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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렉터 김용원 대표와 김원숙 작가 애호가의 즐거움이 만든 나비효과
우리가 사는 세상은 놀라운 초연결 사회다. 무언가를 좋아하고 지지하는 미미한 시도가 예술가에게 긍정적 영향을 미쳐 거대한 성장과 환원을 이룰 수 있다. 도서출판 삶과꿈의 김용원 대표와 일리노이 주립대학교에 재산을 기부해 김원숙 예술대학을 만든 김원숙 작가의 40년 인연은 서로가 모르던 긍정의 나비효과로 연결되어 있었다.

어느 가을 오후, 평창동 애호가의 집 정원에서 만난 김용원 삶과꿈 대표와 맏딸인 김진영 연세대학교 노어노문학과 교수. 전시실과 이어지는 정원에는 아름다운 숲의 전경 속에 김용원 대표와 부인인 신갑순 성악가가 함께 수집한 조각 작품과 석상 등을 전시했다.

정원의 새하얀 벽에 김원숙 작가의 설치 작품을 공개하는 날 한국을 방문한 김원숙 작가와 토머스 클레멘트 부부. 이날 김용원 대표 부녀는 김원숙 작가 부부의 지인을 초청하는 작은 파티를 열었고, 김원숙 작가의 아버지를 포함한 가족, 친구, 지인들이 참석했다.
나비효과란 브라질에서 나비 한 마리가 날갯짓을 하면 예기치 못한 상황으로 연결되면서 종래에는 지구를 한 바퀴돌아 미국에 거대한 변화가 발생한다는 이야기. 무언가를 애호하고 오랫동안 지지하며 수집하는 활동은 전혀 예상치 못한 긍정적 효과의 날갯짓이 될 수 있다. 10월 초, 평창동 주택에서 만나 서로에게 감동한 도서출판 삶과꿈의 김용원 대표와 김원숙 작가의 이야기다.


김용원 대표, 애호가로 사는 즐거움
50여 년 전, 조선일보 경제부 기자로 일하던 김용원 대표는 고등학교 담임선생님의 전시회에 갔다가 안개꽃 그림을 한 점 샀다. 그리고 얼마 뒤에는 문화부 동료 기자를 따라 화랑에 갔다가 이응노라는 화가가 그린 작은 그림을 샀다. 박봉에 그림을 사다 보니 작품과 작가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이후 좋아하는 작은 그림이 생기면 돈을 모아 사곤 했다. 김익영 작가의 도자기 작품과 권진규·이영학 작가의 조각품도 좋아했다. 변시지, 김상유, 김원숙, 방혜자, 박고석 화백의 그림을 비롯해 단원과 오원의 고화부터 이름 모를 장인의 민화, 서예 작품, 생활 소품까지 아름다운 미감과 좋은 기분을 주는 무엇을 발견하면 수집하곤 했다. 성악가인 아내와는 음악, 미술, 여행의 취향이 비슷해 젊은 날부터 두루 다니며 본 아름다운 것에 대한 감동과 추억을 공유하고 있다. 예술 작품을 소장하는 사람을 컬렉터라고 부르지만, 그는 컬렉터가 아닌 애호가다. 소장품 하나를 팔아 젊은 작가의 작품 열두 점을 새로이 대하면서 행복한 기분을 열두 번 더 느낄 수 있다면 그것을 실천에 옮겼다. 유명 작품이 아니더라도 산책길이나 여행에서 발견하는 잘생긴 돌멩이를 애호하는 기쁨을 누렸다. 작은 돌을 테이블 위에 올려 놓고 아침에도 저녁에도 그 형태와 미감에 감탄하며 매일 행복한 웃음을 웃는다. 팔순이 넘어도 여전히 매일 스스로 행복을 발명해내는 애호가의 인생이다.

각 지역의 미감을 지닌 생활 소품은 김용원 대표가 예술 작품 못지않게 애호하는 것이다.

김원숙 작가가 자신의 도록에 직접 그려 컬렉터에게 선물한 드로잉들.


김원숙 작가의 작품으로 채운 공간. 앞으로 김용원 대표가 애호하는 여러 작가의 의미 있는 전시를 여는 공간으로 사용할 계획이다..
김진영 교수, 아버지의 안목에 대한 존경
김용원 대표의 맏딸인 김진영 연세대학교 노어노문학과 교수는 재산이 아니라 즐거움의 크기를 늘려가는 부모님의 인생을 좋아했다. 아버지는 기자 생활 이후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 AMP를 거쳐 대우전자 사장, 대우경제연구소 회장을 지냈고, 이후에는 어머니와 함께 도서출판 삶과 꿈을 열어 좋은 생각과 글로 세상과 소통하며 노년을 맞았다. 이처럼 존경하는 부모님이 팔순이 넘자 딸은 자신의 집을 짓기로 결심했다. 3층 건물이지만 정작 사는 곳은 꼭대기층에 단출하게 구성했다. 나머지 공간과 정원에 아버지의 컬렉션을 둘 공간을 최대한 늘리기 위해서였다. 유명 미술관은 아니지만 딸의 눈에 마냥 멋있던 아버지의 수집품으로 채워진 집을 짓고 싶었다. 강가에서 주운 작은 돌멩이, 시골에서 가져온 옛 농기구도 저마다의 미감으로 가치를 지닌다고 믿는 인생. 그런 아버지와 좋은 벗으로 지낸 김종학 화백은 대학생이던 김진영 교수에게 “너희 아버지는 한국에서 가장 안목 좋은 수집가다”라고 슬쩍 귀띔 해주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세상의 사물을 보는 아버지의 미감은 탁월하고, 딸이 아버지를 위해 지은 평창동 애호가의 집은 그 안목으로 채워져 있다. 집을 지으면서 정원 한편에 빈 벽이 생기자 김진영 교수는 뉴욕에 있는 김원숙 작가에게 작품을 의뢰했다. 아버지가 1970년대 후반쯤 명동의 한 갤러리에 갔다가 우연히 작품을 본 작가다. 당시 김용원 대표의 눈에는 이 신진 여성 작가의 그림이 아주 신선했다고 한다. 작은 캔버스 너머로 작가의 이야기와 에너지가 느껴지는 것 같았고, 무엇보다 기본기가 아주 탄탄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지난 40여 년간 전시 소식이 들릴 때마다 가서 보고는 좋아서 구입해온 김원숙 작가의 작품이 20여 점에 이른다.

김용원 대표의 수집품은 서양화도 있지만 주로 우리 조상의 미감이 담긴 서화와 고화, 도자기 작품이 주를 이룬다.

운심석면이라는 이름을 붙인 김진영 교수의 집은 층간 복도에서도 수집한 고화와 공예품을 감상할 수 있다.

전망이 아름다운 3층의 거주 공간에는 침실과 주방, 거실이 오픈형으로 이어진다.

김용원 대표는 평창동 집에 소장하고 전시한 작품은 물론, 60년대 화랑가와 작가들, 애호가로서의 인생에 관한 이야기 책을 집필하고 있다.
김원숙 작가, 상금이 기부가 된 나비효과
김원숙 작가는 1970년대 홍익대학교 서양화과 1학년을 마치고 미국 일리노이 주립대학교에 전액 장학생으로 입학해 석사까지 마쳤다. 가난한 유학생이던 그는 졸업생 공모전에 응모해 상금 5백 달러를 받았다. 귀국 직전에 작은 날갯짓을 가능하게 한 5백 달러! 그는 뉴욕으로 가서 유명 갤러리 소속 화가가 되었고, 이름이 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갤러리는 그에게 미술 시장의 공식에 맞는 어두운 색채의 그림을 요구했다. 많은 기회가 보장되는 갤러리였지만, 자신의 내면에 집중한 그림을 그리기 위해 갤러리에서 나왔다. 이후 미국과 한국에서 작품이 판매된 덕분에 작업을 이어갈 수 있었는데, 훗날 한국 전시회 때 김용원 씨의 딸이 찾아오면서 지구 반대편 소장가에 대해 알게 되었다. 김원숙 작가는 쉰 살 되던 해에 볼로냐의 작은 교회에서 마지막 사랑과 결혼했다. 남편인 토머스 클레멘트 씨는 한국 전쟁 때 미군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에게 버려져 미국에 입양되었고, 이후 수많은 특허권을 보유한 발명가이자 기업가로 성장했다. 화가로 기업가로 서로를 지지해온 부부는 클레멘트 씨가 기업을 매각한 1천2백만 달러(약 1백43억 원)를 김원숙 작가의 모교인 일리노이 주립대학교에 기부했다. 미국은 기부를 받을 때에도 기부자의 면면을 파악해 투명성을 점검한다. 그 절차를 마친 일리노이 주립대학교가 김원숙 작가 부부의 인생 이야기와 철학에 존중을 표하며 예술대학 이름을 ‘김원숙 예술대학(Wonsook Kim College of Fine Arts and the Wonsook Kim School of Art)’으로 바꾸기로 결정해 화제가 되고 있다.

작가의 큰절을 받은 지구 반대편 애호가
부부의 공동재산이니 ‘원숙-클레멘트’로 할 수도 있었지만, 클레멘트 씨는 아내의 평범한 한국어 이름이 더 의미가 있다고 했다. “나 줄리아드 음악학교에 다녀”라고 말하는 것처럼 이제부터 유서 깊은 일리노이 주립대학교의 예술대학에 진학하는 학생들은 “나 김원숙 예술대학 졸업생이야!”라고 자신을 이야기할 것이다. 그 옛날 졸업생 공모전에서 받은 상금 5백 달러가 작가의 작은 날개가 되었듯, 부부의 장학금을 받은 학생들 역시 인생과 예술이 발전하고 전환될 무궁무진한 가능성이 그 이름 속에 담겨 있다. 이를 전해 들은 김용원 대표 부녀는 자신의 일처럼 기뻤다. 그래서 부녀는 아버지가 40여 년간 모아온 김원숙 작가의 작품 20여 점을 집의 한 공간에 모아 헌정하는 것으로 예술가이자 사회 환원가인 작가에게 존경을 표했다. 그 공간을 둘러보는 날, 작가는 감동에 북받쳐 그 자리에서 김용원 대표에게 큰절을 했다. 그것은 고스란히 작가의 인생이었다. 저 작품을 판매해 아이의 자전거를 사줄 수 있었고, 저 작품을 그릴 때는 처절했고, 저 작품을 떠나보낼 때는 환희에 차 있었다. 이름도 모르던 애호가의 지지 덕분에 예술가이자 한 개인의 인생이 날갯짓을 해 지구 반대편의 작은 방에 소중하게 모여 있었다. 자신이 행복하다고 느끼는 신념과 가치를 수집해온 애호가의 작은 날갯짓. <성경> ‘욥기’에 나오는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끝은 창대하리라”라는 구절처럼, 때론 나비의 미미한 날갯짓이 누군가의 인생으로 번져가면서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 창대하고 행복한 결론을 이끌어낸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어쩌면 생각보다 더 긴밀하고 더 아름답게 서로가 서로에게 연결된 애호가의 집인 것이다.


오픈 하우스
유명 화가의 작품, 특별한 인연이 있는 김원숙 화가의 작품, 고화, 도자기 등 예술 애호가 김용원 대표의 소장품으로 가득한 평창동 집에 놀러 오세요.

일시 12월 17일(화) 오후 2시
장소 서울시 종로구 평창동(추후 공지)
참가비 2만 원(정기 구독자 1만 원)
인원 10명
신청 <행복> 홈페이지 ‘이벤트’ 코너에 참가 이 유를 적어 신청하세요.

글 김민정 | 사진 박찬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9년 12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