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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구 디자이너의 집 가구 디자이너, 집에 취향을 펼치다
가구는 생활의 필수 요소이자 공간의 오브제 역할을 한다. 최근 다양한 취향을 고려한 가구 디자인이 등장하고, 가구 디자이너가 가구를 최적의 환경에 배치하면서 공간 디자인을 겸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그렇다면 가구 디자이너의 가장 사적이고 내밀한 공간인 집은 어떤 모습일까? 가구를 중심으로 섬세하게 완성해간 그들의 공간은 건축가, 인테리어 디자이너의 집과는 다른 감성으로 새로운 인스피레이션이 될 것이다.


디자인을 대하는 대중의 태도가 전과 많이 달라졌다. 단순히 물건뿐아니라 카페, 레스토랑, 서점 같은 공간을 보면서도 “디자인 괜찮은데?”라는 말을 하곤 한다(미취학 아동인 나의 아들은 아침마다 자신의 옷차림을 말할 때 종종 ‘디자인’이라는 단어를 섞어 표현한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디자인에 대한 견해를 말하고, 나름의 평가를 내리는 일에 익숙해진 것이다. 10여 년 전, ‘디자인 뮤지엄’ 이라는 타이틀을 걸고 한국에 북유럽 가구와 당시 유럽・북미 지역에서 주목받던 디자이너의 가구를 소개할 때만 해도 갤러리에서 예술 작품을 설명하듯 제품 하나하나에 담긴 의미와 콘셉트, 디자이너와 가구 회사의 협업, 역사적 배경까지 관람객에게 설명하던 시절이 생각난다. 지금은 북유럽 가구 디자이너 하면 꽤 많은 사람이 핀 율과 한스 웨그너, 아르네 야콥센을 떠올리지만, 당시에는 가구 디자인에 관심이 많은 극소수를 제외하면 거의 알지 못했고, 하이메 아욘과 톰 딕슨, 헬라 융에리위스와 같은 디자이너 역시 생소한 인물로 여겼다. 하지만 시대가 변해서 사람들이 집을 꾸미는 데 관심을 갖게 되자 가구와 가구를 만드는 디자이너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고, 전문가 못지않게 지식을 갖추기 시작했다. 무엇보다도 디자이너의 명성이 아닌, 자신의 취향과 생활 패턴에 맞춰 가구를 고를 줄 알게 되었다. 

20세기 북유럽 가구 디자이너의 거장 핀 율은 덴마크의 오르줍고르Ordrupgaard에 위치한 자택에서 자신이 직접 디자인한 가구들을 사용했다. 실내 어디에서든 창문 너머로 정원을 보며 자연을 즐길 수 있도록 설계한 1층 주택은 전반적으로 편안하고 절제된 그의 가구에 가장 최적화된 곳. 아울러 그가 생전에 사랑한 예술 작품을 적절히 배치해 자신의 취향을 드러내며 내부로부터 시작해 외부로 귀결되는 그의 공간 디자인 철학을 보여준다. 런던에 베이스를 두고 활동하는 디자이너 듀오 도시&레빈의 아파트는 디자이너들 사이에서도 유명하다. 바비칸 센터에 있는 이 아파트에는 모로소와 헤이, B&B 이탈리아 등 세계적 가구 디자인 회사와 협업한 유기적이고 독립적인(흡사 작품과도 같은!) 가구를 오브제처럼 배치하고, 가구 프로토타입과 오랫동안 수집한 사진 작품, 동서양에서 모은 소품 등 그들이 좋아하는 물건을 매치해 이국적 분위기의 공간으로 꾸몄다.

인도의 텍스타일 문화를 배경으로 한 니파 도시와 런던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한 조너선 레빈이 서로에게 영감을 주는 것과 꼭 닮았다고 할 수 있다. 자신을 에스닉 노매드 취향이라고 이야기하는 이탈리아 디자이너 파올라 나보네는 파리 아파트에 미완의 느낌을 살린 가구와 손맛이 담긴 핸드메이드 물건으로 편안한 집을 꾸몄다. 이처럼 우리가 열광하고 소유하고 싶어 하는 가구를 자신이 생각하는 가장 적절한 방법으로 연출함으로써 ‘그들이 생각하는 참 좋은 모습’을 갖춘 곳이 바로 가구 디자이너의 집이다. 최근 톰 딕슨은 카페와 레스토랑을 비롯해 메트로 폴리탄의 레지던스를 디자인했고, 하이메 아욘은 마드리드 호텔을 설계하는 등 가구 디자이너들이 작업의 범위를 다양한 공간으로 넓혀가는 추세다. 개인의 생활 습관과 취향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되고 쓰일 수 있는 가구는 그 가구를 디자인한 디자이너가 작업한 공간을 통해 더욱 깊이 이해되고 공유될 수 있을 것이다. 

요즘 국내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가구 디자이너들을 전보다 훨씬 많이 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들이 디자인한 가구, 공간을 보면 젊은 세대답게 개성이 강하고 생각하는 바를 분명하게 표현하는 점이 인상적이다. 이번 <행복> 주거 문화특집에서 소개하는 가구 디자이너의 집 역시 가구에서 비롯된 공간 철학으로 색다른 미감을 전해줄 것이다. 앞으로의 행보가 더욱 기대되는 가구 디자이너의 공간을 지켜보는 것은 참으로 마음 설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글을 쓴 강승민은 디자이너 아티스트 에이전시인 ‘토크 앤 서비스’의 대표이자 aA 디자인 뮤지엄의 큐레이터다. 탁월한 안목으로 가능성 있는 국내외 디자이너를 발굴하고 널리 알리는 데 앞장서왔다. 현재 상명대학교 미술대학 생활예술학과의 박사 과정에 있으며, 디자인과 색채를 주제로 강의한다.

기획과 구성 이새미, 이세진 기자 사진 이우경 기자, 박찬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8년 2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