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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예술계 선후배의 공감 30년 차이 음악은 나의 힘

기타리스트 이정선・박주원
음악은 나의 힘


이정선은 1950년생으로 한국 대중음악에서 포크와 블루스 음악의 흐름을 이끈 싱어송라이터이자 기타 연주자이다. ‘해바라기’ ‘풍선’ ‘신촌 블루스’ 등에서 활동했다. 총 11장의 솔로 앨범을 발표했으며, 이정선 밴드로 활동하고 있다. 2016년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박주원은 1980년생으로 2001년 밴드 ‘시리우스’로 데뷔했다. 2009년 앨범 <집시의 시간>을 발표하며 집시 기타리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2010년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재즈&크로스오버 부문, 2012년 한국대중음악상 올해의 음악인ㆍ최우수 재즈 & 크로스오버 부문에 노미네이트 됐다.



“1년 전 동덕여대에서 가르친 제자들이 정년 퇴임 기념 공연을 준비했는데, 그때 주원이도 와서 연주했죠.” 한국 대중음악계에서 포크와 블루스 음악의 흐름을 이끈 싱어송라이터이자 기타 연주자인 이정선(68세)과 ‘집시 기타리스트’ 박주원(38세)의 인연은 199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울예대 실용음악과에 입학했는데, 선생님께서 심사를 맡으셨어요. 저를 합격시킨 분이죠.” 1970~1980년대에 걸쳐 통기타 포크 그룹 ‘해바라기’, 이광조ㆍ엄인호와 함께한 ‘풍선’ ‘신촌 블루스’ 활동을 비롯해 2003년에 발매한 앨범 <핸드메이드Handmade>까지 총 열한 장의 솔로 앨범을 발매한 기타리스트 이정선은 지금도 여덟 명으로 구성한 ‘이정선 밴드’로 꾸준히 활동 중인 한국 대중음악계의 산증인이다.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했는데, 어쩌다 음악을 하게 됐냐고 많이들 묻죠. 제대를 하고 보니 집안 형편 때문에 용돈을 벌어야만 했어요. 예전부터 집에 기타가 있어 기타를 조금 칠 줄 알았는데, 기타 연주와 노래로 조금씩 용돈을 벌기 시작했지요.”

기타리스트 이정선의 아버지는 트롬본 연주자였다. “제가 태어나기 전에는 당신이 만든 악단을 이끌고 만주와 일본으로 순회공연도 다녀오셨지요. 해방 후에는 군악대장으로 오래 지내셨고요.” 박주원은 아홉 살 때부터 클래식 기타를 배웠지만, 명문 대학에 입학해야 한다는 입시 분위기와 부모님의 반대에 부딪혀 기타와 잠시 이별하기도 했다. “고등학교 입학 후 밴드반에 들어갔어요. 친구 권유로 다시 기타를 시작했죠. 기타 연주자들 중에 <이정선의 기타 교실> 교본을 안 본 사람이 있을까요? 음반으로 구하기 힘든 곡, 카피하기 힘든 곡들을 선생님 교본을 보면서 많이 공부했죠.” 딱 서른 살 차이, 스승과 제자이자 각각 한 세대를 대표하는 기타 연주자이기도 한 두 사람은 서로의 음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운전할 때 주원이의 음반을 번갈아 듣곤 하는데, 이 친구의 연주를 들으면 기분이 좋아요. 주원이의 연주 안에는 과거와 현재가 모두 담겨 있죠. 아주 오래전부터 탄탄한 기본기를 쌓아온 사람만이 보여줄 수 있는 연주예요.” 아홉 살 때부터 클래식 기타로 갈고닦은 기본기에 록 음악에 대한 열정을 키우다 ‘시리우스’라는 밴드로 데뷔한 박주원은 2009년 발매한 앨범 <집시의 시간>으로 집시 기타 열풍을 일으켰다.

“록 음악에 빠져 음악의 테크니컬한 측면에 심취해 있던 20대에는 음악의 ‘깊이’와 ‘솔Soul’을 다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지미 핸드릭스나 블루스에 뿌리를 둔 이정선 선생님의 음악을 가슴으로 받아들이지 못했죠. 나이를 먹고, 연주 경험이 쌓이다 보니 무대 위 선생님의 라이브 연주 실황을 보면 이제야 그 내공과 여유에 감동하게 돼요. 테크닉으로는 따라갈 수 없는 연륜이죠. 선생님 7집 앨범의 ‘건널 수 없는 강’을 가장 좋아해요.” 박주원은 어릴 때부터 우러러보던 음악계 대선배들이 한순간 음악계를 떠나거나, 다른 삶을 선택하는 것을 볼 때 불안하다고 말한다. 일흔이 가까운 나이에도 계속해서 밴드 활동을 하며 크고 작은 공연장에서 관객과 교감하는 이정선의 존재가 그에게 더욱 소중한 이유다. 지난 해 이정선 밴드는 일부러 작은 공연장만 찾아다니면서 공연했다. “총 여덟 명인 우리 밴드가 30석짜리 공연장에서도 연주했지요. 음악은 ‘교감’인데, 큰 공연장에서는 결코 느끼지 못하는 그런 종류의 교감을 할 수 있어요. 3월부터 다시 공연을 이어나갈 예정입니다.”

“뮤지션은 무대 위에서 연주할 때 살아 있음을 느낀다”며 웃음을 짓는 큰 나무 같은 대선배의 모습을 보며 박주원이 한마디 덧붙인다. “소망이 있다면 선생님의 연주를 뮤직 페스티벌에서 만나는 거예요. 10~30대 관객으로 가득한 뮤직 페스티벌에서 각각 한 세대를 대표하는 선후배 기타리스트가 만나 합주하는 무대, 멋지지 않을까요?” 

“주원이의 음악에는 탄탄한 기본기, 록 음악에 대한 열정, 집시 음악에 대한 본능적 감이 모두 들어 있어요. 계속해서 자기만의 색깔을 잃지 않고 음악을 하면 좋겠습니다.” _이정선

“팬으로, 제자로 오랜 시간 선생님을 뵈어오며 깨달은 건 뮤지션이라면 꾸준히 음악을 해야 한다는 거예요. 무대 위 선생님 연주는 언제 들어도 감동적입니다.” _박주원


글 유주희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7년 2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