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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당 김현주 대표 부부 계동 골목에서 인생을 굽다
햇살 같은 웃음으로 전국구 로컬 빵집의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보여주는 이성당 김현주 대표 부부가 서울 계동 골목길에 작은 한옥을 마련했다. 지난 연말, 군산 이성당 본관 옆에는 카페와 라운지를 겸하는 신관도 오픈했다. 겉모습은 소박하되, 들여다볼수록 기품 있는 내공이 느껴지는 집. 둥글넓적한 이성당의 단팥빵처럼 담백하면서도 깊은 풍미가 느껴지는 그곳에서 또 어떤 일이 펼쳐질까?

군산 이성당 빵집의 김현주 대표가 서울 계동의 한옥을 고쳐 세컨드 하우스를 마련했다. 역ㄷ자 구조의 한옥에 별채가 붙어 ㅁ자 형태를 띠는 작은 한옥이다. 나이 먹어도 관리하기 편한 소담한 집에서 꼬물꼬물 디저트를 만들며 노후를 보낼 상상에 벌써부터 즐겁다.

장면 1. 대구에 사는 A 씨의 집에는 한 달에 한 번 택배 상자가 도착한다. 멀리 군산에서 온 노란 상자를 열면 먹음직스러운 빵이 한가득 들어 있다. 쌀과 물, 소금, 소량의 설탕을 넣어 만든 신기방기한 이 빵은 10년을 먹어도 질리지 않는다.

장면 2. 생선 가게 사장님은 매일 새벽 일터보다 먼저 찾는 곳이 있다. 하루도 빼놓지 않고 제빵사와 함께 출근 도장을 찍으니, 단골 빵집의 모닝커피와 빵 한 조각은 그에게 따뜻한 집밥과 다름없다.

장면 3. 대체 빵이 뭐길래! 비가 와도, 줄을 오래 서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일인당 단팥빵 열 개, 야채빵 다섯 개. 혹여나 빵이 떨어질까 마음이 조마조마하다.

거실에서 바라본 부엌과 현관. 가벽을 설치해 싱크대와 현관을 분리하되, 서까래 구조를 살려 답답하지 않다. 
군산의 명소 이성당 빵집에서 매일같이 펼쳐지는 일들이다. 72년 전통의 이성당은 국내에 현존하는 빵집 중 가장 오래된 곳으로 유명하다(이성당 스토리는 <행복> 2015년 1월호에 소개했다). 특히 야채빵과 단팥빵은 하루에 많으면 1만 개씩 팔릴 정도로 인기가 높다. 사람들이 너도나도 몰려 주말에는 기본 30분 이상 줄 서는 경우도 많다. 김현주 대표는 노란 이성당 봉투의 물결을 볼 때마다 감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마음이 무거워지곤 했단다. “10년쯤 됐을까요? 대구에서 매해 1년 치 빵값을 미리 지불하고 ‘블루빵’을 받아 드시는 손님이 계세요. 언젠가는 빵을 선물할 일이 있다며 이성당의 오랜 역사를 적어 넣어주면 어떻겠냐며, 편지를 써서 보내주셨어요. 저희도 미처 생각지 못한 이성당의 역사를 그분이 정리해주신 셈이죠.”

싱글 침대를 나란히 배치하기 위해 통로를 확장하고, 창을 바깥쪽으로 내어 달았다. 
본래 군산은 서해의 대표적 개항지로 일제강점기에 일본인이 많이 거주했다. 서양에서 제빵 기술을 배워온 일본인이 너도나도 군산에 빵집을 냈고 그중 가장 유명한 가게가 ‘이즈모야’였다(<빵의 백년사>에 기록). 故 이석우 씨가 광복 직후 이즈모야를 인수해 이성당으로 바꾼 뒤 이종사촌인 조천형 씨가 물려받았다. 조천형씨의 아들 조성용 씨는 980년대 초 이성당을 물려받지만, 이내 어머니와 아내에게 가게 운영을 맡기고 팥소를 전문으로 생산하는 대두식품을 창업했다. 2003년 조성용 씨의 아내 김현주 씨가 이성당의 3대 사장으로 취임했고, 2006년부터 밀가루 대신 쌀로 빵을 만들면서 이성당은 전국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우리 쌀로 만든 웰빙빵, 쌀빵의 시작이 바로 ‘블루빵’이다. 단순히 빵을 먹는 행위를 넘어 그 빵에 깃든 기억을 맛보고 싶은 고객의 마음에 응답하기 위해, 눈이 오나 비가 오나빵을 찾아온 전국구 손님들이 잠시라도 쉬어 갈 수 있게, 붐비는 시간을 피해 새벽나 밤늦게 찾는 단골손님이 부담 없이 들를 수 있도록…. 이성당 서울매장에 이어, 지난 12월 22일 오픈한 이성당 신관은 고마우면서도 죄송스러운 복합적 감정이 응집된 결정체라 할 수 있다.

침실과 단 차이가 나는 욕실. 파티션으로 샤워 부스를 만들었다. 

현관 앞 전구 조명등이 아날로그 감성을 더한다. 대문은 붉은 칠을 벗겨내고 스테인으로 마감.

단출하게, 시간을 담아가는 생활
이성당 서울 매장을 오픈하며 서울과 군산을 오가는 일이 잦아진 김 대표는 최근 작은한옥을 개조해 세컨드 하우스를 마련했다. 물나무사진관에 가기위해 우연히 찾은 계동 골목에서 만난 집. 군산에서 보낸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계동의 고즈넉함이 좋았고, 관리하기 편한 자그마한 집이라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시집와서 어머니와 함께 이성당을 맡았는데, 장사가 잘되는 게 마냥 좋지만은 않더라고요. 처음 보는 사람한테 어서 오세요, 안녕히 가세요 인사를 건네야 하는데, 그게 왜 그렇게 힘들었던지…. 그때부터 지금까지 직원들이 먹을 된장, 고추장, 간장, 김치는 모두 이성당에서 직접 담그는데, 늘 해왔던 그런 과정이 바로 지금의 이성당을 있게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30년 정도 지나니까 이성당을 생각하면 울컥울컥하고요. 아, 어머니가 그랬듯 이제 나도 자리를 내줘야 할 때가 왔구나! 그때 이 집을 만났어요.”

부엌에서 바라본 거실. 거실 너머 왼쪽으로 침실, 오른쪽에 드레스룸이 자리한다. 편안하고 쾌적한 호텔 콘셉트의 집을 완성하기 위해 화이트 컬러, 내추럴한 패브릭과 나무 소재를 최대한 활용했다. 거실 소파는 고재로 프레임을 제작하고, 시트와 쿠션을 화이트 리넨 원단으로 맞춤 제작했다. 
단출하고 홀가분하게 생활할 수 있는 작은 한옥은 평생 큰살림을 해온 김 대표에게 안식처가 되기에 충분했다. 고요하고, 절도 있고, 정돈된 삶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작은 공간에서 우아하고 편리하게 살기 위해서는 영리한 구성이 필요할 터. 이성당 서울 프로젝트에 이어 한옥 레노베이션을 맡은 신경옥 디자이너는 ‘언제, 누가 와도 편안하게 쉬다 갈 수 있는 공간’을 디자인 콘셉트로 잡았다. “호텔 객실에서도 얼마든지 영감을 받을 수 있죠. 집에는 작은 부엌과 세탁 공간이 추가될 뿐! 빳빳한 시트가 깔린 침대, 탁자와 의자 두 개, 서랍 속에 필기 도구가 약간 들어 있는 책상, 조명등, 비누와 샴푸, 하얀 타월이 있는 욕실이면 충분하잖아요? 가끔 오는 집이지만 아무것도 빠진 것이 없도록, 그러면서도 아무것도 넘치지 않도록 구성하는 게 중요했어요.”

소피 드 메이락의 <차실 이야기> 중 “그 방은 아무것도 없이 텅 비었고 좁디좁지만 드넓게 느껴진다”는 문장이 떠오르는 작은 방. 

선이 굵어 자칫 남성적으로 느껴지는 한옥에 육각 타일, 거울 등을 장식해 여성스러운 분위기를 완성했다. 

마당에 덱을 깔고 정사각형의 작은 화단을 마련했다. 
대문에서 바라봤을 때 역ㄷ자형 구조의 한옥은 정면에 주방과 거실이 있고, 왼편으로 드레스룸과 침실이 이어지는 구조. 침실에서 단 차이가 나는 욕실은 원래 따로 떨어져 있던 별채를 연결하기 위한 브리지로 메인 침실과 화장실, 게스트룸으로 이어지는 재미있는 동선을 완성한다. 또한 작은 집 개조 전문가이자 주부로서 살림 내공을 드러내는 디자이너의 아이디어도 곳곳에서 엿볼 수 있다. “내가 이곳에 살면 뭐가 필요하고, 뭐가 필요 없을까를 생각하면 아주 쉬워요. 필요한 부분은 과감히 확장하고, 필요 없는 부분은 막아 동선과 시선을 정리하면 디자인의 반은 해결되죠.” 한옥이라고 해서 굳이 좌식 생활을 고집하고 싶지는 않다는 부부의 의견을 반영해 가구는 모두 입식으로 선택했다.

화이트 싱크대도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나무 창의 힘. 
문제는 한옥 특유의 작은 방. 침대를 두려면 2m 이상의 폭이 필요하므로 쪽마루를 변형한 자그마한 통로까지 침실을 확장한 뒤 통로 바깥으로 창을 30cm 정도 내어 달았다. 침대 옆에는 부부가 앉을 수 있는 원형 테이블을 두고, 그 위에 작은 거울을 달아 재미를 주었다. 책을 읽으며 차 한잔 마시거나, TV를 설치할 경우 필요한 코지 공간이다. 주방 가구는 가장 심플한 디자인으로 고르고, 상부장의 문짝을 나무 프레임 창으로 교체했다. 다이닝 테이블 옆 냉장고와 에어컨 자리 역시 가전의 깊이에 맞춰 벽을 뒤쪽으로 밀어냈다. 전체적으로 하얀색으로 도장하되 한옥의 골조와 목재 창 일부를 살려 따뜻한 느낌을 배가한 것도 개조 포인트. 보통 한옥을 개조할 때 가장 난감한 것이 어우러지는 입식 가구를 고르는 것인데, 침대와 소파는 고재 나무로 틀을 제작해 이를 해결했다.

딱 필요한 가구만 최소한으로 둔 것이 특징. 선반처럼 벽에 매단 책상이 재밌다.

욕실장은 벽에 매입한 벽장처럼 완성했다. 

한옥에서 몇 번의 주말을 보낸 김 대표 부부는 무엇보다 세상과 단절된 듯 고요한 적막감에 반했단다. 이는 보이지 않는 단열 등의 기능과도 연결되는 대목이다. “옛날 한옥을 떠올리면 겨울에 추운 기억뿐이잖아요. 마당으로 씻으러 나가기도 싫고…. 한옥이지만 아파트처럼 동선이 연결돼 편리하고, 단열을 잘해 따뜻한 것은 물론, 외부 소음을 염려할 필요도 없죠. 남편은 황토방을 만들지 않아 아쉬워했는데, 타일을 깐 작은 방은 보일러를 켜면 온돌처럼 금방 뜨끈해져 좋아요. 마치 리조트에 온 듯 잘 쉬고 갑니다.”

시댁의 가업을 이어받아 3대 사장으로 이성당을 이끄는 김현주 대표와 남편 조성용 대두식품 대표.

줄 서서 먹는 빵집의 편안한 아지트
다시 군산. 본관 바로 옆에 자리한 신관 건물에는 원래 이성당과 한집처럼 지내온 이웃이 운영하던 슈퍼마켓이 있었다. 하지만 몇 년 전부터 아침 첫빵을 사기 위해 기다리는 인파로 옆 건물까지 줄이 똬리를 틀고 있으니, 이웃에 늘 미안했던 김 대표 부부는 옆 건물이 매물로 나오자 고민한 끝에 매입하고 신관을 오픈하기로 결정했다.리모델링은 역시 신경옥 디자이너가 맡았다. 김 대표가 원한 것은 세 가지였다. 첫째, 동네와 이질감이 없도록 옛 모습을 그대로 유지할 것. 둘째, 콘셉트가 아닌 이성당 자체로 이야기가 되는 공간일 것. 셋째, 손님이 잠시라도 편안하게 머물 수 있는 쉼터가 될 것. “예전에는 단팥빵, 야채빵 등 시그너처 빵 외에도 새로운 빵을 기다리는 손님이 많았거든요. 이성당에 새 빵이 나왔다고 하면 맛보러 오던 군산 주민들이 여전히 편안하게 들를 수 있도록 본관과 신관의 빵메뉴를 구분했어요. 본관은 기존처럼 시그너처를 포함해 70~80종의 빵을 선보이고, 신관은 신메뉴 30~40종을 선보여요.”

빵을 사서 편하게 먹을 수 있는 신관 2층 카페. 드립 커피 메뉴를 선보이며, 커피 클래스 등의 고객 참여 프로그램을 개발할 계획이다.
신관 1층에 마련한 쌀빵 시연 공간은 오랜 시간의 가치를 품은 이성당의 철학을 보여주는 상징적 쇼케이스다. 쌀식빵을 만들려면 마흔여덟 시간의 숙성과 발효 과정을 거쳐야 한다. 쌀은 물이나 소금 등 다른 재료를 받아들여 섞이는 시간이 더 오래 걸리는 재료인데,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오랜 시간을 기다린 만큼 좋은 식감과 풍미가 난다. 2층 카페는 멀리서 온 손님들의 지친 발걸음을 달래주는 쉼터요, 지역 주민의 아지트다. 가운데 홀에 커다란 테이블을 두어 커피 클래스를 진행하거나 빵 뷔페를 펼칠 예정. “48년 된 건물 외관의 타일 벽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실내도 동떨어지지 않는 느낌으로 구성하는 것이 관건이었어요. 시간별로 나오는 빵의 이동 동선, 커피 바 직원의 동선, 손님의 동선까지 모두 고려한 순환 구조를 반영해 1층, 2층 모두 가운데는 홀을 마련했죠. 서울 이성당 카페가 좀 더 묵직한 빈티지 스타일이라면, 신관은 좀 더 편안한 느낌을 가미했고요.”

군산 골목에서 주워 온 문짝으로 벽을 장식했다. 디자인은 이성당 잠실 매장으로 호흡을 맞춘 신경옥 디자이너가 맡았다. 사진 이정민(물나무 사진관).
신경옥 디자이너는 군산이라는 지역에서 느낄 수 있는 분위기를 자연스럽게 접목하기 위해 일본식 적산 가옥의 요소를 활용했다. 중앙로 골목에서 우연히 주운 오래된 목재 창을 중심으로 비슷한 문짝을 제작해 벽을 장식한 것. 이성당의 72년 역사를 한눈에 볼수 있는 옛 사진을 고재로 만든 수제 액자에 넣어 걸기도 했다. 클래스나 뷔페가 펼쳐지는 홀은 군집한 패브릭 조명등을 달아 소박하면서도 축제 무드가 전해진다. 덕분에 신관 오픈식은 별다른 장치 없이도 그야말로 동네 잔칫집 같은 분위기였다. 집을 지을 때 상량식을 하며 음식을 나눠 먹던 풍습처럼 오픈식 날 뷔페 테이블에 떡과 빵을 가득 차리고 손님을 맞은 김현주ㆍ조성용 대표 부부. 김 대표는 사실 신관이 너무 예쁘게 변신할까 봐 걱정도 됐단다. 오랫동안 몸담은 일터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다.

신관 오픈식은 동네 잔치처럼 치렀다. 2층 홀의 큰 테이블은 주말 빵 뷔페 테이블로 변실할 예정!
“미국 여행 때 갔던 한 음식점이 오래 기억에 남아요. 가격에 비해 맛도 좋고, 여행객이 찾기에 분위기도 위압적이지 않고 편안했죠. 요즘 가성비를 많이 따지잖아요. 맛과 가격은 기본에 서비스까지 삼박자를 충실히 갖췄다면 굳이 트렌디한 인테리어가 필요할까요? 신관은 신관대로 편안해서 좋고, 본관은 본관대로 시간이 지닌 공력만으로 충분히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어요.”

신관에서는 30~40종의 신메뉴를 맛볼 수 있다.
미션! ‘작지만’ 즐거운 일을 찾아라
“사실 이성당 서울 진출을 앞두고 고민이 많았어요. 이성당의 맛을 후대에 전하는 것 역시 우리의 역할이고 책임이라면 젊은 친구들과 교감하려는 노력을 해야겠지요. 신관은 그런 재미난 일들이 펼쳐질 공간입니다.” 김 대표는 4월 완공할 신관 3층과 옥탑을 젊은이들을 위한 문화 공간으로도 활용할 계획이다. 날씨가 따뜻해지면 옥탑은 시원하게 맥주 한잔 즐길 수 있는 타파스 라운지로 변신할 예정. 군산 주민들도 옥탑에서 마치 여행 온 듯 이국적 정취를 즐겼으면 하는 바람이다. 작은 콘서트나 하우스 웨딩도 상상해본다. 일을 완전히 내려놓으면 계동 한옥에 아주 작은 카페를 하나 차리고 싶다는 바람도 덧붙였다. 이성당이 자그마한 화과방에서 시작했듯, 계동골목에서 쌀로 만든 디저트를 파는 노부부의 작은 카페가 김 대표 부부가 꿈꾸는 청사진이다.

본관과 나란히 자리한 이성당 신관. 48년 된 건물 외관에서 세월의 관록이 느껴진다. 
사실 이성당의 성공기는 수많은 자영업자의 흔한 성공기와는 다른 특별함이 있다. 무리하지 않고, 자신을 믿는 일과 그곳에서 할수 있는 일을 최선을 다해 해나가며 만족하는 생활. 나눔과 채움, 미안함과 고마움, 일과 생활이 즐겁게 섞이고 제대로 발효된 모습을 보여준다고 할까? 빵의 풍미는 빵을 만드는 최소한의 재료와 발효 과정에서 결정된다. 발효와 숙성 시간을 줄이지 않고 빵마다 필요한 시간을 기다려주는 것, 팥과 야채, 물과 소금 등 기본적으로 들어가는 재료를 충분히 사용하는 것. 바로 이것이 기본을 지킨 빵 맛으로 이성당이 오랜 시간 사랑받는 비결이리라. “이 나이가 되고 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어요. (장사가 뭔지 모르고 시작한) 젊었을 때도 행복했고, 지금도 참 행복하구나. 그래서 다음 세대에게도 이 풍요로움을 전해야겠구나. 지금은 이성당 신관에서, 10년 뒤에는 이 계동 한옥에서 이뤄지지 않을까요?” 계동 한옥에서 또 어떤 구수한 냄새가 풍길지 자못 기대된다.

글 이지현 기자 사진 박찬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7년 2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