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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훈 정원사 지역 주민과 함께 가꾸는 공공 정원
‘정원’의 사전적 의미는 ‘집 안의 뜰이나 꽃밭’. 아직까지 정원을 ‘개인 공간’으로 한정짓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 정원의 개념은 식물원이나 수목원 같은 ‘공공 정원’을 아우른다. 도시에 아파트 생활자가 많은 우리나라에서는 특히 공공 정원의 역할이 중요하며, 공공 정원 역시 지역 주민의 참여가 반드시 필요하다.

일월공원의 '비밀의 숲'에 선 김장훈 정원사. 이곳의 지형과 생태를 거의 그대로 살려 수목원으로 가꿀 계획이다.

수원수목원이 들어서는 일월공원 안의 저수지 풍경.
정원을 즐기기보다 정원 가꾸기를 즐기는 문화
서울숲 주차장 한편에 ‘도시 정원사’들이 가꾼 ‘오소吾笑정원’이 있다. 잡초가 무성한 방치된 땅에 김장훈 정원사와 도시 정원사들이 다양한 식물을 심어 아름답게 조성한 이곳은 올해로 여섯 번째 가을을 맞았다. 어린이대공원 안에 있는 ‘수요정원’ 역시 2년 전 그가 도시 정원사들과 함께 가꾸기 시작한 곳이다. “어떤 가드닝 교육보다 좋은 것이 식물을 직접 심어 길러보는 것입니다. 오소정원과 수요정원은 가드닝에 관심 있는 일반인들이 직접 식물을 심어 정원을 만들어보는 실습 프로그램을 통해 생겨난 곳이죠. 땅을 파고 풀 한 포기부터 심기 시작했는데, 처음엔 다들 이런 땅이 정말 정원이 될까, 의아해했어요. 그런데 해가 갈수록 달라지는 모습을 보면서 그분들이 아주 큰 희열을 느꼈습니다.” 김장훈 정원사는 미국 필라델피아에 있는 롱우드 가든에서 1년간 국제 가드닝 연수를 받은 적이 있다. 그때의 값진 경험이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가드닝 프로그램에 관심 갖는 계기가 되었다. “롱우드 가든에서 무엇보다 좋았던 일은 그곳의 정원 문화를 경험한 것입니다. 롱우드 가든을 비롯해 30여 개 정원이 모여 있는 필라델피아는 ‘미국 정원 문화의 수도’라고 불리는 곳이에요. 이 지역에는 가드닝을 즐기는 일반 시민부터 학계, 산업계까지 탄탄한 시스템이 갖춰져 연중 다양한 심포지엄과 체험·교육 프로그램, 페스티벌 등이 열리죠. 정원 문화라는 아름다운 숲이 자라려면 정원을 즐기기보다는 가드닝을 즐기는 문화가 바탕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가드닝의 재미를 깊이 있게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필요하죠.”

서울숲 주차장 한편에 김장훈 정원사가 도시 정원사들과 함께 가꾼 오소정원이 있다.

김장훈 정원사가 방문한 곧중 가장 큰 인상을 받았던 네덜란드 플린데르호프 정원의 8월 모습.

일월공원 내 주민들이 가꾸는 텃밭.
“정원 문화라는 아름다운 숲이 자라려면 정원을 즐기기보다는 가드닝 자체를 즐기는 문화가 바탕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가드닝의 다양한 재미를 깊이 있게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필요하죠.” _김장훈

시민이 참여해서 만드는 도심형 공공 수목원
김장훈 정원사는 현재 수원시의 첫 시립 수목원, 수원수목원 조성 프로젝트를 맡고 있다. 수원 일월공원 안에 조성하는 수원수목원은 2020년 개장을 목표로 내년부터 공사를 시작한다. 수원수목원 주변에는 아파트 단지와 여러 학교, 도서관이 지척에 위치한다. 가치 있는 식물 자원을 다양하게 수집·보존·연구하는 수목원 본연의 역할은 기본이고, 이를 바탕으로 도심 안에 좋은 자연환경을 만들어 시민들이 가까이에서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수원수목원 같은 도심형 수목원이 해야 할 일이다. “그리고 꼭 해보고 싶은 일 중 하나가 수원수목원을 시민들과 함께하는 공공 정원의 좋은 사례로 만드는 것입니다. 롱우드 가든 같은 외국의 좋은 공공 정원에는 직원보다 자원봉사자가 훨씬 많아요. 소수의 직원만으로는 그 넓은 정원을 꼼꼼하게 관리하기 힘들죠. 많은 시민이 참여하면 그만큼 재미있고 개성 있는 정원으로 가꿀 수 있습니다. 이는 참여하는 시민들에게도 좋은 경험이 됩니다. 지역에 좋은 공공 정원이 있다는 점만으로도 자부심을 갖게 되죠.” 김장훈 정원사는 몇 년 전 <겨울정원>이라는 책을 펴냈다. 겨울은 정원사에게 숙제 같은 계절이다. 처음에는 어쩔 수 없는 시간이니 빨리 지나가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언젠가부터 겨울 정원을 찾아다니며 그 아름다움에 눈뜨게 되었다. 그러면서 겨울 정원에서 삶의 지혜도 얻었다. “여백이 많은 겨울 정원이 아름다우면 다른 계절에는 자연스레 더 아름다울 수 있습니다. 그래서 좋은 정원사는 겨울 경관을 생각하며 정원을 만들죠. 정원에는 참으로 다양한 순간이 있습니다. 봄의 갓 피어나는 에너지, 여름의 생동감, 가을의 원숙함, 그리고 겨울의 춥고 황량하고 결핍된 시간. 이런 순간들이 삶에도 찾아오죠. 내가 원치 않아도 겨울 같은 순간이 옵니다. 겨울 정원에 그 나름의 아름다움과 고마운 순간이 있다는 걸 깨달으면서 삶의 겨울 같은 순간도 잘 살아내는 방법을 알게 되었어요. 가드닝을 하면서 삶이 더 여유 있고 성숙해졌습니다.”


정원사에게 물었습니다

가드닝 초보자가 좋은 정원을 만들려면?
프랑스의 유명한 정원 철학자 질 클레망은 같은 질문을 받고 이런 답을 했습니다. “1년 정도 아무것도 하지 말고 그 땅을 잘 관찰하라. 관찰하다 보면 이 땅에 어떤 식물이 자라는지, 건조한 땅인지 물이 많은 땅인지, 바람은 어떻게 부는지, 햇빛은 어떻게 비추는지, 그 주변에 뭐가 있는지 등을 알게 되고 여기에서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생태적, 문화적 관찰을 바탕으로 상상력을 발휘하면 그 땅에 걸맞은 아름다운 정원을 구성할 수 있습니다.

겨울만의 아름다움을 담은 정원을 가꾸려면?
겨울에 꽃이 피는 식물이 있긴 하지만 그 종류가 많지 않아서 꽃에 집중하기보다는 가지만 남은 나무 자체의 아름다움을 잘 살려야 합니다. 나뭇가지의 조형성이 어떤 조형물보다 아름다울 수 있어요. 그걸 감상할 수 있는 계절은 겨울밖에 없습니다. 가지와 가지 사이의 여백도 아름답고요. 또 겨울 정원의 색감은 갈색입니다. 마른 풀이 지닌 다양한 갈색 농담을 잘 조화시키세요.

직접 가본 외국 정원 중 소개하고 싶은 곳은?
독일 브레멘 외곽에 있는 가르텐 모오림Garten Moorriem은 한 부부가 10년 전쯤 가꾸기 시작한 예술 정원으로, 처음 만든 정원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아름다워요. 미국 펜실베이니아주의 마운트 쿠바 센터Mt. Cuba Center는 주인장이 30년간 그 지역의 자생 식물들을 모아 만든 생태 정원입니다. 그리고 네덜란드 위트레흐트에 있는 플린데르호프linderhof. 5년 전에 오픈한 이곳은 세계적 정원 디자이너 핏 아우돌프가 디자인하고 지역 주민들이 가꾸는 작은 정원입니다. 주민 한 명이 공원 빈터에 핏 아우돌프의 정원을 만들기 위해 3~4년간 관공서를 찾아가 설득하고 디자이너에게 편지를 보내 마침내 결실을 맺게 된 곳이에요.

글 박진영 | 사진 김규한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9년 10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