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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 고색 박정아 대표의 집 화이트 모던 하우스에서 발견한 한국 고가구의 아름다움
깨끗한 화이트 컬러로 마감된 이 집에는 백 년이 넘은 한국 고가구와 민화 그리고 현대적인 디자인의 빨간 소파와 샹들리에가 공존한다. 조선시대의 이층장과 반닫이, 한복 천을 응용해 만든 쿠션과 침구는 모던한 인테리어에 멋스럽게 어우러지며 우아한 기품을 더하고 있다. 박정아 씨의 집은 21세기의 주택에 한국 전통의 멋이 어떤 형태로 응용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매력적인 사례다.


전통이란 어려운 대상이다. 과거의 유물이며 고루할 뿐이라고 함부로 말할 수도 없고, 소중하고 가치 있다고 해서 내 옆에 두기에는 어째 엄두가 나지 않는다. 특히 전통 가구라면 적당한 제품을 구입하기도 어렵고, 아파트나 주택 안에서 마땅히 어울리는 자리를 찾기도 쉽지 않다. 지금은 우리 전통 가구와 패브릭 고유의 멋에 흠뻑 빠져 이를 자신의 숍 ‘갤러리 고색古色’을 통해 선보이고 있지만, 박정아 씨도 예전에는 클래식한 서양 앤티크 가구를 컬렉션하던 사람이었다. “결혼 전 항공사 승무원 생활을 하면서 세계 곳곳을 다녔어요. 그러다 보니 자연히 많은 나라의 문화와 그 나라 고유의 미적 감각을 보고 느낄 기회가 많았지요. 방문했던 도시마다 빼놓지 않고 박물관, 전시회장을 열심히 찾아다니면서 행복해하던 기억이 새롭네요. 그렇게 다니던 중에 유럽 앤티크 가구의 섬세하고 고풍스러운 아름다움에 끌렸던 거죠.” 원래 미술이며 인테리어에 관심이 많았던 터라 유럽에 머물 때면 가구 거리를 찾아다니며 멋진 가구와 소품을 구경하는 것이 그에게는 큰 즐거움이었다. 정교한 조각이 새겨진 장식장이며 테이블, 의자 등 클래식한 앤티크 가구들은 내내 그의 마음을 흔들었다. 영국인 남편과 결혼한 후에도 여유가 생기는 대로 꾸준히 서양 앤티크 가구를 사 모았다. 

1 현관 정면에 놓인 전통 경기도 반닫이와 가지런히 정리된 날렵한 하이힐이 묘한 긴장감을 자아낸다. 거울 양쪽으로 노리개를 길게 늘어뜨려 정적인 공간에 악센트를 주었다. 
2 햇살이 환한 창가 앞 화이트 가죽 소파에 고색의 쿠션이 멋스럽게 놓여 있다.


뉴욕 한복판에서 마주친 한국 고가구 이런 그의 취향이 바뀌게 된 데에는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다. 최첨단의 트렌드가 만들어지는 도시 뉴욕에 머물 무렵, 초대를 받아 방문한 한 외국인 친구의 집에서 생각지도 않게 한국 고가구를 만난 것이다. 뉴욕 맨해튼 한복판의 세련되고 감각적인 고층 아파트에 놓인 한국 전통 가구는, 현재 세계 최고라 불리는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가구와 함께 견주어 그 아름다움이나 내뿜는 힘이 전혀 뒤처지지 않았다. 가장 현대적이라 할 만한 공간에서 오히려 당당하게, 그리고 조화롭게 어우러지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 전통의 선과 색이 얼마나 아름답고 멋진 것인지를, 그리고 지금에도 여전히 이처럼 매력적일 수 있다는 사실을 그제야 깨달았다. 이날부터 박정아 씨는 한국 고가구를 다시 보게 되었다. 그리고 유럽 앤티크 가구 대신 한국 고가구를 모으기 시작했고, 지난 2005년에는 이 취미가 직업으로 발전하여 한국 전통 가구와 생활 소품을 판매하는 숍인 갤러리 고색을 이태원에 열기도 했다.
평창동에 위치한 그의 집은 모던한 공간에 한국 가구와 소품이 보기 좋게 조화를 이루는 인테리어 노하우를 제시하는 쇼룸이라 해도 손색이 없다. 화이트 컬러의 벽지와 몰딩, 대리석 바닥으로 깨끗하고 심플하게 마감된 가운데 백 년이 넘은 한국 고가구와 민화, 그리고 최신 감각의 화이트 가죽 소파, 화려하게 빛나는 샹들리에, 지브라zebra 패턴의 쿠션이 함께 자리 잡고 있다. 그럼에도 이들이 어색하게 충돌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이 모든 것의 배경이 되는 컬러가 화이트라는 점이다.
“한국 고가구는 여백이 있는 공간에서 우아하게 제멋을 발휘해요. 한옥을 한번 떠올려 보세요. 한옥은 색이랄 것이 거의 없고, 가구도 최소한의 것만 놓아두지요. 우리 가구는 그처럼 비워두고 열어둔 여백 많은 집안에 놓였던 것입니다. 때문에 똑같이 모던하지만 컬러가 소란스럽게 많은 집에서라면 전통 가구는 혼자 튀거나 초라해 보이기 십상이죠.”



그렇다고 이 집에 컬러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컬러를 쓰더라도 공간의 강약을 생각하며 여백을 해치지 않는 정도로만 절제하여 사용하고 있다. 거실의 빨간 1인 소파와 불상을 장식한 이층장이 긴장감 있는 대조를 이루고, 1층 복도에는 벽에 걸린 전통 그림과 분홍 한복 천으로 커버링한 스툴이 세련된 조화를 만들어내듯이 말이다. 그리고 소재의 매치를 고려한 것 또한 주효했다. 전통 반닫이 위에 가족 사진 액자를 장식할 때도 장에 쓰인 금속 장식과 동일한 톤의 프레임으로 된 스틸 액자를 사용해 소재의 느낌을 맞추었다. 민화를 벽에 걸 때도 족자가 아니라 메탈이나 심플한 나무 액자에 담아 집에 맞는 세련된 질감을 완성할 수 있었다. 그리고 한복 천을 현대적으로 응용해 새롭게 디자인한 고색의 소파와 리빙 제품들도 한몫을 한다. 한복용 색동 실크, 꽃 분홍 실크로 커버링한 데이베드와 스툴, 우리나라 특유의 전통 문양으로 멋을 살린 침구와 쿠션, 햇빛을 말갛게 투과시키는 쪽빛, 보랏빛의 모시 로만셰이드까지. “아름답고 뛰어난 우리의 색과 선을 그냥 바라보기만 하는 감상용으로 두기가 너무 아까웠어요. 현대적인 감각과 조화시켜서 우리 생활에서 이를 직접 누리고 느낄 수 있기를, 그리고 더 나가서 다른 문화의 사람들과 같이 공유할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개발한 고색의 여러 가지 제품들이 다행히 반응이 좋았지요.”

감상용에서 벗어나 생활 속으로 들어온 전통 색과 선


박정아 씨는 한국 전통 패브릭을 리빙 제품뿐만 아니라 패션에까지 과감하게 적용해 내놓았다. 한복에 기원을 두었지만 청바지나 정장 바지와 함께 입어도 잘 어울릴 수 있는 디자인의 옷으로, 블라우스, 원피스, 재킷 그리고 이에 걸맞은 핸드백까지 있다. 이렇게 완성된 옷은 특히 외국인, 그중에서도 멋쟁이로 소문난 대사 부인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번지면서 인기를 얻었다. 작년 9월에 프랑스 대사관저에서 열렸던 파티와 12월의 동아TV의 패션뷰티 시상식에서, 각국 대사부인들이 자청해 고색의 옷을 입고 패션쇼를 열기도 했을 정도라니 그 인기를 짐작할 만하다. 옷뿐만 아니라 그들은 박정아 씨의 이 집을 방문하고는 한국 고가구의 팬이 되기도 했다. 한국에 살지만 기본은 서양적인 스타일일 수밖에 없는 그들의 집에, 한국 장이며 패브릭을 매치해 꾸며놓고는 그 은은한 멋을 즐기고 행복해한다고. 우리가 늘 봐오던 것이라고 무심히 지나친 사이, 외국인의 새로운 눈에는 그 아름다움이 제대로 보였던가 보다. 물론 여기에는 전통 한국의 멋을 현대적으로 맛깔스럽게 버무려내는 박정아 씨의 감각이 작용했겠지만 말이다. “한국의 전통 디자인은 중국처럼 화려하지는 않지만 은근한 기품이 있고 일본처럼 정교하지는 않지만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이 있어요. 이 기본을 잃지 않는다면 얼마든지 현대적으로 응용할 수 있지요. 태국의 짐탐슨이나 홍콩의 상하이탕처럼 고색을 우리나라의 멋을 대표할 만한 세계적인 브랜드로 키우는 것이 앞으로의 제 꿈입니다.”

1 옛날 같으면 안방 한자리를 차지했을 충무 장농이 거실중앙에 대칭을 이루며 놓여 있다. 화이트 컬러로 마감된 벽을 배경으로 기품을 전하는 전통 장은 모던한 공간에도 잘 어우러진다. 
2 자연광이 환하게 드는 복도에 조선시대의 그림이 나란히 걸려 있다. 오른쪽 핑크 스툴은 이불용 실크로 커버링해 만든 고색 제품. 
3 빨간 의자 위의 쿠션과 벽에 걸린 노리개는 고색 제품. 
4,5 복도며 계단에도 전통 그림을 걸어 기품을 더했다. 
6 한복용 실크로 만든 침구. 우리나라 실크는 중국, 일본의 비단보다 색이 곱고 우아하다.



1,5
가족 사진이 담긴 액자 하나를 놓을 때도 조화에 신경 썼다. 평양 백동 반닫이에 쓰인 금속과 같은 톤의 스틸 프레임 액자를 골라 잘 어울리도록 했다. 벽에 걸린 작은 색동저고리는 박정아 씨가 어렸을 때 입던 것. 2,4 전통 장에 매치하기에 가장 무난한 아이템은 역시 우리 도자기.
3 우리나라 옛 풍속을 엿볼 수 있는 전통 민화. 작은 사이즈의 민화를 심플한 프레임에 통일감 있게 넣어 여러 개를 함께 장식했더니 색다른 멋을 낸다. 익살맞고 해학적인 내용의 그림은 손님들에게 보는 재미도 쏠쏠히 준다고.
6 박정아 씨가 앉아 있는 데이베드는 우연히 발견한 녹색 공단 뒷면의 색동 패턴을 살려 커버링한 것이다.

현대적 감각으로 제안하는 우리 멋, 갤러리 고색

이태원 하얏트호텔 근처에 위치한 갤러리 고색(02-796-8863)은 고색창연古色蒼然한 조상들의 미적 감각을 현대에 맞게 새로이 제안한다는 철학으로 지난 2005년 문을 열었다. 가구부터 리빙 소품, 패션 아이템까지 전통 한국의 미를 응용해 만든 다양한 제품을 선보이고 있다. 오리지널 한국 고가구와 리프러덕션 가구를 함께 판매하며, 한복용 실크, 모시 등 우리 전통 패브릭을 이용해 새롭게 디자인한 쿠션, 침구, 옷 등을 선보인다. 또한 이곳에는 외국 손님에게 한국의 멋을 소개하기에 적합한 선물용 제품도 많다. 갤러리 고색 매장을 둘러보는 것 만으로도 생활 속에 한국의 멋을 스타일링하는 박정아 씨의 감각과 노하우를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손영선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06년 10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