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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득 씨의 홈 갤러리 서까래 지붕 아래 그림과 동거하다
미술 작품은 왜 하얀 벽으로 단장한 갤러리에서만 감상해야 할까? 그것도 스쳐 지나가는 잠깐의 응시로, 조용하고 엄숙하게. 이런 의문과 아쉬움으로 전경득 씨는 자신의 집 옆에 색다른 갤러리를 탄생시켰다. 고요히 응시해야 할 그림 작품 앞에서 이야기하고 노래하고 먹고 잠자며 그림과 동거까지 가능한 ‘홈 스타일 갤러리’다.

1 이 집에는 담벼락에도 그림이 걸려 있다. 전경득 씨가 직접 그린 것으로 하얀 눈을 이고 또 다른 운치를 전해준다.
2 흰 벽을 캔버스 삼아 걸려 있는 오브제. 전경득 씨가 스케치한 모양대로 금속공예를 하는 후배가 만들어준 것이다.

암만 봐도 전경득 씨는 열정이 많은 유형임에 틀림없다. 보통 사람이라면 자신의 직업에 쏟는 노고만으로도 버거울 법한데, 그는 유아교육 사업가로 일하면서 프로 작가 못지않은 실력으로 그림을 그리고 글도 쓴다. 공부만 해도 무려 네 곳의 대학에서 서양화, 영문학, 국문학을 전공했다 하니 인생에 대한 그의 적극성을 짐작하고도 남는다. 이런 그의 열정이 얼마 전에 또 하나 일을 ‘저질렀다’. 집 옆에 또 집 한 채를 리모델링하여 홈 스타일 갤러리인 ‘스토리 하우스’를 꾸민 것. “보통 갤러리는 6시면 문을 닫지만 이곳은 저녁 늦게까지 그림을 감상할 수 있어요. 아마추어 작가나 신인 작가들이 부담 없이 전시할 수 있고, 작가의 지인들이 일을 마치고 퇴근한 후에도 그림을 보러 올 수 있지요. 공식적인 갤러리라기보다는 소규모의 개인적인 갤러리인 셈이에요.”

3 대문 옆의 정겨운 빨간 우체통. 
4 서까래 지붕 아래 벽난로가 놓여 있는 아늑한 거실 풍경. 양쪽 선반에 놓인 스탠드는 그가 프랑스 여행 때 구입한 것이다.

전경득 씨는 인왕산 꼭대기 부암동의 오래된 단층집으로 몇 년 전 이사를 올 때부터 바로 옆의 낡은 한옥을 눈여겨봐두었다. 우선은 이사 들어가는 집 인테리어를 하느라 바쁘게 동분서주한 뒤에, 숨 고르는 시간을 가졌다. 다시 기운을 차린 뒤 옆집 한옥을 홈 갤러리로 리모델링할 구상을 시작했다. “언제 무너질까 싶은 한옥이었지만 나름대로 유서 깊은 집이었어요. 통일신라시대 말기에 유명한 시인이었던 고은 최치원이 별장으로 쓰던 집터였지요. 이 동네에서 유일한 한옥이기도 했구요. 이 길을 ‘한옥 있는 골목’이라 부를 만큼 동네 사람 누구나 아는 집이었죠.” 그렇기에 곧 주저앉을 것처럼 낡았음에도 불구하고 한옥의 상징인 기와지붕만이라도 그대로 보존하고 싶었다. 그리고 내부는 평소 좋아하는 유럽의 전원 스타일로 꾸민다면 어떨까 하는 구상.

이렇게 홈 갤러리에 대한 생각으로 머릿속이 가득 차 있었던 전경득 씨는 어느 날 길을 걷다가 우연히, 자신의 취향에 딱 맞는 모습을 실현해 줄 이를 발견하게 되었다. 채 완성도 되지 않은 공사 중인 공간 하나가 그의 시선을 끌었는데 단박에 자신이 찾고 있던 감각이구나 알아차린 것. 먼지를 차단하기 위해 설치된 비닐 막이틀을 열고 다짜고짜 들어가 디자이너를 찾았다. 그렇게 해서 자신의 홈 갤러리 디자인을 맡기게 된 인물은 최근 한옥 개조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화가이자 인테리어 디자이너 김쾌민 씨. 낡아 쓰러져가던 9평 한옥을 고쳐 30평으로 넓히는데, 단 기와지붕은 그대로 보존하라는 임무를 그에게 맡겼다. 오히려 새로 짓는 것보다 더 난해할 법한 주문. “일단 지붕의 기와가 손상되지 않도록 내리고 집은 뼈대만 남긴 채 다 뜯어냈지요. 원래 건물 자리 사방으로 공간을 넓혔고, 본래의 기와를 다시 쌓아 올렸어요. 지붕이 비바람이나 추위에도 충분히 버틸 수 있도록 튼튼하게 보완해서 완성했죠.”

기존 지붕을 고집한 것을 제외하면 전경득 씨는 전적으로 김쾌민 씨를 믿고 그의 의견을 따랐다. 홈 갤러리는 일반적인 주택과 같이 침실, 주방, 거실, 그리고 별도 갤러리 공간으로 대체적인 구획을 나누었다. 그 안에 유럽의 전원주택을 연상시키는 소박한 마감재들로 바탕 그림을 그렸다. 서까래, 기둥 등 기존 한옥에서 나온 고재가 포함된 나무의 질감은 공간을 따뜻하게 만들어주었고, 파벽돌로 연출한 벽이 조화를 이루어 아늑함을 자아냈다. 이 같은 밑그림 위에 아기자기한 선반과 부엌, 길게 늘어뜨린 주방등과 알전구, 빨간 불꽃을 내비치는 벽난로로 정겨운 채색을 더했다. 낡아 쓰러져가던 한옥은 손님들을 초대하는 편안하고 쾌적한 공간으로, 그리고 갤러리답게 미적 감각 또한 뒤떨어지지 않는 모습으로 드디어 지난 1월 대변신을 완료했다.



1 아기자기한 꾸밈이 기분 좋은 입구. 오른쪽의 작은 칠판에는 그날의 손님을 반기는 환영 메시지를 적어둔다.
2 그가 그림 못지않게 좋아하는 것은 여행. 선반에는 프랑스, 이탈리아 등 여행지의 추억이 담긴 소품들이 진열되어 있다.
3 넉넉한 웃음을 보여주는 전경득 씨. 오른쪽 벽에 걸린 네 개의 시리즈 그림은 그의 작품. 알전구, 샹들리에 등 천장의 개성 있는 조명은 이 집의 또 다른 볼거리다.

“벌써 손님들이 몇 번 다녀갔어요. 현재 홈 갤러리에는 제 그림과 미대 교수이기도 한 지인들의 그림이 함께 걸려 있어요. 아, 김쾌민 씨의 크로키 작품도 있군요. 그림 걸린 이 집 안에서 사람들이 모여 차도 끓여 마시고 담소도 나누고 잠시 창밖도 바라봤다가 음악도 연주해요. 게스트룸에서 묵어갈 수도 있고요. 일상생활 공간, 자연스러운 빛 속에서 바라보는 그림이 가장 친근하고 가깝지 않겠어요?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는 갤러리의 할로겐 조명보다는 창문과 천장으로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이 집의 햇빛과 달빛 아래에서 보는 그림이 더욱 아름답다고 생각해요.”

1 이 집의 인테리어를 담당한 화가 김쾌민 씨의 크로키 작품도 멋스럽게 걸려 있다.
2 위 선반에 일렬종대로 정리된 접시가 시선을 끄는 주방. 홈 갤러리에 머무는 사람들이 편안하게 즐기다 갈 수 있도록 자신의 가장 좋은 그릇과 향 좋은 차를 준비해놓았다.

그는 아늑한 이곳을 앞으로 문화예술 공간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편안하고 사적인 갤러리로 활용하는 것은 물론, 관심사가 같은 지인들과 함께 소소한 음악 공연도 가질 예정. 뿐만 아니라 특별한 모임이나 세미나를 계획하는 사람들에게 대여할 요량도 있다. 사람들은 인왕산 자락 굽이굽이 경사진 골목길 사이의 이곳에서 머물다 간 후에, 따뜻하게 끓어오르는 찻물, 은은하게 흐르던 음악, 청명하고 맑은 공기 가운데 있었던 편안한 시간을 떠올릴 것이다. 그리고 그 속에 가족처럼 가까이 있었던 그림도.

이처럼 그림을 감상하는 방식은 그가 사는 방식과 다르지 않다. 그는 개발의 바람을 타지 않은 소박한 동네, 유동 인구도 많지 않은 부암동에 한눈에 반해 새로운 보금자리로 이곳을 택했다. 편리한 아파트 생활을 접고 굽이진 오르막길 사이 단층집으로 이사 오면서 전 주인이 세면대 대신 쓰던 낡은 고무 대야조차도 그에게는 재미있는 기대감을 갖게 하는 요소였다. 이제 그 집 옆으로 아담한 홈 갤러리까지 뿌듯하게 완성해놓은 상태. 이 모든 것을 가능케 한 그의 열정의 방향은 격식보다는 친근함, 고정관념보다는 진정한 필요로 향한 것이었다. 이들이 결국 인생을 풍요롭게 만든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1 프랑스, 모로코 등의 여행지에서 구입한 개성 강한 옷들. 특별한 날 입곤 한다.
2, 4 아늑한 이 공간은 특별한 모임이나 세미나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대여도 할 예정.
자세한 사항이 궁금하다면 전경득 씨(02-379-1404)에게 문의하면 된다.
3 별도로 마련한 갤러리 공간. 현재 각각 서울산업대학교· 단국대학교 미술대학 교수이기도 한 황용진 씨와 이상화 씨의 그림이 걸려 있다.

 

손영선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07년 2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