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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공예와 기계산업 사이에 탄생한 매혹의 양식 [아르데코스타일 1] 아르데코란?
아르데코 스타일은 1900~1930년,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 사이에서 아주 잠깐 존재했다. 그런데 이 짧은 순간 속에 모든 현대적인 양식의 시초가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수공예 시대에서 산업화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등장한 이 사조는 뉴욕 크라이슬러 빌딩과 같은 건축에서부터 비롯되어 가구, 생활 소품, 패션 전반에 걸쳐 혁신적인 디자인을 보여주었다. 장식미와 기능성, 화려함과 단순함이 공존하는 이 매혹의 스타일은 올해 초반부터 파리를 중심으로 다시 주목받고 있다. 오리지널 아르데코 가구가 파리 현지 갤러리와 옥션을 통해 고가에 거래되고 있고 국내에서도 벌써 몇몇 트렌드 세터들은 그 매력에 빠져 있는 상태다. 고급스럽지만 기계적이고, 화려하지만 모던한, 이 실험적인 스타일에서 새로운 인테리어에 대한 갈증을 풀어본다.

아르데코의 정수는 장식보다 재료에 있다
미술사가들은 시대마다 그 특징에 따라 별명처럼 이름을 붙이는 습관이 있다. 그들은 1900~1930년대까지 아르데코 스타일이 나타났던 30년을 ‘미친 시대 an? folle ’라고 부른다. 아르누보가 탄생한 시기인 1890~1900년대를 일컫는 ‘벨 에포크 bell ?oque (아름다운 시대)’와는 극명하게 대비되는 명칭이다. 이 시기는 왜 ‘미친 시대’였을까?

기나긴 제1차 세계대전은 끝났다. 파리에는 다시 재즈와 탱고의 선율이 흘렀다. 전쟁 동안 남자들을 대신해 산업 전선에 나가 나라를 지탱했던 것은 강인한 여인들이었다. 덕택에 담뱃대를 길게 잡고 밤새 술을 마시거나 춤을 추는, 두려움 없고 자유로운 여성상이 새 시대의 이미지로 자리 잡았다. 사람들은 물랭루주에서 샴페인을 들이켜며 밤새도록 춤을 추고, 에디트 피아프의 노래를 들었다. 그뿐이 아니다. 발전한 군수품 산업은 일반 대중에게도 생활의 즐거움을 선사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기차를 타고 여행을 떠났고, 비행기를 이용하는 부자도 있었다. 거리에는 하수도 시설이 미비한 옛날식 건물이 철거되고, 엘리베이터와 중앙난방, 욕조와 같은 신문물을 갖춘 건물이 들어섰다. 이들은 휘어진 곡선과 조각 장식 대신 네모반듯하며 완벽한 대칭 구도에 격자무늬를 장식하고 있었다.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와 말레 스티븐 Mallet Steven, 훌만Rulhmann 같은 인물이 새 시대의 건축가로 두각을 나타냈다. 이런 건축계의 바람은 필연적으로 실내장식 디자인의 변화를 가져왔다. 전환기의 가능성과 혼돈이 함께 일렁이는 이 변화의 시절을 후대의 사람들은 ‘아르데코’라 부르고 ‘미친 시대’라 별명 지었다. 그러나 아무리 혁신적인 디자인이라 해도 사람들이 그것을 익숙하게 느끼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기능이 형태를 앞선다는 이론을 펼치며 전통 장식 요소를 깡그리 없애버린 기능주의자들의 목소리가 높아졌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전히 옛날식 장식을 좋아했다. 때문에 제아무리 야심만만한 아르데코의 디자이너라도 장식을 완전히 없애지는 못했다. 다만 이전 시대인 아르누보의 가녀리고 아름다운 꽃 조각, 유연하게 흐르는 나무 기둥 장식 대신 동일하게 반복되는 꽃 패턴과 원, 삼각형, 사각형의 기하학적 모티프로 변했을 뿐이다.

아르데코의 가장 큰 특징은 사실 장식보다는 재료에 있다. 군수 산업으로 돈을 번 부자들은 유행에 따라 단순하고 직선적인 디자인을 탐했다. 그러나 나무를 네모반듯하게 잘라 고작 동그라미 몇 개를 새긴 서랍장을 주문하고 보면 역시나 초라하게 느껴지게 마련이다. 무언가 이 현기증 나게 매혹적인 시대를, 도처에 새로운 것들이 출현하는 감각의 시대를 표현해줄 요소가 있어야 했다. 이런 생각이 바로 역사상 가장 화려한 재료를 아낌없이 썼다고 평가받는 아르데코의 특징을 만들었다. 식민지 인도에서 티크를 접하고 남아메리카의 거대한 고무 농장에서 사방에 널린 흑단을 본 사람들은 이를 유럽으로 실어왔다. 디자이너들은 물 만난 고기마냥 인도산 티크, 쿠바산 흑단, 일본산 오쿠메 등의 목재와 귀갑, 조가비, 상아, 상어 가죽, 그리고 일본과 중국의 칠기까지 온갖 귀한 소재를 실내장식과 가구를 위해서 아낌없이 써댔다. 패션 디자이너 잔 랑방Jeanne Lanvin은 이 시대의 총아나 다름없었다. 파리의 가난한 모자 가게 점원이었던 그가 만든 ‘랑방’이라는 브랜드는 1925년 파리에서 열린 인터내셔널 데 자르 데코라티브International des Arts Decoratifs 만국 박람회에서 샤넬과 비오네Vionnet, 파투Patou와 나란히 쇼룸을 선보였다. ‘아르데코Art Deco’라는 용어는 바로 이 박람회의 명칭에서 비롯된 것. 박람회의 전시장이었던 그랑 팔레Grand Palais는 당시 세계의 유행을 휩쓸던 디자이너들의 쇼룸으로 가득 찼다. 옷뿐이 아니다. 카르티에나 모브상, 쇼메 같은 고급 보석상들, 세브르나 리모주, 바카라, 생루이 같은 도자기와 크리스털 업체까지. 복도를 지나가기만 해도 눈이 부실 만큼 현란한 이 전시장을 디자인한 인물들은 또 누구였던가? 이리브Iribe, 그루트Groult, 하토Rateau 등 당대를 주름잡던 실내 디자이너들이 지상에서 가장 귀한 소재들을 아낌없이 활용해 전시장을 단장했다.

건축부터 실내장식, 패션까지 하나의 스타일로 이 시대의 패션 디자이너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옷만 잘 만드는 것으로는 부족했다. 일본에서 가져온 칠기 가구를 자신의 숍에 아낌없이 펼쳐놓았던 샤넬처럼 유명 디자이너라면 실내장식에 대해서도 자신만의 스타일을 가져야 했다. 잔 랑방의 실내 디자인을 위한 파트너는 하토였다. 청동으로 조각한 거대한 문, 티크로 만든 벽 장식 등 랑방의 숍이 수많은 디자이너들이 포진한 생 토노레 거리에서 단연 최고였던 데에는 하토의 공이 컸다. 하토는 아르데코의 실내 디자이너로서 갖추어야 할 자질을 고루 지니고 있었다. 그는 전통 가구 제작법을 가르치는 학교인 에콜 드 불Ecole de Boulle 출신. 아르데코 디자이너들은 형태에서는 모던함을 추구하되 소재의 가공에서는 고전 시대의 정밀함을 놓치지 않으려고 했다. 이런 하토와 잔 랑방이 만나 만들어낸 실내 장식의 정점이 바로 파리의 아르데코라티브 박물관에 보존되어 있는 잔 랑방의 아파트. 하토는 이곳을 폼페이 유적과 클래식한 소재에서 영감을 받아 사슴, 새, 물고기, 꽃등의 온갖 자연물 모티프를 가구와 벽, 천장에 화려하게 장식했다. 그러나 아름다운 시절은 오래지 않아 막을 내린다. 다시금 전운이 깃들기 시작하고 1929의 대공황과 나치즘의 바람이 불면서 아르데코는 사라져 갔다. 그러나 사진 속 랑방의 아파트처럼 모든 현대 디자인의 근원을 품고 있는 아르데코는 여전히 매력적인 모습으로 우리에게 창조적인 영감을 건네고 있다.

1 , 2 파리 아르데코라티브 박물관(01-44-55-57-50)에 보존된 랑방의 아파트. ‘ 랑방 블 루 ’ 라 불리는 라피즈 컬러로 연출한 침실과 고전적으로 장식한 개인 접견실 부두아boudoir.
3 , 6 이리브의 데생과 랑방의 스케치에서 당시 여인의 모습을 짐작할 수 있다.
4 아르데코를 소개할 때 빼놓지 않고 등장하는 랑방의 향수 ‘ 아르페 지 ’ . 향수병은 하토가, 로고는 이리브가 디자인했다.
5 랑방 아파트 내에 있는 하토 디자인의 가구.

아르데코 시대가 샤넬과 피카소를 낳았다
아르데코는 여자의 시대였다. 과학자로는 퀴리 부인, 디자이너로는 코코 샤넬이 이름을 떨쳤으며 작가로는 콜레트, 화가로는 소니아 들로네가 활발하게 활동했다. 아마존(여전사)이라 불리는 여성 탐험가나 비행가가 대거 출현하기도 했다. 큐비즘이나 야수파, 추상주의 미술 등 우리가 이름을 들어본 대부분의 현대미술 사조도 이 짧은 30년 동안에 탄생한 것. 이 사조들은 이전과는 모든 것이 다른 별천지를 살고 있다는 자부심의 시대인 아르데코가 만들어낸 걸작들이라 할 수 있다. 미술 애호가들에게 익숙한 자코메티와 브랑쿠시, 샤갈, 피카소, 칸딘스키가 모두 이 당시 활동한 예술가들이다.

이지은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06년 11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