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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동 정명화 씨의 25년 된 단독주택 집, 오래 된 음악과 책을 품다
정명화 씨 부부는 함께 세월을 보낸 물건들을 잘 버리지 못한다. 10대 시절부터 모아온 수백 장의 LP판과 수백 권의 책, 친정 부모님께 물려받은 살림, 살면서 하나씩 보태진 가구는 이 집의 또 다른 가족이다. 추억과 애정이 담긴 이 물건들은 오래되어 정든 집에 차곡차곡 쌓여, 훈훈한 온기와 개성을 뿜어낸다 .

살면서 종종 마주치는 질문 가운데 하나가 취미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그에 대한 가장 흔한 대답은 독서 또는 음악 감상. 하지만 성북동 정명화 씨의 집에 들어서면 이 상투적인 취미가 그저 의례적인 대답이 아니라 깊은 애정의 대상으로 삶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집의 거실 전면에는 손때 묻은 책들을 가득 담은 키 큰 책장이 빼곡히 들어서 있고, 그 위 책장과 천장 사이 공간에는 수백 장의 LP판이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다. 책장의 유리문 너머에서는 간간이 동그란 안경을 쓴 존 레논의 얼굴이 책 표지 위로 보인다. 현관 앞 마루 공간에는 피아노와 전자 드럼이 떡하니 놓여 있고, 열여섯 살인 아들 완제의 방에는 날렵한 몸매를 자랑하는 전자 기타가 고이 세워져 있다. 가족들의 취미가 어느덧 집안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었다..“남편이 비틀스의 열혈 팬이에요. 본인의 말로는 여섯 살 때부터 비틀스 관련 음반이나 서적을 사 모았대요. 책은 또 어찌나 좋아하고 아끼는지, 이 책장을 들여올 때만 해도 책에 먼지 앉지 말라고 굳이 유리문이 달린 제품을 고집했지요. 그래도 가끔씩 틈날 때마다 책을 꺼내 닦아주곤 한답니다.”정명화 씨의 설명이다. 거실이 일단 장서藏書로 공간을 압도한다면, 1층의 아이들 방이나 정명화 씨의 책상이 있는 마루는 일상적으로 보는 책들이 존 칸델Jone Candell의 필라스터Pilaster 책장에 쌓여 자연스러운 풍경을 이룬다. 남편을 비롯해 온 가족이 모두 음악을 좋아한다는데, 그렇지 않아도 정명화 씨의 휴대폰 통화연결음이 영국 록밴드 오아시스의 노래인 것을 듣고 미루어 짐작했던 터. 이 집에는 LP판을 위한 턴테이블부터 CD를 들을 수 있는 뱅앤올룹슨의 오디오, MP3 파일을 재생할 수 있는 애플 아이팟iPod 플레이어와 스피커까지 3세대의 음악 재생기기가 모두 구비되어 있다. 단 턴테이블은 바늘을 더 이상 구하기가 힘들어 따로 고이 모셔둔 상태다. 수백 장에 이르는 LP판은 정명화 씨 부부가 결혼 전부터 각각 모아온 것을 합친 것이다.


1 현관 입구에서 제일 먼저 손님을 반기는 스웨덴 전통 목각 말 인형 달라헤스트Dalahast. 정명화 씨는 모던하면서도 자연스러운 멋이 있는 스칸디나비안 스타일을 좋아한다. 곳곳에서 스칸디나비안 스타일의 가구를 발견할 수 있다.
2 주방 식탁 위에 매달린 샹들리에. 뒤로 보이는 그림은 화가 이수영 씨의 작품.
3 현관 옆에 따로 열쇠를 걸 수 있는 판을 만들어두었다.
4 정명화 씨 부부와 세 아이들을 실루엣만으로 그려놓은 그림이 액자에 걸려 있다. 그 아래는 MP3 음악 파일을 재생할 수 있는 애플 사의 아이팟과 스피커. 이 집에는 LP, CD, MP3까지 3세대 음악을 재생할 수 있는 기계가 모두 있다.
5 큰딸 원선이의 방 벽에 걸린 화려한 이탈리아 가면.
6 색색의 쿠션이 놓인 오렌지 빛 소파는 원래 두 개가 세트였다. 거실이 좀 더 시원스럽게 보이도록 소파를 하나만 놓고 천장에 달려 있던 샹들리에도 없앴다. 뒤로 보이는 책장과 책상은 남편을 위한 것. 책을 무척 아끼고 좋아해서 책에 먼지가 앉지 않도록 문이 있는 책장을 고집했다고. 이 집으로 이사올 때 구입한 책장인데 집에 쓰인 나무 색감과 자연스럽게 잘 어울린다.


알고 보니 이 부부는 음반뿐만 아니라 오래된 물건을 잘 버리지 못하는 성격이었다. 집안의 가구들도 살면서 하나씩 모은 것이 대부분이고, 친정어머니께 물려받은 장독이며 평상도 고스란히 잘 쓰고 있다. 오래된 물건들이 들어찬 이 집 역시 오래되어 올해로 벌써 25년이나 되었다고 한다. 자세히 살펴보니 고풍스러운 짙은 나뭇결의 정사각 패널 마루, 쇠막대를 돌려 잠그는 창문까지 곳곳에서 옛날 집 특유의 양식을 찾아볼 수 있다. “이 집으로 이사 온 지는 10년 정도 되었어요. 그다지 바꾼 것도 없이 원래 있던 대로 거의 그대로 쓰고 있지요. 처음에는 벽 전체가 흰색이었는데 7년 전에 색색으로 페인트칠한 것과, 안방과 아이 방에 마루를 새로 깐 것 정도가 바뀐 셈이네요.” 거실 벽은 노란색이고 1층과 2층의 마루 공간 벽은 빨간색, 다이닝 룸은 파란색, 안방은 노란색, 아이들 방은 연두색과 하늘색이다. 색색의 컬러는 이 집에 자리 잡은 스칸디나비안 가구와 잘 어울린다. 여기에 집 자체의 오래된 나무 질감이 더해져 독특한 개성과 따뜻함을 만든다. 오래되었지만 애정을 가지고 잘 관리했기에 긴 세월을 지나면서도 이 집은 낡기보다는 정겨워지고 초라하기보다는 넉넉해졌다.

1 창문을 자세히 살펴보면 쇠막대를 돌려 잠그도록 되어 있는 것이 영락없는 옛날 집 양식이다. 창문 앞에 놓인 평상은 정명화 씨가 친정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것으로 조선시대 말의 가구라고 한다.
2 다이닝 룸의 찬장과 수납장은 원래 이 집을 지을 때 함께 만들어진 것이다. 단아한 나뭇결의 식탁과 매끈한 가죽 질감의 의자와 함꼐 멋스럽게 조화를 이룬다. 천장의 무라노 글라스 샹들리에가 공간에 악센트를 준다. 현관이 있는 2층은 주로 손님에게 보여지는 공간으로 구성된다. 뒤로 보이는 문 너머에는 실제 조리를 할 수 있는 부엌이 숨겨져 있다.
3 거실 한쪽의 수납장에서 꺼낸 LP판들. 턴테이블 바늘을 구할 수 없어 요즘은 LP를 못 듣고 있다.
4 1층 마루 공간. 오른쪽은 정명화 씨가 쓰는 책상으로 모서리 공간에 딱 알맞는 삼각형 모양이다. 세로로 긴 존 칸델의 필라스터 책장에 평소 자주 보는 책이며 잡지가 자유롭게 꽂혀 있다. 왼쪽의 복도를 따라 세 아이들의 방이 차례로 펼쳐진다.
5 기타와 스케이트보드가 취미인 아들 완제의 방. 왼쪽의 벽에는 공중을 가르며 자유롭고 멋있게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보더들의 사진이 붙여져 있다. 운동을 좋아하는 완제는 최근에는 한참 스키에 재미를 붙였다.
6 큰딸 원선이의 방은 푸른 벽과 팝 아트풍의 그림, 컬러풀한 침대 헤드가 조화를 이룬다. 침대 옆으로 보이는 책장에는 여러 가지 패션 잡지와 책, 사진 앨범 등이 꽂혀 있다.



1 유난히 책이 많은 이 집의 서가에는 특히 비틀스와 관련된 서적이 눈에 많이 띈다. 정명화 씨의 남편은 비틀스의 연도별 활동 내용을 막힘 없이 줄줄 외울 정도의 열혈 팬이다. 비틀스에 관한 새로운 책이며 음반이 나올 때마다 빠뜨리지 않고 컬렉션했다.
2 현관을 들어서면 빨간 벽을 배경으로 노란 장식장과 빨간 목각 말이 손님을 반긴다. 이 공간에 피아노와 전자 드럼이 놓여 있다.
3 노란 벽과 반짝이는 자개장이 화사함을 연출하는 안방.
4 노란 타일 벽과 콜러Kohler 세면대가 산뜻한 2층 화장실. 장식적인 골드 프레임의 거울이 천창으로 들어온 햇살을 반사해 더욱 화려하게 느껴진다.

이색적인 구조도 집의 개성을 만드는 데 한몫을 한다. 우선 현관이 있는 층은 실질적으로는 2층이다. 이곳 지형이 언덕이기 때문에 가능한 구조. 현관으로 들어와 이어지는 작은 마루를 지나면 거실과 다이닝 룸처럼 외부 사람에게 많이 노출되는 공간이 나온다. 다이닝 룸 뒤로는 부엌이 숨겨져 있어 손님을 초대했을 때라도 씻고 썰고 끓이는 등 요리하느라 부산스러운 모습은 보이지 않게 되어 있다. 반들반들한 나무 계단을 따라 아래층으로 내려가면 보다 사적인 가족들 개개인의 공간이 나타난다. 계단에서 이어지는 1층 마루에는 정명화 씨의 책상과 가족이 공동으로 쓰는 컴퓨터 책상이 있다. 자유롭게 꽂힌 가족 사진과 여행 사진, 매달린 인형들, 각종 메모에서는 부부와 세 아이로 구성된 이 다섯 명 가족의 활동적이고 왁자지껄한 생활이 엿보인다. 마루 양쪽으로는 안방과 아이들 방이 펼쳐진다. 화사한 노란 벽의 컬러와 자개장의 반짝임이 조화를 이루는 안방, 패션 잡지와 팝 아트풍 그림, 핫핑크 깃털의 이탈리아 가면이 화려한 큰딸 원선이의 방, 기타와 스케이트보드라는 관심사가 고스란히 엿보이는 아들 완제의 방, 귀여운 인형들이 가득한 막내 원경이의 방은 들여다보는 것만으로 방 주인의 취향과 성격을 알 수 있을 듯하다.
1층 마루 맞은편으로는 정원으로 나가는 문이 있다. 잔디와 소나무가 운치 있는 정원은 두 마리 듬직한 애완견의 활동 무대이자 정명화 씨의 취미 공간이기도 하다. “요즘 가드닝에 관심이 많아졌어요. 틈 날 때마다 마당이며 현관 옆의 화분에 이런저런 좋아하는 꽃을 심고 들여다봐요. 오늘 아침에도 마당에서 인동을 한 송이 뜯어 식탁 위에 놓았더니 그렇게 예쁠 수가 없더라고요.” 막내딸 원경이도 요 얼마 간은 엄마를 따라 작은 화분에 꽃씨를 심고 들여다보고 물을 주고 얼마나 자랐는지 살펴보느라 분주했다고.
아늑한 붉은 벽돌 담 아래로 잘 마른 장작이 차곡차곡 쌓여 있는 현관을 지나 이 집을 나섰다. 추운 겨울이 와도 발그레하게 장작불 타오르는 벽난로 앞에 평화로운 음악이 흐를 집안 풍경이 그저 따뜻할 것만 같다. 바깥 쪽문 너머의 다용도 공간으로 정명화 씨가 친정어머니에게서 대물림 받았다는 오래된 장독이 정겹게 옹기종기 놓여 있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묵어야 제 맛이 나는 장처럼, 집 또한 그런 것이 아닐까. 막 장만한 새 디자인의 가구로 꾸며놓은 멋들어진 집은 당장 눈을 현혹시키고 욕망을 자극할지는 모르지만, 마음을 잡지는 못하는 법이다. 사람에게는 집, 가구와도 서로 길을 들이고 정을 붙이는 시간이 필요하므로. 세월의 멋을 더해 편안한 집과 가구, 추억과 애정이 담긴 친근한 컬렉션들이 발효되어 하나로 어우러진 이곳은 정명화 씨 가족에게 그 어떤 새 집과도 바꾸기 아까운 둘도 없는 보금자리다.


1 안방 창가에 가지런히 모아놓은 주얼리함. 주얼리 못지않게 예쁜 이 함들은 정명화 씨가 여행 등으로 외국에 나갈 때마다 조금씩 모은 것이다. 어느새 컬렉션을 이루었다.
2 바깥 쪽문 너머에는 다용도 공간이 있는데, 이곳에 친정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장독을 고이 모셔두고 지금까지도 유용하게 쓰고 있다.
3 소나무 가지가 운치 있게 뻗어 있는 정원에서 정명화 씨와 막내딸 원경이가 새로 심은 화분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정명화 씨의 요즘 취미는 가드닝. 틈이 날 때마다 마당이며 현관에 좋아하는 화초나 꽃나무를 심고 가꾼다. 정명화 씨가 앉아 있는 벤치 아래로는 잔디 대신 돌이 드문드문 박혀 있다. 소나무 아래에는 그 뿌리 때문에 잔디가 잘 자라지 못한다고. 대신 자연석을 구해 잔디의 빈틈을 메웠다. 보이지는 않지만 정원의 한쪽에는 두 마리의 듬직한 애완견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집안에 페인트를 칠하려면 정명화 씨는 본래 집이 흰색 벽이었기 때문에 빨간색, 연두색, 노란색 등 원하는 컬러를 바로 칠할 수 있었다. 그러나 페인트칠을 할 때 기존 벽에 다른 컬러가 칠해져 있다면 흰색 페인트를 한 번 칠해준 뒤 원하는 컬러를 칠해야 제 색을 표현할 수 있다. 기존 벽이 벽지로 마감된 경우, 이를 깔끔하게 제거하기가 쉽지 않은데 이때는 굳이 벽지를 뜯어내려 애쓰지 말고 그 위에 바로 페인트를 칠하는 것도 방법이다. 약간의 종이 질감이 더해져 표면에 아무것도 없는 시멘트 벽에 칠했을 때보다 오히려 아늑한 느낌을 더할 수 있다. 페인트는 벤자민무어(02-3474-5200), 칼라메이트(031-719-7204) 등 실내용 무독성 수성페인트를 쓰도록 한다. 특히 칼라메이트 제품은 조색을 할 때 아로마 향을 섞을 수 있어, 바르는 동안과 마르는 동안 수성페인트 특유의 암모니아 냄새를 약하게 할 수 있다.



손영선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06년 10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