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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나인 구근나 대표 취향의 서재
비주얼 머천다이징을 전공하고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활동하다 차 도구와 그림을 판매하는 쇼룸을 오픈한 갤러리나인 구근나 대표. 편안한 찻자리와 쓸모 있고 아름다운 사물이 있는 ‘취향의 서재’는 바쁜 일상에 쫓겨 저만치 미뤄둔 자신을 깨우고 심미안을 살찌운다.

구기동의 2층 주택을 개조한 갤러리나인 쇼룸과 오피스. 한국 문화를 모던하게, 현대의 리빙과 연결해서 소개하는 공간에 늘 아쉬움이 있었다는 구근나 대표가 오픈한 공간으로 VMD,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활동한 경험을 살려 가구와 그림, 차 도구를 선보인다.

쇼룸으로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마주하는 아일랜드 존. 이경한, 김윤동, 이정미 등 국내에서 활동하는 도예가의 다완과 주전자를 전시했다. 알루미늄 선반장은 챕터원 스틸 라이프 제품.

구근나 대표의 주거 공간. 복층 빌라의 위층 공간은 전체를 주방과 다이닝룸, 라운지로 사용한다. 아일랜드 맞은편에 널찍한 테라스가 펼쳐져 멋진 야경을 바라보며 식사를 즐길 수 있다.
서울대 심리학과 최인철 교수는 저서 <굿 라이프>에서 “사는(buy) 것이 달라지면 사는(live) 것도 달라진다”고 말했다. 재화를 사는 것보다 경험을 사는 게 사람을 훨씬 더 행복으로 이끈다는 의미다. 행복한 사람은 돈으로 경험을 사서 삶의 이야깃거리를 만드는 사람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강도보다 빈도. 소소한 즐거움을 일상에서 자주 경험하는 것이 행복에 더 유리하다. 남국으로 떠나는 여름휴가, 미쉐린 3스타 레스토랑에서 즐기는 근사한 한 끼보다 매일 마시는 차 한잔이, 마음이 충족되는 식사가 쌓여 더 큰 만족감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차 도구와 그림 그리고 아름다운 사물을 소개하는 ‘갤러리 나인’의 부제 ‘취향의 서재(Library of Favorites)’에 담긴 의미와 방향도 같은 맥락이다. 이는 갤러리나인이 삼청동, 한남동, 청담동 대신 구기동 주택가에 자리 잡은 이유이기도 하다. 사회적으로 워라밸을 강조하면서 집에서 보내는 시간과 활동이 점점 늘어나는 요즘 음식과 가구, 소품 등 취향과 관심사를 구현하는 베이스캠프가 바로 집이기 때문. 동시에 사람들은 바깥에서의 문화생활도 적극적으로 즐긴다. 아트 투어 분야가 따로 있을 정도로 해외여행에서 미술관은 빼놓을 수 없는 코스이며, 국내 유수의 미술관에서는 세계 유명 작가의 전시가 앞다퉈 열린다. 구근나 대표의 질문은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됐다. “그림을 꼭 미술관에서 봐야 할까? 작가가 되어 예술품을 생산할 수는 없지만, 일상에 예술품을 끌어들이는 삶을 만드는 일은 누구나 충분히 도전해볼 만하지 않은가!”


마음 치유의 에세이, <차의 시간>
구근나 대표는 갤러리 문턱을 낮추기 위해 주택을 개조했다. 평범한 가정집이던 이층집 1층은 친정어머니의 주거 공간으로, 2층은 차 도구와 민화 등 작품을 판매하는 갤러리로 용도를 변경하고 출입문을 분리했다. 2층 갤러리로 들어서니 찻잔이 진열된 선반장과 아일랜드가 눈에 띈다. 노출 콘크리트로 마감한 널찍한 전시 공간 중앙에는 정성옥 작가의 ‘책가도’가 걸려 있다. 현대건축과 전통 목짜임 가구, 민화와 아트 포스터, 모던한 아일랜드와 차 도구가 조화를 이루며 묘한 콘트라스트를 만들어낸다. 나무 계단을 오르면 메자닌 구조의 중2층 오피스 공간이 펼쳐진다. 뉴 모던 스타일의 소파와 빨간색 자개장, 크래프트맨십이 돋보이는 데니시 가구와 민화, 자작나무 마감과 쪽빛 도자합 등 동서양의 믹스 매치 스타일링이 돋보인다. 중2층의 백미는 숨은 다실이다. 화이트 큐브 형태의 다용도실 천장 위쪽에 마련한 다실은 집의 가장 꼭대기에서 가장 높은 창을 관망하며 차를 마시는 명당이다.

“다실은 소란스러운 세상으로부터 차단해주는 비밀 아지트랄까요? 갤러리가 아트 살롱처럼 많은 사람이 드나들며 편안하게 문화를 즐기고 교류하려면 매개체가 필요해요. 저는 ‘차’가 좋은 매개체가 될 수 있다고 믿어요.” 친구와 차 한잔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작품을 둘러볼 수 있으니 일반 갤러리보다 편안하고, 생활과 작품이 어우러진 모습을 보면서 “우리 집에도 이렇게 매치하면 되겠다” 는 팁까지 얻을 수 있다는 것. 그는 이웃집에 차 한잔하러 오듯 편안하게 즐겼으면 하는 바람을 공간 곳곳에 담았다. 높은 천장고와 커다란 창은 잠시나마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차를 음미하는 데 도움이 된다. 디자인 피스의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소파와 라운지체어, 구로 철판으로 직접 제작한 벤치, 캐주얼한 바 체어 등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 편안한 찻자리가 된다. 스타일도, 도구도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취향에 맞춰 즐기면 그뿐. 백자, 분청 등 전통부터 모던까지 작가들의 다양한 다완뿐 아니라 유리 주전자, 화반, 작은 야생화 화분 등 여러 제품군을 갖춘 이유다.

중2층 계단 끝에서 바라본 사무 공간과 쇼룸. 박공 구조의 높은 천장고와 커다란 창이 개방감을 선사한다. 중2층 한가운데에 자리한 박스 형태의 다용도실 천장 위쪽이 바로 비밀 다실. 가장 높은 곳에 앉아 천창을 관망하며 고요한 티타임을 즐길 수 있다.

차 한잔 제대로 마시려면 머무르는 시간이 편안해야 한다. 갤러리 곳곳에 편안하게 걸터앉을 수 있는 벤치를 제작·배치했다. 오른쪽 정성옥 작가의 민화 병풍과 양병용 작가의 소반, 김인자 선생의 베개가 놓인 전시 공간. 책가도와 책거리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정성옥 작가의 작업은 전통에 머물던 민화를 실생활에서 즐길 수 있게 만든 데 의미가 있다. 

감각의 산문, <취향 담은 집>
갤러리나인은 차 도구를 비롯해 소반, 가구, 작품까지 모든 가격을 공개한다. 작품이라고 정보를 폐쇄하는 시대는 지났다. 일상에서 향유하는 것은 생활재로서 가치가 있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정보 전달이 우선돼야 한다. 그림도 마찬가지다. “갤러리에 꼭 값비싼 작품만 있는 건 아니에요. 접근 가능한 가격대의 판화나 아트 포스터도 추천해요. 작아도 힘 있는 작품 한 점만 걸어도 삶의 공간이 확 달라지죠. 꼭 미술을 전공하지 않아도 자꾸 보다 보면 끌리는 작품이 눈에 띄고, 취향의 기준이 생기죠.” 

작품에 대한 그의 취향의 기준은 집에서도 여지없이 드러난다. 구기동 갤러리나인이 한국적 아름다움을 선보인다면, 집은 유러피언 모던 클래식 무드로 인테리어했다. 갤러리 홈을 테마로 미니멀하게 마감한 벽에 작품을 매치하고, 작품을 걸지 않은 벽은 웨인스코팅wainscoting으로 클래식하게 포인트를 줬다. 집과 갤러리의 인테리어는 인테리어디자인 회사를 운영하는 그가 직접 진행한 것. 

“프랑스에서 비주얼 머천다이징을 전공하고 쁘렝땅 백화점 인턴십을 거쳐 트렌드 정보 회사 도미니크 페클레Dominique Peclers에 입사했어요. 패션, 인테리어, 디자인 등 다양한 분야에서 파생되는 수많은 정보를 분석해 콘셉트를 정리하고 비주얼, 컬러, 패브릭 등 한 해를 끌고 가는 키 테마를 잡아나가는 일의 과정 자체를 즐긴 것 같아요. 그때의 경험이 한국으로 돌아와 한섬 VMD를 거쳐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활동하는 지금까지 양분이 되고 있죠.” VMD로 매장 디스플레이를 하다 보니 자연스레 인테리어에 관심을 갖게 됐고, 10년 전 한창 대단지 아파트를 지을 때 모델하우스 디스플레이 일을 맡으면서 인테리어디자인 회사를 차렸다. 그때 지은 회사명이 갤러리나인이다(선견지명이 있던 걸까, 10년 후 갤러리를 오픈했다!). 그는 인테리어 작업을 하면서 직접 카페와 식당을 오픈해 운영하기도 했다. 청담동과 한남동의 마더스 오피스, 현대백화점에 입점한 캐주얼 한식당 미서울, 이태원의 중식당 단단까지… 패션, 디자인, 인테리어에 대한 관심이 미식까지 의식의 흐름처럼 자연스럽게 업으로 연결됐다. 

총 아홉 세대가 사는 빌라 꼭대기 층에 자리한 집은 그간 관심을 가진 모든 것의 집합체다. 백미는 복층 위층에 자리한 널찍한 주방과 다이닝룸. 회화, 사진, 조각 등 그의 취향을 엿볼 수 있는 작품과 모던&클래식 가구가 적절히 조화를 이룬 코지한 라운지는 집에서도 충분히 라이프스타일을 향유하며 다양한 교류가 이뤄짐을 짐작할 수 있다. 

2층 주택을 사무실 겸 쇼룸으로 개조했다. 소담한 마당이 있는 1층은 친정어머니의 주거 공간으로, 2층은 갤러리나인의 쇼룸으로 사용한다.

뉴 모던 스타일의 콘솔과 스페인 작가 미겔 앙헬의 페인팅, 앙코르와트에서 공수한 오브제가 어우러진 코너.

계단과 긴 복도 등 다양한 레이어를 느낄 수 있는 주거 공간. 

욕실이야말로 하루의 시작과 끝을 책임지는 공간인만큼 최대한 넓고 쾌적하게 꾸미고 싶었다는 그는 화이트 대리석과 커다란 창으로 온종일 햇살이 들어오는 클린 욕실을 구현했다.

쇼룸 테라스에 파티션 역할을 하는 콘크리트 외벽을 두르고 부분적으로 면을 절단해 숲을 바라볼 수 있게 했다.

중2층의 라운지 공간. 기존 주택의 단층 면적을 그대로 사용하되, 2층의 천장을 수직으로 확장해 시각적으로 넓어 보이는 효과를 냈다.

가장 안쪽에 자리한 마스터 베드룸. 일반 빌라나 아파트와 달리 긴 복도를 사이에 두고 마스터 베드룸과 거실이 나뉘는 구조다.

미인도는 남기선 작가 작업.

발코니와 테라스 등 아웃도어를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주거 공간. 야외용 스틸 가구를 제작했다. 

지금 우리의 필독서, <코리안 뷰티> 
“집을 보면 그 사람의 관심사는 물론 가치 기준도 알 수 있어요. 저는 옛날 것과 요즘 것, 투박한 것과 매끈한 것을 믹스 매치하는 게 좋아요. 사진을 장식한 투박한 탁자는 제주 지역 전통 고가구예요.” 시대가 달라졌다. 불과 10년 전까지만 해도 해외 생활은 큰 경쟁력이 됐고, 벤치마킹이 가능하던 시대였다. 하지만 지금은 모두에게 같은 정보가 열려 있고 변화 속도도 무척 빠르다. 속도에 휩쓸리지 않는 무형의 가치, 우리 고유의 경쟁력을 찾아야 한다. “민화는 우리에게만 있는 고유한 문화예요. 해외에서도 지금껏 본 적 없는 가장 판타스틱한 장르로 꼽는데, 막상 민화를 어디서부터 접해야 할지 정보가 부족하죠. 실제 갤러리를 찾는 손님들도 정성옥 작가의 민화 병풍, 남기선 작가의 창작 민화에 관심이 많아요. 갤러리처럼 모던한 요즘 주거 공간에 잘 어울리는 작품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이미 작품은 작가의 캔버스 밖으로 나와 세상과 뒤섞이고 있다. 예술은 아름다움을 일상으로 끌어들이는 가장 근사한 방법이다. 아름다움을 느끼게 되면 그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행동이 일어나고 생각이 바뀐다. 

“사회생활을 한 지 벌써 30년 차예요. 지난 20년간 치열하게 일했다면, 앞으로 20년은 조금 여유 있게 지내자 했을 때 떠오른 것이 바로 그림과 차였어요. 요즘 어머니와 함께 민화를 배워요. 석채 가루를 준비하고, 밑그림을 그리고, 하나하나 채색하는 과정은 물 끓이고 찻잔을 데우며 차가 우러날 때까지 기다리는 과정과 꼭 닮았죠.” 좋은 차를 마실 때는 흙 냄새가 난다. 푸른 봉우리를 바라보며 하루 종일 맛있는 차를 즐기는 것, 정돈된 집에서의 생활, 소통이 이뤄지는 관계, 아름다움을 구체화해나가는 것…. 시간의 파도는 이렇듯 계속해서 밀려오고 지나가지만 정작 해보지 않으면 그것이 행복인지 알 수 없다. 어떤 경험이라도 지금 시작하라. 자신만의 아트 살롱에서! 


오픈 하우스
‘갤러리나인’ 사무 공간과 쇼룸에 독자분들을 초대합니다. 구근나 대표가 직접 레노베이션한 공간을 둘러보며 일상에서 향유하는 예술의 가치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일시 8월 28일(수) 오후 2시
장소 서울시 종로구 비봉5길 19-14 갤러리나인
참가비 2만 원(정기 구독자 1만 원)
인원 6명
신청 방법 <행복> 홈페이지 '이벤트' 코너에 참가 이유를 적어 신청하세요.

글 이지현 기자 | 사진 박찬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9년 8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