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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어송라이터 하림 자기 말의 주인으로 살아가는 예술가
예술은 생각을 기반으로 하며, 생각은 말에서 비롯된다. SNS 시대에 우리에겐 수많은 좋은 말이 쏟아지지만, 그것이 생각으로 변하는 시간은 오히려 부족한 세상. 많은 사람이 감성적으로 빈곤할 때 일상에서 생각의 풍요를 누리는 싱어송라이터 하림. 생각하고 실행하는 그의 직업은 ‘예술가’다.

아름다운 노래 가사는 우리 자신이 그 말의 주인이 될 때 놀라운 주술적 힘을 지닌다. 데뷔 15년이 훌쩍 지났지만 딱 두 장의 정규 앨범만 낸 싱어송라이터 하림. 그나마 두 번째 앨범을 낸 지 10년이 넘었는데도 ‘출국’ ‘난치병’ ‘이방인’ ‘사랑이 사랑으로 잊혀져가네’ ‘라푼젤’ 등 그의 명곡은 여전히 우리 삶에 흐른다. 노래가 삶에 포개어져 누군가 그 노랫말의 주인이 되었기 때문일 터.

오래 생각하고 책을 읽다가 무언가가 떠오르면 곧바로 의자에서 일어나 실행하는 그의 작업대.
예술이란 내 말의 주인이 되는 것 “예술가가 될 수 있는 큰 명제는 잘 하느냐 못하느냐가 아니라, 하느냐 안 하느냐인 것 같아요. 저는 어떤 말을 주입해도 제 자신이 설득되지 않으면 잘 움직이지 않아요. 대신 좋은 말을 마음에 새기면 그대로 실행하는 편이에요. 그 말의 주인이 되는 것이죠.” 프로젝트 앨범과 영화, 공연 등으로 음악을 선보였지만 정규 앨범을 내지 않았던 지난 10년간 그는 마음에 들어온 말을 즉각 실행하는 자신만의 예술적 실험을 했다. 밤에 작업실에 가만히 앉아 혹은 술 한잔을 기울이며 생각하고 또 생각 하다가 무언가 불쑥 떠오르면 즉시 혹은 다음 날 아침 바로 새로운 예술 프로젝트를 실행한다. 예를 들어, 인터뷰를 하던 날 아침 그는 수백 명이 팔로어 하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무의미한 형광등 불빛을 찍어서 올렸다. 말 그대로 자고 일어나 제일 먼저 눈에 보여 ‘그냥 찍은 형광등’이었다.

“SNS를 할 때 이 말을 쓸까 말까 생각하고 사진도 고르는 등 저도 모르게 자기 검열을 하게 되잖아요. 그런데 어젯밤 작업실에 앉아서 생각을 해보니 그런 제 행동이 부자연스럽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SNS의 순기능보다 역기능이 더 많아진 거죠. 그래서 오늘부터는 제 SNS를 보는 사람들에게 비교할 거리를 주고 싶지 않았어요. ‘가수 하림은 여행을 많이 다닌다, 자기 하고 싶은 건 다 하면서 돈도 번다, 작업실이 유럽 같다’고 하는데, 실제로는 남보다 덜 쓰고 모아 여행을 하고 작업실은 아주 허름한 건물을 임대했고, 집기는 제가 다 만들었어요. 그런데 사람들은 자기한테 없는 것을 그 사람에게서 찾아 그걸로 자신을 깎아내리죠. 사람들에게 다 있는 것을 SNS에 올리면 어떻게 될까요? 형광등, 싱크대 수도꼭지, 리모컨같이 제 자신이 어떤 것도 의도하지 않는 순 간 눈에 보이는 것을 찍어서 인스타그램에 올렸을 때도 ‘좋아요’를 누를까요? 지금은 이런 소셜 네트워크 실험을 하는 중이에요.”

잘하느냐 못하느냐가 아니라, 하느냐 안 하느냐가 예술의 명제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곧장 실행한 이 실험도 그에게는 예술 프로젝트다. ‘예술가로서 SNS의 순기능을 만들어볼 수는 없을까, 착한 SNS를 해보자’라는 마음속 말을 즉각 실행하는 예술 활동이다.

커뮤니티 예술 기획자 하림 그가 정규 앨범을 내지 않은 지난 몇 년은 크게 커뮤니티 예술 시기와 개인 예술 시기로 나뉜다. 2010년에는 홍대앞에서 ‘아틀리에 오’라는 개인 작업실을 열었고, 그 공간을 개방해 작가들이 레지던시로 사용하게 했다. 앨범을 낸 연예인은 얼굴을 내미는 만큼 수입이 올라가는 반면, 농부나 작가처럼 실체가 있는 생산을 하는 사람은 홀대받는 경우가 많으니 그 사이에서 자신의 중심을 잡고 싶었다.

“실체 없는 생산을 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런데 예술이야말로 어떻게 보면 실체가 없는 것이죠. 그러니 그 안에서 실체를 찾는다면 그 증거는 작업실에 있는 저를 비롯한 친구들이 될 것이고, 내가 해왔던 행동일 겁니다. 행복은 지속이 아니라 순간이기 때문에 스스로 생산해내야 하는 거죠.”

도하 프로젝트는 도시를 강으로 비유하고 강을 정화할 재미있는 예술을 추구했다.
요즘 서울 도심 곳곳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것처럼 2012년 홍대 앞 일대의 임대료가 치솟자 그도 그곳을 빠져나와야 했다. 부모와 함께 살던 시흥동은 재개발에 묶여 동네가 어수선했는데, 도하부대가 이전한 군부대 자리에는 빈 목욕탕이 있었다. 기획서를 써서 구청에 찾아갔더니 비용 지원은 못 해주지만 비어 있는 동안 하고 싶은 것은 해도 된다는 허락을 받았다. 거의 폐허가 된 그 곳을 친구 몇 명과 고쳐서 작가들이 모이는 레지던시로 꾸며 이름하여 ‘도하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도시를 강이라고 보았고 예술가는 유목민이라고 여겨 유목민이 예술이라는 부유물을 던져서 강을 정화하려는 프로젝트다. 포럼, 토론, 전시를 열고 싶은 예술가에게 공간을 내주고 찾아오는 사람들을 밥해서 먹이던 나날. 스스로 예술가라고 여기지만 세상이 예술가라고 불러주지 않는 사람들이 주로 모였고, 그들이 전시를 열면 그가 오프닝과 클로징 파티를 열어 사회를 봐주곤 했다.

2년 후 그곳을 비워줘야 했을 때는 간판까지 다 태우는 것으로 도하 프로젝트를 마무리했다. 이후 근처의 낡은 건물 3층에 자리 잡게 된 것이 지금 그의 작업실이다. “이곳에서는 ‘시크릿 액션’이라는 프로젝트를 기획했어요. 우리 사회에서 비밀이 아닌데 비밀로 강요받는 것에 대해 토론하는 프로젝트로, 국제 엠네스티의 도움을 받아 진행했고 토론집도 냈죠.”

40년 된 슈퍼마켓인 부여슈퍼를 돕기 위한 스토리텔링에 예술가를 참여하게 한 ‘부여슈퍼’ 프로젝트도 진행했다. 아프리카 여행을 하다가 만난 소녀에게 기타를 보내주겠노라고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몇 해 전부터는 모금을 해서 아프리카에 기타를 보내는 ‘기타 포 아프리카’ 프로젝트를 하고 있는데, 올해는 그 기타를 받은 아프리카 아이들을 직접 만나러 가는 다큐멘터리도 찍을 예정이다. 우리가 보낸 평범한 기타가 음악에 대한 열정이 있는 아프리카 아이들에게 어떤 행복을 주는지를 기록하는 독립 다큐멘터리 영상 프로젝트다.

개인 예술로, 음악으로 돌아간 하림 이처럼 지난 몇 년간 음악을 하면서 매일 밤 생각하고, 그 생각의 끝에 떠오른 거의 모든 것을 행동으로 옮기며 살아온 그는 마흔 살이 된 작년을 기점으로 커뮤니티 예술 기획자에서 개인 예술가로 자연스러운 전환기를 맞았다. 이전엔 생각난 것을 여러 예술가와 함께 실행했다면, 이제는 떠오른 것을 혼자 즉각 해본다는 차이가 있다. 작년 여름에 진행한 ‘길고양이’ 프로젝트가 대표적인 예다. “동네 서점이 있을 때는 동네 할머니도 서점 가판대에서 잡지 표지에 쓰여 있는 큰 글씨로라도 책을 접할 수 있었어요. 하지만 동네에서 작은 서점이 사라진 지금은 대형 서점에 가지 못하는 사람은 일상에서 새 책을 접할 기회가 적죠. 그런데 저한테는 책이 많으니 공중전화 부스에 책을 놓아 동네 서점이 있던 시절처럼 사람들이 오가며 책 표지라도 볼 수 있게 하고 싶었어요. 그것이 길고양이 프로젝트입니다.”

그의 음악을 만드는 피아노 옆에 그가 그린 그림이 놓여 있다. 예전부터 그리던 그림을 잠시 소홀히 했는데 푸르메 재단의 어린이 재활 병원 자선 전시회의 요청으로 다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생각이 떠오른 날, 곧바로 책 여러 권을 가져가서 공중전화 양옆에 두고 “가져가서 읽고 다시 돌려주거나 읽지 않는 책을 놓아달라”는 스티커를 붙여 공중 전화 부스에 두었는데 이내 책이 사라졌다. 혹시 폐지를 수거하는 동네 할머니들이 가져갔는지 확인해보려고 폐지 리어카를 따라다녀보아도 그런 증거는 발견하지 못했다. 작업실 옥상에 올라가서 공중전화 부스를 보는 게 재미있어서, 책이 사라지면 또 다른 책을 가져다 놓기를 반복했다. 책이 계속해서 사라지다가 어느 날 마침내 다른 사람이 놓고 간 새로운 책 한 권을 발견했다. 되돌아온 마음 하나는 길고양이 실험을 마무리하기에 충분한 결과였다.

이처럼 매일 예술 활동을 하는 그에게 사람들은 언제 다시 음악을 들려줄 것이 냐고 묻는다. 하지만 그는 한 번도 음악 작업을 멈춘 적이 없다. 아프리카, 유럽, 중앙아시아를 여행하며 현지 악기와 음악을 데려왔고 국내 산골과 마을을 찾아가 주민들과 아이들을 초대해 음악회를 열었다. 또 1930년대 희극적 대중가요였던 만요를 음악극으로 재현해 성공적인 공연이 된 <천변살롱>에서도 그의 음악을 들을 수 있다. 아프리카에서 얻은 영감으로 음악을 만들고 오브제 마임과 샌드 아트, 그림자극 등을 결합한 <해 지는 아프리카>는 작년에 많은 사랑을 받아 오는 3월부터 한 달간 앙코르 공연으로 무대에 오른다. “이제 제 자신이 예술가로서 주변에서 오는 물질적 공격에 중심을 잃지 않게 된 것 같아요. 음악은 제가 할 수 있는 가장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올해는 <해 지는 아프리카> 공연을 잘해서 아프리카에서 얻은 영감을 사람들에게 음악으로 들려주고, 기타 포 아프리카 모금과 다큐멘터리를 통해 기타를 가진 아프리카 아이들의 즐거움과 열정을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습니다. 그리고 또 얼마 전 푸르메 재단의 어린이 재활 병원 지원을 위한 자선 전시회에 참여 하면서 또 다른 행복을 찾았어요. 그림을 그리는 것이죠.”

사람들은 여행을 많이 하는 연예인 하림의 삶을 부러워하지만, 사실 그는 여행을 하기 위해 평소에 적게 쓴다. 보이는 것에 대한 이런 오해를 살펴보려고 SNS 프로젝트를 시 작했다. 
1 푸르메 재단의 어린이 재활 병원 건립 자선 전시에서 그의 그림이 기대 이상의 큰 호응을 얻었다. 덕분에 좋은 일도 하고, 그림을 그릴 용기도 다시 얻었다. 2 그의 작업실은 그동안 만든 음악과 진행해온 예술 프로젝트의 산물이 모인 박물관이다. 세계 곳곳을 여행하며 갖고 온 악기와 소품, 도하 프로젝트 등으로 작업실을 찾아온 많은 예술가의 작품이 곳곳에서 눈길을 끈다. 3 시흥동의 허름한 건물 3층에 직접 만들고 꾸민 작업실 전경. 
평소 그가 그림을 그리는 것을 알고 있던 전시 기획자의 요청으로 쑥스러워하며 내준 그의 그림이 솔드 아웃되어 어린이 재활 병원 건립에 도움을 줄 수 있게 되었다. 자선 전시이지만 작품이 판매되는 기분을 느껴본 건 처음이다. 연예인의 그림이라서 그럴 거라고 몇 번을 의심했지만, 그림 자체가 좋았기 때문이라는 답을 재차 들으니 한동안 잊었던 그림에 대한 열정이 다시 살아났다. “몇 번을 의심한 끝에 제 그림도 사랑을 받는 것으로 생각하고, 올해부터는 부지런히 그림을 그려보기로 했어요. 전시 기획자에게도 덕분에 다시 스케치북을 꺼내게 되었고, 좋은 일도 하고, 행복을 찾게 되어 고맙다고 말했어요.”

예술가 하림은 이처럼 모든 순간에 잘하느냐 못하느냐보다 중요한 건 하느냐 안 하느냐라는 말의 주인으로 사는 것이라고 했다. 개인도 콘텐츠 생산자가 되면서 미디어와 SNS에서 갖가지 좋은 말과 콘텐츠가 쏟아지는 시대. 그 많은 말을 흘려보낼지 그 말의 주인이 될지를 결정하는 건 우리 자신이다. 떠오른 걸 하는 것이 진짜 예술이라면, 말을 그저 흘려보내는 사람에게 예술은 우주만큼 멀리 떨어져 있을 수밖에 없다. 반대로 내 마음속 말의 주인이 될 때 우리의 삶이 곧 예술이 된다. 싱어송라이터 하림이 매일 예술적 삶을 실험하며 우리에게 삶의 노래를 전하고 있다.

“예술가가 될 수 있는 큰 명제는 잘하느냐 못하느냐가 아니라, 하느냐 안 하느냐인 것 같아요. 저는 좋은 말을 마음에 새기면 그대로 실행하는 편이에요. 그 말의 주인이 되는 것이죠.”



예술가 하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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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민정 기자 | 사진 민희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6년 2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