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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먼트 라이프 간결하되 유쾌하게!
봄처럼 따사롭고 생기 넘치는 컬러를 입은 집에서 3인 가족과 반려묘 초코가 함께하는 컬러풀 라이프 속으로 들어가보자.

화사한 옐로 컬러로 포인트를 준 주방. 벽이 아닌 아일랜드 쪽에 후드를 설치해 김민정 씨가 식탁에 앉은 다연이를 바라보며 요리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사람 사는 곳이 무색무취일 수 있나요? 공간에 선명한 컬러를 더한 이유는 색채가 지닌 고유한 에너지를 믿기 때문이에요.” 지난해 12월 판교에 새 보금자리를 마련한 김윤식·김민정 부부는 초등학생 자녀(13세)와 함께 집중하고 교감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개성 없이 밋밋한 것도, 그렇다고 주의가 산만한 것도 원치 않았다. 담백하되 생기를 부여하는 집. 말이야 쉽지만 서로 상충하는 성질을 어떻게 어울리도록 절충할 수 있을까? 해답을 찾기 위해 기존 주거 스타일에서 탈피할 필요가 있었다. 이 부부가 상업 공간 디자인 경력이 있는 콜라사이다 디자인의 조연희 실장에게 레노베이션을 의뢰한 이유였다. 첫 회의 때 김민정 씨는 강렬한 빨간색 바지와 골드 장식을 걸치고 나타나 조연희 실장을 살짝 당황케 했다. 조 실장은 곧바로 그가 디자인에 보다 열려 있고 유연하리라는 것을 감지했다. “누구나 내면에 잠재한 취향이 분명히 있어요. 화려한 색상의 의상을 보고 좀 더 과감한 컬러를 제안해도 좋을 것 같다고 판단했죠.” 예사롭지 않은 인상의 첫 만남. 주거 공간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유쾌한 색상을 입은 집이 탄생한 배경이다.

천고를 높여 개방감을 부여한 거실에는 별다른 가구나 가전을 놓지 않고, 반려묘 초코의 스크래처와 남편 김윤식 씨가 그린 그림, 식물 화분만 두어 정갈한 갤러리 분위기를 연출했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다윤이의 방은 밝은 톤의 벽지와 가구로 마감하는 한편, 컬러풀한 침구와 패브릭으로 재미를 주었다.
집을 색색으로 물들여도 되나요?
오래 살 집은 무채색으로 꾸미는 것이 안전한 선택일까? 정답은 없다. 남보다 자신의 목소리를 따르는 것이 후회하지 않는 길일 뿐. “금방 질리지 않을까 걱정도 했지만, 우리 가족의 개성을 살리기로 결정한 이상 거침없었죠.” 컬러가 돋보이기 위해선 새하얀 도화지가 필요한 법. 조연희 실장은 우선 불필요한 요소를 없애고 깨끗한 배경을 만드는 데 주력했다. 빌라 꼭대기 층이라는 점을 살려 천장을 터서 천고를 높이니 박공지붕 형태가 드러나 공간에 구조적 아름다움과 함께 개방감이 더해졌다. 여기에 화이트 벽지와 밝은 그레이 타일로 마감해 주방과 거실이 더욱 넓어 보이는 효과를 냈다. 거실은 샹들리에나 펜던트 조명등을 따로 두지 않고 스폿 조명등만 설치했다. 보통 거실에 메인 조명등을 달지 않으면 어둡지 않을까 조도를 걱정하는 데 반해 김민정 씨는 ‘쿨’했다. “정어두우면 플로어 조명등이나 스탠딩 조명등을 놓으면 되니까요.” 대신 다이닝 공간에 유리구슬 여러 개를 매달아 놓은 형태의 펜던트 조명등으로 힘을 주었다. “이전에는 가족 간의 대화가 부족했다면 이사 온 뒤로는 식탁에 둘러앉아 이야기를 많이 나눠요. 계속 이곳에 앉아 있고 싶도록 만드는 데는 조명이 한몫하는 것 같아요.” 뭐니 뭐니 해도 이 집의 하이라이트는 옐로 컬러로 포인트를 준 주방이다. 먼저 기존에 ㄷ자로 좁고 활용도가 낮은 구조를 변경해 주방을 재구성했다. 베란다를 터서 공간을 넓게 확보하고 아일랜드 쪽에 후드를 달았다. “다이닝 공간과 마주하고 있어 남편과 아이를 바라보며 요리할 수 있어서 좋아요.”

조연희 실장은 장아찌와 피클을 종류별로 직접 담가 먹을 정도로 요리를 좋아하는 김민정 씨를 위해 주방 곳곳에 세심한 배려를 잊지 않았다. 이를테면 아일랜드 위에 위치한 콘센트는 열원에서 너무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곳에 설치했다. 핸드폰을 충전하거나 블렌더, 전기 주전자 등 소형 가전을 사용할 때 편리하도록 치밀하게 계산한 거리다. 주방 상부장은 없애고 일자 선반 하나만 달았다. 간결하게 살기를 선택한 부부는 보통 수납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선호하는 상부장을 과감히 포기했다. “수납할 공간이 있으면 그에 맞춰 살림을 쌓아두게 되더라고요.” 냉장고 역시 슬림한 컨버터블형 제품으로 바꾸었다. “예전에는 냉장고 정리를 하면 깊숙한 곳에서 오래된 치즈와 베이컨이 뭉텅이로 나왔죠. 지금은 냉장고 용량에 맞게 식재료를 꽉 채우지 않아요.” 생활 공간을 심플하게 바꾸니 쓸데없는 소비가 줄어들었다. 이렇게 군더더기는 없애는 한편, 공간을 대담한 컬러로 채워 밝은 기운을 불어넣었다. 거실 역시 그 흔한 TV와 소파, 사이드 테이블도 없다. 토목 설계 일을 하는 남편이 직접 만든 벤치와 식물 화분, 그리고 그림이 전부다. “남편이 아이와 함께 취미로 그린 유화를 집 안 곳곳에 걸어두었어요. 미술을 전공한 저보다 감각이 뛰어나서 샘이 날 정도예요.” 주말이 되면 거실은 거대한 화실이 된다. 캔버스 위에 다채로운 유화물감이 번져 그림이 완성되는 사이, 시답잖은 말마디도 수다의 씨앗이 되어 정다운 대화와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고 피어난다.

화이트 타일에 블랙 프레임으로 마감한 욕실은 그린 컬러의 세면대 하부장으로 포인트를 주었다.

짙은 그린 색상으로 벽과 천장, 라운지체어의 톤을 맞춘 서재에서는 TV나 영화를 감상할 수 있다.

반려묘 초코를 위해 제작한 빨간색 집과 색색의 캣타워가 시선을 끈다.

분홍색 벽지와 블루 톤의 침구로 로맨틱한 분위기를 조성한 침실.

경쾌한 색으로 생기 넘치는 집을 완성한 김민정 씨와 콜라사이다 디자인 조연희 실장이 벤치에 앉아 포즈를 취했다. 고운 그림으로 둘러싸인 거실은 마치 화실 같다.
작은 존재를 배려한 인테리어
집에 별다른 짐이 없는 이유는 이 부부가 워낙 깔끔한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또 다른 이유도 있다. 반려묘 초코가 또 하나의 숨은 가족이기 때문이다. 3년 전, 외둥이인 딸아이의 정서에 도움이 될까 싶어서 입양을 결심했다. “남편이 모래를 갈아주고 아이가 밥을 주는 조건으로 데려왔는데, 지금은 거의 제 전담이 되었죠.” 김민정 씨가 식사를 할 때면 무릎 위에 올라와 고개를 파고들며 쳐다본다. 쓰다듬어달라는 신호다. 외출 후에 집에 들어가면 가장 먼저 문 앞에 마중을 나올 정도로 이제 애틋한 가족의 일원이 되었다.

현관 중문 맞은편에 보이는 컬러풀한 선반의 정체는 다름 아닌 캣타워다. 원래 있던 붙박이장을 떼어내고 마련한 초코만을 위한 공간. 인테리어 공사를 시작할 때부터 그곳은 초코의 자리로 낙점했다. “작업반장님도 여기는 아예 고양이 집이라고 매직으로 써놨죠.” 캣타워 맨 위에 상부장처럼 보이는 빨간색 수납공간은 초코가 사는 집이다. “초코도 어떻게 자기 집이라는 것을 알았는지 이곳을 안전하다고 느끼는 모양이에요. 별일 없으면 이 안에 하루 종일 얌전히 있지요.” 가끔 집 밖으로 나와 거실을 어슬렁거리다 향하는 곳은 벤치. 초코가 스크래처 용도로 쓰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거실에는 초코를 위한 가구만 존재한다. 초코가 움직이다가 다칠 만한 물건은 최대한 없앤 덕분이다. “이 조그만 녀석이 우리 집 인테리어를 완성한 셈이에요.” 화려한 색채가 저마다의 에너지를 발산하면서도 따뜻함이 느껴지는 건 작은 존재를 위한 배려가 묻어 있기 때문이 아닐까.

글 이승민 기자 | 사진 이경옥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9년 4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