보편적 미감을 추구하는 도자기 브랜드 구겐Guggen은 론칭에 앞서 요리와 그릇을 좋아하는 디자이너 4인과 함께 요리를 주제로 수다를 풀어놓았다.

위 요리와 그릇을 좋아하는 4인의 디자이너가 강남방 경한식에 모였다.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이인기, 소선하, 이경미, 김경균 디자이너.
장마가 한창이던 7월 어느 날, 논현동에 있는 서울식 컨템퍼러리 한식 레스토랑 ‘강남방 경한식’에서 요리와 그릇을 좋아하는 이경미 사이픽스 대표, 소선하 쏘크리에이티브 대표, 김경균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디자인과 교수, 이인기 디자인 소호 대표가 모여 브런치 시간을 가졌다. 평소 요리를 좋아하고 그릇에 관심 많기로 유명한 이들의 화두는 당연히 음식. 즐겨 하는 요리로 시작한 이들의 대화는 도시락, 플레이팅, 도자기 역사, 레스토랑 문화 등을 거쳐 각국의 문화와 역사로 이어지며 디자인으로 마무리되었다. 귀담아들으면 들을수록 디자인에 쓸모 있는 신비한 잡학 지식으로 채운 푸짐한 점심 한 상.

이경미 저는 평소 페이스북에서 김경균 교수님의 도시락을 무척 흥미롭게 봤어요. 딸을 위한 도시락이라고 하던데 그 얘기 좀 들려주세요.

김경균 둘째 딸이 대학에 입학하고부터 3년 동안 도시락을 싸줬어요. 중ㆍ고등학교 때는 학교에서 급식을 해서 싸줄 기회가 없었고, 생활하는 시간대도 달라 대화가 끊긴 채 어색한 사이가 됐거든요. 그래서 도시락을 싸주기 시작했어요. 처음엔 안 가져갈 줄 알았어요. 크게 기대하지 않았는데 도시락을 싸놓으면 잘 가져가더라고요. 그러더니 어느 날은 딸이 먼저 다가와 말을 거는 거예요. 친구가 부러워하더라, 오늘은 뭐가 맛있다라면서요.

이인기 요리를 하다 보면 편집 디자인과 참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크리에이티브도 중요하지만 글, 사진, 그림 등의 요소를 어떻게 잘 모아서 어떤 종이 위에 어떤 결과물로 낼 것이냐의 문제잖아요. 요리도 재료를 어떻게 다듬고 음식을 만들어서 그릇 위에 담을 것인지가 중요하지요. 담음새에 따라 맛도 달라지는 것 같고요.

김경균 저도 요리를 하고 도시락을 싸보며 디자인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특히 도시락은 국물이 없어야 하고, 식어도 맛있어야 하며, 한정된 공간 안에서 영양가와 색감의 균형을 맞춰야 하는 것이 디자인 과정과 비슷한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학생들에게 요리를 잘하는 사람이 디자인도 잘한다고 말해요.

소선하 음식은 기억이고 추억이잖아요. 김경균 교수님은 도시락으로 따님에게 좋은 추억을 선물하신 것 같아요. 저희 집은 9대 종손이라 어릴 적부터 잔치와 제사가 정말 많았어요. 자연스럽게 대가족이 모여 요리하는 모습을 자주 봤고 상차림을 돕기도 했죠. 지금은 어머니의 30~40년 된 그릇을 물려받아 쓰는데, 평범한 음식도 그 그릇에 담으면 괜히 맛이 다르게 느껴지더라고요.

김경균 소선하 대표님의 말처럼 그릇에 따라 맛도 달라지는데, 요즘엔 고급 레스토랑에서도 아무렇지 않게 멜라민 그릇을 사용해요. 이런 점은 좀 아쉬워요. 다른 분들은 집에서 어떤 그릇을 사용하는지 궁금하네요. 저는 대부분 흰색 그릇을 사용합니다.

이경미 제 경우엔 무늬가 있는 그릇은 요리를 해치는 요소가 되는 것 같아 점점 피하게 되더라고요. 대신 무게, 디테일, 질감 등 소소한 부분을 꼼꼼히 살피는 편이에요. 지금 여기, 강남방 경한식의 점심에 사용한 구겐 그릇은 편안한 인상을 줍니다. 국물이 있는 반찬을 담기에도 좋고, 색이 무난해서 다양한 상차림에도 잘 어울릴 것 같아요. 다만 검은색 그릇은 이가 나가면 흙색이 눈에 띌 것 같아 조심스럽긴 하네요.

이인기 저는 그릇의 이가 나가도 거리낌 없이 쓰는 편인데, 제 주변에는 싫어하는 분도 많더라고요.

이경미 중국은 베이징 올림픽을 개최하기 전만 해도 고급 레스토랑에서도 이 나간 그릇을 사용했어요. ‘우리 집은 맛집으로 유명한, 단골이 많아서 그릇을 많이 사용했다’ 라는 의미였거든요.

김경균 일본에는 긴쓰키라는 문화가 있습니다. 도자기를 쓰다 깨지면 조각을 맞춰서 금으로 때우는 거예요. 긴쓰키 특유의 아름다움이 있지요. 그래서 보기 좋게 깨질 때까지 일부러 깬 다음 금으로 잇는 악취미까지 생기기도 했어요.(웃음)

이경미 도자기의 강도가 높아진다면 가정뿐 아니라 식당에서도 좀 더 쉽게 도자기를 사용할 수 있지 않을까요?

김경균 음식과 관련해 일본의 그래픽디자이너 스기우라 고헤이의 말이 생각나네요. 일본의 디자인을 비빔밥에 비유했어요. “일본이 가지고 있는 것은 빈 그릇뿐이다. 가장 많은 양을 차지하는 흰쌀밥은 중국 것이고, 다양한 나물은 여러 아시아 국가에서 받았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고추장과 참기름은 한국 것이다. 우리는 이것들을 빈 그릇에 받아서 잘 비빌 뿐이다.” 저는 이 말에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가 비어 있어야 한다는 것 같아요. 그릇이 비어 있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비어 있는 그릇을 보며 담음새를 생각하는 것, 이는 디자인도 비슷한 것 같습니다.


내강외유형 생활 도자기, 구겐

왼쪽 구겐은 고령토와 티타늄을 배합한 검은 흙을 사용해 색이 한결 깊이 있고 편안하다.
한국의 식문화가 다양해지고 테이블웨어에 대한 안목이 높아진 만큼 우리를 표현해줄 그릇이 필요한 시점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네 사정은 어떤가? 국내 브랜드보다 유럽 브랜드를 선호하고, 일본의 도자 문화를 칭찬한다. 여기에 아쉬움을 느낀 도자기 브랜드 구겐은 그동안 우리 그릇에 대한 아쉬움을 보완한 제품을 선보인다. 황호영 구겐 세라믹사업본부 상무는 “우리 그릇은 두껍고 무거운 점이 늘 아쉬웠는데, 이를 개선하기 위해 소재 연구부터 시작했다. 그리고 오랜 시간 사용해도 질리지 않으며, 다양한 음식을 담을 수 있는 보편적 미감의 디자인을 추구한 결과가 바로 구겐이다”라고 말한다. 얇고 가벼우면서도 단단한 그릇을 만들기 위해 구겐이 첫 번째로 한 일은 소재 개발이다. 도자기의 기본 원료인 고령토에 티타늄을 배합해 강도를 높인 것. 가마 소성을 하면 뽀얀 색을 띠는 일반 도자기와 달리 구겐의 도자기는 티타늄으로 인해 검은색을 띤다. 형태는 가장 기본부터 시작하자는 철학에 따라 극한의 미니멀을 추구하지만, 식탁 풍경이 한결 부드럽도록 리넨 같은 편안한 소재의 원단과 자연에서 얻은 색을 기본으로 한다. 문의 02-2600-8452

글 박은영 사진 김정한 장소 협조 강남방 경한식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7년 8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