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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한옥 풍류와 문화의 집, 함양당
자연과 문화와 사람이 함께 숨 쉬는 공간, 경기도 광주 이석리에 위치한 함양당에서 어느 초여름 날 펼쳐진 소박한 잔치에 <행복>이 다녀왔다.

‘만취당’이라고 적힌 비비비당 류효향 대표의 족자와 권연아 씨의 컬렉션 중 하나인 상주 곶감 궤, 도예가 권대섭 작가가 빚은 백자가 함께 놓인 함양당 안채. 다실로 꾸민 이곳에서 숙우회 회원이 고요한 가운데 홀로 앉아 명상하며 차를 즐기는 행다법인 ‘독좌’를 시연하고 있다.
눈앞에 그림처럼 펼쳐진 팔당호를 바라보며 돌담 길을 따라 들어서면 나타나는 아담한 한옥 ‘함양당含陽堂’. 한눈에 봐도 이리저리 생활의 쓰임새에 맞게 레노베이션한 실용 한옥이다. 부산 달맞이고개에 위치한 차실 ‘비비비당’ 류효향 대표의 며느리이자 골동 미술품 컬렉터인 권연아 씨가 이 집의 안주인. 30대 중ㆍ후반의 젊은 부부가 웬 한옥이냐 싶을 수도 있지만 사실 이 부부는 전통문화와 예술에 대한 각별한 애정으로 철저한 고증을 거친 전통 혼례를 치른 주인공이다(<행복> 2014년 10월호 소개). “결혼 전 교제를 허락받기 위해 남편과 함께 함양당 바로 윗집인 부모님 댁에 왔어요. 바쁜 일상에 쫓겨 그런지 남편 역시 이석리의 풍요로운 자연환경에 한눈에 반한 눈치더라고요. 결혼 후 판교에서 신혼 생활을 시작했는데, 그때도 틈만 나면 이석리 얘기를 했어요. 주말에 시간 날 때마다 이석리에 자주 와서 시간을 보내다 보니 우리 둘 다 ‘이곳에 살아도 좋겠다’는 생각에 이르렀지요.” 원래 화가 김병종 작가 부부 한옥이었던 함양당은 그렇게 권연아 씨 부부의 보금자리가 됐다. “2009년 김병종 교수님께서 왕십리에 있는 1백50년 된 한옥을 그대로 옮겨 지으신 집이에요. 집을 내주기 쉽지 않으셨을 텐데, 아마도 제가 어릴 때부터 자라는 과정을 지켜보셨기에 남다른 애정으로 저희 부부에게 집을 내주신 것 같아요. 그래서 저희도 교수님의 뜻을 생각하며 한옥의 큰 틀은 바꾸지 않은 채 소소하게 조금씩 손보며 살았지요. 출산 2주 전 만삭의 몸으로 함양당에 이사 왔어요.”

본격적 행사 시작에 앞서 숙우회 회원이 말차 시연을 선보이고 있다.

광주 이석리에 위치한 함양당 터는 연극계 원로 김정옥 선생이 풍류를 즐기던 곳이다. 2009년 화가 김병종 작가가 왕십리에 있는 1백50년 된 한옥을 옮겨 지었고, 이후 권연아 씨 부부가 살림집으로 쓰다 최근 문화의 집으로 재탄생시켰다.

실용 한옥의 이유 있는 변신
권연아 씨 부부는 함양당에서 딸아이를 얻고, 그 아이가 마루를 기어 다닐 때까지 이곳에 살았다. “저는 도예가이자 고미술품 컬렉터인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서 이미 10대 시절부터 조선 목기, 도자기 등을 모으기 시작했는데, ‘유나 컬렉션’은 옛 물건이지만 모던함이 깃든 물건이 주를 이루거든요. 함양당 역시 오래된 한옥이지만 그런 느낌이 들지 않도록 이렇게 저렇게 재미있게 꾸미고 살았어요. 이른바 ‘펑키 한옥’이죠.(웃음)” 딸아이가 조금씩 자라고, 남편의 출퇴근이 불편해지면서 권연아 씨 부부는 다시 거처를 판교로 옮겼다. “비워두기 아까운 공간이잖아요. 팔당호가 바로 눈앞에 그림처럼 펼쳐지고, 가을에 3백 년 된 은행나무 잎이 바람에 흩날릴 땐 그 풍경이 그야말로 그림 같아요.” 자연과 한옥을 사랑한 이 젊은 컬렉터는 친정아버지와 오랫동안 차 문화를 공부해온 시어머니의 뜻을 이어 이 아름다운 한옥에서 무언가 특별한 일을 도모하고자 했다. “제가 어린 시절 김 교수님이 이곳에 한옥을 짓기 전엔, 이 터에 초가집이 한 채 있었어요. 연극계 원로인 김정옥 선생이 집주인이셨죠. 눈에 선해요. 달이 뜬 밤이면 박정자 선생님, 손숙 선생님 같은 분들이 하나둘 모여들었죠. 시도 읊고, 노래도 하고, 하루 걸러 판소리 판이 펼쳐지기도 했고요.” 어린 시절 기억을 살려 함양당에 옛터의 예술적 혼을 불어넣고 싶었다는 권연아 씨. 시어머니인 류효향 대표 역시 며느리의 이 기특한 생각에 대찬성이었다.

함양당을 살림집에서 새로운 문화 공간으로 재탄생시키기 위해 가장 신경 쓴 부분은 바로 우물가. “제가 어릴 때 소꿉장난하던 우물가예요. 30여 년이 지난 지금 그곳에서 이런 행사를 치루다니 더 특별하네요. 우물이 집 안에 있으면 안 좋다고 해서 아주 오래된 나무를 가져다가 함양당과 우물가 중간에 현문을 세웠어요.” 오랫동안 인연을 맺어온 조경 전문가에게 부탁해 정원도 손봤다. 있는 듯 없는듯, 집 앞마당에 이석리의 자연을 그대로 들인듯 소박하고 자연스럽다. 마루에 앉아 고개를 돌리면 오른쪽으로는 팔당호가, 왼편으로는 3백 년 수령의 은행나무와 1백 년 된 우물가가 있는 한옥 함양당. 5월의 어느 따사로운 오후 이곳에서 첫 번째 문화 행사가 열렸다.

창고 공간으로 쓰고 있는 별채.

권연아 씨의 사촌 시누이 류하늬 씨가 궁중무용 ‘춘앵전’을 선보이기 앞서 공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함양당의 현문을 지나면 나타나는 이석리의 1백 년 된 우물가. 이곳에서 숙우회 회원들이 둘러앉아 ‘청음’ 다법을 시연하고 있다.

행사가 끝난 후 함양당 윗집인 권대섭 도예가 집에서 맛본 깔끔한 차식. 발우공양을 연상시키는 깔끔한 음식으로 구성했다.

손님맞이를 위해 권대섭 도예가의 집 앞마당에 모습을 드러낸 투박한 매력의 옛날 밥그릇들.

차와 춤, 그리고 함양당
빛 좋고 바람 좋은 초여름 오후, 갤러리 관계자, 한복 디자이너, 스타일리스트, 컬렉터 등 평소 비비비당 류효향 대표, 권연아 씨와 인연을 맺어온 스무명 남짓한 귀한 손님들이 초대장을 손에 들고 함양당으로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행사의 첫 번째 순서는 바로 함양당 바로 뒤쪽에 자리한 1백 년 된 우물가에서 진행한 차 시연 ‘행다行茶’. 숙우회 회원 네 명이 우물가에 둘러앉아 들꽃을 꺾어 꾸민 바구니를 옆에 두고 찬찬히 차 시연을 선보였는데, ‘청음淸蔭’이라고 부르는 이 다법은 ‘맑은 그늘’을 뜻하는 그 이름답게 벗들이 함께 시원한 나무 그늘에 앉아 차를 나누는 들차 행다법이다. 숙우회 회원이자 류효향 대표의 둘째 며느리인 원소윤 씨가 들에 핀 꽃을 꺾어다 꽂아 소박하게 꾸민 바구니에서 찻잔과 차탁, 절수기와 향과기를 차례로 꺼내 차를 우려 벗들에게 돌린다. “이때 차 향기가 바람에 날아가지 않도록 깊은 통잔을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지요.” 며느리의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던 류효향 대표가 손님들에게 설명을 얹는다. 멀리서 들려오는 뻐꾸기 소리를 들으며 우물가 그늘에 둘러앉아 차를 나누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자니 이내 잡념이 사라지고 마음이 평온해진다. 돌이 많아 ‘이석二石리’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마을. 나지막한 돌담이 안내하는 정겨운 흙길을 따라 걸어와 마을 사람들이 우물가에서 보냈을 그 시간을 상상하니 우물 위쪽에 쌓아 올린 돌담이 한층 더 특별하게 다가온다.

차 시연을 마친 후 장구 장단과 피리 소리에 맞춰 시작한 춤 공연.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을 졸업하고 국립국악원 무용단에서 활동 중인 권연아 씨의 사촌 시누이 류하늬 무용수의 ‘춘앵전’을 시작으로 국립국악원 창작 악단 부수석인 이지혜 씨의 최옥삼류 가야금산조 공연, 전통춤예술원 ‘예약’ 대표이자 세한대학교 전통연희학과 염현주 교수의 진도 북춤과 안상화 교수의 이매방류 살풀이가 순서대로 이어졌다. “사촌 시누이가 국립무용단에 입단하면서 ‘언젠가 함양당에서 차 시연과 춤 공연을 함께 선보이면 참 좋겠다’는 얘기를 여러 번 했어요.” 공연을 마친 류하늬 씨는 “우리 조상들은 이렇게 마당을 무대 삼아 춤을 추지 않았나요? 제가 오늘 여러분 앞에서 선보인 ‘춘앵전’은 원래 왕 앞에서 시연하던 궁중무용인데, 문화와 예술 을 사랑하는 손님들을 모시고 격식은 최소화 한 채 아담한 앞마당에서 이렇게 선보이니 저 또한 춤을 추면서도 더욱 기뻤습니다”라며 남다른 소회를 밝혔다.

해가 저물기 시작하며 고즈넉한 분위기가 감도는 함양당 안채에서 이날 행사의 마지막 순서로 진행한 차 시연. 비비비당 류효향 대표가 고요한 분위기 속에 홀로 앉아 차 한 잔을 마주하며 잃어버린 자아를 되찾고 마음의 평화를 얻기 위한 차 수행법인 ‘독좌獨坐’를 시연했다. 벽에는 ‘만취당晩翠堂’이라고 쓰인 류효향 대표가 아끼는 족자가 걸려 있고, 차 시연에는 권연아 씨가 컬렉팅한 다기와 다구가 쓰였으며, 유나 컬렉션 중 하나인 상주 곶감 궤 바로 옆에는 이석리 억새풀을 꽂아놓은 권대섭 작가의 백자 두 병이 놓여 있다. 간결한 아름다움을 지향하는 공간인 다실에서 예술을 사랑하는 두 집안의 마음이 만나 멋지게 어우러지는 순간이었다. 차 시연과 공연에 이어 함양당 바로 윗집인 권대섭 도예가의 집에서 소박하고 조촐한 식사자리가 이어졌다. “평소 숙우회에서 행하는 다법은 불교적 색채를 짙게 띠는 편이에요. 발우 공양 수업도 많이 하죠. 오늘 손님들께 대접한 음식 역시 그릇에 지저분하게 묻어나는 음식은 최대한 배제하고 깔끔하게 준비했어요.” 일일이 씻어낸 신 김치와 권연아 씨의 시고모님이 유기농으로 농사지은 채소로 담근 장아찌, 류효향 대표의 센스가 돋보이는 아카시아꽃을 넣어 버무린 상큼한 연근 샐러드, 전복과 문어, 장작불로 큰 솥에 끓여낸 된장국 등 옛날 밥그릇에 소소하게 담아낸 깔끔한 차식茶食은 감동스러울 만큼 맛있었다.



함양당 내부. 권대섭 도예가의 백자와 한국의 전통미를 느낄 수 있는 소품이 놓여 있다.
함양당을 레노베이션하면서 새로 세운 현문.

<차와 춤 그리고 함양당>을 자축하기 위해 한자리에 모인 두 집안 가족들.

함양당 왼쪽 돌계단을 오르면 현문 넘어 1백 년 된 우물가가 나타난다.

함양당의 현판.
오랜 세월 동안 차와 미술을 공부하며 자식들에게 “사람은 누구나 문화적으로 살아야 한다”는 얘기를 입버릇처럼 해왔다는 비비비당 류효향 대표. 그는 “어쩌다 보니 가족 구성원 중에 차를 공부한 사람, 미술을 공부한 사람, 춤을 공부한 사람이 모두 있으니까요. 살림집으로 사용하던 아담한 한옥에서도 이런 문화 공연을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걸 손님들께 보여드리고픈 소박한 바람에서 시작한 행사예요”라며 웃는다. 따사로운 빛, 시원한 바람, 향긋한 차, 마음을 울리는 가야금 가락, 흥겨운 북소리와 장구 장단, 나비의 날갯짓처럼 고운 몸짓이 한데 어우러져 지켜보는 모든 이의 얼굴에 미소가 가득하던 어느 초여름 오후의 함양당. 함양당을 내려다보는 3백 년 된 은행나무 잎이 모두 샛노랗게 무르익어 바람에 흩날릴 때쯤 다시 한 번 이곳에 와서 잊지 못할 계절의 한순간을 만끽하고 싶다.

글 유주희 기자 사진 박찬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7년 7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